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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빛 (1) (227/250)


그저 빛 (1)
2022.07.16.


되돌아왔다.

다시 모텔이다.

인기척은 느껴진다.

단지 전투가 벌어지진 않을 뿐.

‘벌써 끝났나?’

주민성은 눈을 감고 3층에 집중했다.

느껴지는 인기척은 셋이 아닌 둘.

그중에 악마는 없었다.

‘일단은 성공인 것 같은데.’

깔끔한 성공은 아닌 모양이다.

격한 감정의 동요가 여기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주민성은 되살아난 부부의 상태만 잠깐 보고는 3층으로 내려갔다.

“너무해요!”

“아니, 그냥 숨통을 끊었을 뿐이라니까?”

5번 세입자 악마사냥꾼은 여러 언어에도 능통했다.

주요 고객들이 천사였던 모양이기라도 했던 건지.

“저 왔습니다.”

주민성이 포착되자 3번 세입자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리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오셨어요?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분명 악마 숨통은 제가 끊기로 했단 말이죠? 그런데 저분이 악마의 멱을 따버렸다고요! 너무하잖아요! 으앙!”

“…아이고.”

그리고 5번 세입자의 입장이 이어졌다.

“얘기가 그렇게 된 건 맞아요. 근데 기회가 저한테 온 걸 어떡합니까? 악마놈이 심상치 않은 능력을 준비해서 어쩔 수 없었는데.”

대충 알 만했다.

모텔의 악마는 상대를 카오스 게이트와 흡사한 공간으로 보내버리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천사 씨.”

“네?”

“어쩔 수 없다잖아요. 분명 제가 악마 특징도 말씀드렸죠? 빠르게 잡아야 한다고.”

“그, 그건 그렇지만…….”

결국은 욕심이 문제였다.

3번 세입자는 강하지만 협력에는 매우 취약했다.

“아직 악마는 많으니까……. 차분히. 하나하나 잡아갑시다. 아직 며칠 안 지났잖아요.”

“알겠어요…….”

“그보다 악마는…….”

주민성은 악마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처음부터 느껴졌단 미약한 기운답게, 변변찮은 저항조차 못 하고 당했다.

세입자들의 강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머리통은 세입자 씨 가져요. 전에도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

하지만 3번 세입자는 망설이고 있었다.

“제가 직접 죽인 게 아니라서요…….”

“같이 죽였잖아요.”

“채점 방식이 까다롭거든요……. 본인이 직접 죽인 악마만 졸업 과제로 제출할 수 있어요.”

“아이고.”

결국, 이번에도 천사는 악마를 사냥하는 데 실패했다.

상관 없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5번 세입자는 베테랑이었으니까.

내심 노리기도 했다.

3번 세입자의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민성에겐 든든한 우군이 남아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기회는 또 있습니다. 다음에도 악마가 발견되면 바로 부르죠.”

“정말이죠? 약속이에요?”

“네.”

3번 세입자는 다루기 쉽다.

그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5번 세입자는 다르다.

강하지만, 계산적이다.

“형씨. 나는 다음번에 불러 줘. 나 말고 세입자들 많잖아? 당분간은 라면이나 더 즐기고 싶은데.”

“그러세요.”

그나마 라면을 좋아한다는 게 위안이었다.

‘다음엔 3번과 7번, 11번을 부르는 게 좋으려나.’

가장 위험한 조합은 7번과 천마의 조합이었다.

둘은 같은 차원 출신으로 앙숙 관계였다.

그렇기에 7번은 천마와 단둘이 남겨져서도 안 된다.

다행히 11번 세입자가 오지랖이 좋아 중재 역할을 잘 해낼 뿐.

5번 세입자는 중재보단 자기 할 일에만 충실한 타입이니까 중재를 기대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7번과 11번은 세트로 활용하는 쪽이 가장 좋다.

“다음에 또 뵈어요!”

“네. 라면 너무 많이 먹진 말고요. 살이 좀 찌신 것 같아서.”

“윽…….”

천사라고 무작정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꾸민다면 얘기야 달라지겠지만, 평소에도 꾸준히 자기 관리하는 최선아나 성아영 쪽이 훨씬 예뻤다.

게다가 지금의 3번 세입자는 인벤토리에서 얼마나 먹는 건지 살이 엄청나게 쪄버린 상태였다.

순간적인 대처가 느렸던 건, 이런 부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악마 시체는 결국 악마사냥꾼이 챙겨갔다.

자기 차원으로 가져가면 팔 수 있다나.

그보다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왜 세입자들은 인벤토리가 없지.”

문득 궁금해졌다.

차원 경매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이 인벤토리가 없다는 게 신기했다.

“그쪽 차원에서는 춘향이가 인벤토리 해금법을 파악했었다고 했지…….”

같은 봉춘향이었지만, 차이는 명백했다.

다른 차원의 봉춘향은 소꿉친구인 송몽룡을 잃고, 고블린어조차 쓰지 않는 냉정한 지배자의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봉춘향은 솔직히 귀엽다.

별명부터가 군필여중생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 성숙한 구석도 있었지만, 나이에 어울리는 버릇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결국 더 고생한 쪽이 많이 깨닫는 건가.”

주민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벤토리 능력을 얻게 된 시기는, 콩이가 크게 다쳐 죽을뻔했던 시기였다.

설령 인벤토리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콩이는 구하지 못했을 터였다.

콩이를 살린 건 건물주 능력이었으니까.

“……안타깝네.”

다른 차원의 형편을 생각하니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건물주 능력에게도 마찬가지.

이 능력은 지금의 주민성을 포함해 국내는 물론, 세계정세까지 바꿔냈다.

심지어 앞으로의 정세까지 가늠해볼 수 있는 고급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다.

우연이지만, 신성의 회장인 신명철의 소재지가 파악됐기 때문이다.

“북아프리카.”

다른 차원의 신성은 북아프리카에서 자리를 잡았다.

어느 한 국가가 아닌, 지역 전체였다.

신성은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도 거대한 세력을 펼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선 사정이 더욱 좋다.

신우빈은 주민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신명철 역시 건재하다.

“그곳에도 무언가 벌어지겠군.”

부디 나쁜 방향은 아니길 빌었다.

절대 견제해오지 않겠지 하는 속편한 생각이 아니었다.

덤비려거든, 대격변이 끝나고 덤비길 바랐다.

미국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대였다.

건물주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이 컸다.함부로 건드리기도 난감하다.

세 살배기 아이를 상대로 공격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 역시 하책중의 하책이었다.

잘만 키워도 안전한 미래가 보장되는 능력자였으니까.

“일단 교통 정리부터 빠르게 끝내야겠어.”

주민성은 곧장 차원 경매장 능력을 재사용했다.

[광휘의 날개: 개당 304억 9000만 원]

[구매 가능 수량: 1]

그리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구매.”

[광휘의 날개 1개가 수납됩니다.]

304억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돈은 주민성의 편이다.

“플렉스.”

다음은 모텔에 있는 중년 부부의 차례.

이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악마에게 나름의 저항을 했던 능력자였다.

모난 성격도 아니었으니 금방 생존자 집단에서 적응할 수 있을 터였다.

“이, 인천이요?”

“네. 대격변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거기서 지내주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안전하기도 하고요.”

부부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의도는 머지않아 격전지가 될 예정이니까.

“곧입니다. 몬스터보다 사람을 두려워할 시기가 오거든요.”

주민성은 창가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엔 주변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탑이 있었다.

“저게 튜토리얼 탑이에요.”

“맙소사…….”

튜토리얼 탑 메시지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마에게 쫓길 당시엔 떠오르지 않았지만, 주민성에 의해 부활하곤 몇 분 지나지 않아 탑 관련 메시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밝은 건 이 주변뿐입니다. 어둠에 휩싸였죠. 아마도 이 어둠이 자연스레 걷히면, 그때부턴 여의도는 전쟁터가 될 거고, 힘들게 되찾은 소중한 목숨도 보장해드릴 수 없어요.”

“…….”

시간 역행은 절대 쉬운 능력이 아니었다.

조금만 과하게 써도 탈진이 찾아올 정도로.

순서를 따지자면 건물이 가장 부담 없었다.

다음은 죽은 몬스터, 죽은 사람 순서였고.

아무튼 사람 살리는 게 건물 살리는 것보다 힘들다는 소리다.

“먹을 건……. 직접 구해야겠죠?”

“아아. 방송 안 보셨구나.”

중년 부부는 한참을 카오스 게이트에서 방황했기에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천과 안산에 거주 구역을 만들어 뒀습니다. 식량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 경제 활동만 활발히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환전 비율도 거기서 따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인천과 안산 쪽 소식은 봉춘향을 통해 들었다.

예전보다 훨씬 발전했다고 한다.

이수길을 비롯한 사무소 식구들이 특히 활약했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경제 활동이 가능한 거주 구역……. 1차 대격변 때가 생각나는군요.”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몬스터가 계속 나타나거든요?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인천의 오크들은 많이 사납다던데…….”

“지금은 아니에요.”

주민성은 추가로 인천 게이트와 관련된 설명을 덧붙였다.

그제야 중년 부부 또한 같은 텐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맙소사! 그 정도면 게이트가 아니라 도시인데요?”

“네. 거기다 편의점이나 헬스장은 둘째치고, 고깃집은 줄이 꽤 기니까 조금 기다려야 할 겁니다.”

“오오오……. 무조건 가야지요!”

의심은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주민성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시국에 차량 이동이 가능합니까? 사방이 몬스터일 텐데요…….”

“아아. 차량 이동은 문제 없어요. 그 전에 잠시 다른 수단 좀 확보해 보려고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기다리는 건 익숙합니다. 얼마든지 다녀오십시오.”

“네. 그럼 잠시만요.”

생존자들의 동의도 얻었으니 남은 건 이동뿐.

주민성은 설레는 마음으로 옆방으로 자릴 옮겼다.

“드디어 개봉 시간이군.”

광휘의 날개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허…….”

인벤토리에서 나온 광휘의 날개는 빛 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눈부시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감수성을 자극하는 아련한 파스텔 톤의 빛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대박…….”

주민성이 착용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비주얼이다.

아니, 착용하기조차 죄송할 정도.

하지만 오늘의 양심 한도는 중년 부부를 구한 것으로 끝이었다.

“이거라면 분명 된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주민성은 광휘의 날개를 향해 몸을 던졌다.

“300억의 맛. 보여 주십시오.”

그대로 빛이 주민성을 휘감았다.

이는 투혼 갑옷을 착용할 때와도 비슷한 현상이었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원한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이는 유물이다.

오히려 치유계 감성이었다.

“오.”

날개뼈 너머로 빛의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텐트 하나를 더 뒤집어 쓴 것마냥 몸도 가벼워졌다.

느낌이 왔다.

“이건 된다.”

도약 몇 번이면 인천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주민성은 그대로 중년 부부에게 돌아갔다.

“유, 유, 유물?”

“네. 맞아요.”

유물 사용법은 날개가 몸에 깃든 순간 바로 깨달았다.

날개를 움직여 날 수도 있었고, 크기를 키워 사람들을 감쌀 수도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굳이 차량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아, 알겠습니다.”

주민성은 중년 부부와 함께 모텔 밖으로 나왔다.

아기 고블린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자동 강화 모드에 들어간 모양이다.

츠츠츳!

“어어……?”

광휘의 날개가 커지며 중년 부부를 감쌌다.

이것으로 날아오를 준비는 끝.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감싸시고요.”

“아아, 네!”

멀미의 가능성은 텐트로 방지했다.

완벽한 준비가 끝난 것이다.

주민성은 그대로 다리에 힘을 줘 힘껏 점프했다.

“오.”

비싼 날개답게 상당히 힘을 줬음에도 충격파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사뿐히 날아오를 뿐이었다.

고도가 오르고, 서울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사방이 어둠에 깔렸습니다만…….”

“네. 저게 아까 말한 어둠입니다. 죽으면서 어둠을 뿌리는 악마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이 날개만 없으면 문제없을 겁니다.”

광휘의 날개는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편리한 도구 중에서도 가장 비싼 유물이었다.

시력엔 무해한, 하지만 어둠엔 가장 치명적인 빛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교하기까지 하다.

정확히 주민성이 이동하는 동선으로만 빛이 뿜어졌다.

여의도에서 인천까지.

전부 주민성이 점령했던 구역이었다.

“단번에 갑니다. 템포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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