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4) (226/250)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4)
2022.07.15.


“…….”

다 죽고 남은 인구 1000명 남짓.

그것이 다른 차원의 현실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어느 순간부턴 식량에 독을 타는 지능형 몬스터들까지 출몰하더군. 심지어 식량을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자들을 집중적으로 암살하는 놈들까지 한 패다.”

대격변이 지속될수록 몬스터들의 지능도 올라가는 모양이다.

이 모든 계획엔 분명 유물을 기반으로 한 보스 몬스터가 분명히 관여되어 있다.

당장 주민성이 겪어 본 몬스터만 하더라도 그렇다.

강서구에서 마주쳤던 웨어울프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움직이던 몬스터들이기도 했다.

“……이해했습니다.”

“고맙군……. 그렇다면 남은 인원들은 내가 최대한 모아서…….”

“아뇨.”

“……음?”

“여러분들을 세입자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평행세계.

상상으로만 존재할 것 같던 세계가 실존했다.

이 사실은 눈으로 보고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저희도 그렇게 형편이 좋진 않아요. 그리고 핵심. 눈앞의 이현 씨와 우리의 이현 씨가 마주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쪽 차원에도 춘향이가 있고, 우리의 핵심인 춘향이도 있습니다. 받아들여지겠습니까?”

“…….”

“대격변이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입니다.”

“……그런가.”

애초에, 두 차원이 극단적인 차이를 보게 되는 원인엔 이현도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은 생각보다 쉽게 납득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에서의 이현 씨는 현재 실종상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그쪽이 넘어오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고요. 리스크는 지지 않겠습니다.”

“……그렇군.”

“물론 가장 무서운 리스크는 EX급 건물주겠죠.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진 걸로 모자라, 그 능력을 저보다 훨씬 크게 성장시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그 능력자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 거예요.”

주민성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최선호만 해도 건물주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성장시켰다.

그럼에도 세 살배기 아이가 이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한다는 건, 순수한 욕망이 건물주 능력에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민성에겐 이런 메시지도 떠오른 적 있었다.

[건물주의 행동 패턴을 분석합니다.]

[지나치게 부지런합니다.]

[여유가 심각하게 없습니다.]

[건물주의 실적을 분석합니다.]

[공실이 터무니없이 많습니다.]

[소유 건물의 관리도가 처참합니다.]

[수익성 있는 건물이 없습니다.]

[이용자의 평가가 부족합니다.]

[포기한 건물이 너무 많습니다.]

[건물주 등급 재판정이 완료됩니다.]

[재판정 결과: FFF]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정 결과는 FFF.

“줄리아라고 했었죠. 저는 절대 못 이깁니다.”

아기는 다르다.

언제나 여유롭고 느긋하다.

세상의 풍파를 겪지도 않았고,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본능에 따라 챙긴 건물은 분명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변인들이 압도적인 실적을 챙겨 줄 게 분명했다.

이용자의 평가 또한 말할 것도 없다.

귀엽다, 착하다 등등 긍정적인 말만 들어왔을 테니까.

게다가 아기가 포기한 건물조차도 주변인들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을 게 분명하다.

스미스는 컨테이너만으로도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내놓았을 정도로 건물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심지어 그런 능력자가 시작부터 SSS급이었다?

재판정 결과 EX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저희 쪽 사정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아니, 가슴 깊이 와 닿을 정도로 이해했다. 이 또한 내가 사과할 일이였어.”

“괜찮습니다. 그래도 지원은 할 수 있으니까요.”

“저, 정말인가?”

“일단 텐트는 예정대로 수령하세요. 거기에 제대로 된 건물 하나 더 보태 드리겠습니다.”

원래라면 건물 양도는 지극히도 경계해야 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현이 있는 차원은 다르다.

그곳에도 건물주 능력자는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곳에 주민성은 없다.

대신, 더욱 강대하고 순수한 존재가 있었다.

믿기로 했다.

비록 남은 인구는 적지만, 무사히 성장만 마친다면 EX급 건물주는 여태까지의 모든 고난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한참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초등학생 수준으로만 성장해도 된다.

세상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된다.

“어떤 건물을……. 말이지?”

“별건 아니고, 그냥 허름한 아파트인데요. 부가효과는 제대로 걸려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물 부가효과의 위력은 이미 검증됐다.

고작 컨테이너 하나만으로, 부처 길드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국 최강이 되었다.

굳이 줄리아라는 히든카드가 대두될 것도 없었다.

순수 길드만의 힘이었다.

“건물주의 아파트…….”

눈앞의 이현은 건물주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표정엔 희망이 가득했다.

“너무 기대는 마세요. 저 아파트에선 포탑 같은 거 안 나오니까.”

“……음? 포탑이야말로 건물주의 핵심 능력 아닌가?”

“건물주 능력자는 각자의 성향대로 성장합니다.”

극한의 안전주의.

이것이야말로 주민성이 가진 근본이었으리라.

건물 부가효과는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안전한 환경을 제공했다.

건물 부가효과는 외부의 위협을 방지하고, 집안에서 돌연사할 가능성을 극도로 낮춰주는 효과들로 똘똘 뭉쳐있었다.

진정한 집돌이를 위한 능력이었다.

한때 목표 삼았던 지하 벙커에 반드시 있었으면 하는 효능이기도 했다.

“제가 양도하는 아파트 내부에선 어떤 음식도 썩지 않습니다. 어떤 생화학 공격도 통하지 않을 거고요. 그나마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하다는 게 단점이네요.”

이현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주민성이 말한 건물 부가효과는 모두 능력으로 대체 가능했으니까.

“영구 지속입니다. 굳이 능력자들을 동원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가장 핵심 능력을 말 안 했는데요.”

“……음?”

주민성은 이현의 경악을 자신했다.

“어지간한 부상은 전부 회복이 가능합니다. 컨디션도 최상으로 유지해 주고요.”

“……!”

“tmi로 머리카락이 너무 빨리 자라는 게 흠이긴 하지만……. 일단은 생존이 중요하니까 그 정도는 감안해 주시고요.”

예상대로였다.

이현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본격적인 건물 활용법을 상상하고 있을 터였다.

주민성은 그 결과를 알고 있다.

회복 능력 하나만으로 능력자는 혼자서 일당백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아무튼, 제가 소유한 첫 번째 아파트니까 소중히 사용해 주시길. 아마 그쪽의 춘향이도 아는 건물일 거예요.”

다른 차원의 봉춘향 역시 판자촌 출신일 터였다.

신우빈이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아파트를 모를 수가 없다.

같은 게이트에 있던 건물이다.

‘요즘은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없으니까 괜찮겠지.’

원래는 생존자들을 위한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자들간에도 경쟁이 발동해 하나같이 텐트나 컨테이너에서 잠을 청한다.

부가효과는 똑같이 적용되었으니까.

온도까지 조절되니 추위나 더위에 고통 받을 일도 없다.

‘성아영도 짐은 다 뺀 상태고.’

그리고 아파트 관리자인 성아영은 이제 백삼빌딩에 거주할 예정이다.

이 정도면 양도해도 손해 없는 수준.

“일단 아파트도 매물로 등록하겠습니다. 구매 조건으로 이현 씨 이름만 달아 두면 괜찮겠죠? 또 다른 이현 씨가 있을까 걱정은 된다만.”

“상관없겠지…요.”

여기부턴 호의의 영역이었다.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이현도 언제까지나 반말로 주민성을 대할 수는 없는 상황.

다행히 눈치는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이현 씨가 여럿이었다면 코멘트가 더 많았겠네요. 아무튼, 아파트 등록합니다. 될 수 있으면 남은 돈 전부 투자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든 벌어들일 수 있고요. 일단 있는 돈 전부 드리고, 나중에 아무 물건이나 저만 구매할 수 있는 조건으로 등록하시면 잔액까지 치르겠습니다.”

“좋네요.”

이현은 차원 경매장을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알았다.

돈이라면 세계 각지에 널려 있었고.

환전은 알아서 적용되니 마음먹고 돈만 모은다면 세계 최강의 갑부도 문제는 아니리라.

“계약서도 필요하십니까?”

“아뇨. 딱히.”

계약은 의외로 허점이 많았다.

당장 건물 부가효과만으로도 파훼할 수 있다.

오히려 조건을 상세히 걸어두는 쪽이 안전하다.

게다가 멸망을 앞둔 만큼, 협조하지 않아서 손해 보는 쪽은 주민성이 아니었다.

“대신 조건을 이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거래에 응할 때까지 최대한 현찰을 모아 주시는 걸로. 또한, 제가 거래를 거부할 땐. 아마도 금액이 제가 원했던 만큼이 아니라는 소리겠죠? 그럴 땐 양도했던 아파트는 자동으로 폭발하며 거래액의 두 배를 배상해드리는 조건입니다.”

마지막 배상 조건 역시 나름의 전략이었다.

아파트의 가격을 정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

이현으로선 주민성의 주관에 의해 가격이 책정되었다고 판단했기에 거래 불발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배상액이라도 최대한 높이는 게 최선이다.

차원 경매장을 통해 내건 조건은 주민성도 반드시 지켜야 하니까.

“……좋습니다. 지금의 호의가 앞으로도 호의이길 바랍니다.”

이현의 표정에 얕은 경계가 서렸다.

하지만 상관없다.

안타깝지만 눈앞의 이현이 있는 차원은 주민성이 받아들여선 안 되는 차원에 해당한다.

정체성의 문제였다.

물론 호의는 제공할 예정이었다.

다시 마주치지 않길 바랄 뿐.

그리고 멸망을 막아내길 기원할 뿐이다.

EX급 건물주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지구 전체의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살아남을 차원이었다.

“그럼 매물 등록하겠습니다.”

“예.”

이것이 세 번째 매물 등록이었다.

이번엔 아무런 입찰 메시지도 뜨지 않는다.

입찰은 이현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조건이었으니까.

“입찰하시죠.”

말이 경매였을 뿐.

이것은 거래였다.

서로가 윈윈하기 위한, 각자의 차원을 대격변 속에서 구해내기 위한 무겁디무거운 거래였다.

“인벤토리 능력. 없는 건 아니죠?”

“……예. 춘향이 도움을 받아서.”

봉춘향은 다른 차원에서도 대활약하고 있었다.

심지어 주민성도 개척하지 못한 인벤토리 능력을 양산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잉.

이현의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새하얀 인벤토리였다.

곧이어 메시지도 함께 떠올랐다.

[아파트1의 현재 입찰가: 127억 원]

“텐트 입찰금 제외하고, 이게 전부입니다.”

생각보다 이현이 가진 자본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건물주 능력자가 주변에 없었음에도 이 정도의 자산을 모았다는 점은 고평가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기존에 모아 뒀던 재산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잔액은 확실히 치를 테니, 일단은 이걸로 양도해 주시길.”

주민성은 메시지를 잠시 응시하곤, 여유 있게 답했다.

“127억에 텐트값 504억. 총 631억이네요. 좋습니다.”

광휘의 날개 가격인 304억을 빼고도 크게 남는다.

이 정도면 유물급 장비를 추가로 맞출 수 있는 수준.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 잔금은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부디 앞서 말했던 부가효과가 진실이길.”

“물론이죠. 참고로 텐트에도 부가효과는 걸려 있으니까 걱정 마시고 사용하세요.”

“텐트도…. 건물입니까?”

“…크흠. 그렇더라고요. 아무튼, 내구도는 보통 텐트보다야 당연히 튼튼하겠지만, A급 출력 정도의 능력에 노출되면 손쉽게 찢깁니다. 잘 관리해 주세요.”

“…예.”

다음은 텐트의 차례였다.

이것을 넘기는 순간, 모든 금액이 정산되기에 임시로 마련된 지금의 공간도 사라진다.

이제 다른 차원의 이현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잔금을 치를 때, 한 번뿐이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얼굴로 뵙길 바랍니다.”

“주민성 씨도……. 무운을 빕니다.”

이젠 최종 절차가 남았다.

[텐트99의 현재 입찰가: 504억 원]

[아파트1의 현재 입찰가: 127억 원]

[매물로 등록된 건물의 양도와 동시에 입찰가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수령.’

[텐트99가 양도됩니다.]

[아파트1이 양도됩니다.]

[입찰가 631억이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시 원래의 세계로 보내지려는 모양이다.

주민성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공간의 일그러짐에 몸을 맡겼다.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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