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3) (225/250)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3)
2022.07.14.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눈앞의 이현이 여태 알던 이현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적어도 여태 알던 이현은 세입자가 아니었으니까.

“설마……. 인천이 멸망했다고 코멘트 남겼던…….”

“이제 기억하는군.”

“…….”

주민성은 눈앞의 또 다른 이현이 남겼던 코멘트를 다시금 떠올렸다.

처음은 입주 신청 메시지였다.

[입주 신청 번호: 2]

[종족: 인간]

[입주 사유: 생존]

[코멘트: 누구냐 넌. 인천은 3년 전에 소멸했을 텐데.]

이후 구매 후기로 이런 말들을 남겼었고.

[인천의 불씨는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이베리카는 여전히 그 지옥을 지배하고 있었고.]

[너는 대체 누구지?]

[인천의 물건들은 대체 어디서 구해 온 거냐.]

[이런 물건들 말고, 세입자 모집부터 해라.]

[만나서 얘기하지.]

다음 세입자 모집 당시에 놓치지 않고 참여했었다.

[입주 신청 번호: 6]

[종족: 인간]

[입주 사유: 생존]

[코멘트: 이번엔 종로인가? 일단 입주부터 시켜라.]

핵심은 하나였다.

그는 계속해서 주민성과의 만남을 원해 왔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정말 저 모르십니까.”

이현은 마지막까지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른다.”

이제 인정해야 했다.

눈앞의 이현은 그동안 알던 이현이 아니었다.

여태 알던 이현과는 다른 역사를 써내려온 다른 차원의 이현이었다.

“이제 확실해졌네요…….”

“무슨 말이지.”

“적어도 그쪽이 여태 알던 이현 씨가 아니라는 게.”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널 오늘 처음 봤다.”

주민성은 허탈하게 자조했다.

그리고 다시금 이현을 향해 똑똑히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뭐?”

갑작스럽게 바뀐 주민성의 태도에 이현이 당황했다.

지금은 하고 싶었던 말을 꼭 해야 했다.

“존댓말 할 줄 알아요. 몰라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냐.”

“내가 그쪽 세입자로 받지 않은 이유 분석은 안 해 봤습니까?”

이현은 잠시 고민하곤 답했다.

“그냥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휴.”

예상대로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이 딱 맞았다.

차원 경매장 능력을 사용할 정도의 강자는 심리적으로 고립되기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주민성은 수첩을 뒤적이며 그동안 이현이 보냈던 메시지를 보여줬다.

“봐요.”

“…….”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

“어떻습니까?”

그제야 이현의 표정이 난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남긴 코멘트지만……. 굉장히 건방졌군.”

“맞아요.”

이것이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이었다.

최강자가 되면 이런 점들이 골치 아팠다.

내가 갑이니까.

주민성은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신우빈을 일찍 만난 덕분에 갑으로서 갑을 상대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었다.

이현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던 거고.

“지금이라도 사과하마. 내가 과했다.”

다행히 이현은 자신의 잘못들을 순순히 인정했다.

이런 점만 본다면 확실히 이현이란 사람 자체는 좋다.

인정해야 할 땐 인정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민성의 안목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 사과. 받겠습니다.”

이현은 어리지 않았다.

오히려 1세대 능력자 중에서도 최강자급이었다.

반말 정도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초면이라기엔 초면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할 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물어볼 게 너무나도 많았다.

같은 한국이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다르다.

여기서 눈앞의 이현이 개척한 미래는, 협회장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개척해낸 미래였다.

“그 협회장을 어떻게 죽인 겁니까.”

“어떻게 죽였냐라…….”

이현에겐 먼 과거의 이야기였을 터였다.

상당히 긴 시간 고민하는 모습이다.

주민성은 자신이 알던 이현의 말을 떠올렸다.

-처음엔 놈의 상반신 전부를 없앴습니다.

-아뇨. 실제로 없앴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타이밍에 눈앞의 이현이 말했다.

“상반신 전부를 없애 버렸다.”

“…….”

“아무리 놈이 강하다 한들 살아남을 리가 없지. 머리와 심장이 전부 날아갔는데,”

놀랍게도 두 이현은 같은 상황을 겪었다.

그럼에도 결과가 다르다.

두 이야기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놈. 죽지 않습니다. 머리와 심장이 날아가도 멀쩡히 살아있더군요.

주민성이 아는 협회장은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자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땐 이미 제 몸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몸도 의식도 전부 악마에게 빼앗긴 이후였습니다. 저항이라곤 악마 놈이 보는 걸 같이 보는 정도. 그것도 하루에 10분 남짓이었습니다.

주민성이 아는 협회장은 악마와도 손을 잡았었다.

“협회장. 확실히 죽은 거죠?”

“그래. 확실히 죽었다. 덕분에 나는 가족들과 약혼녀를 지키는 데 성공했었지.”

성공의 이야기였지만, 밝지 않았다.

구해냈다는 이야기조차도 과거형이었다.

이현의 얼굴엔 회한이 가득했다.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했을 뿐…….”

이현이 사는 차원, 또 다른 지구는 주민성이 사는 곳과 형편이 너무나도 달랐다.

당장 아는 내용만 해도 그렇다.

인천은 진작에 멸망했고, 주민성이 가진 유물의 주인인 이베리카가 신나게 날뛰는 세상이었다.

심지어 인천의 멸망은 3년 전이었다.

“……그쪽.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이현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멸망 직전. 이미 멸망한 나라가 대부분이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폴란드, 북아프리카 정도만 힘겹게 버티는 실정이다.”

“…….”

침통한 표정.

이현이 언급한 국가는 정말 인류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 와중에도 폴란드와 미국이 눈에 띄었다.

미국의 비공식 길드인 부처는 주민성이 사는 세상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폴란드는 파벨의 국적이었으니까.

“혹시, 폴란드의 수장은 파벨입니까?”

“맞아. 놈이라면 그쪽 차원에서도 살아남았겠지. 놈에 대해 잘 아는가?”

“……아는 것을 넘어 우리 편입니다만…….”

이현의 눈빛이 거칠게 떨렸다.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돼……. 그놈은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일 텐데……. 심지어 공동전선까지 펼쳐서 함께한다고?”

이현은 억울해 보였다.

같은 한국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냐는 듯.

주민성은 침착하게 이현의 차원과 주민성의 차원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차분히 기록해나갔다.

“한국이라면 이현 씨가 대표겠죠. 신우빈은 거기서도 잘 버티고 있습니까?”

“……음? 신우빈……. 신성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이현의 차원에서의 신우빈은 자신의 이름보단 기업 대표로서의 이름을 더욱 알린 모양이다.

“신성이라면 북아프리카 전체를 지키고 있지. 세력으로 따지자면 가장 큰 세력이고.”

“……그것도 다르군요.”

놀랍게도 신우빈은 한국에 남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키워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알아서 잘’이라는 단어를 누구보다도 잘 실천하는 인물답게 가장 유리한 전선으로 북아프리카를 선택했을 터였다.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대표는 내가 아니다. 봉춘향이지.”

“춘향이요……?”

“봉춘향도 아는 건가. 그곳에서도 군부가 부활했겠군.”

“아, 아닌데요……. 춘향이도 우리 편인데.”

“…….”

이현이 언급하는 봉춘향 역시 주민성이 알던 봉춘향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곳의 봉춘향은 사람이라기 보단 냉혈한에 가까운 여장부였다.

심지어 송몽룡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유는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송몽룡의 능력엔 아주 큰 페널티가 있었으니까.

몸이 능력을 견디지 못했을 터였다.

“말도 안 돼…….”

그제야 이현도 핵심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차이의 중심엔 주민성이 있었다.

“너, 넌 대체 뭐냐…….”

“주민성인데요.”

“……나는.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들어본 적도 없고, 너 같은 능력자도 본 적이 없다.”

“뭐…….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이현 씨는 협회장을 죽이지 못했거든요.”

“정혁수가 강하긴 하지만……. 나라면 반드시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차이가 좀 있습니다. 일단,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죠.”

주민성은 두 차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협회장에 대해 설명했다.

어떤 능력이든 사거나 빼앗아버리는 협회장 특유의 능력은 이현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아아……. 그래서 놈이 내 약점을 잡으려 했던 건가.”

“그렇죠. 협회장도 그쪽 공간 점멸 능력엔 대책이 없었으니까.”

“……그곳에서의 나는 능력까지도 공개했던 건가.”

“제가 나름 이현 씨 생명의 은인입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악마에게 조종당하던 사람 중엔 이현 씨도 있었으니까.”

“……끔찍하군.”

그 외에도 주민성은 이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두 차원의 차이는 고작 악마의 유무 하나였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다른 차원에서의 세계 최강국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고, 봉춘향은 송몽룡과 신성의 지원으로 군부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마냥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두운 이야기에 가까웠다.

송몽룡은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군부와 신성은 대립하게 되고, 신성은 북아프리카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서풍 역시 신성과 함께였지만 부족했다.

봉춘향은 10대 길드까지 장악한 걸로 모자라 단일 세력 통합까지 이뤄냈으니까.

파벨은 자신이 가진 분석 능력의 진가를 드러냈다.

그 어떤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고, 파훼했다.

하지만 그뿐.

누구도 돕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만을 지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

다른 차원의 미국은 세계최강국 지위를 되찾았다.

심지어 수장은 스미스가 아니었다.

소피아라는 3세 남짓한 어린아이라고 한다.

이현이 주민성에게 흥미를 보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EX급 건물주 줄리아. 그 아이가 세계 최강의 능력자다. 그런 점에서 나는 너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건물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하더군. 너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 확신했다. EX급 건물주. 이름은 주민성이었던가.”

“……돌아버리겠네.”

충격은 주민성에게로 옮겨졌다.

자신과 같은 능력명을 가진, 심지어 SSS급 능력자가 미국에서 등장했다.

“……FFF급 건물주는 없었습니까?”

“FF급이라면 있었다. 파벨의 등급이었지. 하지만 그마저도 재평가됐다. 어느 순간을 계기로 급격하게 강해지더군. 지금의 파벨은 EX급. 측정 불가 등급이다.”

“…….”

소름 돋는 사실이었다.

남 도와주기 좋아하는 파벨이 측정 불가 등급 수준으로 강해지는 것도 그렇고, 미국에서 비밀리에 EX급 능력자를 보유했다는 것도 그렇고.

“다시 잘 기억해 보세요. 줄리아라는 아이. FFF급이었을 겁니다.”

“아니. 세계 최강 능력자의 등급이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줄리아는 SSS급으로 각성했고, 지금은 파벨과 함께 EX급으로 평가받는 초인이다.”

시작부터 SSS급.

주민성에게는 슬픈 사실이었다.

줄리아라는 아이는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모양이다.

“후우. 일단 알겠습니다……. 미국에 그런 히든카드가 있었을 줄이야. 이 부분은 따로 대응해야겠군요.”

“나도 미국 쪽과 관련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 통신도, 접근도 전부 불가능한 상황이라. 신성이라면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은 그렇다.”

주민성으로선 대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건물주 능력을 사용하는 데다, 심지어 SSS급부터 출발이란다.

그 정도면 어떤 건물에 발을 들이든 소유권을 빼앗을 수 있으며, 어떤 건물이든 제한 없이 자유롭게 초월시킬 수 있을 터였다.

예상뿐이었지만, 건물주라는 능력은 그런 능력이었다.

어쩌면 우튜브조차도 줄리아가 개입해 부활시켰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눈앞의 이현이 말해주는 EX급 건물주의 능력은 능력자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으니까.

“터무니없는 능력이었지. 튜토리얼 탑이라는 이상한 건물을 세워 능력자를 끊임없이 강화시키질 않나, 심지어 건물에서 제멋대로 포탑이 자라더군. 그쪽은 나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이 되어버렸다.”

“아니 근데……. 왜 지구가 멸망입니까. 응애 몇 번이면 지구는커녕 다른 차원에 침공해도 되겠구만.”

“……세계 최강의 능력자가 고작 세 살이다. 그 아이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그 아이가 성장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야. 현실은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요약하자면, 줄리아가 성장하는 것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게 빠른 모양이다.

“우리 차원의 상황을 설명하지.”

주민성은 이현이 하는 얘기를 전부 받아 적었다.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북아프리카와 한국은 갈등관계.

이를 중재하려는 미국은 줄리아에게 덜미를 잡혔단다.

외부 침입자라면 피아 구분 없이 전부 공격해버리는 건물을 세워버린 탓이다.

심지어 건물의 요격 범위가 어지간한 미사일 급이라서 물자 수송이 불가능한 상황이란다.

와중에 유럽 전체를 끌어도 모자랄 폴란드는 나 혼자 산다 독자노선이었고.

“이제 남은 생존자는 1000명 남짓. 그마저도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지금도 계속해서 생성되는 게이트에 잠식되어 가는 형편이다.”

“……물자라면 차원 경매장이 있으니까 괜찮겠고, 생존 공간 마련이 핵심이네요. 그보다 생존자가 너무 적은데. 한국에 남은 생존자만 1000명 정도인 거죠?”

“아니. 전 세계에 남은 생존자가 1000명 남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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