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2) (224/250)


건물주가 쏘아 올린 작은 집 (2)
2022.07.13.


매물이 팔림과 동시에, 같은 종류의 새로운 매물을 등록했다.

상대 입장에선 이게 뭔가 싶을 터였다.

[텐트99의 현재 입찰가: 12만 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입찰가가 이를 증명한다.

0의 자릿수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주민성은 담담했다.

지금 내놓는 중고 텐트마저도 결국은 새 제품보다 훨씬 비싸게 팔릴 테니까.

‘이제 정산을 받아 볼까.’

주민성은 아기 고블린 모르게 인기척이 없는 장소로 이동했다.

‘저쪽이 좋겠군.’

기왕이면 푹신한 침대가 있는 모텔이 좋았다.

혈흔도 없는 폐쇄된 곳이라면 더더욱.

콰득!

건물 잠금장치는 무의미했다.

그냥 힘줘서 당기면 열린다.

부서진 문이나 문고리는 건물 보수를 이용해 복구할 수도 있었고.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모텔24가 추가됩니다.]

모텔 소유권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동안 얻은 게 대부분 폐건물이라 그렇지.

멀쩡한 모텔은 숙박업소의 기능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 이 모텔은 나중에 국회의사당 팀의 임시 숙소로 대여해 주면 적당해 보인다.

“…….”

주민성은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건물에 진입함과 동시에 미약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생존자라고?’

확실히 여의도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생존자끼리의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만큼, 몬스터의 개체 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역에 해당했다.

충분히 생존자가 있을 법한 환경이다.

잠금장치를 내부에서 활성화했다는 전제하에.

“…….”

인기척이 느껴지는 위치는 1층이 아니었다.

3층이었다.

따라서 사장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가장 비싸고 크고 안전한 방은 5층에 몰려 있었으니까.

‘한 번도 바깥에 나오지 않는 건가?’

평범하기엔 비상식적이고, 비상식적이기엔 너무나 잠잠하다.

이득이 되는 인물은 아닐 터였다.

근처를 지나간 생존자는 수없이 많았으니깐.

어느 쪽에 투항하는 것보단, 지독하게 혼자서 살아남는 걸 선호하는 인물이리라.

‘방해만 안 된다면 상관없겠지.’

일부러 소음을 내며 5층으로 향했다.

이젠 누구보다도 살기를 감지하는 데 능해진 주민성이었다.

드드드…!

살기는 없었다.

대신, 움츠러드는 게 느껴진다.

이것으로 생존자와 주민성의 접점은 사라졌다.

콰득.

5층 진입도 간단했다.

문은 손쉽게 부서졌다.

“윽.”

하지만 주민성은 차마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엔 끔찍하게 죽어있는 시체 두 구가 있었다.

“…….”

몬스터에게 죽은 흔적은 아니었다.

상처 부위가 너무나 정교했다.

심지어 저항의 흔적조차 없다.

이곳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죽은 지 한 달은 지났군.’

이들이 모텔의 원래 주인이었다거나 하는 추리는 필요 없었다.

주민성은 형사도 아니었고,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며 대중의 공감을 받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나와 내 가족이 최선인 건물주였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능력이 있었다.

조금만 손을 써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시간 역행.”

[지정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적어도, 억울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억울함을 느껴봤기에 더더욱.

콰드득.

부러졌던 뼈가 맞춰지고,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살이 부패하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공기는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진작부터 정화된 상태.

따로 비위 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곧이어 튜토리얼 탑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영혼이 돌아오는 듯한 기묘한 기척이 이어진다.

“크륵! 컥!”

“커헉!”

숨이 돌아왔다.

주민성은 시간 왜곡을 정지하고 되살아난 생존자들에게 물을 먹였다.

“콜록! 이, 이게 대체…….”

“……여보?”

당황은 잠시, 생존자들은 물을 먹인 사람의 존재를 뒤늦게 파악했다.

“누, 누구십니까? 그보다 저흰…….”

“히익!”

주민성은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살렸습니다. 괜찮으신지.”

“……살렸다고요?”

“아아……. 그러고 보니!”

중년 부인의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악마는 어디에 있죠? 죽였나요?”

“……,”

또 악마가 언급됐다.

이들은 악마에게 죽은 모양이다.

짐작 가는 부분은 있다.

미약한 인기척은 지금도 남아 있으니까.

“……3층에 있는 사람은 손님인가요?”

“히이이익! 그 사람이에요! 아니 악마가 사람! 손님인줄 알았지만! 그 사람은!”

“잠시.”

상황이 혼란스러웠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주민성은 텐트를 펼쳐 둘에게 덮어주었다.

거기에 이용료 청구 과정까지 덧붙였다.

“그럼 진정하시고 계세요. 처리해 드릴 테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제야 부부는 이성이 돌아왔는지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저희가 비록 D급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하고 당했다고요!”

“그렇겠죠. 악마라니깐.”

그 사기스러운 능력을 가진 송몽룡도 이겨내지 못한 게 악마였다.

“아, 악마를 알고 계십니까?”

“악마는 제가 전문이죠.”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분명 위협적인 상태일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민성은 악마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정확히는 호출되는 세입자가 천적이었지만.

-악마 토벌 필요. 3번, 5번 세입자. 출동 대기.

한글로 적힌 포스트잇이다.

세입자들은 읽을 수 없었다.

이는 장 박사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이전에 정해 둔 신호이기도 했다.

메시지를 확인한 장 박사는 특정 세입자들을 지정된 텐트로 유도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세입자들의 특징까지 전달해둔 상태였고.

주민성은 세입자들이 텐트로 이동하는 사이 중년 부부와 간단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보다, 저 모르세요? 아실 텐데.”

서울에서 주민성을 모르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강서구의 왕으로 워낙 임팩트 있게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이들에겐 아니었다.

“저흰 악마에게 계속 쫓기기만 했어요……. 어떻게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있던 곳은 모텔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한 공간이었어요.”

“음? 그래요?”

“사방에 용암이 들끓고 모래 먼지는 어찌나 심했는지…. 몇 달? 몇 년은 도망 다녔던 것 같습니다. 먹을 건 없는데 무슨 조화인지 굶어 죽지도 않고…. 끔찍했었죠.”

“…….”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주변 지형의 특징.

이는 카오스 게이트 내부와 매우 일치했다.

카오스 게이트가 악마와 관련된 차원 건물일 가능성이 컸으니 연관성도 단연 높았고.

‘상대를 카오스 게이트로 전송시킬 수 있는 녀석이라.’

중요한 정보였다.

3번 세입자의 경우 악마의 천적이라는 천사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악마를 토벌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사가 한 개 빠진 듯한 허술함까지.

예상컨대, 3번 세입자만으론 분명 악마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댈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주민성이 카오스 게이트의 존재를 각인시킨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충분해. 여기에 5번 세입자까지 붙어주니까.’

그리고 5번 세입자 또한 악마의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쪽이 듬직하다.

직업부터가 악마 사냥꾼이었으니까.

황금만능주의라는 올바른 사상까지 가졌기에 주민성의 좋은 파트너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쉬고 있으세요. 빠르게 처리하고 올 테니.”

“가, 감사합니다!”

방에서 빠져나온 주민성은 3번 세입자와 5번 세입자의 지정 텐트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기다렸읍읍!”

주민성은 3번 세입자의 입을 곧장 틀어막으며 희생자들에게 받은 정보를 공유했다.

“카오스 게이트로 전송시키는 녀석이라. 단번에 죽이는 게 좋겠군. 보상이 없는 게 아쉽지만, 밥값은 해야겠지. 얼른 다녀오리다.”

“푸하. 이번에는 기필코 토벌할게요.”

5번 세입자는 나름의 공략법을 완성한 모양이다.

이 정도면 훌륭했다.

3번 세입자의 공격력과 5번 세입자의 냉철함이라면 분명 악마를 끊어낼 수 있으리라.

팟.

세입자들이 3층으로 내려가고, 주민성은 느긋하게 빈 방으로 이동했다.

이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500억을 수령할 때.

참고로 두 번째 텐트는 4000만 원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아직 큰손은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매물 확인.”

[텐트99의 현재 입찰가: 504억 원]

[매물로 등록된 건물의 양도와 동시에 입찰가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오케이.”

대답과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였다.

거래 액수가 너무나도 컸으니까.

구매자 입장에서도 물건만 툭 떨어지는 과정을 원치는 않을 터였다.

이번 매물 같은 경우엔 나름의 조건도 있었고.

“흐음.”

건물 관조 능력을 사용할 때 펼쳐지는 공간과 비슷한 장소였다.

주민성은 우두커니 선 채 차분히 상대를 기다렸다.

곧이어 새로운 차원문이 열렸다.

즈쉬나 즈민성이 여는 것과는 조금 다른, 영롱한 차원문이었다.

팟.

“……어?”

“당신이군.”

한국말을 구사하는 상대.

외모 또한 한국인이었다.

반가움이든 경계심이든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주민성은 크게 당황한 상태였다.

“…어? 이현 씨가 왜…?”

눈앞의 구매자가 실종되었던 이현이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찬가지로 당황한 모양새였다.

“잠깐만요.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차원 경매장 능력은 어떻게 얻으셨고요? 거기다 500억은 또 어디서 마련하셨어요?”

이현이 차원 경매장 능력을 얻었다.

마냥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었다.

협회장을 제외한다면 최강의 능력자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현에게선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넌 대체 뭐냐.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네?”

기억 상실로는 보이지 않는다.

파고들면 부분적 기억 상실 정도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런 전제라면 이현은 자신이 과거의 유명인임을 자각해야 정상이었다.

게다가 텐트를 500억이나 주고 구매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소리였고.

‘……최면이라고 하기엔 이현 씨가 너무 강한데.’

애초에 차원 최강자급으로 평가받는 이현이 협회장도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당하는 걸 상상하기 힘들었다.

설령 임진석이 이현을 기습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현 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현이 기연을 얻었다고 봐야했다.

그로인해 뭔가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아낸 거고, 주민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핸디캡을 얻은 것으로.

“일단 몸 상태부터 회복하시죠.”

주민성은 이현에게 텐트를 건넸다.

혹시라도 대화 자리가 종료될 수 있었기에 다른 여분의 텐트를 건넸다.

“…….”

하지만 이현은 텐트를 받지 않았다.

대신, 역으로 물어왔다.

“의도를 모르겠군. 나는 네가 누구인지부터 묻고 싶은데. 어디 소속이냐. 그리고 차원 경매장의 자격을 가지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뭐지?”

이현에게선 여태 볼 수 없었던 날카로움이 만연했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어디든 뚝딱뚝딱 다녀오던 이현이 아니었다.

“……예?”

최종적으로 텐트는 거절당했다.

일단은 협조적으로 대화에 응하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게 우선인 듯하다.

“일단 대답부터 해 드리겠습니다. 주민성입니다. 이래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모르는 이름이군. 주명호 정도는 기억한다만.”

주명호는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목포에서 나름 이름 날렸던 A급 능력자의 이름이다.

그는 작년 초, S급 게이트에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허무하게 죽은 능력자이기도 했다.

“정말 단기 기억 상실이라도 되는 건가…….”

주민성은 이현이 뭐라 대답하기 전,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이현 씨. 협회장 정혁수에게서 당신을 구한 게 접니다. 누구에게 구해졌는지는 기억하십니까?”

하지만 이현에게선 더욱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헛소리하지 마라. 정혁수 그놈은 내 손으로 직접 죽였으니까.”

“…….”

이현이 말하는 내용은 주민성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심지어 거짓말을 할 때 흔히 나타나는 미약한 떨림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주민성에게 물어왔다.

“왜 나를 세입자로 받지 않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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