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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를 지킵시다 (5) (221/250)


질서를 지킵시다 (5)
2022.07.10.


워낙 넓은 공간이었기에 사람 몇 정도론 북적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분위기만큼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음.”

무려 3층이나 양보했다.

그것도 최상급 빌딩의.

이렇게 양보한 층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휴…….”

그런 주민성의 통 큰 양보에 송몽룡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

왜인지 봉춘향에게선 우울함이 느껴졌고.

“읍!”

살기를 마구 뿜어내던 성아영에게선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고 긍정적인 기운만 가득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몰래몰래 주민성을 견제라도 하는 것마냥 곁눈질하곤 있었지만, 88층을 얻어 꽤 만족하는 눈치였다.

“춘향아. 부족해?”

“…….”

봉춘향은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런 모습에 주민성도 마음이 착잡해졌다.

‘……지쳤던 걸까.’

봉춘향은 주민성 세력 최고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영향력으로 따져도 최선호보다 윗급인 데다, 기간으로는 훨씬 오래됐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였고, 원래라면 학교를 다니며 온갖 추억을 쌓아가도 모자랄 시기이기도 했다.

그 순간, 봉춘향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관심이…. 부족합니다….”

“……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주민성에겐 소녀의 감성이 부족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시간 날 때나 친구들, 대부분의 시간은 인력소 아저씨들과만 어울려 왔으니까.

군필 여중생 느낌이 강해 씩씩한 줄로만 알았지만, 봉춘향도 결국은 아이.

모두를 이해하기엔 주민성이 너무 커 버렸다.

‘아…….’

안타까운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성은 이제 부모님을 찾게 됐지만, 봉춘향에겐 여전히 부모님이 없다.

유 중위를 통해 몰래 들었다.

그들은 협회에 의해 확실하게 사살당했다.

“……내가 생각이 조금 짧았네. 미안.”

“…대장…님?”

“지금도 네가 어떤 걸 고민하는지 전부는 모르겠어. 그래도 조금은 깨달은 것 같기도 해. 노력해볼게.”

“저, 정말이십니까?”

“응.”

주민성은 배려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혼자서 지내기엔 집이 너무 컸지? 같이 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 같이 살게 해 줄게. 애완용 몬스터도 구해 보자.”

“…….”

어째서인지 봉춘향은 아찔하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배려가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었던 걸까.

상태가 아주 살짝은 나아졌다.

“대장님.”

“응?”

“혹시…. 같이 살고 싶은 사람…. 바로 말해야 합니까?”

“아니.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아. 그전까진 선아 씨랑 지내 볼래? 고블린들도 같이 살 텐데 괜찮겠어?”

“……네. 좋습니다.”

“다행이다.”

주민성은 뿌듯한 표정으로 봉춘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손에 전부 들어올 정도로 작은 머리였다.

‘그동안 배려심이 너무 부족했어. 아이들은 좀 더 세심하게 챙겨줘야지.’

관리인 임명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작게나마 봉춘향을 쉬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쉬는 건 일행들일 뿐.

주민성은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이 거대 세력을 이끄는 가장의 책임이었다.

‘몬스터를 좀 더 빨리 풀어야겠어.’

대격변이 너무나도 지속됐다.

인벤토리에서 보낸 시간도 있었기에 바깥은 주민성이 체감한 것보다 훨씬 클 터였다.

물론 대부분의 문제는 텐트를 통한 건물 부가효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만족감의 제공 필요성이 떠오른 것이다.

송몽룡과 성아영은 각자의 키를 받고 내려갔다.

그중 송몽룡의 경우 봉춘향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생활은 중요하다.

물러나야 할 땐 물러나는 게 바람직했다.

다행히 봉춘향은 그런 송몽룡을 배웅하고 서재로 쪼르르 달려갔다.

게이트에선 구할 수 없는 온갖 서적들이 가득하니 흥미가 돋은 모양이다.

‘잘됐군.’

주민성은 거실로 이동했다.

지금쯤이면 최선아의 몬스터 강화가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똑똑똑.”

“어? 민성 씨?”

최선아가 텐트에서 빠져나왔다.

“진화. 잘 됐어요?”

“네!”

흔쾌한 답변.

성공인 모양이다.

주민성은 미니바에서 꺼낸 음료를 최선아에게 건네곤 텐트 안에 고개를 넣었다.

“진화를 축하한…….”

“응애! 나 아기 블롱!”

“응애! 나 아기 블랑!”

“다?”

텐트 안엔 아기 고블린 두 마리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작은 뿔이 돋아나 있다.

“선아 씨. 이거 진화 맞죠?”

“네! 인벤토리 안에서 전투력까지 확실히 검증했는걸요! 박사님께서도 80배 이상으로 강해졌대요!”

“오호?”

라면 덕분인지 장 박사는 인벤토리 안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은 듯하다.

최선아의 목소리엔 친밀감이 가득했다.

“완전 이등신이라 걸음마도 힘들어 보이는데……. 저래도 훨씬 강해졌다는 거죠?”

“네!”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주민성은 아기 고블린 둘에게 건물 잔해를 내밀었다.

“자.”

주민성이 건물 잔해를 가리키자 아기 고블린이 동시에 움직였다.

“응애!”

“응애!”

파바바바박!

고블린은 걷지 않았다.

네발로 달렸다.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든 가공할 속도로.

“응애!”

아기 고블린 하나가 조막만한 주먹을 뻗었다.

콰가가가각!

황당하게도 건물 잔해는 충격파와 함께 박살이 났다.

다른 아기 고블린은 건물 잔해를 끌어안았다.

“응애!”

콰지지지직!

건물 잔해는 그대로 으스러졌다.

아기 고블린은 멈추지 않고 부서진 건물 잔해를 깔아뭉갠 채 데굴데굴 굴렀다.

콰드득! 콰드드득!

건물 잔해는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됐다.

“……내가 뭘 본거지.”

“어때요? 민성 씨? 강해지기도 강해졌는데 귀여움까지 진화했어요! 최고예요!”

아무튼, 확실해졌다.

+15 고블린, 그것도 진화를 마친 +15 고블린은 사기적으로 강했다.

이 정도면 아예 요충지를 맡겨도 될 정도.

“근데, 얘들 이제 키엑거리지도 않고 응애거리는데. 뭐 잘 못 먹인 건 아니죠?”

“네! 장 박사님이 몬스터용 이유식도 개발해주신 덕분에 영양 균형은 완벽해요!”

아찔한 대답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성장 이후가 상당히 기대되네요. 얘들 크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인벤토리 내부에선 성장하지 않던데, 뛰어놀다 보면 크지 않을까요?”

“…뛰어논다. 좋네요.”

창가로 이동한 주민성은 고블린을 들어 올리며 원효대교를 가리켰다.

천상의 안개 덕분에 식별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저 다리. 지킬 수 있지? 아무도 못 지나가게 막으면 돼.”

“응애! 아기 블롱! 대장의 명령을 따른다!”

들어올린 고블린이 블롱이였나 보다.

주민성은 뒤이어 곁에 있는 블랑이를 들어올렸다.

“너는 저기 올림픽 대로를 지켜. 마찬가지로 아무도 못 지나가게 막으면 돼.”

“응애! 아기 블랑! 대장의 명령을 따른다!”

“좋아.”

다행히 지능도 진화했는지 아기 고블린들은 주민성의 요구사항을 바로 알아들었다.

문제는 피아식별이었지만, 질서가 확보될 때까진 여의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아군이 밖에서 이곳으로 올 일은 없다.

설령 친밀한 관계의 상대라 한들, 연락조차 해오지 않으면 아군이 아니다.

“몬스터 강화.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네요. 그냥 인벤토리에서 몬스터들 최대한 많이 강화시켜주세요. 적정 강화는 15강화면 충분하겠네요.”

“네!”

말을 마친 주민성은 순간 멈칫했다.

시무룩해진 봉춘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맞다. 혹시 인벤토리. 불편하진 않아요?”

“음? 전혀요. 오히려 편하고 좋은걸요? 그…. 세입자? 그분들이랑도 친해졌어요. 라면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드렸거든요.”

다행히 최선아는 현재의 생활에도 만족했다.

“그보다 민성 씨. 여긴 어디예요? 갑작스레 한강뷰라니…….”

“드디어 물어봐 주셨네요.”

“헤헷.”

“백삼빌딩 90층입니다. 나중에 강화 전부 끝나면, 선아 씨도 여기서 춘향이랑 지내주세요. 집처럼 쓰시면 됩니다.”

그제야 최선아의 표정이 충격에 물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을 마다할 사람은, 단연코 없다.

“대박……. 이런 집은 살면서 처음 봤는데……. 잠깐 둘러보고 인벤토리 가도 괜찮아요?”

“물론이죠. 충분히 쉬었다가 다녀오세요.”

최선아는 가속 능력까지 써가며 90층 구석구석을 살폈다.

신선한 감탄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주민성은 그런 최선아를 남겨두고 봉춘향이 있는 서재로 이동했다.

이제 마음도 추슬렀을 테니 관리인으로 임명할 때가 됐다.

똑똑.

“춘향아. 들어갈게?”

“아! 네!”

테이블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쌓여 있었다.

천재답게 책도 순식간에 읽어내는 모양.

‘음?’

봉춘향이 재빨리 가렸지만, 주민성의 동체시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름 메시지 읽는 게 생활화된 덕분에 둔재 정도는 된다.

어떤 책들을 읽고 있었는지 전부 알아차렸다.

-남성의 마음을 휘어잡는 가장 쉬운 방법

-사랑엔 나이가 없다.

-10살 연상과 결혼했어요.

-눈치 없는 남자 길들이기.

-언제까지 혼자서만 좋아할 건가요.



대략 이런 제목들이었다.

물론 소녀의 감수성을 건들 생각은 없었다.

주민성은 책 제목들을 못 본 척 봉춘향에게 말을 걸었다.

“이 건물 소유하면서, 신기한 고유 효과를 알게 됐거든?”

“그, 그렇습니까?”

“응. 건물 관리인을 지정할 수 있대.”

주민성은 수첩을 내밀어 당시의 내용을 공유했다.

천재답게 단 1초 만에 핵심을 파악했다.

“아아…. 그래서 저를 먼저 부르셨습…. …네요.”

“으, 응? 맞아…….”

왜인지 봉춘향의 말투가 바뀌었다.

다나까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지던스도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도 상당히 올라가 있다.

“좋아요. 임명해 주세요.”

다행히 관리인 임명엔 긍정적이었다.

“다목적 빌딩 관리인 지정.”

고유 능력을 발동하자 건물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오른다.

[관리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건물주 부재 시 관리인이 해당 건물이 위치한 게이트의 지배 권한을 얻습니다.]

“봉춘향.”

건물 고유의 능력이었기에 건물주에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식당에서 티슈를 꺼내는 정도의 체감이다.

“된 건가?”

“네. 메시지 떴어요.”

주민성은 수첩을 받아 봉춘향이 적은 내용을 확인했다.

-다목적빌딩 관리인 권한을 받았습니다.

-게이트 지배 권한이 부여됩니다.

-두 개 이상의 게이트를 점령했습니다.

-다른 게이트와의 소통 창구가 해금됩니다.

-게이트 거래소 권한이 해금됩니다.

-다른 게이트 지배자와 거래할 수 있습니다.

-분할 통치되고 있는 게이트입니다.

-게이트 지배력 조회 권한이 해금됩니다.

-게이트에 끼치는 지배력 순위를 확인합니다.

이전에 받았던 메시지와 같은 내용이었다.

이것으로 여의도는 서로 다른 게이트가 겹쳐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강서구에서도 있었던 사례였기에 당황스럽진 않았다.

“다행이다. 이제 자유롭게 물품을 수송할 수 있겠어.”

“이 권한, 저한테만 있는 건가요?”

“응. 정확히는 너랑 나.”

“……좋네요.”

“그렇지? 그럼 바로 테스트부터 해 볼게.”

“네!”

상대가 없어 여태 쓰지 못했던 게이트 거래소 능력을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망설일 이유는 조금도 없다.

“게이트 거래소.”

[다른 게이트 지배자와 거래할 수 있습니다.]

[해당 차원에 존재하는 게이트 지배자는 총 2명.]

[거래소를 개방하겠습니까?]

예상대로였다.

게이트 지배자는 그저 보스 몬스터를 죽이고 지역을 장악해서 얻을 수 있는 권한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건물주 능력을 거쳐야만 했다.

“개방.”

[게이트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안산 통합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인천 통합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강서구 방화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

개방 승인과 동시에 여태 점령했던 지역의 이름이 순차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개, 개방.”

그리고 봉춘향 역시 거래소를 개방했다.

[영등포구 여의도 거래소(다목적빌딩)가 개방됩니다.]

[동작구 노량진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백삼빌딩 부근에 형성된 게이트는 노량진과 여의도가 겹쳤던 모양이다.

나쁠 건 없었다.

덕분에 봉춘향에게도 주민성만큼의 능력이 부여됐고.

“이제 물건을 어떻게 등록하는지가 관건인데.”

다행히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개방된 거래소가 워낙 많아 지연된 모양이다.

[거래소를 지정해야 물품 등록이 가능합니다.]

[거래소 지정 시 건물 내부에 거래소 인벤토리가 생성됩니다.]

“……!”

물품 등록은 의외로 수동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인벤토리가 고정적으로 생성되어 있다면, 누구나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더욱 놀라운 점은 또 있었다.

먹기만 하고 뱉진 않는 이 고정형 인벤토리는 지역마다 양산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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