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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를 지킵시다 (1) (217/250)


질서를 지킵시다 (1)
2022.07.06.


주민성에겐 신원이 확실한 적을 상대로 아군을 희생시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성아영이라는 최강의 저격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강의 저격수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파일럿이 성아영이라는 게 문제였다.

“한 번만 말하기로 했잖아.”

“까, 깜빡 할 수도 있지!”

“……붕어로 할래. 닭으로 할래.”

“……치킨.”

“네 지능 얘기였음.”

“아이씨!”

성아영에겐 필터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을 했으면, 그걸 바로 입 밖으로 꺼내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다시 반성의 시간.”

“읍읍!”

주민성은 새로운 반창고를 꺼내 성아영의 입을 봉인했다.

사망 선고는 이름만 불러도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능력이었기에 절대 남발해선 안 됐다.

방금의 저격 또한 마찬가지.

“한 번 말하는 것과 두 번 말하는 건 엄연히 다르지.”

사망 선고 능력의 중복 사용은 변수였다.

여태 검증된 부분은, 이름을 한 번만 불렀을 경우니까.

“최철진 신병 확보할 때까지만 붙일 테니까 참아.”

“으읍…….”

성아영이 최철진의 이름을 언급한 이후부터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깜깜했고, 눈앞 10미터조차 식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탓에 전황은 소강상태에 진입했다.

최철진의 부하들은 전부 투항했고, 수습만이 남았다.

“민성 씨. 평범한 조명으론 안될 것 같아요.”

“그러게요.”

그나마 야간 식별 장비까지 전부 챙긴 최선아만이 주변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일단 수비적으로 가겠습니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주시고, 각자 4인 1조로 텐트 안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주민성은 여분 텐트를 꺼내 최선아에게 건넸다.

“선아 씨. 텐트 분배 좀 부탁드려요.”

“네! 맡겨주세요.”

어두컴컴한 상황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주민성 역시 텐트를 설치하고 내부에서 대기했다.

“뭔데.”

“읍.”

성아영이 텐트에 따라 들어왔다.

손가락 4개를 펼쳤다가, 검지만을 남기며 강조했다.

대충 4인 1조라는 주장이었다.

“……너도 텐트 있잖아.”

“읍.”

성아영은 주민성이 세운 규칙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의외였다.

“하긴. 누구는 혼자 쓰고 누구는 넷이 쓰는 것도 좀 그렇긴 하네. 이쪽으로 와라.”

“읍.”

성아영의 이런 행동은 주민성에게도 이득이었다.

또다시 일으킬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으니까.

곧이어 텐트 입구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형. 괜찮아요?”

최선호였다.

“어? 꽤 멀리있지 않았어?”

“맞아요. 근데 부족 능력 덕분에 어두워도 잘 보여요.”

“부족 능력?”

“네. 밤 사냥꾼의 눈이라는 개인 해금 능력이에요.”

주민성이 인벤토리와 카오스 게이트, 튜토리얼 탑을 오가는 사이 최선호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전의 어수룩한 모습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대박이네.”

“형은 물론이고, 부족원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능력이에요.”

“헐. 진짜? 난이도는?”

“쉬워요. 데빌도그 털이랑 크로막시움 원석, 진흙 골렘 핵을 갈아서 몸에 바르면 돼요.”

“…….”

확실히 재료만 있다면 밤 사냥꾼의 눈이라는 능력을 얻는 건 쉬워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자면, 재료 배합 비율부터 위 재료들을 혼합시킨 계기 정도.

“아아. 밤 사냥꾼의 눈 말고도 능력은 3200개쯤 해금했어요. 요즘 매일이 보람차요.”

최선호에게선 광기 비슷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게이머 시절 고인물의 모습이 현실로 반영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너도 인생 장르를 바꿨구나.”

“헤헤. 전부 형 덕분이죠. 추방자 능력 진짜 대박이에요. 이 능력이 게임처럼 만들어지면 동시 접속자 수 억대는 그냥 찍을걸요?”

“그, 그래?”

최선호에겐 현실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도 리얼 타임에 자유도까지 보장된.

추방자 능력은 사용자가 뭘 하든 현실에 써먹을 수 있는 새로운 보상을 계속해서 내어주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최선호의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

“선호야. 그보다 너 괜찮냐.”

“네? 저요? 저는 괜찮은데…….”

“…….”

주민성 일행이 튜토리얼 탑에서 나올 당시, 가장 많은 상대 능력자를 죽이던 사람이 바로 최선호였다.

“본인이 괜찮다면 상관없겠지. 걱정돼서 물어봤어. 아까 최철진 쪽 능력자들 목도 푹푹 뚫고 그러더만.”

“아아. 괜찮아요. 처음도 아니고, 죽일수록 부족 레벨이랑 추방자 레벨도 오르거든요. 이런 모든 행동들이 형한테 도움이 된다니까 오히려 보람차요.”

지금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약육강식의 세계니까.

하지만 주민성의 목표는 대격변의 종식.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 것이다.

“……그럼 됐다.”

결국, 주민성이 하기 나름이었다.

일상을 되찾으면, 최선호도 주민성을 따라 일상을 되찾게 될 테니까.

거기다 최선아까지 적극적으로 최선호를 케어하고 있다.

“아! 그보다 형! 어둠을 밝히는 능력도 찾아보면 있을 거예요. 제가 근처 철물점에 갔을 때 이런 능력도 생겼거든요?”

최선호의 자랑은 계속됐다.

무시무시한 tmi의 연속이었다.

경멸어린 눈빛을 보내던 성아영도 지금은 지쳤는지 주민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이 텐트에 합류했다.

“드디어 찾았다…….”

이번엔 신우빈이었다.

바깥에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신성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찾아온 모양이다.

“텐트에 있으라니까 뭐 하러 왔어?”

“벌써 두 시간째다.”

“……뭐?”

놀랍게도 최선호의 tmi는 두 시간이나 계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쓸 만한 능력이 언급될 때마다 수첩에 적느라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일단 분석 내용부터 공유하지.”

“아.”

신우빈에겐 파벨이 있었다.

분석 능력이라면 확실히 지금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 우선, 대격변 이전의 게이트를 1차 게이트로 칭하지.”

“1차 게이트라.”

“그리고 대격변과 동시에 발생한 게이트가 2차 게이트. 1차와 2차 게이트는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알아듣기 쉬운 설명이었다.

1차 게이트와 2차 게이트가 왜 언급된 것인지가 문제일 뿐.

“지금이 3차다. 주변에 깔린 어둠이 게이트로 변화하고 있어.”

“……미치겠군.”

“2차 게이트의 성질과는 분명히 달라. 아마 여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데이터가 없는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가 출현한단다.

아마도 지금의 현상은 최철진의 죽음, 혹은 성아영의 연속된 능력 사용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둘 다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둘 중 하나와는 확실히 연관되었다고 봐야 했다.

“너라면 알겠지. 이 현상이 무슨 이유로 발생했는지. 튜토리얼 탑과 관련이 있나?”

분석 결과를 확인한 신우빈은 나름의 추리를 계속해서 이어왔던 모양이다.

그 결과, 주민성이라는 답을 찾았고.

“거의 정답이다.”

“……쯧.”

“정확히는 튜토리얼 탑을 등반하고 부여된 능력에 또 다른 변수가 개입됐다고 봐야 해. 2시간 전이라고 했었지? 그때가 최철진이 죽은 시점이야.”

신우빈은 상당히 충격받은 듯,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힘겹게 답했다.

“……최철진이 죽었다고?”

“응.”

“말도 안 돼! 나는 조금 전까지도 투항한 능력자들에게 최철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온 길이었다!”

“더럽게 세다고 들었지?”

“그래. 놈은 최소 협회장급이었다. 내가 무슨 근거로 이런 소릴 하는지는 알고 있나?”

“나야 모르지.”

“파벨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하.”

투항 능력자들의 추궁은 파벨도 함께였던 모양이다.

분석 능력이 중간에 끼었다면, 확실할 터였다.

최철진이 최소 협회장급이라는 게.

“그 정도면 미국과 연계해서 공동 작전을 진행해야 하는 수준이었어. 그런데 죽었다는 게 말이…….”

“돼.”

“…….”

“협회장은 내가 죽였고. 반쯤은 본인이 무덤을 판 거지만. 최철진은 여기 성아영이 죽였다.”

“……미, 미친.”

신우빈이 받을 충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튜토리얼 탑에서 얻은 보상에 대해 공유하지 않았으니까.

주민성은 성아영이 얻은 능력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미쳤군……. 반창고가 아니라 입마개부터 특수 제작해야겠어.”

“얘가 콩이도 아니고 무슨 입마개…….”

“으브브…….”

“…….”

성아영의 으르렁거림에 텐트는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어쨌든. 반창고면 충분해. 내가 붙인 거니까 자력으로 못 떼.”

“제삼자도 뗄 수 없는 건가?”

“떼 봐. 그럼.”

“……아니. 됐다. 네가 나에게 반창고를 붙여도 같은 상황이라는 소리군.”

“이해가 빨라서 좋네.”

건물주는 갑과 을을 만드는 능력.

을이 된 이상, 갑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입마개 제작을 권유하는 바다. 네 능력에 엮이지 않은 누군가가 저 반창고를 떼어버릴 가능성이 남아있어.”

“그리고 입마개 제작에 분노한 성아영이 널 불러 따지겠지.”

“…….”

똑똑한 신우빈이라면 알 것이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신념을 누구보다 잘 실천하는 사람이 성아영이라는 걸.

“물론 너는 성아영이 따지고 드는 모든 논리를 반박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따지기 전에 너가 먼저 죽어.”

의외로 성아영은 무차별 난사를 하지 않는다.

상대를 정확히 지칭하고, 그 대상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신우빈에게 할 말이 있으면, 신우빈을 부른다.

“……젠장.”

“심지어 몰래 입마개를 착용시킨다 한들, 성아영에겐 자력으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성아영은 반창고에 만족하고 있어. 거스르지 않는 게 좋아.”

“…….”

성아영에겐 분신 능력이 있었다.

언제든 몸을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분신에게도 입마개를 하는 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새로운 분신을 생성하면 그만이니까.

“……대격변은 아무것도 아니었군.”

그제야 신우빈도 튜토리얼 탑의 무서움을 깨달은 모양이다.

말이 튜토리얼이었지, 이곳에서 발급하는 졸업 증명서는 차원 정복 인증서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괜히 수비적으로 가는 게 아니야. 엉뚱한 놈들이 튜토리얼 탑에 진입해 버리면 여태 구상해 둔 모든 계획이 쓸모없어져.”

“하……. 너와 최선아는 어떤 능력을 받았지?”

능력 얘기가 나오자 최선호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저도 궁금해요. 누나도 직접 들으라고만 하고 안 알려주더라고요.”

“아, 그래?”

확실히 주민성이 얻은 시간 왜곡 능력은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능력이었다.

대상의 시간을 되돌린다는 건, 능력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이치 자체를 비트는 개념이었다.

지금이라면 협회장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상대를 능력을 각성하기 전의 일반인으로, 일반인으로 성장하기 전에 아기로 되돌릴 수 있었으니까.

“일단 여기서만 공유할게. 미리 말하지만, 이건 비밀이야.”

지금의 능력 공개가 비밀임을 언급해 건물 이용자에 대한 구속력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중요한 능력인 듯하군. 기다려라. 텐트 주변의 소리 전달을 차단하겠다.”“오케이.”

기업인답게 신우빈에겐 주변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끔 하는 유물이 있었다.

덕분에 귀찮아질 가능성은 사라졌다.

“시간 역행. 그게 내가 얻은 능력 이름이다.”

“…….”

“……형. 몽룡이 능력이랑 비슷한 그런 거 맞죠? 아닌가? 역행이면 과거로 가는 거니까……. 어어? 과거?”

주민성의 능력 공개에 신우빈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숙였고, 최선호는 더더욱 눈을 반짝였다.

“조금 덧붙일게. 이 능력으로 나는 과거로 갈 수 없어. 정확히는 지정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는 능력이야.”

“……그래도 미친 능력이잖아.”

“……헐.”

신우빈의 표정은 더더욱 복잡해졌다.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동시에 얽혀 있었다.

“그 능력. 절대 공개하지 마라. 특히 아버지한테는 반드시.”

“너네 아버지?”

신우빈의 아버지인 신명철.

확실히 그는 협회장을 누를만한 재력을 갖춘 사내였다.

절대 평범하진 않으리라.

“그래. 아버지라면 네 능력을 분명히 상품화시키고도 남을 거다. 널 세계 최고의 재벌로 만들어주겠다면서 유혹하겠지.”

묘한 조언이었다.

분명 진심 어린 조언이었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재벌이면 좋은 거 아닌가.”

“……돈이 전부가 아니다.”

“그 말을 재벌이 하니까 공감은 안 되네…….”

“……너는 아직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민성은 감정이 격해진 신우빈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몰라도 될 것 같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혹시라도 파트너쉽을 제안해온다면, 계약금 개념으로 텐트 이용료 하나 받으면 해결될 문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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