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브레이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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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이런 상황에……. 우리를 받아들이겠다고?”
주민성의 투항 권유에 능력자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민성의 말대로 투항한다 한들, 기존 세력원들이 거세게 반발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세력원 그 누구도 주민성의 제안에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탄하는 표정이다.
“이런 묘수가 있었군요…….”
“확실히 대장님의 능력이라면 통제 면에서도 문제없습니다.”
물론 이들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군의 목숨을 노리고 공격한 능력자는 유물에 잡아먹힌 능력자뿐.
나머지는 상대를 죽이는 것보단, 무력화시키는 쪽에 주력했기에 피해 규모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렇기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공짜는 아니다. 우리 측에 손해 끼친 만큼 일해서 갚아야지.”
“…….”
이들에게 투항은 처음이 아니었다.
배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는 주민성 쪽이 훨씬 큰 상황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
“찝찝하거든.”
주민성도 사람이었다.
살인이 꺼려지는 게 당연했다.
굳이 죽여야 할 상대라면, 같은 인류를 죽이는 데 혈안이 된 미친놈들만 죽이는 것으로 한정하자는 게 지금의 심리였다.
적어도 눈앞의 침략자들에겐 갱생의 여지가 있었다.
“……찝찝하다라. 허술한 이유군.”
“과연 그럴까.”
이들의 말처럼 주민성이라는 사람이 허술하다 한들, 건물주 능력은 절대 허술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규칙을 완벽히 고수했다.
저항은 더 이상 없었다.
순순히 이용료 청구도 받아들였고, 경악했다.
“거, 건물주?”
“너무 파고들면 안 된다.”
서울의 왕과는 별개로, 건물주 능력자 역시 유명했다.
FFF급이라는 안타까운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
주민성을 주민성이라 부르지 못했다.
FFF급 건물주 주민성의 정체를 밝혀는 건, 지금 상황에선 건물주에게 손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게다가 자기소개는 주민성이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전상우라고 합니다. 각성한지 얼마 안 됐지만, S급이니 도움은 될 겁니다.”
과묵하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물론 기억엔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산의 S급 능력자는 주민성의 흥미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S급이요?”
“예. 그……. 쪽과 비슷한 시기에 각성했었죠. 뉴스에도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묻혔었고.”
“아아. 어쩐지.”
뉴스 채널을 돌리다가 얼핏 본 것도 같다.
FFF급 전 세계 박제라는 기묘한 체험을 할 당시, 부산에서 S급 능력자가 각성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저 당시 느낀 박탈감을 더욱 증폭해 주는 기사였지만, 당사자를 직접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그날. 지구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었군요.”
“지금은 이 꼴이지만요.”
새로이 포섭된 능력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공개했다.
정예 능력자에 걸맞은 뛰어난 성능의 능력이었다.
특히 전상우의 플라즈마 폭격 능력 설명엔 주민성의 간담조차 서늘해질 정도.
“10분간 출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공격력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레이드 특화 능력이군요.”
“맞습니다. SS급 이상의 능력자나 보스 몬스터 상대로는 엄청나게 효율적이죠.”
플라즈마 폭격.
어지간한 대상은 한 방에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능력자들은 전상우가 능력을 발동시키기 위한 10분을 확보하는 역할이었다.
“그런 능력이 S급이라니…….”
“파괴력 하나는 SSS과도 견줄 수 있겠죠. 다만, 1:1로는 C급 능력자조차 이길 수 없으니까요. 능력 발동에 실패하면 조금 강한 일반인에 불과합니다.”
전상우의 흐릿한 존재감과 과묵함엔 이유가 있었다.
대인전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단점을 존재감을 지움으로 메꿔온 것이다.
나름의 진화라 할 수 있었다.
혼란한 대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파벨 씨를 좀 더 가까이 두고 싶은데.’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고 대치가 지속되었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협회장의 능력부터 무지성 인벤토리 수납까지 싸그리 막아내는 파벨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주민성에겐 플라즈마 폭격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쯧.”
마음이라도 읽혔는지 신우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파벨의 소속은 신성.
결국 가장 가깝고도 먼 답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보다, 저희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참고로 저희만으로 최철진을 공략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최철진은 약자가 아니었다.
협회장이나 이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과거의 이야기.
유물에 잡아먹힌 최철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나가 아닌, 셀 수 없이 많은 유물에 잡아먹혔다면 더더욱.
“송구한 얘기지만, 서울의 왕. 당신이 직접 가셔야 할 겁니다. 저기 있는 성우혁 씨나 명일학 씨라도 최철진에겐 안 됩니다.”
“그 정도면 곤란한데.”
“하지만 사실입니다. 당신을 견제하는 임무를 우리가 도맡았을 뿐. 최철진 본인은 지금도 협회장을 찾고 있습니다.”
“…….”
자신감만으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당당히 협회장을 노리겠다는 건 협회장을 제압할만한 확실한 수단이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됐다.
유물 빙의자와 협회장은 같은 편이라기엔 부족함이 있다는 걸.
‘하성과 협회장은 분명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면 서울 소속과 지방 소속의 차이 정도.
이런 점은 앞으로도 밝혀나가야 할 부분이었다.
“물론 저흰 어떤 임무든지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주민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상우를 비롯한 능력자들은 최철진에게 한방을 먹이기 위한 카드가 아니었다.
이들은 세력 최강의 결사대로 키울 계획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보듬어줘야 할 때.
“알고 있습니다. 일단은……. 전상우 씨를 부팀장으로. 유 중위 팀에 배속하겠습니다.”
주민성은 유 중위를 불러 전상우 일행을 소개했다.
목숨을 도외시한 이들을 세력에서 가장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배치했다.
전혀 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집단이었기에 예상 밖의 시너지도 기대해봄직하다.
“저, 정말 괜찮겠습니까? 최철진 그 괴물은 소수 인원으로 공략하기엔 너무 위험합니다만…….”
“아, 괜찮아요. 저희가 방어 쪽으론 조금 취약한데, 공격 면에선 지구 최강이거든요.”
“……예?”
주민성은 피식 웃으며 전상우 일행에게 가벼운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구석에서 잭나이프를 가지고 놀던 성아영을 불렀다.
* * *
대전 지하 어딘가에 위치한 비밀 연구실.
최철진은 이곳에 있었다.
파직!
“믿어지지 않는군.”
바닥엔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린 유물 팔찌가 있었다.
“……갈론이 송환될 줄이야.”
2개가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 팔찌는 서울 공략의 선봉장 갈론의 심볼이기도 했다.
팔찌는 갈론이 차원에 개입할 권한을 잃으면 부서지고, 소멸되면 녹아버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갈론이 착용했을 팔찌 역시 마찬가지.
다른 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팔찌가 곧 갈론이었으니까.
“……영체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자라.”
최철진은 기억속에 남아있는 강자들의 리스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임진석인가?”
임진석이라면 최철진과도 안면이 있었다.
무슨 사업을 시작하든, 협회장의 허락이 필요했으니까.
확실히 협회장의 오른팔을 자처할 만한 실력이 있었다.
녀석은 단신으로 경쟁 사업장을 전부 쓸어 버렸다.
곁에서 지켜봤던 놈의 능력이라면 영체조차 견뎌내지 못한다는 걸 지금의 최철진은 알 수 있었다.
“놈이라면 경기도에 있었을 텐데.”
갈론과 전상우를 핵심으로한 공격대는 임진석이 목격된 장소를 우회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작전대로라면 순탄히 공략할 수 있을 터였다.
서울의 왕을 비롯한 핵심급 중진들은 전부 탑에 입장했을 테니까.
기껏해야 소속이 다른 명일학이나 성우혁 정도가 순번이 밀려 주변을 지킬 것이 확실했다.
적어도 과거의 최철진이 확보한 정보를 종합하자면 그러했다.
“그런데 어째서?”
갈론이라면 능히 명일학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해외 활동으로 데이터가 부족한 성우혁은 마찬가지로 데이터가 거의 노출되지 않은 전상우의 공격을 대비하지 못할 터였다.
그럼에도 갈론은 송환됐다.
이곳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공작님. 가동 준비 끝났습니다.”
다른 부하의 보고로 최철진은 상념을 멈췄다.
“좋아. 가동해.”
“예.”
상황이 다소 나빠지긴 했지만, 최악까진 아니었다.
이곳 비밀 연구실을 제대로 가동하기만 한다면 최철진은 원하는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잉!
비밀 연구실의 온갖 설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동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10초.
최철진의 마력 증폭 능력 덕분에 비밀 연구실 가동 시간을 말도 안 되게 단축할 수 있었다.
이 몸을 얻은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키잉!
“가동 완료.”
이것으로 최철진은 핵심 장치인 마력 증폭 발생기를 본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존재하는 모든 마력에 감응하는 증폭 발생기가.
쿠구구구……!
시설에서 발생한 모든 마력이 최철진을 향해 쏟아졌다.
“이것으로 모든 제약은 사라졌다. 드디어 그 건방진 협회장 놈을 무릎 꿇릴 수 있겠어. 크흐흐…….”
최철진.
아니, 마계 차원 대부분을 아우르는 권력을 가진 갈리우스가 본래의 힘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작님.”
“음…….”
이것으로 최철진은 사라졌다.
최철진이 곧 갈리우스고, 갈리우스가 곧 갈리우스다.
어느새 갈리우스의 눈 전체는 새까매져 있었다.
마력이 돌아왔다는 증거였다.
“일단 놈부터 찾겠다.”
갈리우스의 마안이 서울 상공에 떠올랐다.
마안은 서울의 모든 것들을 관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갈리우스 고유의 권능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공작님.”
수하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갈리우스의 마안은 만물을 꿰뚫어 보기에 실패하지 않는다.
“…….”
하지만 갈리우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협회장의 존재가 마안에 잡히지 않았다.
“고, 공작님?”
“…….”
있을 수 없는 실패가 발생했다.
만 년 이상을 살아오며 처음 있는 경우였다.
“…이럴 리 없다. 놈은 분명 이 차원 최강자일 텐데.”
“…….”
어마어마한 살기에 수하들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저 다음 명령만을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갈리우스는 아랑곳 않고 협회장을 찾았다.
“……서울에 없다고?”
마안의 영향 범위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수도권을 넘어 평양과 대전, 제주도와 백두산까지 탐색했다.
“……하성은 여기 있었군.”
그럼에도 협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 이탈리아를 넘어 브라질까지 탐색 범위를 넓혔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어째서냐!”
말이 되지 않았다.
협회장 정혁수는 분명 단독으로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물을 상대할 수 있었다.
현재 출몰한 모든 보스 몬스터 역시 놈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오직, 지금의 갈리우스만이 협회장의 상대였다.
“크아아아아!”
“크윽!”
갈리우스의 분노가 형상을 이루며 뻗어가기 시작했다.
형상화된 분노는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였다.
분노가 거쳐간 공간은 순식간에 마계의 게이트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그가아아아!”
갈리우스가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커헉! 고, 공작님! 지금은 안 됩니다!”
“고정하시옵소서!”
수하들이 급히 갈리우스를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분노였기에.
“케론! 이게 무슨 상황이냐! 공작님께서 이 정도로 분노하실 리 없다!”
갈리우스의 전령 케론은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지금의 변화가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고, 공작님께서…….”
“빨리 말해!”
“고, 공작님이! 소멸되고 있습니다!”
“……!”
너무나도 뜬금없는 소식에 수하들이 경악했다.
새로이 나타난 차원 최강자가 멋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은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 *
한편, 주민성은 불길하게 변해버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한 거……. 맞아?”
“맞다니까? 나 최철진 누군지 알아!”
“너 방금 그 이름 또 말했다.”
“앗…….”
주민성의 곁엔 반창고의 봉인을 해제한 성아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