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브레이커 (2)
(21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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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브레이커 (2)
2022.07.03.
“아…….”
능력을 얻었다는 흥분감도 잠시.
이젠 다시 현실을 돌아볼 때였다.
세력원들은 지금도 주민성의 화려한 복귀만을 기다리며 새로운 탑 진입자들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을 터였다.
“그렇네요. 탑을 노리는 세력들도 꽤 많겠죠?”
“네. 협회장이랑 악마가 한통속이었고, 게이트 유물에 잡아먹힌 능력자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협회장이 죽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왜인지 협회장과는 다른 길을 걷는 하성도 있었고, 서울의 영향권 밖에서 성장한 부산 세력도 있다.
그리고 튜토리얼 탑 자체를 탐내는 세력도 존재할 터였다.
“지원군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미국의…….”
“그쪽도 경계 대상입니다.”
“그럴 수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요. 선아 씨가 매고 있는 그 총도 나름의 거래 품목이었습니다.”
“앗…….”
스미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눈앞에 이득이 존재한다면, 배신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인벤토리를 사용하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숨기는 만큼 절대적인 신뢰는 보내선 안 되는 상대였다.
“당장 믿을 사람은 현시점까지 함께해온 동료들. 그중에서도 확실히 제 건물을 이용하는 고객님뿐이죠.”
말뿐인 관계는 의미없었다.
어떤 상대든 제대로 이용료만 납부해도 주민성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변모하니까.
이는 선악의 구분 없는 깔끔한 관계에도 해당했다.
“……저도 고객님 중의 한 명인가요?”
“네?”
“그냥 궁금해서요.”
주민성은 분위기가 차가워짐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마석이 이식된 신체는 이런 점에서 참 좋았다.
“선아 씨는 제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죠. 이용료를 떠나서.”
주민성은 굳이 꾸며내지 않은 사실만을 말했다.
신뢰는 최선아가 혼자서 목숨 걸고 판자촌에 뛰어들 때부터 진작에 형성되어 있었다.
툭툭.
그때, 성아영도 질문 레이스에 합류했다.
“읍읍?”
“…….”
이 역시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대충 자기도 믿냐는 질문일 터였다.
황당하게도 성아영과의 첫 만남은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더욱 황당했다.
“당연히 너도 믿지. 이 탑까지 괜히 같이 왔겠어?”
“읍!”
성아영의 얼굴에 만족감이 가득 차올랐다.
물론, 주민성의 말은 대부분 틀렸다.
그저 립서비스였다.
사망 선고라는 터무니없는 능력의 연구가 끝나기 전까진, 당분간은 성아영의 비위를 철저히 맞춰줘야 했다.
“민성 씨……. 이제 나가죠.”
“아. 넵.”
주민성은 탑 밖으로 나가는 대신 텐트를 펼쳤다.
“들어가세요.”
“……네?”
“설마 창문에서 걸어 나가려는 건 아니죠?””
“아아…….”
물론 탑엔 뚫려 있는 창문도 존재했다.
시야를 차단하는 자기장에 가로막혀 있어서 그렇지.
심지어 이 자기장은 닿기만 해도 위험할 것 같은 스파크를 쉴새 없이 튀겨대고 있었다.
“저는 능력으로 빠져나가면 그만이니까. 편하게 가시죠.”
“……읍.”
“……알겠어요.”
이번만큼은 주민성도 센스를 장착했다.
성아영과 최선아가 각자 떨어져서 인벤토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텐트를 따로따로 마련한 것이다.
주민성에겐 10분간의 건물 관조겠지만, 인벤토리 내부에선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낼 것이기에 꼭 필요한 배려이기도 했다.
“크룩스는 거기 잠깐 지키고 있어. 나중에 선아 씨가 소집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각자의 위치가 정해지고, 텐트가 수납됐다.
이젠 진짜 밖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건물 관조. 튜토리얼 탑.”
관조 시간 10분은 상위층 한 군데를 구경하다가 거의 탕진했다.
주민성은 아슬아슬하게 1층 시점으로 이동했다.
“참나. 탑에 호수까지 있었네.”
주민성이 확인한 층은 물로 뒤덮인 곳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3평 남짓한 섬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생존하며 버티는 게 목표였던 모양이다.
“정상적으로 올라갔으면 한 달은 꽉 채웠겠네.”
튜토리얼 탑을 어떻게 써먹을지도 고민이었다.
그냥 방치하기엔 너무 많은 혜택을 가진 건물이다.
분명 더욱 큰 이득을 창출해낼 수 있을 터였다.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처음 도착했던 1층 대기실엔 큼지막한 대문이 생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탑 등반을 마친 사람들에게만 통과할 자격이 주어지는 문일 터였다.
“……같이 나가는 게 좋겠군.”
여기서 혼자 대문을 열고 탑을 졸업해버릴 경우, 최선아의 우울함과 성아영의 폭주를 동시에 감당해야 할 위험이 있었다.
주민성은 둘이 격리된 텐트를 꺼냈다.
“민성 씨!”
“으읍!”
둘은 텐트에서 나옴과 동시에 주민성에게 소리쳤다.
상당히 급박해 보이는 표정이다.
“이현 씨가 사라졌어요!”
“……네?”
이현이 깨어난 모양이다.
갑작스런 정보였다.
동시에, 주민성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현은 인벤토리와 카오스 게이트, 그리고 도심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였으니까.
“사라졌다는 건, 어딘가로 갔다는 얘기죠?”
“네! 분명 말렸는데 급한 일이라며…….”
“……정보는 공유했어요?”
“일부만요. 협회장의 죽음부터 튜토리얼 탑이랑 혼돈의 존재 정도?”
“그런데도 뛰쳐나갔다라.”
주민성은 침착하게 성아영에게 다가가 반창고부터 교체해줬다.
“……으읍.”
“가만히 있어.”
미미하게 라면 국물이 배어난 걸로 보아 허기만 채우고 본인이 직접 다시 붙인 모양이다.
“카오스 게이트로 갔으면 곤란한데…….”
“카오스 게이트는 아닐 거예요. 민성 씨가 카오스 게이트 소유했다니까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거든요.”
“……그래요?”
다행히 최선아의 조치는 적절했다.
카오스 게이트에서 또다시 미아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
“일단 나갑시다. 저 문이 출구예요.”
“네!”
“읍!”
쿠르르르……!
대문은 주민성 일행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열렸다.
쓸데없는 데서 배려심 높은 탑이었다.
심지어 메시지 안내까지 있다.
[튜토리얼 탑 최종 등반자입니다.]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메시지였지만, 작은 의구심이 떠올랐다.
굳이 탑이 등반자를 인식하고, 나가는 것을 배려하는 점 때문이었다.
‘만약 최종 등반자 전원이 탑을 빠져나간다면?’
데쿠가 제공했던 정보도 신경 쓰인다.
‘이런 방식으로 깔끔한 퇴장이 가능했다면, 최종 등반자는 50인이 아니라 그 이상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수백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할 터였다.
혼돈의 존재를 최후의 50인이 전담한다는 전제하에.
거기서 한 명쯤은 탑의 안내역을 맡아 등반 효율을 높일 수도 있었다.
주민성 파티와 다르게 스피챠 행성의 파티는 실제로 모든 층의 공략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선아 씨.”
“네?”
“크룩스. 여기로 소집해 주세요.”
“알겠어요!”
이것이 결론이었다.
등반자 모두가 빠져나가면, 무언가 새로운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크룩?”
크룩스는 이번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소집에 당황했다.
“크룩스. 잠시 여기서 머물러줘야 할 것 같다.”
“크룩. 문제 없습니다.”
“필요한 물건 있으면 말해. 지금 챙겨줄 테니까.”
크룩스의 주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발을 들어줄 부하 몇과 식량 정도.
탑 내부의 온도는 적절했기에 추가적인 용품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 블링이랑 신입들 셋 정도 불러둘게요.”
“네.”
최선아는 고블린을 추가로 소집했고,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챙겨 둔 초월 편의점 식품 일부와 온도 보존 능력이 부여된 팔크라스 고기 수십 근을 꺼냈다.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는 거뜬하겠지?”
“오히려 많습니다. 크룩!”
크룩스에게도 딱히 불만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동안 고블린들 챙기기 바빠 갑작스레 찾아온 휴가를 기대하는 눈빛이다.
“오케이. 여분 사멸의 창도 30개쯤 부탁할게.”
“크룩!”
[사멸의 창이 수납됩니다.]
[사멸의 창이 수납됩니다.]
[사멸의 창이 수납됩니다.]
……
이것으로 여분의 무기도 확보했다.
이젠 혹시 모를 혼돈의 존재의 반전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일단 맞추기만 하면 한 방일 테니까.
심지어 위희린이나 성우혁 같은 일부 고위 능력자들은 창도 매우 잘 다루기 때문에 더욱 높은 효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럼 진짜 나가보죠.”
“네!”
다시 대문으로 다가가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좀 더 내용이 보충되어.
[튜토리얼 탑 최종 등반자입니다.]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튜토리얼이 진행중입니다.]
[탑의 개방을 유지합니다.]
“민성 씨! 메시지가 추가됐어요!”
“네. 보고 있습니다.”
예상이 맞았다.
탑의 개방이 유지된다는 건, 등반자 전원이 탑을 떠났을 경우 탑이 사라질 가능성도 함께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읍읍!”
성아영도 이번엔 제법이라는 듯 눈웃음을 보냈다.
평소라면 그저 무시하겠지만, 당분간은 챙겨 줘야 하기에 주민성도 이에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라도 줄까? 반창고 안 쪽팔려?”
“읍.”
성아영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반창고가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걸까.
딱히 필요 없는 모양이다.
“오케이. 그러면 진짜 나가자.”
그렇게 주민성 일행은 동시에 대문을 향해 손을 댔다.
팟.
빠져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탑 바깥의 도개교가 보인다.
“……민성 씨.”
“…….”
“여기 여의도 맞……겠죠?”
“…….”
분명 주민성 일행이 도착한 곳은 여의도의 방송가였다.
나름의 질서 있고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장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콰과과!
“개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탑이 보인다! 거의 다 왔어! 전부 쓸어버려!”
쾅!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의 치열한 분위기였다.
심지어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전쟁도 아니었다.
이번 상대는 같은 인간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많이 크군요.”
대격변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이곳에선 제약이 아니었다.
몬스터쯤은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의 고위 능력자들이 수백은 감지되고 있었다.
심지어 아군을 제외한 숫자였다.
“형!”
주민성의 복귀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최선호였다.
“선호야. 저 사람들 다 뭐야?”
“지방 세력들이에요. 탑 입장 제안을 거절했더니 아예 연합까지 만들어서 공격해오더라고요.”
“아하.”
당연히 욕심내올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타협하지 않고 무대포로 밀고 오는 건 예상외였다.
“사상자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부분이었다.
상대쪽에서 선만 지킨다면, 주민성 역시 선을 넘지 않을 계획이었다.
“…….”
하지만 최선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집계는 해봐야 아는데……, 몇 분 당하셨어요. 상대 쪽 능력자들도 몇 명은 말도 안 되게 강해서.”
“……그렇군.”
아군 측에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작 탑의 주인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행패를 부린걸로도 모자라 상해까지 입힌 것이다.
“그래도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즉사급 공격만 아니라면 버틸 만하긴 해요. 그보다 탑은 어떻게 됐어요?”
“보상이야 제대로 챙겼지. 버티느라 수고했어. 이제 내가…….”
그 순간, 근처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정확히는 최선호를 향한 공격이었다.
“찾았다! 저 놈이다!”
“잘도 우리 식구를 죽였겠다!”
콰직.
“……끄르륵!”
최선호는 어느새 상대 능력자 뒤로 이동해 목을 꿰뚫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도 할 수 있으니까. 형도 고생 많으셨어요.”
최선호는 화를 삭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되었음에도 이 정도였다.
화가 난 사람은 주민성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선호! 너……!”
“누나도 고생했어. 일단 쉬어. 쓰레기들은 내가 다 치울 테니까.”
동료들을 잃음으로 최선호에게도 큰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모양이다.
최선호의 손속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콰직. 콰지직.
투둑.
최선호는 죽은 능력자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냈다.
“형. 유물에 먹힌 놈들은 특히 조심해야 해요. 그 녀석들은 즉사시키지 않으면 저희한테까지 빙의해오거든요.”
“……그렇군.”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만큼 유물에 깃든 놈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내던져가며 탑에 집착하고 있었다.
“민성 씨. 저 선호한테 가볼게요.”
“네.”
주민성의 심경도 착잡한데, 친누나인 최선아는 어련할까.
이런 부분의 케어는 혈육에게 맡기는 게 옳았다.
대신, 주민성은 더욱 큰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흐읍!”
주민성은 근처 방송국 옥상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곤 인벤토리에서 확성기 하나를 꺼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소리 증폭 능력이 부여된 고급형 확성기였다.
주민성의 목소리는 적어도 여의도 전체에 퍼질 터였다.
“반갑다. 쓰레기들아.”
고작 한 마디.
그럼에도 전투 소음은 순식간에 멎어들어 갔다.
“탑은 이미 정복하고 오는 길이다. 대충 너네 늦었다는 뜻이지.”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살기가 주민성을 향해 쏟아졌다.
“정지. 거기서 더 접근하면, 탑은 철거된다.”
“……!”
녀석들이 원하는 게 튜토리얼 탑이라면, 이제부터 튜토리얼 탑은 인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