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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브레이커 (1) (213/250)


룰 브레이커 (1)
2022.07.02.


탑 등반 최종 보상은 혼돈의 존재에 맞설 능력.

하지만 여기엔 수많은 허점이 존재해 있었다.

특히 부여되는 능력이 탑 공략 방식을 따른다는 게 문제였다.

‘3층까지는 너무 쉬워서 문제고, 4층부터는 아군끼리의 반목을 유도하는 터무니없는 난이도가 문제야.’

이 탑은 차원을 넘나드는 탑이었다.

물론 조건부다.

혼돈의 존재 출현을 앞두기 전, 멸망한 행성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희망을 주는 메시지들로 치장한 채 생성된다.

‘물론 어떻게든 공략은 가능한 난이도겠지.’

스피챠 행성의 사례를 보아, 탑의 공략은 분명 가능해 보인다.

탑의 노예가 될 수많은 아군의 희생을 유도하고 나서야.

그렇게 등반을 마치고 받은 보상은, 평범하게 강력한 능력일 터였다.

일단은 강하지만, 행성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을 정도로 평범한.

‘정답을 이렇게 숨겨놨을 줄이야…….’

반면, 주민성 일행이 받은 능력은 전혀 달랐다.

시간 역행, 하수인 강화, 사망 선고 등의 능력은 하나같이 강력함을 넘어 밸런스 파괴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10층 공략으로 갔어야 했던 걸까.’

지금은 주민성 일행 중 누구든 혼돈의 존재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일부 조건만 충족한다면.

‘내가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상황, 혹은 무한한 마석, 그리고 혼돈의 존재의 이름.’

이것이 혼돈의 존재를 이길 수 있는 조건이었다.

3층을 공략해버린 대가이기도 했다.

“후우.”

“…….”

여전히 성아영의 시선은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군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런 탓에 성아영은 아직 주민성이 내린 결론까진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 좀 해보자.”

주민성은 성아영에게 텐트를 덧씌우며 정서적 안정을 유도했다.

튜토리얼 탑에서 얻은 능력은 조금만 잘못 휘둘러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건물 부가효과는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희망도 함께 선사했다.

“아직 그 능력이 어떻게 발동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어. 따로 사망 선고 능력을 사용한 이후에 이름을 말해야할 수도 있고.”

“읍읍?”

“맞아. 내 능력 중에도 그렇게 발동되는 능력이 있으니까. 여왕벌의 권능도 그렇잖아?”

영혼 재배치나 건물 관조, 여왕벌의 권능은 대상을 지정해야만 발동하는 능력이었다.

무작정 쓴다고 해서 발동되는 능력은 아니었다.

“거기다 다른 말이라면 평범하게 할 수 있잖아? 주어를 생략하는 버릇만 기른다면 너한테도 이득이야. 어디 가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는 안 될지도.”

“…….”

물론 위로가 먹히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눈빛만으로 욕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읍읍읍.”

“방금 내 이름 부르려고 한 거 아는데, 아직 위험하니까 진짜로 하진 말고.”

아무튼 주민성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이후, 새로운 작전 회의를 개최했다.

“탑 등반을 마쳤다고 탑이 사라지는 건 아닌 모양이에요. 그렇다는 건, 한 달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죠.”

“민성 씨 혹시…….”

“네. 맞습니다. 더욱 확실한 능력을 갖춘 등반자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것도 다른 층을 거치지 않고 최상층을 한 번에 등반해낸.”

주민성이 내린 결론대로라면, 3층조차 거치지 않은 탑 등반자야말로 확실하게 혼돈의 존재를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성아영 씨 능력을 보고도요?”

물론 최선아도 성아영의 능력을 확인했다.

염려되는 표정이 역력하다.

“너무 위험해요. 아무리 믿을만한 사람이라도 저런 능력이 생기면……. 결국 자기 이득을 추구하지 않을까요.”

최선아라면 최선호를 추천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민성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다.

“확실한 카드가 있다면요?”

“확실한 카드요?”

“네. 절대 배신하지 않는 상대가 탑의 능력을 받는 거죠.”

“그게 말이 될…….”

그제야 최선아도 깨달은 모양이다.

“설마 건물 이용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최선아의 표정은 다시금 심각해졌다.

“그래도 아직 부족해요……. 부여받은 능력이 임진석 씨처럼 될 수도 있잖아요.”

“아아. 거기까지 생각해 주셨네요. 설명을 좀 더 보충해야겠습니다.”

“……네?”“제가 섭외하려는 등반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몬스터죠.”

그제야 최선아도 모든 걸 깨달은 모양이다.

건물주 능력 중엔 배신을 철저히 차단하는 개념 한 가지가 존재한다.

이용료 청구와 함께 가장 오랜 기간 주민성과 함께한 개념이기도 했다.

“절대 을. 기억하시죠?”

“……콩이랑 크룩스죠?”

“맞아요.”

다른 능력자면 모를까, 절대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능력만큼은 확실하게 변치 않는 성질을 가졌다.

그렇기에 주장할 수 있었다.

“절대 을이라면 확실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 곁에서, 주민성의 몬스터들을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 바로 최선아였으니까.

“그런데 민성 씨. 다른 층을 거치지 않고 콩이나 크룩스를 데려올 방법이…….”

주민성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방법이라면 최선아 본인이 잘 알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최선아가 부여받은 능력은 하수인 강화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따르는 하수인을 소집합니다.]

제약 없는 하수인 소집이라는 터무니없는 사기 능력을 함께 부여받았다.

“맞습니다. 선아 씨가 불러주시면 돼요.”

심지어 둘은 최선아도 잘 따르는 편이었다.

특히, 자유분방한 콩이와 달리 고블린인 크룩스는 더더욱.

“크룩스라면 가능하겠죠?”

“네. 콩이 쪽은 확신이 조금 없었어요. 살쪄서 운동 몇 번 시켰더니 도망가더라고요.”

최선아도 같은 결과에 도달한 모양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콩이는 절대 을임에도 임진석 쪽을 더욱 선호하는 느낌이 있었다.

간택 기준이야 밥 많이 주는 사람이겠지만.

“좋습니다. 그럼 크룩스로 하죠.”

“…….”

그런 와중에도 성아영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침 흘렸어? 반창고 갈아줄까?”

“……민성 씨. 그건 좀…….”

“아, 침 흘려서 그런 게 아닌가요?”

“……대격변 끝나면. 저랑 같이 사람 공부 좀 해요. 적어도 민성 씨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으니.”

“윽…….”

가벼운 해프닝이 끝나고, 본격적인 크룩스 소집식이 개최됐다.

물론 행사를 위한 준비 따윈 없다.

그냥 불러서, 아래 층만 보라고 하면 끝이다.

“그럼 시작할게요!”

“네.”

최선아는 이용료 납부나 호위 서비스 등의 능력을 경험해본 상태.

다른 능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수인 소집.”

변화는 없었다.

대신, 메시지가 떠올랐는지 움찔하며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말했다.

“……크룩스?”

곧장 크룩스를 부른 걸로 보아 건물 관조 등의 능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인 모양이다.

“크룩?”

“우와.”

아무런 전조 현상도 없었다.

크룩스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크룩스가 나타났다.

최선아의 능력엔 아무런 딜레이도 없었다.

이 정도면 인벤토리에서 건물 잔해를 꺼내 방패로 쓰는 것처럼 몬스터를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됐어요! 민성 씨!”

“크, 크룩! 성녀님! 이건 대체!”

크룩스는 크게 당황하며 자세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고블린들에게 무언가 지시하고 있었는지 근엄한 자세 그대로였다.

그보다 더 웃긴 점은, 최선아가 고블린에게 성녀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크룩스를 불렀다.

“여기다. 크룩스.”

그제야 크룩스는 뒤를 돌아 주민성을 인식했다.

“……부, 부르셨습니까? 로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아. 선물 하나 해주려고.”

“……선물입니까? 그보다 사방에 떠오른 고블린어들은 무엇인지요. 드디어 저희 종족을 구원하시려는.”

마찬가지로 크룩스에게도 튜토리얼 탑의 메시지가 떠오른 모양이다.

친절하게 번역할 필요 없는 고블린어로.

“그거 아니야.”

“……예?”

“구원은 네가 해줘야겠다. 지구를 구해낸 최초의 고블린이 되는 거지.”

“……아, 아직 이해가 안됐습니다.”

주민성은 피식 웃으며 부서진 바닥을 가리켰다.

“저 아래. 잠깐 내려다보고 와.”

“……음? 알겠습니다.”

새삼스럽지만, 크룩스는 고블린계의 김정남 같은 느낌이었다.

우직하고, 충직하다.

이번에도 충실히 주민성의 명령을 따른다.

“크룩?”

능력이 부여된 모양이다.

크룩스는 고블린이었기에 수첩을 건넬 순 없었다.

“무슨 능력인지 읊어봐.”

“크, 크룩! 이건 대체!”

“흥분하지 말고.”

주민성은 크룩스를 향해 텐트를 던졌다.

크룩스에게 정서적 안정은 셀프였다.

“크루룩. 제게 새로운 힘이 생겼습니다!”

“알아. 뭔데.”

텐트를 뒤집어썼음에도 크룩스의 눈빛엔 흥분감이 가득했다.

“바로 이겁니다! 크룩!”

어느새 크룩스의 손엔 고풍스런 창이 들려있었다.

“……무기 소환술?”

“비슷합니다.”

크룩스는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창을 내밀며 말했다.

“혼돈의 존재를 일격에 소멸시키는 사멸의 창이라고 하는군요. 멋진 이름입니다.”

“좋군.”

예상대로였다.

처음부터 탑 최상층에 등반하면, 과정을 생략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혼돈의 존재를 억제하기 위한 탑의 본질이었으리라.

“그 창. 잠깐 줄래?”

“크룩!”

주민성은 사멸의 창을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폈다.

소유권 개념은 없는지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민성 씨! 그게 크룩스 능력이에요?”

“아. 맞습니다.”

물론 최선아도 크룩스의 말을 조금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눈치 빠르게 보상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반면, 성아영의 입은 더욱 튀어나왔지만.

“아. 설명해 줄게.”

주민성은 이런 사소한 배려를 빼놓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금 가장 케어해야 할 사람은 시한폭탄 같은 성아영이었으니까.

“사멸의 창이래. 대충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같은 깡패 무기지.”

“읍읍?”

다행히 설명을 들어 기분이 풀어졌는지 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집어넣었다.

주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살포시 창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단순히 혼돈의 존재를 저격하는 창이었음에도 효과는 엄청났다.

이 정도면 범용성 점수도 상당히 높다고 봐야했다.

“민성 씨. 위험하잖아요!”

“성능이 궁금했어요. 이 정도면 그냥 무기로 써도 손색없겠는데요?”

“어어……. 굳이요?”

“네?”

“민성 씨 창술 연마 안 했잖아요.”

“……아. 그건 그렇죠.”

주민성의 능력은 구현계에 가까웠다.

무기술은 신체 강화 계통의 능력자들이 주로 배우는 코스였다.

“민성 씨는 그냥 쾅쾅 건물 터트리면서 싸우는 모습이 가장 멋져요.”

“…….”

최선아에게 비친 주민성의 모습은 건물을 마구 무너뜨리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도 혼돈의 존재는 처리해야 하는데…….”

“인벤토리 있잖아요?”

“아아?”

주민성의 인벤토리 활용 능력은 이제 전문가 수준 이상이었다.

표적이 정해지면, 어떤 각도로든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건물 잔해에 묶든, 텐트랑 같이 폭발시키든. 맞추는 건 문제 없을 거예요.”

“그렇긴 하네요…….”

“그보다 이 창. 소환 제한이 따로 있는 걸까요?”

주민성은 크룩스에게 최선아의 말을 전달했다.

“크룩.”

그리고 크룩스는 답을 내놓았다.

쿵! 쿵!

2개의 창이 새로 생성되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

“하나씩 쓰십시오. 크룩.”

“읍읍!”

“대박.”

놀랍게도 사멸의 창은 양산형 창이었다.

스미스에게 제공 받은 총보다 활용성 면에선 떨어질지 몰라도, 무한정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은 어마어마한 이점이기도 했다.

“민성 씨! 이거 고블린들한테 하나씩 쥐여 주는 게 어때요?”

“지구 멸망이 더 빨라질 것 같은데요…….”

“민성 씨가 그렇게 명령하면 그렇게 되겠지만요.”

생각해 보니 최선아는 주민성에게 모든 걸 맡긴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주민성이 무슨 사고를 치든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따르는 부류에도 해당한다.

“…….”

주민성은 광신도의 눈빛이 뭔지 그제야 깨달았다.

압도적인 신뢰, 무한한 신뢰가 형상화된 것이 최선아의 눈빛인 것이다.

“무기 보급 건은 일단 보류해 둘게요. 어차피 혼돈의 존재를 제압할 방법은 생겼으니까. 그보다는 이른 탑 등반으로 확보한 시간을 써먹는 게 좋아 보여요.”

인류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은 1개월.

여기서 주민성 일행이 탑을 등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에 불과했다.

적어도 몇 주는 혼돈의 존재에게 관심을 꺼도 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제 바깥의 질서를 정리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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