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6)
(212/250)
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6)
(212/250)
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6)
2022.07.01.
“이걸 이렇게……?”
그저 최상층의 바닥을 부수고 아래를 내려다봤을 뿐이었다.
물론 보상을 기대한 행동은 맞았지만, 그것만으로 보상을 얻어낼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주민성에겐 어마어마한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다.
“아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튜토리얼 탑엔 주민성만 등반한 게 아니었다.
최선아와 성아영도 함께였다.
분명 이들 역시 바닥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능을 부여받을 수 있으리라.
“기쁨은 함께 나눠야지.”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있던 7번 텐트를 꺼냈다.
“나눠야…….”
텐트는 비어 있었다.
이 역시도 조금은 짐작한 바였다.
장 박사의 라면은 끊임없이 진화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혹시 모르니까…….”
차선책인 여왕벌의 권능은 쓰지 않기로 했다.
라면을 먹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포장마차 조사에 변수를 개입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최선아 씨, 성아영 씨. 이 텐트에서 대기.
주민성은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요청사항을 적어 텐트에 붙였다.
기다림은 5초 정도면 족하다.
인벤토리의 시간 흐름은 훨씬 빠르니까.
“…….”
“…….”
다시 텐트를 꺼냈을 땐, 미묘하게 불편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인벤토리 안에서도 최선아와 성아영은 친해지지 못한 모양이다.
둘 다 주민성에게만 말을 걸어왔다.
“민성 씨. 괜찮아요? 4층은 어떻게 됐어요?”
“히드라는?”
다행히 무작정 인벤토리로 보낸 것엔 크게 불만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다 끝났습니다. 여기 탑 꼭대기거든요.”
“헐?”
“……결국 깼네.”
“후후.”
주민성은 의기양양하게 서프라이즈를 공개했다.
“저기 부서진 바닥 보이시죠? 머리 집어넣고 아래층 보세요. 그걸로 새로운 능력이 부여될 테니까.”
“네?”
“그게 끝이야……? 고생담이라든가 없어?”
“없는데. 그보다 탑 등반 보상이라니까?”
“…….”
생각보다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보상보단 끝까지 안위에 대한 걱정이었다.
“저희, 봤어요. 포장마차부터 이것저것.”
“아…….”
분위기상 본 것만이 전부는 아닌 모양이다.
장 박사에게 따로 들은 것도 많은 듯했다.
“민성 씨는 대체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려는 생각이죠? 사소한 것들은 같이 나눠도 괜찮잖아요.”
최선아는 최선아대로.
“아예 인벤토리 안에서 살려고 작정했지? 죽기 직전에 들어가면 괜찮다 이거야?”
성아영은 성아영대로 걱정했다.
장 박사에게 많은 정보를 들은 모양이다.
라면을 먹어 번들거리는 입술이 증거였다.
“너무 나갔습니다. 인벤토리는 그냥 만능 금고예요. 그보다 보상이 먼저입니다. 얼른 챙길 거 챙기고, 혹시 모를 혼돈의 존재에도 대비해야죠.”
“…….”
“…….”
그제야 둘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경쟁 구도가 벌어진다.
“제가 먼저예요.”
“아오. 가속 능력이면 다냐?”
당연히 이런 대결은 최선아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이야 누가 먼저든 상관없었기에 지켜볼 뿐.
“어어……. 민성 씨. 메시지가 떴는데, 이거 맞죠?”
“네. 아마도.”
첫 메시지는 이러할 터였다.
[튜토리얼 탑 최상층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달라지는 건 다음줄부터.
쌓아온 업적에 따른 능력이 부여된다.
시간 역행이라는 사기 능력만 봐도 최선아가 받을 능력 또한 어마어마한 녀석이 튀어나오리라.
“능력. 부여됐어요?”
“…….”
최선아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진 모양이다.
결국, 주민성은 말없이 수첩을 밀어줬다.
“다 읽으면 차분히 적어 주세요.”
“……네.”
최선아가 수첩의 내용을 채우는 사이, 성아영이 다가와 주민성을 이리저리 살폈다.
“넌 무슨 능력 받았는데?”
“안알랴줌.”
“…….”
명치를 향해 성아영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간단하게 막을 수 있었다.
“바꿔라? 그것을 알려드림으로.”
“널 아기로 바꿔줄 수는 있는데.”
“……진심이야? 응애 몇 번 했다고 아기 취급?”
“그런 능력이 생겼거든.”
“에엥?”
“잠자코 기다려봐. 어차피 너도 뭔가 받을 거 아냐.”
“헤헷.”
그제야 성아영의 기분도 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최선아의 메시지 받아적기도 끝났다.
“여, 여기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현실감이 생기질 않는 모양이다.
주민성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수첩을 읽어내려갔다.
[하수인 소집 권한이 부여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따르는 하수인을 소집합니다.]
[하수인 강화 권한이 부여됩니다.]
[마석을 재료 삼아 하수인을 영구적으로 강화합니다.]
[강화된 하수인은 낮은 확률로 진화합니다.]
[하수인 강화는 실패 확률이 존재합니다.]
최선아에게 부여된 능력은 주민성과 달리 무려 둘.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시간 역행 능력은 최선아가 얻은 능력조차 평범하게 만드는 능력이니까.
‘강화건 진화건 시간 역행 한방이면 원점복귀인가.’
물론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계획은 없었다.
성아영이면 모를까.
신용도라면 최선아가 단연코 위였다.
“맞다. 민성 씨……. 망취랑 에취는요? 부링이도요!”
“네?”
“4층에 같이 있었잖아요.”
“…….”
“민성 씨이!”
가슴이 철렁해지는 순간이었다.
주민성이 4층에서 대피시킨 상대는 최선아와 성아영뿐.
몬스터는 해당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경쓸 겨를도 없이 곧장 건물 관조로 시점을 옮겼기에 몬스터의 안위는 알 수 없었다.
“……깜빡했습니다.”
“흑…….”
하지만 희망이라면 있었다.
마침 최선아에겐 하수인 소집이라는 여왕벌의 권능급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으니까.
“선아 씨. 능력 써보는 게 어때요? 하수인 소집.”
“……흐윽. 네? 하수인……. 아아?”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이 능력은 벌집 같은 매개체도 필요 없었다.
그저 사용하면 그만인 사기 능력이었다.
최선아가 외쳤다.
“에취! 망취! 부링이!”
“…….”
주민성과 성아영은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부끄러움은 언제나 타인의 몫이었다.
“…….”
그리고 다른 의미의 침묵이 이어졌다.
싸늘하게 식다 못해 부식되어버린 몬스터 시체 세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아아……. 안 돼……. 망취……. 에취……. 부링아…….”
주민성이 4층에 두고 왔던 몬스터는 히드라에게 죽임당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껏해야 D급 언저리의 몬스터들이다.
녀석들에겐 히드라 한 마리도 벅차다.
심지어 원조 몬스터도 아닌 이들이었다.
오크나 고블린 특유의 신체 능력은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죽임당했을 터였다.
“선아 씨. 잠시만.”
“……네.”
최선아는 순순히 비켜줬다.
눈의 초점이 흐린 걸 보아 많은 심경 변화를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모양이다.
‘설명에 거짓이 없다면, 분명히 가능해.’
주민성은 그런 최선아를 위해 새로 얻은 능력을 써보기로 했다.
“시간 역행.”
“……네?”
[튜토리얼 탑 최상층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시간 역행 권한이 부여됩니다.]
[지정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지정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이 말대로라면 죽어 있는 대상을 살아 있던 과거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츠츳.
주민성의 손에 하얀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빛무리는 그대로 몬스터들에게 흩뿌려졌다.
‘되는 건가?’
주민성은 빠르게 집중했다.
너무 많이 되돌려서도 안 되고, 적게 되돌려서도 안 된다.
‘스피챠 행성의 능력자는 안 돼. 변수가 너무 많아.’
주민성의 원하는 바는 뚜렷했다.
튜토리얼 탑에서 마주쳤던 그 순간을 원했다.
파츠츳.
부식되어버린 살갗이 원래대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새살을 돋아나게 하는 회복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정확히 되돌아온다는 표현이 맞았다.
츠츠……!
녹아내린 안구가 복구되고,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도 생겨났다.
이젠 히드라에게 공격당한 흔적 따위 전혀 없는 몬스터 시체였다.
‘좀 더.’
콰트리취의 안대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감각으론 알 수 있었다.
저 아래 멀리서 미약한 영혼 셋이 빠른 속도로 치솟아 올라온다는 걸.
아마도 완전한 부활엔 영혼이 필요한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이기도 했고.
팟.
‘지금!’
주민성은 그대로 능력 사용을 중단했다.
더이상 능력을 지속하면 정체성이 사라진 기괴한 무언가가 될 것만 같았다.
“허억! 헉!”
“미, 민성 씨? 이게 대체…….”
더 물을 것도 없다.
결과는 눈앞에 있었다.
주민성은 죽은 몬스터의 시간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헉……! 허억. 제가……. 얻은 능력입니다.”
“맙소사…….”
최선아는 경악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한 주민성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처음 F급 게이트에서 만난 순간부터, 주민성의 능력이 괴랄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이 또한 낯설면서도 어색한 풍경이었으리라.
“……부링아?”
“키륵!”
“에취? 망취?”
“취익.”
“취.”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녀석들이 내뱉는 건 언어가 아니었으니까.
오직 최선아만 이해할 수 있는 교감의 경지였다.
“후우.”
주민성은 탈력감을 견디며 숨을 골랐다.
‘이 능력. 생각보다 효율이 나쁘네.’
처음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역행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어마어마한 출력을 요구했다.
시간과 관련된 능력의 부작용이 이런 종류임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태 송몽룡이 늙어가면서도 능력을 쓸 수밖에 없던 것도 이해했다.
시간 능력은 확실한 결과가 보장된다.
“…….”
한편, 성아영은 탑 등반 보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린다.
“…흠,”
최선아는 여전히 몬스터들과 감동의 상봉 중이었다.
굳이 방해할 이유는 없다.
주민성은 성아영에게 다가가 수첩을 내밀었다.
“별걸 다 따라하네. 자.”
“…….”
성아영은 어울리지 않게 순순히 수첩을 받아들였다.
그리곤 자신이 확인한 메시지를 열심히 끄적인다.
“음?”
두 줄쯤 적었을까.
주민성은 순식간에 수첩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뭐야. 이게 다야?”
수첩에 적힌 내용은 극히 짧아 보인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마주치는 몬스터는 단번에 죽여 버렸으니까.
상대적으로 평범한 보상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튜토리얼 탑을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화 등급을 믿었다.
“…….”
메시지를 확인한 주민성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시지만으로 이 정도의 위협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사망 선고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름을 불린 생명체는 사망합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능력이었다.
그것도 최소 주인공급이나 최종 빌런급의.
“능력이 왜 이따위야……. 이런 능력 없어도 잘 죽일 수 있다고…….”
성아영의 정서는 불안정하다.
극과 극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이게 디폴트값이다.
“뭐라도 말해봐……. 나 어떻게 해야 해? 말할 때 생각 안 하는 편이란 말이야! 듣고 있어? 주민…….”
“……!”
주민성은 그대로 성아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 방금 내 이름 말할 뻔했잖아.”
“…….”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능력이 발동하는지, 아니면 사망 선고라는 능력을 발동한 이후에 대상의 이름을 부를 때 능력이 발동하는지.
아직 밝혀진 게 없었다.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마. 차근차근 알아보자.”
주민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최대한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목소리 톤을 유지했다.
그런 와중에도 단호함은 유지한다.
주로 맹견을 다룰 때 쓰는 방법이었다.
‘입마개를 따로 사야 하나?’
성아영의 폭주는 곧 지구 멸망 버튼이나 다름없었다.
튜토리얼 탑을 정복하고도 이런 위협이 따르는 상황이 너무나 황당했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했다.
주민성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를 분석했다.
‘시간 역행, 하수인 어쩌구, 사망 선고.’
전부 튜토리얼 탑을 편법으로 등반하고 받은 능력이었다.
이 능력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을 추구하는 능력들이야…….’
시간 역행은 대상의 상태가 어떻든 무조건 되돌리는 성질이 있었다.
최선아의 능력도 마찬가지.
하수인이 죽었든 살았든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었다.
강화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사망 선고는 성아영의 탑 등반 과정을 그대로 반영했다.
마주치는 순간 죽는다.
이것이 능력화됐다.
“어떤 매커니즘인지 대충은 알겠다…….”
그나마 3층까지는 자력으로 등반했기에 망정이었지, 처음부터 괴팍하게 등반했다면 더욱 끔찍한 능력이 부여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