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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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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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5)
2022.06.30.
히드라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난 건, 가진 전력에 비해서 사소한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히드라의 목이 3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는 것, 그리고 협력으로 판정되는 요구치가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성아영. 뒤로.”
“…….”
성아영은 주민성의 말에 순순히 협력했다.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읽었을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선아 씨도 잘 들어요.”
“네!”
“혼자서 전부 잡으면 협력으로 판정되지 않아요. 반드시 동시에 제압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히드라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마지노선이었다.
최소한 한 사람당 한 마리의 히드라를 마크할 수 있었으니까.
“동시에 공격하자는 거죠? 노력해 볼게요! 아니! 무조건 성공시킬게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최선아의 저격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교육과정을 거친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세세하게 코치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데빌도그 라이딩을 통해서 마상 사격 비슷한 특기도 만들어냈을 정도니까.
거기에 온갖 장비빨이 더해져 정확도는 100%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성아영. 너도 같이 합공 준비해.”
“……알았어.”
성아영 역시 모처럼 진지해졌다.
일부러 저지른 실수도 아니었지만,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일단은 공격 지분부터 충분히 확보해야겠지.’
근접전은 주민성이 전부 도맡기로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히드라를 통째로 짜부라트릴 수도 있겠지만, 4층은 몬스터 사냥보단 기믹에 중점을 두고 공략하는 게 맞았다.
“키아아아!”
“만나서 안 반갑다.”
만물 소통은 여전히 적용된다.
히드라는, 혹은 히드라를 빙자한 멸망한 행성의 인간은 말을 알아들었기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은 그 틈을 타 두 히드라의 모든 목을 묶는 것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지분 반 정도는 확보했다고 봐야 하나?’
어찌나 세게 묶었는지 히드라는 산성 브레스도 뿜어내지 못하고 헛숨만 컥컥 내뱉을 뿐이었다.
“선아 씨!”
“네!”
곧이어 최선아의 사격이 이어졌다.
파지지지지!
“…….”
주민성은 말을 잃었다.
최선아가 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총은……. 멀리서 맞추라고 있는 건데요.”
“그래도 민성 씨 맞으면 안 되잖아요…….”
“…….”
물론 최선아는 총을 쐈다.
정확히 히드라의 머리도 노렸다.
단지, 거리가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초근접 사격은…….”
명중률 100%.
총구를 아예 히드라의 머리에 박아 넣고 쏴 버렸으니 빗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가속 능력까지 더해져 시간은 거의 소요되지 않았다.
히드라의 머리 반절이 날아갔으면 성과도 충분했고.
“성아영!”
“전부 자른다?”
주민성은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서걱.
“크가아아…….”
히드라의 머리 반절은 최선아의 사격으로 증발하다시피 날아갔고, 나머지 반절은 성아영이 전부 잘라냈다.
그리고 주민성은 그런 히드라를 봉쇄해 아군의 명중률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나름대로 이상적인 협력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쿠웅!
히드라의 육중한 몸체가 쓰러졌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협력 미션에 실패하였습니다.]
[튜토리얼 탑 4층에 재입장했습니다.]
[4층은 집단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지정된 몬스터를 상대로 협력하여 승리하십시오.]
[몬스터 개체 수가 증가합니다.]
“키아아아아아!”
“키아아아!”
일행은 그대로 얼음이 됐다.
재구성된 4층의 히드라가 넷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야! 사기잖아!”
“민성 씨……. 이제 어떻게 해요?”
“미친…….”
그제야 주민성은 체감할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계속해서 분열하고 다퉜는지.
단체전의 클리어 조건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무언가 숨은 조건이 더 있었다.
“이대로라면……. 히드라 수백쯤은 각오해야겠죠?”
“네……. 실패할 때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아요.”
“……오케이.”
주민성은 마음을 굳게 바로잡았다.
배신은 생각보다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내가 불리해지고 유리한 쪽을 찾게 되는 본능이었다.
그런 본능을 이성이 억제할 뿐이다.
“뭐야. 그 표정……. 사고 치기 직전의 표정인데…….”
성아영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분석을 게을리 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선아 씨. 이리 와요.”
“……저, 저까지요?”
“네.”
성아영은 이미 곁에 있었다.
최선아는 너무 빨라 쫓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불렀다.
“잠시만요,”
주민성은 둘을 그대로 끌어안고, 새로 설치된 텐트에 들어갔다.
“갑자기 뭐 하려는 건데!”
“일단 사과하려고.”
“네?”
협력.
주민성의 사전엔 없는 단어였다.
그래서 더욱 공략할 자신이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한 사과였다.
“이대로라면. 고생만 잔뜩 하고, 누군가 희생하고 배신할 거예요. 아니, 배신은 하고 싶은데 건물 이용자라서 그것도 못 하겠죠. 이런 문제들로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습니다.”
“……민성 씨?”
“야……. 잠깐…….”
너무 심각한 표정이어서일까.
둘은 하라도 된 것처럼 주민성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제가 사과드리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 선택으로 저만 탑 등반에 성공할지도, 전원이 탑 등반에 실패할지도 모르거든요. 이런 것들을 전부 포함한 사과입니다. 미안해요.”
“…….”
“…….”
주민성은 쉽사리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설령 사과한다고 하더라도 진심은 아니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아니면 매끄러운 사회생활을 위해서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적어도 능력을 각성하기 전까진, 무해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나중에 제대로 챙겨 줄 테니까. 그때 봅시다.”
“자, 잠깐! 기다려!”
“멈춰! 멈춰!”
주민성은 둘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관조.”
왜인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만큼 주민성의 행동 하나하나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튜토리얼 탑.”
주민성은 동시에 다른 능력도 병행했다.
셋이 끼어 있던 텐트가 수납된 것이다.
[텐트 7이 수납됩니다.]
가진 텐트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자릿수 텐트가 쓰였다.
사소한 성의라도 보태기 위함이었다.
이것으로 최선아와 성아영은 탑 등반에 있어 반쯤 낙오됐다 할 수 있었다.
“그냥 해도 어려운 협력을, 이렇게 꼬아버리면 어떻게 푸냐고.”
푸념 어린 혼잣말을 주절거리던 주민성은 순간 말을 잃었다.
무언가 다른, 어색한 메시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신화급 건물을 관조했습니다.]
[관련 능력이 모두 해금됩니다.]
“음?”
건물 관조는 성공했다.
주민성은 지금 격리 공간에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메시지는 별도로 떠오른 메시지였다.
[건물 투시 권한이 해금됩니다.]
[건물을 투시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건물 철거 권한이 해금됩니다.]
[지정한 건물을 철거합니다.]
[건설에 사용된 재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건물 재창조 권한이 해금됩니다.]
[철거했던 건물을 창조합니다.]
[건물 재창조엔 건설에 사용된 자재가 필요합니다.]
[자재가 부족할 시 건물 창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여태껏 장식 같았던 메시지였다.
이젠 아니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관련 능력이 해금된 것이다.
별도로 떠오른 메시지는 건물 관조의 관련 능력 해금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아?”
처음부터 건물 관조는 신과 같은 자유로운 시점에서 건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부여된 능력 또한, 신적인 능력이었다.
“괜히 신화급이 아니구나. 다르네…….”
원래는 바로 건물 관조에 몰입해 모든 층을 스킵하려 했었다.
강경책으론 건물 폭발까지 염두에 뒀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다.
진짜배기 건물주로서, 건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대박…….”
일단은 가장 기본적인 관련 능력부터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큰 이유라면 4층이 별개의 층이라기 보단 다른 차원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능력이 생겼으면 일단 써봐야지.”
4층은 늪지대였다.
정확히는 해가 멀쩡히 떠 있고, 수풀이 울창한 정글 늪지대에 해당했다.
이곳이 탑 내부였음에도.
격리 공간에 몸을 누인 주민성은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투시.”
[건물을 투시해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간결한 메시지와 함께 늪지대가 투시됐다.
그제야 주민성은 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
질긴 나무줄기 너머로 탑 건설에 쓰인 벽돌들이 비쳐 보이기 시작했다.
늪 아래 깊은 곳에 탑의 바닥이 보였다.
“……탑이 맞네?”
놀랍게도 바닥은 수백 미터 이상 시점을 내려야 보였다.
탑 내부의 모든 것들이 소형화된 것처럼.
시점을 좀 더 내렸다.
그제야 3층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탑이었군.”
어느새 건물 관조 지속 시간인 10분을 앞두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추락하기 딱 좋은 상황.
주민성은 시점을 최대치로 넓혀 탑 전체를 눈에 담았다.
그리곤 탑의 최상층으로 포커스를 당겼다.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주민성은 최상층으로 추정되는 공간 내부, 아슬아슬하게 바닥이 보이는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
팟.
메시지는 쉴 틈 없이 떠올라 있었다.
주변을 빠르게 탐색해 적대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하곤 그제야 메시지를 확인했다.
[튜토리얼 탑 4층을 이탈했습니다.]
[협력 미션에 실패하였습니다.]
4층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재입장 같은 이상한 룰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탑 ??층에 진입했습니다.]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층입니다.]
[튜토리얼 탑을 이탈해 도전자 권한이 박탈됩니다.]
“……당연한 결과인가.”
모 아니면 도.
이제부턴 도박이었다.
아무런 능력도 부여받지 못한 채, 모든 도전이 무효처리 될 가능성이 추가됐다.
하지만 주민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능력은 어떻게든 받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탑의 소유권은 다른 누군가가 가진 게 아니었다.
주민성 자신에게 있었다.
“탑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겠지.”
메시지는 물음표를 띄웠지만, 이곳은 분명 최상층이 맞았다.
저 멀리 천장 위는, 지구였으니까.
별다른 장식은 없는 공간이었다.
대기실에 가까웠다.
“일단 목표는 10층.”
지금의 행동은 4층부터 9층을 모두 생략하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주민성의 행동 하나하나엔 확신이 가득했다.
이런 역순 공략은 그 누구도 선보이지 못했던 공략법이었으니까.
당연히 탑을 내려가는 계단은 없었다.
징검문을 통해서 전송되는 방식인데다, 아래에서 위로만 갈 수 있는 게 본래의 규칙이었다.
“이거면 되려나.”
그래서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바로 파멸의 곡괭이였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가지지 못하면 부숴 버리겠다는 마인드까지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철거해서 원가라도 챙기든, 재가공해서 써먹든.
어떻게든 뽕을 뽑아낼 작정이었다.
“후우.”
힘 조절도 마찬가지.
여태껏 조심스레 다뤄 왔던 곡괭이였지만, 지금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부서지면 새것을 구매할 뿐.
“흐읍!”
콰아아앙!
온몸 뼈마디 구석구석에 충격이 전달될 정도로 강하게 내려쳤다.
건물이 파손되었다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주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직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쾅! 쾅!
“어차피 멸망하면 전부 파멸이야. 흐읍!”
콰광!
콰르르르르!
바닥은 파멸의 곡괭이로 여러 차례 내리찍고 나서야 부서지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그대로 탑 아래를 내려다보곤,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웃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부분이 그랬듯, 이번에도 메시지 때문이었다.
[튜토리얼 탑 최상층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시간 역행 권한이 부여됩니다.]
[지정된 대상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립니다.]
신나게 탑을 파손시킨 대가는, 튜토리얼 탑 졸업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졸업 선물과 함께.
“대박이네.”
심지어 이 졸업 선물은, 나 자신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거를 현실로 만드는 능력도 아니었다.
그 어떤 대상이든 과거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사기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