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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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4)
2022.06.29.
“…….”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데쿠가 최후의 50인이었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튜토리얼 탑 등반의 끝이 멸망이었다는 게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민성 씨! 뭐래요?”
“아아.”
주민성은 차분히 데쿠가 했던 말을 그대로 번역해서 전달했다.
“너무 안일했나.”
정황을 알고 나니 스피챠 행성과 많은 점이 비교됐다.
데쿠의 추가적인 설명에 따르면 최후의 50인은 탑의 최초 도전자들이었다고 한다.
즉, 지금 상황에 빗대자면 지구는 최후의 3인이 탑에 도전한다는 소리였다.
“이 탑은 함정 그 자체입니다. 탑을 등반함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얻는 것도 사실이지만, 행성의 운명이 담보로 걸려 있지요. 행성을 잃은 최후의 등반자는……. 탑의 노예가 됩니다.”
존재할지도 모르는 미래 한 가지가 그려졌다.
주민성과 최선아, 그리고 성아영이 튜토리얼 탑의 몬스터가 되어 새로운 도전자를 기다리는 미래였다.
“둘 다 싫어! 왜 하필 오크랑 고블린인데!”
“고블린이 어때서요! 귀엽기만 한데!”
“내가 더 귀엽거든!”
꾸미기 좋아하는 성아영의 반응이 특히 격렬했다.
“…….”
겉으로 보이는 상황만 보자면 스피챠 행성보다 훨씬 불리했다.
그럼에도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탑의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있었고, 멸망의 핵심 원인이 되는 혼돈의 존재는 건물 이용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들 수 있는 변수는 무한에 가까웠다.
“데쿠. 스피챠 행성에선 탑을 등반하며 몬스터를 교화했던 사람은 있었나?”
“……없었습니다.”
“탑의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이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건물주 능력은 다른 행성을 통틀어도 쉽게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능력임을.
“그럼 문제없어. 최후의 3인이든, 최후의 100인이든.”
건물주 능력이 있었기에 탑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건물주 능력이 있었기에 탑을 소유했다.
혼돈의 존재를 자체적으로 봉인할 수 있었고, 카오스 게이트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그 외에도 주민성이 만들어낸 변수는 수없이 많다.
“이 탑도 내 방식대로 바꿀 테니까.”
“고블린으로는 바꾸지 말아주라……? 알았지?”
“…….”
이로써 들을 얘기는 전부 들었다.
탑을 등반해 부여받을 막대한 능력이 뭔지 직접 확인하면 될 뿐이다.
“방침은 그대로 유지. 이대로 10층까지 가겠습니다.”
“알았어!”
“네!”
최선아와 성아영의 공략 방식엔 개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지금의 세상이 멸망을 앞둔 마당에 전 차원을 신경 쓰는 건 오지랖 그 자체니까.
다른 세계의 인간이 몬스터로 변해버린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이미 멸망한 세계의 사람들이었고, 굳이 주민성이 개입하지 않아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그저 최선아를 만나면 말년 운이 좋은 셈이며 성아영을 만나면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합리화할 뿐이다.
“데쿠. 3층에 대해서 알지?”
“예.”
지금의 데쿠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었지만, 기억만큼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펫인 샨비 역시 힘을 잃었다.
하지만 순수 피지컬만으로 최선아와 성아영의 합공을 막아낼 수준이다.
둘 다 최후의 50인에 속했을 정도면 최소 SSS급이었으리라.
“3층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저와 같은 최후의 50인 중 누군가가 있을 거라 추정됩니다.”
“또? 개인의 역량은 대체 언제까지 평가하는 거야?”
“3층까지입니다. 4층부터는 튜토리얼 탑 도전자 전원이 함께합니다. 따라서 편한 층은 3층까지가 마지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
난이도는 단체전 쪽이 훨씬 어려운 듯했다.
생각해보니 데쿠는 최선아가 데려온 오크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워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같은 행성 출신이 확실할 텐데도.
“4층이 뭐 하는 곳이길래?”
“4층부턴 협력을 빙자한 개인전이 끝없이 벌어집니다. 가령 몬스터 군단의 공세를 견뎌야 하는 목표가 주어지는데, 전향도 가능하다든지.”
“…….”
“6층도 끔찍했습니다. 왕을 선출하는 층이었죠. 저희 때는 6층에서만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협력.
고작 두 글자임에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무시무시한 단어였다.
조별 과제부터 의리 게임 등의 악명은 주민성도 친구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이번 최후의 3인은 서열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최선아와 성아영의 서열이라면 알 수 없었지만, 1인자의 자리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건물주인 갑과 건물 이용자인 을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3층은 빠르게 정리합시다. 공략은 알아서 잘. 그럼 대기실에서 다시 봅시다.”
“네! 민성 씨도 조심해요!”
성아영은 이미 3층으로 이동한 상황.
혼자이기에 이동 과정도 간단하다.
최선아도 몬스터들과 함께 뒤를 따랐다.
개인의 역량을 체크하는 것임에도 몬스터들은 여전히 함께인 모양이다.
탑을 공략하면서 얻은 노획물로 판정되는 듯했다.
“저희는 출발 안 합니까?”
데쿠의 질문이었다.
“출발해야지.”
“예. 가시죠.”
“그 전에, 잠시 들어가 줘.”
“……예?”
[텐트 447이 수납됩니다.]
[텐트 448이 수납됩니다.]
주민성은 데쿠와 샨비를 그대로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탑의 주민과 동행하는 건 이미 최선아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민성은 노획물을 수납한 상태의 데이터를 얻고 싶었다.
“가 볼까.”
대기실에서 벗어나자 빠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탑 3층에 입장했습니다.]
[3층은 개인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지정된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하십시오.]
2층에서 봤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음.”
“쿠워어.”
상대는 미노타우로스.
오크와 비교하자면 한참 오른 수준의 스펙이다.
“……이게 무슨 튜토리얼이야.”
오크 둘이라면 D급의 능력자도 발악해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부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녀석들은 B급 이상이니까.
초심자를 위해 만들어진 게 튜토리얼이라면, 이 탑은 밸런스 문제로 언제든 폐기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튜토리얼을 강요했다.
“아. 밸런스 맞을지도?”
주민성은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몬스터들이 정상적인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눈앞의 미노타우로스 또한 그렇다.
스피챠 행성의 최후의 50인 중 한 명이다.
“쿠워어!”
후웅.
미노타우로스의 거대한 양손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놀랍게도 튜토리얼 탑에 입장한 이후 받는 첫 선제공격이었다.
“위험할 뻔했네.”
이용료 청구라는 카드는 고려만 했을 뿐.
실행 단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격당했다는 건, 참고할 요소다.
“미노타우로스. 비밀친구 불합격.”
“쿠워?”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다.
데쿠가 제공한 정보를 충분히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4층부턴 협력을 빙자한 개인전이 끝없이 벌어집니다.
협력전이 개인전으로 변모했다는 정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개인전이 됐을 터였다.
“최후의 50인. 그중 반 이상이 트롤링을 했을 거야.”
“쿠, 쿠워?”
“그리고 넌 트롤 중에 한 명이었겠지.”
간단한 논리였다.
행성이 멸망하고 탑에 노예까지 되었으면서 지금처럼 침입자 공격이라는 탑에 의향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아군으로서 등 뒤를 맡길 수 없는 상대라는 뜻이니까.
이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협력전을 개인전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쿵!
어느새 녀석은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다.
애초에 미노타우로스는 B급 능력자는 되어야 싸워봄 직할 몬스터.
절대 주민성의 상대는 아니었다.
“말 잘 듣는 녀석은 고층을 지키는 걸까.”
1층의 몬스터는 부상이 심했다.
2층의 몬스터는 공격을 망설였다.
3층의 몬스터는 공격해왔다.
눈에 보이는 확연한 차이였다.
탑 도전자에게 호의적인 건, 오직 저층의 몬스터뿐이었다.
“선아 씨는 어떻게 클리어했으려나.”
곧이어 3층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구역에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4층 입장 권한을 획득합니다.]
[4층 대기실로 전송됩니다.]
“일찍 왔네?”
이번엔 성아영만이 대기실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선아 씨는?”
“모르지.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어.”
3층의 몬스터는 어떻게 했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성아영 또한 데쿠가 사라진 걸 물어보지 않는다.
주민성과 성아영은 애초부터 그런 관계였다.
개인의 판단만큼은 확실하게 존중하는.
그렇기에 한 가지를 확실히 했다.
“4층부터는 내 위주로 진행할 거야. 협력해.”
“내가 위험한 상황만 아니라면…….”
“아니. 네가 위험해져도 내 위주로 진행한다. 설령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내가 구할 거니까 따라.”
왜인지 성아영은 고개를 돌리곤 답했다.
“그, 그러든가.”
잠시간의 정적.
정적은 뒤이어 나타난 최선아에 의해 깨졌다.
“수고했어요. 선아 씨.”
“흑흑…….”
“음?”
최선아는 오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3층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부링이였던가. 고블린 하나가 사라졌군.’
고블린이 사라졌다는 건, 고블린의 죽음을 의미했다.
주민성과 마찬가지로 3층의 몬스터는 정확히 목숨을 위협하는 선제공격을 해오니까.
“키익…….”
“……엥?”
아니었다.
고블린은 살아 있었다.
녀석은 최선아의 등을 떠밀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저 몸집이 작아 보이지 않던 것이다.
물론 멀쩡히 귀환한 것은 아니다.
절뚝이는 걸 보아 큰 부상을 입었던 모양이다.
“울지 말아요. 선아 씨. 고블린도 살아 돌아왔잖아요. 아직 여섯 층은 더 올라가야 하니 마음 다잡아요.”
“흐끅? 네?”
“……네?”
위로할 내용을 잘못 짚었는지 최선아는 벙 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왜 울어요?”
최선아는 다시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상이 됐다.
“미노타우로스가……. 흑흑……. 절 거절했어요. 내 동료가 되라고 했는데……. 엉엉…….”
“…….”
역시나였다.
최선아는 그저 미노타우로스를 교화하지 못해 슬퍼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대단하기도 하다.
아무런 능력도 쓰지 않고 몬스터를 길들인다는 것 자체가 탈 인간의 사고방식이니까.
‘선호도 그렇지만……, 참 대단한 남매군.’
생각해 보면 최선아가 고블린을 지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끼고 있는 장비만 해도 미노타우로스가 품은 마석 수백 개보다 훨씬 가치 있을 정도이니.
주민성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성아영의 고개를 가볍게 옆으로 꺾어 주곤, 최선아를 독려했다.
텐트를 한 겹 더 뒤집어씌우는 것으로.
“읍읍…….”
“아직 여섯 층은 더 올라가야 합니다. 정신 차려요.”
“뉍…….”
아주 잠깐의 휴식을 거친 주민성 일행은 곧장 4층으로 향했다.
역시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메시지.
[튜토리얼 탑 4층에 입장했습니다.]
[4층은 집단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지정된 몬스터를 상대로 협력하여 승리하십시오.]
개인이 집단으로, 몬스터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협력하여 승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메시지 너머엔 유명한 보스급 몬스터가 일행을 맞이했다.
“키아아아아!”
“……히드라 변종?”
성아영의 말대로 눈앞의 몬스터는 히드라에서 조금 변형된 녀석이었다.
원래라면 9개 있어야 할 머리가 3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히드라면 A급이죠?”
“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희귀종이기도 하죠.”
히드라는 끊임없이 머리를 재생하는 몬스터로 유명했다.
공략법은 머리를 동시에 날려버리는 것.
혹은 발화계 능력자가 잘린 목 단면을 태워 재생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있었다.
게다가 머리 하나만 잘라내선 죽지도 않기에 확실히 협동해서 공략하는 몬스터에 해당한다.
“취잇!”
“키익!”
PTSD라도 온 걸까.
한때 최후의 50인이었던 최선아의 오크와 고블린이 머리를 쥐어싸매기 시작했다.
그사이, 성아영은 어느새 히드라를 향해 뛰어올라 머리 3개 전부를 날려버렸다.
“4층도 쉽네.”
“…….”
뒤이어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협력 미션에 실패하였습니다.]
[튜토리얼 탑 4층에 재입장했습니다.]
[4층은 집단의 역량을 평가합니다.]
[지정된 몬스터를 상대로 협력하여 승리하십시오.]
[몬스터 개체 수가 증가합니다.]
“키아아아아!”
“키아아아아아!”
재입장한 4층에선 머리 셋 달린 히드라 두 마리가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