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3)
(209/250)
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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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탑의 건물주 (3)
2022.06.28.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100%]
청구 확률 100%.
터무니 없는 확률이 떠올랐지만, 오크를 상대로 시도한 이용료 청구가 맞았다.
“이건 대체…….”
“취, 취, 취이! 냅니다! 낸다고요!”
여기서 더 어이가 없는 건, 오크가 필사적으로 이용료 납부를 시도했다는 것.
“아니. 잠깐.”
안타깝게도 납부할 확률이 100%였지 납부받을 확률은 100%가 아니었다.
받는 건 오로지 주민성이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어딜.”
주민성은 그대로 오크를 내동댕이치며 납부용 인벤토리와 오크 거리두기를 실현했다.
“제, 제발! 이용료라면 얼마든 낼 테니!”
“……우리 친구. 오크어 안 쓰니?”
오크는 그제야 필사적으로 콧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 취이! 취이이익!”
“응. 늦음.”
언제나 그렇듯 욕망을 드러낸다는 건, 약점을 내보이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으로 2층의 오크는 철저한 을이 확정됐다.
“이용료가 왜 내고 싶은지,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취익!”
“제대로 말해도 돼.”
오크는 쉴 새 없이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오호.’
그런 모습에 주민성은 작게 감탄했다.
오크가 다른 상대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다른 오크는 아닌 것 같고.’
오크의 시선은 사방으로 향했다.
잠시 주민성을 향하기도 했지만, 스치기만 할 뿐.
바라보는 건 2층 전부.
‘탑 전체를 눈치본다?’
상당히 흥미로운 반응이었다.
2층 공략에 있어 굉장한 단서가 될 가능성이 보일 정도로.
“말.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음?”
오크의 구강 구조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특이한 발음이 튀어나왔다.
왜인지 다른 두 언어가 섞인 듯한 느낌이다.
물론 주민성이 아는 언어 체계는 아니었고 만물 소통에 의존해 얻은 결과라서 확신은 없었지만.
“말해.”
일단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오크가 필사적으로 눈치를 보는 만큼, 주민성도 같이 호응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제 이.름은 데쿠. 스피.챠 행성 출.신입.니다.”
“흐음.”
주민성은 멱살을 풀고 묶여 있는 다른 오크의 포박을 더욱 단단히 했다.
물론 귀는 계속 열려 있다.
“나는 차.원 노예. 스피.챠 행성. 멸망했.습니다.”
“…….”
해석하자면 이러했다.
오크의 이름은 데쿠.
출신은 스피챠라는 행성.
행성이 멸망해 차원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이용.료를 내면, 이 차.원에 귀속.될 수 있습.니다.”
“…….”
이용료 청구엔 차원에 귀속될 수 있는 숨은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데쿠의 확신에 찬 눈빛은 그러했다.
“차원 노.예 끔찍.합니다. 벗어나.고 싶습니다.”
노예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는 간단했다.
완벽한 을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데쿠는 자의로 이 탑에 머무는 게 아니었다.
물론 한쪽의 주장이었기에 신빙성은 다소 부족했지만.
“흠…….”
데쿠는 간절한 눈빛으로 주민성을 바라봤다.
오크에게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약자의 눈빛이었다.
진짜 오크는 죽음 앞에서라도 초연하게, 그리고 용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몬스터였다.
적어도 눈앞의 오크가 가짜 오크라는 건 사실이리라.
“오케이. 합격.”
주민성은 데쿠의 이용료 납부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리스크를 동반한 행동이었지만, 직접 겪음으로 나중의 변수에 대응할 수도 있었기에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허락을 받은 데쿠는 그대로 납부용 인벤토리로 달렸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을 물어뜯어 상처를 낸 뒤 납부용 인벤토리에 처박았다.
‘이용료는 피인가.’
이것으로 데쿠는 건물 이용자가 됐다.
정확히는 튜토리얼 탑의 공식적인 첫 이용자에 해당한다.
“이제 그 차원 노예인가 뭔가에선 벗어난 건가?”
“아……. 아…….”
겉으론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전부 끝마친 상태였다.
이번 이용료 청구는 튜토리얼 탑의 몬스터가 이용료 청구에 일으키는 반응을 보기 위한 테스트이기도 했다.
콰득.
기괴한 파찰음과 함께 데쿠의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로 차원 노예를 인계받았습니다.]
[노예 배치 권한이 부여됩니다.]
[귀속된 노예를 지정된 건물에 배치합니다.]
[노예는 건물주의 승인 없이 탈출 불가능합니다.]
데쿠의 말은 사실이었다.
앞서 말한 차원 노예라는 신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
메시지 너머의 데쿠는 인간의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아니, 인간이 맞을 터였다.
생각해 보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다른 차원 출신 인간이라면 확실히 존재하니까.
적어도 상대가 인간이라면 건물주 측에서도 이용자를 위해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도리였다.
“너무 감사할 것 없어. 건물 이용. 24시간 지속이거든.”
“24시간……. 그렇다는 건…….”
“응. 24시간이 지나면 넌 다시 이전의 차원 노예 신분으로 돌아가겠지.”
“아아……. 아아아! 안 됩니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순간 반드시 죽게 됩니다!”
“오호.”
염려했던 대로 튜토리얼 탑의 몬스터는, 아니 차원 노예는 튜토리얼 탑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탑의 뜻에 반하면 죽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것으로 갑과 을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좀 많이 도와줘야겠는데.”
“뭐든 말씀하십시오!”
“일단 궁금증부터. 이 탑. 최상층까지 오르면 새로운 능력 생기는 건 맞아?”
“아아. 그거라면 맞습니다. 제가 있던 행성에서도 튜토리얼 탑은 있었으니까요.”
“……그래?”
데쿠는 튜토리얼 탑에 제법 아는 게 많은 모양이다.
“좋아. 구해 준 보람이 있었군.”
“예! 어떤 것부터 말하면 되겠습니까?”
“아아. 지금은 아니야.”
“예?”
탑에 오른 건 주민성 혼자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는 것보단, 대기실에서 팀원과 정보를 공유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주민성은 데쿠가 아닌, 포박되어있는 오크를 가리켰다.
“저 오크도 너와 같은 인간인가?”
“아아. 샨비는 제 펫입니다. 마찬가지로 차원 노예가 되었지만요.”
“……펫?”
샨비라 불린 오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콧김을 뿜고 있었다.
“취익!”
“펫이라.”
주민성이 아는 펫이라면 콩이 같은 전투가 가능한 애완 몬스터가 범주에 해당했다.
이는 생각보다 유의미한 정보였다.
단순히 노예였을 뿐인 데쿠와 달리 실질적인 전투력을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또한, 탑 등반에 있어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제압했다는 실적도 생긴다.
사기적인 능력을 얻을 확률이 커진다는 뜻이었다.
“오케이. 샨비 합격.”
“예?”
“샨비까지 노예 탈출 해보자고.”
“저, 정말이십니까?”
“이용료만 낼 수 있다면.”
데쿠는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낼 수 있습니다! 샨비는 똑똑한 친구니까요!”
“좋군.”
주민성은 그대로 샨비에게 다가가 앞선 이용료 청구 과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데쿠의 말처럼 샨비는 자력으로 이용료를 납부하는 데 성공했다.
“…….”
조력자가 늘어 기뻐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대신 경악하는 것에 그쳤다.
물론 메시지가 떠서 그렇기도 했다.
2층의 몬스터 전부를 포섭했으니까.
[해당 구역에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3층 입장 권한을 획득합니다.]
[3층 대기실로 전송됩니다.]
주민성과 데쿠, 그리고 샨비가 3층 대기실로 전송됐다.
이를 맞이한 건 귀가 찢어질 듯한 고성이었다.
최선아와 성아영의 첫 합주이기도 했다.
“꺄아아악!”
“으아! 저거 뭐야!”
저 둘이 이렇게까지 놀란 결정적인 이유는 샨비에게 있었다.
펫이라기엔 터무니없이 살벌한 외견과 덩치 때문이었다.
“……펫이라며.”
“페, 펫 맞습니다……. 충직하고 똘똘한…….”
“후우.”
샨비가 과묵하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저 덩치라면 가볍게 소리만 질러도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정말 큰 위안거리였다.
“민성 씨! 저게 다 뭐예요?”
겨우 정신을 차린 최선아가 물어왔다.
“저도 묻고 싶은데요…….”
대기실엔 새로운 식구가 늘어나 있었다.
최선아가 고블린에 이어 오크까지 포섭에 성공해버린 덕분이었다.
“아아. 이 아이는 에취고요. 저기 더 큰 아이가 망취에요. 귀엽죠?”
“이름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아아. 아닙니다.”
그제야 성아영과 최선아의 시야에 데쿠가 들어왔다.
“어? 사람?”
“뭐야. 꼬리 붙은 거야? 죽여?”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감의 샨비와 투명인간에 가까운 존재감을 자랑하는 데쿠.
나름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적어도 에취와 망취라는 간질거리는 조합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최선아와 동행한 몬스터들 역시 멸망한 차원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아냐. 괜찮아. 걱정할 필요…….”
순간, 성아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있어.”
쉬익!
“으악!”
성아영의 잭나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놀랍게도 데쿠를 노린 공격이었다.
“봤지? 2층 수준이 아니잖아.”
“맙소사…….”
공격은 절대 느리지 않았다.
주민성도 위협적으로 느낄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다.
심지어 이 잭나이프는 자유자재로 길이와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물급 무기였다.
쉬쉭! 쉭!
“이 여자 뭡니까! 갑자기 절 공격하고 있습니다! 멈춰주십시오!”
“뭐라는 거야! 대체!”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에 데쿠와 대화 가능한 사람은 주민성이 유일했다.
그런 탓에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민성 씨! 제가 구해 줄게요!”
최선아까지 공격에 합류한 것이다.
그녀의 장비 또한 서울 지역을 정복하며 준 유물급으로 업그레이드된 데다, 수많은 실전을 거쳐 어마어마한 숙련도가 쌓인 상태였다.
과거의 F급 가속 능력자였던 시절의 모습은 이젠 없다.
“도, 도와주세요!”
데쿠를 구원한 건 주민성이 아니었다.
쿵!
샨비였다.
그저 몸뚱이를 들이밀어 성아영과 최선아의 합공을 막아낸 것이다.
“이, 이게 막힌다고?”
“말도 안 돼!”
그제야 상황을 수습할 틈이 생겼다.
주민성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쇄도해 성아영과 최선아를 동시에 묶었다.
“이런 헛다리 짚기도 참 오랜만이네요.”
“큭! 무슨 힘이!”
속도라면 모를까, 힘이라면 주민성이 확실한 우위였다.
“진정합시다.”
둘을 묶은 건 세 겹으로 중첩시킨 텐트.
자연스레 건물 부가효과가 정서적 안정감을 선사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 둘이 2층 오크의 정체였어요.”
“……으에?”
“아니, 몬스터는 둘째치고 인간이 오크였다고?”
주민성은 2층에서 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하며 둘을 납득시켰다.
그런 탓에 최선아는 크게 충격받은 모양이다.
“마, 망취가……. 에취가……. 나도 듬직한 오크가 가지고 싶었는데…….”
숨겨왔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는 걸 보니 충격을 덜 받은 모양이다.
“저 고블린도 멸망한 차원의 주민이겠죠.”
“키, 키익!”
그제야 고블린의 눈빛에 희망이 깃들었다.
주민성이 하는 말들은 전부 번역되는 덕분이었다.
만물 소통은 대놓고 쓸 만하진 않고, 은근히 쓸 만한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이제 데쿠의 설명을 듣겠습니다. 내용은 제가 전달해드릴 테니 정숙해서 잘 들으세요.”
“넵!”
“흥.”
모두의 시선이 데쿠를 향했다.
“으음……. 일단은 튜토리얼 탑이 생긴 시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얼마든지.”
“우선, 제가 살던 스피챠 행성은 전쟁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습니다. 자원이 상당히 부족했거든요. 다행히 제 조국은 몇 안 되는 풍족한 자원을 가진 나라였지만요.”
확실히 데쿠에게선 확연한 부티가 느껴졌다.
애초에 샨비같은 거대 펫에 들어가는 식비만 달에 수천만 원쯤은 가뿐해 보일 정도였으니 부자는 확실하다고 봐야했다.
“아마도 81차 세계대전 당시였을 겁니다. 몬스터가 침공해오며 대격변이 일어난 것은.”
“……대격변?”
“예. 저희는 그 사건을 대격변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아. 계속해.”
명칭은 다르겠지만, 만물 소통은 대격변을 고스란히 번역했다.
그렇다는 건, 스피챠 행성이 지구와 비슷한 역사를 미리 겪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격변 이후론 전쟁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몬스터가 동원되고, 고위 능력자들이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데쿠. 너는 명성을 날리던 쪽인가?”
“하하. 당연한 말씀을. 이래 뵈도 저는 튜토리얼 탑 최상층 등반에 성공한 최후의 50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잠깐.”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특히, 튜토리얼 탑에 등반한 최후의 50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최후라는 건, 마지막을 뜻하는 게 맞지?”
“그렇습니다. 고작 50명의 등반자로는 혼돈의 존재를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행성은 멸망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