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게이트 (5)
(205/250)
카오스 게이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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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게이트 (5)
2022.06.24.
“맙소사.”
이현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나빠져 있었다.
이곳의 몬스터를 상대로 도망조차 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주민성은 그대로 허공에 건물 잔해를 떨궜다.
쿵!
몬스터의 이목을 끄는 것과 동시에, 발판삼아 점프하기 위함이었다.
효과는 상당했다.
한창 다투던 몬스터들이 전부 주민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
묘기에 가까운 공중제비에 환상적인 착지까지 마치고 나서 한 소리였다.
분위기는 확실하게 넘어왔다.
“크큭! 나의 승리다!”
최고 수혜자는 이현을 쥐고 있는 존재.
몬스터라 하기엔 인간과 악마가 섞여 있는 외견이다.
괴인에 가깝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당장 근처에만 해도 이현을 쥐기만 해도 갈기갈기 찢을 것 같은 괴물들이 득실거렸으니.
“이제 정리하지. 저 인간부터 내려놔.”
“크크크!”
털썩!
주민성은 힘없이 팽개쳐진 이현을 텐트로 빠르게 포장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않는 상태였기에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텐트 614가 수납됩니다.]
협회장의 제압과 이현의 구출이라는 가장 큰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 해결 역시 무난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상점! 크흐흐! 상점이다!”
당장 눈앞의 상점바라기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준다면 상황은 파국으로 흐른다.
아주 명백한 결과였다.
따라서 지금 사태엔 상대도 만족할 수 있는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 상점. 줘야지.”
주민성은 상점 대상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대감에 벅찬 표정이 부담스럽다.
“이름은?”
“……진명을 요구하는가?”
“딱히 상관없긴 한데.”
평범하게 대답했지만, 반응은 달랐다.
하나같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한 것이다.
“크큭! 상관 없다라! 크하하하하!”
“새로운 게이트 주인은 농담도 심하구만!”
“크카카칵!”
진명이라는 게 이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명이 필요없는 건 사실이었다.
알게되면 소소한 이득이야 있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좋은 분위기로 주변을 물리는 쪽이 훨씬 좋은 결과였다.
“정 그러면 내가 알아서 짓는다?”
“어어?”
“대충 이상한 놈으로 하지.”
“내가 이상하다고?”
“아차.”
만물 소통 작용은 참 신기했다.
상대에게 없는 개념의 단어라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점은 모르지만 이상한 놈이라는 단어는 이해되는 기상천외한 결과도 볼 수 있었다.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있던 이면지 한 장을 꺼내 대충 끄적였다.
-참 잘했어요상.
-이름: 이상한 놈.
-다음 이상한 놈은 이현을 무사히 구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함.
상장이 완성됐다.
한글로 썼기에 누군가 알아볼 걱정은 없다.
“……종이?”
“아아. 이건 상장이라고 하는 물건이다.”
대충 설명을 마친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를 꺼냈다.
이쯤 되면 또트라고 비난을 받아도 무방한 상황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사랑받는 치트키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건 텐트.”
“……상점이 아닌데?”
“어허. 기다려 봐. 준비는 해야지.”
주민성은 그대로 텐트에 상장을 붙였다.
우스꽝스러움 그 자체.
비뚤어진 상장이 붙어있는 허름한 텐트가 완성되었다.
“들어가.”
“저 안에 상점이 있나?”
“가보면 알아.”
괴인이 텐트 안에 입장함과 동시에 주민성은 능력을 되뇌었다.
‘이용료 청구.’
대상은 명확하다.
반드시 통할 수밖에 없다.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이용료는 63만 원입니다.]
꾸준한 건물주 등급 상승 결과 텐트 이용료는 어느새 63만 원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눈앞의 괴인이 이용료를 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이 방법은 통하지 않는 건가.’
굳이 이용료 청구까지 사용한 건, 주민성에게 카오스 게이트에 몰려든 존재들을 제압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물론 어떤 능력이든 적중만 시키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오겠지만, 이곳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주민성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장 눈으로 따라가는 것조차도 벅차다.
“이용료?”
괴인이 되물었다.
메시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
주민성은 대답을 멈췄다.
녀석의 반응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정말……. 이용료 내도 돼?”
“……어?”
“무려 하루 동안 카오스 게이트를 이용해도 된다고?”
“……어어?”
보통 동의 없는 이용료 청구를 당하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엉뚱한 반응이 나와 버려 당황한 쪽은 주민성이었다.
“카오스 게이트를 하루씩이나?”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심지어 주변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상점……. 대단해…….”
괴인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징그럽게 생긴 가죽이었다.
“무조건 내지! 제발 더 이용할 수 있게 해줘!”
“…….”
꺼낸 것은 녀석들이 사용하는 화폐인 모양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지금 받는 이용료는 텐트에 대한 이용료였을 뿐.
카오스 게이트 이용료가 아니었다.
“콜.”
“만세!”
드러낸 욕망은 공략하기 딱 좋은 약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건물주 능력은 상대의 그런 부분을 공략하는 데 매우 특화되어 있었고.
“자. 여기 이용료.”
이용료 수납을 마치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로 혼돈의 존재를 세입자로 받았습니다.]
[이용료 조정 권한이 해금됩니다.]
[건물 이용료를 강제적으로 변경합니다.]
“……!”
그저 이용료를 받았음에도 최초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용자가 범상치 않아 생긴 결과였다.
‘대체 어떤 종자들이길래 최초 메시지까지…….’
어찌 되었든 좋은 결과였다.
덕분에 이용료를 멋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까지 추가됐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겨우 이런 능력인가 싶을 수도 있다.
가격 인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심지어 협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엔 주민성의 부모님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대박…….”
“이, 이것이 상점…….”
하지만 건물주 능력자에겐 다르게 해석된다.
이 능력은 터무니없이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이용료 조정 능력은 특수한 건물에 사용할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특히, 이용료를 소모하는 건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론 태양의 순례지와 카오스 게이트가 해당한다.
“힘이……. 힘이 솟는다!”
그런 와중에 혼돈의 존재로 명명된 괴인은 끝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반응은 절로 주변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상점이 가지고 싶어…….”
“나도…….”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새로운 영업 건이 생겨난 덕분이다.
“상점이 갖고 싶니?”
“그래!”
“제발!”
혼돈의 존재는 포섭할 여지가 있었다.
다소 걱정이 되지만, 최소한 악마까진 아니었기에 타협할 수 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혼돈의 존재가 상점에 온갖 환상을 가진 덕분에 이용할 가치는 충분하다.
“상점은 아직 남아 있다.”
“오오오!”
혼돈의 위령제 2막.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혼돈의 존재가 가진 트롤링 성향은 분명 먹힐 여지가 있다.
주민성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위령제에 대한 언급.
“혼돈의 위령제에 대해서 알고 있지?”
“당연하지! 우린 그것 때문에 모였으니까!”
여기서 약간의 변수가 있다.
혼돈의 존재와 혼돈의 위령제는 관련성이 존재한다.
이를 어떻게 깨부술지가 관건이다.
“1막은 이미 끝났어. 너희는 뭘 할 거지?”
주민성은 지난 사실 한 가지를 공개했다.
이제 반응에 따라 계획을 차차 수정해나가면 된다.
“응? 1막이 끝났다고?”
“말도 안 돼! 그 녀석들은 우리만이 이해해줄 수 있다!”
“…….”
주민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고대의 영혼과 혼돈의 존재는 상생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괜히 이들을 나무라며 적대 스탠스를 취할 이유는 없었다.
“아냐. 내가 전부 이해했어. 다들 만족하더라.”
“……정말?”
“그럼.”
물론 거짓이 섞이긴 했지만.
고대의 영혼을 하나도 남김없이 태양의 순례지로 귀양 보냈다고 말해서 얻을 건 하나도 없었다.
“2막에 대해서 설명해 줘. 그래야 나도 상점을 어떻게 분배할지 정할 수 있으니까.”
혼돈의 존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중 혀가 유독 길쭉한 괴인이 나섰다.
“내가 알려주지! 2막은 징벌제! 원혼의 사연을 듣고 차원 경매에 대한 권리를 정당화하는 절차다!”
“……아. 그래?”
생각보다 혼돈의 위령제는 복잡한 내막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영혼이 쏟아지던 1막 역시 모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행될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치사한 자식! 그걸 먼저 말하다니!”
“뭐 어때? 1막도 끝냈다잖아! 심지어 영혼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이 정도면 완벽한 조치 아닌가?”
“쳇.”
심지어 주민성을 높이 평가하기까지 한다.
그저 귀양 보냈을 뿐인데.
“징벌제라.”
정보가 취합되니 혼돈의 위령제의 진실에도 확실히 가까워졌다.
협회장이 노렸던 차원 판매라는 목적과도 일치한다.
“부족해.”
“……뭐?”
차원의 위령제가 언제까지고 영혼만 튀어나오는 사건이라면 혼돈의 존재는 아예 필요가 없었다.
그냥 싸그리 태양의 순례지로 귀양 보내면 그만이니까.
“2막의 정보론 부족하다고. 그 정도론 상점을 줄 수 없어.”
주민성의 표정엔 당당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혼돈의 존재들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에겐 상점을 줘도 되잖아! 2막에 대해서 알려줬다고!”
“아아. 그랬지. 너는 0.5점 줄게.”
“오오! 0.5점! 이건 무슨 혜택이 있는 거지?”
“0.5점을 두 개 모으면 1점이 된다. 저 녀석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거지.”
이미 상점을 받은 혼돈의 존재는 취한 표정으로 건물 부가효과를 만끽하고 있었다.
가진 힘이 워낙 막대해서일까.
생각보다 훨씬 큰 반응이었다.
“0.5점이 둘이면 1점…….”
혀가 긴 괴인이 자신이 받은 상점을 계속해서 되뇐다.
그 틈을 놓칠 주민성이 아니었다.
“3막. 그리고 3막 이후의 정보들까지 공개한다면 나머지 0.5점도 너에게 줄 의향이 있다.”
“그러면 타산이 맞지 않을 텐데?”
“아니? 네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애들한테 0.5점을 부여하면 그만이야.”
욕망이라는 약점을 보일 때부터 혼돈의 존재들에게 기회는 없었다.
녀석들이 자랑하는 무력은 통하지도 않는 데다, 1막을 주민성 혼자 처리해냈다는 게 크게 작용한 상태였다.
“3막은 내가 알려주마!”
“아니! 내가 알려준다!”
“전부 닥쳐! 0.5점은 나에게 있다!”
결국, 혼돈의 존재들 간 분열이 일어났다.
말릴 이유는 없었다.
여태 모은 정보들을 볼 때 혼돈의 존재들은 결국 인류와 대립하는 입장이었으니까.
“0점짜리들은 닥치고 있으라고!”
“혓바닥 가벼운 놈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아아. 그 역겨운 혓바닥을 뽑으면 입장이 바뀌겠지?”
콰직!
분위기가 과열되자 0.5점을 차지한 혼돈의 존재가 먼저 손을 움직였다.
확실히 눈치며 행동이며 전부 빠른 타입다웠다.
“크어어어!”
“네놈이 기어코!”
“안 그래도 네놈들의 목소리가 계속 거슬리던 참이었다!”
주민성은 그런 녀석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흐어어어……. 좋다……. 온몸에 힘이 차오른다…….”
그리고 넌지시 말했다.
“혼돈의 위령제 3막부터 알려주면 추가 상점 0.5점.”
“으어……? 0.5저엄?”
“그래.”
정보라면 내부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반쯤 포섭된 괴인이 있었으니까.
다시 보니 물소같이 생겼다.
“3막이라……. 3막부터는 우리를 위한 축제다.”
“축제?”
“그래. 그때면 영혼들이 가진 원한을 우리가 대신 풀어줄 권리가 생기거든.”
“무슨 원한? 더 자세히 말해 봐.”
“흐으……. 정확히는 차원을 상대로 한 원한이지. 있던 차원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했으니 자길 죽인 녀석들도 똑같이 죽여달라고 우리를 부르는 거다. 우리는 그에 응해 원한을 풀어주고, 자유를 누리지. 서로에게 좋은 그런 축제다.”
“……4막은 없어?”
“위령제는 3막까지다. 그 이후엔 우리들의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고.”
정보가 정리됐다.
혼돈의 위령제는 혼돈의 존재들이 인류를 공격할 명분을 얻는 절차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다.
축제를 장례식장으로 만들어주자는 목표가.
“오케이. 상점 0.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