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카오스 게이트 (4) (204/250)


카오스 게이트 (4)
2022.06.23.


“……되겠지?”

주민성은 모처럼 조마조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인벤토리 내부의 시간이 멈춰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인벤토리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의아한 점도 있었다.

바깥과 인벤토리 내부의 시간이 1대1로 흐를 당시에도 장 박사는 소멸하지 않고 멀쩡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반응이 오겠지.”

상점 해제까지 남은 시간은 3분.

무려 1분 넘게 기다렸기 때문에 장 박사가 호응할 시간은 충분히 확보했다.

이젠 결과만이 남은 상황.

주민성은 천천히 인벤토리를 꺼내며 말했다.

“밀가루 반죽.”

쿵!

결과는 성공이었다.

거대한 밀가루 반죽이 주민성의 코앞에 떨어졌다.

지름만 무려 5미터 이상.

심지어 뭉쳐있는 반죽이었기에 눌러서 펴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었다.

“나이스.”

무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의 근력은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빌딩도 뽑아버릴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흐읍.”

주민성은 그대로 밀가루 반죽을 들고 점프했다.

그리곤 덩크 하듯 포장마차에 반죽을 찍었다.

촤아아악!

반죽은 어마어마한 탄력을 자랑하며 넓게 펼쳐졌다.

포장마차는 말 그대로 반죽 범벅 상태.

지상에 착지한 주민성은 몇 차례의 반죽 보강 작업을 마치고 빠르게 능력을 사용했다.

“가즈앗!”

[1분 뒤 카오스 게이트 상점이 해제됩니다.]

[초대형 밀가루 반죽이 수납됩니다.]

다행히 반죽과 포장마차는 동시에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1분간의 기다림뿐이다.

“3, 2, 1.”

1분이 흘러도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성공이었다.

이것으로 카오스 게이트 상점은 인벤토리 속에서 영구히 보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비는 넘겼네.”

이제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이현을 찾으러 떠난 몬스터들은 알아서 성과를 챙겨올 터였고, 주민성은 협회장이 설치해 둔 마지막 함정들만 파훼하면 될 일이었다.

“혼돈의 위령제라고 했었지.”

위령제는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는 의식이나 제사를 의미했다.

협회장이 죽으면서 생겨난 메시지였기에 위로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아주 명백하다.

반대로 주민성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매우 컸고.

“일단 주변 파악부터 해 볼까.”

굳이 고지대로 올라갈 이유는 없었다.

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역은 건물로 판정이 되어 있었으니까.

“건물 관조. 카오스 게이트.”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이 능력이라면 끝도 보이지 않는 카오스 게이트를 원하는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와.”

관조를 위한 격리 공간으로 이동한 주민성은 그제야 카오스 게이트 전부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감상은 간단했다.

지옥이 현실화되었다.

이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음?”

주변을 둘러보던 도중,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 눈에 띄었다.

멀지 않은 용암 너머에 기묘한 제단이 있었다.

태양의 순례지와 비슷한 질감으로 이뤄진 제단이었다.

“…….”

제단 주변엔 기묘한 연기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심지어 연기는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면서 생겨나는 형태였다.

“대놓고 수상하잖아.”

주민성은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이 제단에 개입하자고.

“인벤토리.”

쿵!

처음은 가장 만만한 건물 잔해였다.

이것만으로 제단을 파손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역시 잔해론 안되나.”

결과는 실패.

제단은 건물 잔해론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주민성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포스트잇?”

건물 잔해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걸 붙일 사람은 장 박사뿐.

무언가 전할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성은 눈을 감고 시점을 확대해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이번 지원은 아주 만족스럽군. 원하는 게 있다면 하나쯤은 응해주지.

포스트잇엔 간단한 감사의 말이 적혀 있었다.

장 박사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뭐야. 어울리지 않게.”

지원한거라곤 전혀 없었다.

그저 포장마차 하나가 추가로 수납되었을 뿐.

“무슨 의도지.”

생각해보니 장 박사는 인벤토리에 있는 각종 재료들을 활용해 조리 시설이나 온갖 설비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냈었다.

포장마차도 마찬가지.

원한다면 만들 수 있었다.

주민성은 그 점에 주목했다.

“설마.”

장 박사는 연구자였다.

새로 수납되는 물건이라면 간단하게라도 확인 정도는 했을 터.

그런 장 박사에게 밀가루 반죽에 파묻힌 포장마차는 흥미를 자극하기 너무나도 좋은 소재였다.

“쩝.”

포장마차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격리 공간.

그리고 감금되어 있는 과거의 사람들까지 전부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주민성은 포스트잇을 새로 작성해 장 박사에게 물었다.

-포장마차. 어디까지 조사했지?

단순히 라면을 만들만한 운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만족했는지, 아니면 포장마차 내부의 격리 공간 너머를 확인하고 만족한 것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만약 장 박사가 만족하는 요소가 후자에 존재한다면, 주민성 역시 그런 장 박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계획이었다.

“3. 2. 1.”

주민성은 딱 3초만 기다린 뒤, 목도 축일 겸 보온병을 꺼냈다.

예상대로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1%. 간 볼 필요 없다. 이 포장마차는 처음 보는 게 아니니까. 진짜로 협회장을 상대로 승리한 건 예상 밖이군. 아주 오래전부터 너무나도 연구하고 싶었던 포장마차였지.

다행히 바라던 대답이었다.

둘은 포장마차에서 대면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성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협회장이 패배했기에 포장마차가 드러났다는 사실도 몰랐을 테니까.

“그런데도 1퍼센트라.”

협회장의 포장마차엔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많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주민성은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최소한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해낼 방법을 연구해줄 사람이 생겼으니까.

“라면 재료만큼은 제대로 지원해 줘야겠군.”

어떻게든 사람들을 구해내기만 한다면, 뜨끈한 라면쯤은 얼마든지 대접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장 박사에게 감사할 일이 생길 줄이야.”

주민성은 포장마차 조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수납하고 다시 제단의 변화에 주목했다.

제단 주변을 떠도는 연기가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몬스터라고.

츠츠츳.

다리 4개가 형성되고, 길쭉한 목이 튀어나왔다.

거북이같은 형상이 되었다가도 개처럼 바뀌기도 했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혼돈의 위령제 1막이 시작됩니다.]

[고대 차원과 연동됩니다.]

[고대의 영혼이 입장 권한을 획득합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였지만, 낯익은 키워드가 눈에 띈다.

고대라는 단어는 주민성에게 상당히 친근했다.

“어?”

곧이어 또 다른 차원문이 열리고, 고대의 영혼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쏟아져나왔다.

“드디어 해방이다아아!”

“복수! 복수! 복수!”

“…….”

주민성은 말없이 전부 지켜볼 뿐이었다.

시점도 전환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건물 관조가 종료될 때까지.

“제물이다!”

“제물! 제물!”

주민성이 고대의 영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진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당연히 피해는 없다.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서만큼은 신이나 다름없는 상태니까.

어느새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이런 거였어?”

고대의 영혼은 허무하리만큼 쉬운 상대였다.

전부 태양의 순례지로 재배치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허탈한 생각도 들었다.

“그 인간은 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네.”

과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능력을 각성한 이후의 주민성은 이전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얻은 능력도 마찬가지.

정석적인 건물주 능력이면 모를까, 여태껏 성장시켜온 건물주 능력 역시 정상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영혼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심지어 유배까지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케이. 위령제 땡큐.”

주민성은 제단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정혁수 씨. 보고 계십니까? 만약 보고 계시다면 저세상에서 부디 이불이라도 실컷 걷어 차 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협회장의 의도가 대충은 짐작이 갔다.

혼돈의 위령제는 다른 차원의 각종 영혼을 카오스 게이트로 불러들여 난장판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1막에 불과했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눈앞의 벌어진 1막은 숨 쉬는 것보다 쉽게 종결시킬 수 있었다.

먼저 맞은 이상 선처해 줄 필요도 없었고.

“영혼 재배치. 태양의 순례지.”

주민성은 대화가 통할 것 같은 고대의 영혼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태양의 순례지로 유배 보냈다.

“히, 히이이!”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약해 보이는 외견과는 다르게 반격 하나는 어마어마하게 매서운 영혼이었다.

심지어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한 번 더 반격하면 소멸시킨다.”

정확히는 유배였지만, 이 사실은 오로지 주민성만이 알고 있다.

상대 입장에선 보이는 것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 안 돼! 소멸되고 싶지 않아!”

이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영혼은 소멸을 가장 두려워한다.

덕분에 대화는 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말해. 여기 온 목적이 뭔지.”

영혼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당연히 새로운 몸을 얻기 위해서지! 기왕 온 김에 신선한 피 맛까지 보면 더 좋고!”

“아하.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서만?”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해서일까.

영혼의 표정엔 한결 여유가 깃들었다.

“이곳에 묶여 있는 녀석들에겐 볼일 없어! 마주치기도 싫고!”

“그래?”

카오스 게이트 내부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고대의 영혼들에게 기피받는 존재인 모양이다.

이로써 대충 어느 쪽이 강한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여기 있는 녀석들이랑 싸우면 지는구나?”

“크, 크윽?”

심지어 자존심도 내세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새로운 몸은 누구한테서 얻으려고?”

“당연히 경매로 등록된 차원의 생명체다!”

“아하. 혹시 위령제 2막엔 어떤 녀석들이 오는 지 알아?”

“몰라! 보나마나 위험한 놈들 투성이겠지! 관심 없어!”

“그렇군.”

이것으로 위령제 2막은 더욱 위험하다는 게 기정사실화됐다.

“자! 전부 대답했어! 이제 가도 돼?”

“음.”

잠시 고민하던 주민성은 흔쾌히 인사를 건넸다.

“응. 잘 가.”

“고, 고마워! 만나서 반가웠고 다신 마주치지 말자!”

“내가 할 말을. 영혼 재배치.”

“응?”

“태양의 순례지.”

정확히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혼돈의 위령제 1막이 실패합니다.]

[고대 차원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혼돈의 위령제 2막이 지연됩니다.]

이번 메시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영혼 재배치 능력이 없었다면, 고대의 영혼들이 현실에 개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빙의의 무서움 또한 이현과 명일학의 사례로도 충분히 깨달았기에 주민성은 크게 안도했다.

“될 수 있으면 위령제 자체가 취소되면 좋겠는데.”

분명 위령제 2막은 1막보다 까다로울 게 분명했다.

또한, 위령제의 모든 막이 종료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도 의아한 부분이다.

협회장은 차원을 팔아먹으려 했고, 죽어서는 차원이 지배당하길 원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어쨌든, 이 위령제가 협회장의 영혼을 기리는 행사는 아니었어.”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면식 없는 몬스터의 영혼이라면 조금은 위로해 줄 의향도 있었으니까.

“음?”

안도하던 순간, 저 멀리서 수많은 기운이 감지됐다.

제단 위로 점프한 주민성은 그대로 안력을 강화해 상황을 파악했다.

“음?”

이곳으로 몰려드는 녀석들은 카오스 게이트의 몬스터가 맞았다.

뭔가 자기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달려오는 모습이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주민성은 텐트 두겹을 추가해 청력도 강화했다.

그제서야 몬스터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점은 내 차지야!”

“아니! 내 거야!”

두 귀를 의심했다.

흡사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의 소유권을 가지고 다투는 것 같은 대화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민성은 공격당하는 몬스터를 자세히 살폈다.

“이런.”

몬스터의 손아귀엔 기절한 상태의 이현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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