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게이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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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게이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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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게이트 (3)
2022.06.22.
“……상점?”
“그래. 상점.”
상점과 벌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려던 순간, 뜬금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상인의 영혼이 임시 귀속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카오스 게이트 임시 상점이 개방됩니다.]
“…….”
“…….”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지금도 주민성이 내세운 상점과 벌점 시스템에 큰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상점 개방 메시지가 겹쳐 있다.
‘아오. 뭐야 이건 또. 정신 나갈 것 같네.’
대상인의 영혼.
아마도 협회장의 것으로 추정된다.
카오스 게이트에 임시 귀속된 영혼이라면 한 개뿐이니까.
‘SSS급 대상인이라도 된다는 건가.’
협회장이 어떤 능력을 각성했었는지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개념을 초월해 능력을 사고팔며 수많은 이득을 봐 왔을 터였다.
판매 대상은 아마도 실험체.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몬스터가 능력을 사용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점은 1점이다.”
카오스 게이트 상점에 대해선 일단 함구하기로 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전에 방지하자는 게 나았으니까.
당장은 주민성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점과 벌점 제도만을 유지하는 쪽이 옳다.
“상점 1점은 이현을 찾아오는 괴물에게만 선사하지. 나머지는 전부 0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뭔지는 알아서들 해석하고.”
1점도 쓰기 나름이었다.
100명 중에 한명만 1점이고 나머지 99명이 0점이라면 1번은 확실한 1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는 자존심 강한 상대에겐 더더욱 잘 먹혀들었다.
“카오스 게이트의 특권인가.”
한 괴물의 평가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곳에 모인 괴물들 전부 차원을 주름잡는 권력자에 해당했다.
힘을 가지고도 특권이라는 단어가 가진 매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곳에 모일 자격조차 충족시키지 못했으리라.
파바밧!
이것으로 끝이었다.
다른 차원들의 괴물들은 전부 이현을 찾기 위해 주민성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후. 진짜 가지가지 하는군.”
이젠 카오스 게이트 상점이 뭐 하는 능력인지 알아볼 차례였다.
임시로 표기되었던 만큼, 협회장이 사용했던 능력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카오스 게이트 상점.”
[카오스 게이트 상점이 생성됩니다.]
[카오스 게이트 상점은 1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잠시 후, 주황색 천막이 둘러진 작은 포장마차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게 협회장 취향인가?”
생각보다 많이 소박해 보이는 포장마차였다.
주민성은 천막을 젖혀 내부를 살폈다.
“주인은 없군.”
테이블은 오직 한 개뿐이었다.
그곳엔 누군가 혼자 소주를 기울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닭똥집에 소주라. 아저씨들이랑 자주 먹었었는데.”
고된 작업이 있던 날엔 이만한 안주가 없었다.
여기에 푸짐한 오뎅탕 하나 정도 추가되면 금상첨화.
주민성은 포장마차 내부를 기웃거리며 뭔가 새로운 메시지가 뜨길 기다렸다.
“일단은 이것도 상점일 텐데 말이지.”
그럼에도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 기다림이 조건은 아닌 모양이다.
“…….”
협회장이 앉아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가 눈에 띈다.
고급 의자도 아니었다.
흔하디흔한 플라스틱 의자다.
“……앉아볼까.”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큰 결심이 필요했다.
단순히 협회장과 같은 눈높이가 되는 것조차도 주민성에겐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정혁수라는 괴물은 어떤 생각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였을지, 어떤 생각으로 안주를 집어 먹었을지.
상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견뎠다.
그리고 앉았다.
“……!”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포장마차 내부와 격리 공간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다 뭐야.”
격리 공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 관조와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두 격리 공간 사이엔 놀랍도록 큰 차이가 하나 존재한다.
-청년 CEO의 성공기.
-정혁수. 그는 누구인가.
-한국 최고의 SSS급 능력자. 협회장 공식 취임.
격리 공간 구석구석엔 협회장이 언급된 신문 기사들이 붙어있었다.
먼 과거부터 최근의 기사까지.
이 정도 분량이라면 사소한 기사마저도 놓치지 않고 수집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은 그중 눈에 띄는 신문 한 장을 집었다.
-청년 CEO의 성공기.
아마도 협회장의 젊은 시절.
즉, 주민성 부모님이 가진 건물에서 사업을 번창시키던 때 작성된 기사일 터였다.
“…….”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평범하게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
주민성은 다른 내용에 집중했다.
젊은 시절의 협회장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누구의 건물인지는 굳이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당시의 협회장은 임차인이니까.
“저 건물의 주인…….”
여러 생각들이 주민성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만약 협회장이 아니었더라면 이 건물을 물려받았을까.
아니면 저 건물을 처분하고 더 으리으리한 신상 건물을 물려받았을까.
평범하게 살아갔을 주민성의 대격변은 어땠을까.
“정말 유전인가.”
건물주 능력을 각성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의문이 따랐다.
당시의 세상이라면 주민성의 부모님 말고도 건물주는 얼마든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건물주 능력은 오로지 주민성만이 각성했다.
그만한 이유는 반드시 존재할 터였다.
“…….”
어느 샌가 주변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또 다른 격리 공간이다.
이전과의 차이라면 스크린이 있다는 정도.
-아아…….
-으아아…….
스크린 속에는 중년 부부가 초점 잃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민성은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놀라울 정도로 주민성과 같은 눈매를 가진 중년 여성.수염이 덥수룩할 뿐, 나이 든 주민성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중년 남성을 못 알아볼 리가.
스크린 속 중년 부부는 누가 봐도 부모님이었다.
“…….”
이질적이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공간은 분명 과거의 것임에도, 스크린 너머 보이는 생동감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온 몸의 세포들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들은 녹화되고 있는 화면이 아니라고.
-절대 못 죽이지. 죽고 싶어도 죽지 못 하게 해뒀네.
-내가 자네를 왜 살려뒀는지 알고 있나? 그 인간들 죽지 말라고. 그게 전부였네.
그제야 이 말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스크린 너머는 협회장이 주민성의 부모님을 가둬버린 공간이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과거 정혁수가 사용하던 사무실이 통째로 격리되어 옮겨져 있다고 봐야 했다.
“……정혁수 이 미친 XX.”
욕설과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판매 금지된 상품입니다.]
판매 금지.
협회장이 직접 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인간은 주민성의 부모님을 이런 비좁은 사무실에 가둬놓고 영원히 고통받는 모습을 즐겼던 모양이다.
일단은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판매 취소. 판매 회수. 수납…….”
그럴싸한 단어를 여럿 언급했다.
하지만 어떤 요청에도 메시지는 응하지 않았다.
“판매 취소! 취소하라고! 여기서 당장 꺼내!”
주민성이 진정하기까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텐트를 수십 개나 겹쳐 입고 나서야 화가 가라앉았다.
“후우.”
그렇게 차분해진 주민성은 상황을 분석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엄연히 임시 상점이었다.
카오스 게이트 속 유일하게 주민성이 소유하지 않은 장소에 해당한다.
“……상점 권한을 제대로 얻어야 해.”
당장으로선 오직 이 방법만이 스크린 너머에 갇혀있는 부모님을 지킬 수 있었다.
소유권을 빼앗기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다.
“…….”
격리 공간에서 빠져나오는 건 카오스 게이트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렇게 주민성은 다시 신문이 덕지덕지 스크랩되어 있는 공간에 돌아왔다.
“끔찍하군…….”
협회장의 머릿속은 많은 것들이 어긋나 있었다.
의외로 살인은 하지 않는 성향이었고, 상대가 살아서 고통받는 것을 선호하는 인간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지금의 공간이다.
“아마도 다른 신문엔 또 다른 가족들이 갇혀있겠지.”
여태 실종된 모든 이들이 이곳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성아영의 가족도, 죽은 걸로 알려진 봉춘향의 부모님도.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곳의 정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협회장조차도 말했었다.
-그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은 잘 숨겨뒀네. 찾아가는 과정도 나름 재미있을 걸세.
지금의 발견엔 아무런 과정도 없었다.
그저 괴물들을 상대로 상점 벌점 같은 말장난을 쳤을 뿐이다.
만약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임시 상점부터 정혁수의 영혼까지 제 3자의 소유로 넘어가 수십 년은 가뿐하게 고생했으리라.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는 게 낫겠지.”
지금은 협회장의 악의가 가득 담긴 과정을 거의 대부분 패스한 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집중하자. 주민성.”
생각을 마치고 걸음을 옮기자 다시 포장마차 내부였다.
“자리에 앉으면 격리 공간. 그 외에도 분명히 다른 장치가 있을 거야.”
우선은 협회장이 마련한 조촐한 안주들.
직접 만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온갖 능력들을 싸그리 구매해온 인간에게 손재주쯤은 당연히 있을 터였다.
그에 반해 지금의 안주는 투박함이 없잖아 있었다.
한창 노가다 다니던 시절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들은 전부 어디서 구한 걸까.”
포창마차 내부엔 조리 기구도 비치되어있지 않았다.
심지어 닭똥집은 인벤토리에 보관해두고 꺼내먹기 좋은 식품도 아니었다.
철판에 기름까지 제대로 둘려있는 걸 봐도 분명 눈앞의 안주는 정상적인 조리과정을 거친 게 맞았다.
“분명 힌트일 텐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젓가락을 꺼내 안주를 휘적였다.
“…….”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주 일부를 수납해 봐도 별다른 특이사항도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상점 유지 시간인 1시간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다.
“곤란한데.”
이것 외에도 혼돈의 위령제 또한 신경 쓸 대상이었다.
물론 아직까진 이현을 찾기 위해 괴물들을 물린 덕분에 본격적인 위령제는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정도가 한계일 터였다.
그리고 상점 재사용 대기시간은 24시간.
“이제 강경책만 남았군.”
시간이 없어 더 이상의 추리는 무리였다.
여전히 권한은 주민성에게 넘어오지 않은 상태였고, 비밀도 풀어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협회장의 의도대로 영혼과 상점 등의 모든 것들이 경매장에 올라갈 가능성이 컸다.
“그 꼴은 절대 못 봐.”
콰지직.
주민성은 그대로 포장마차를 찢었다.
그리고 텐트 천을 덧댔다.
“건물 보수.”
건물 보수는 곤란할 때 언제고 사용하던 치트키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카오스 게이트에 임시 귀속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건물 보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애매한 메시지네.”
포장마차가 건물로 판정된 건 좋은 소식이었지만, 건물 보수만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폭발이 먹히는 건물도 아닌데.”
심지어 건물을 강제로 완파시킬 수 있는 건물 폭발은 소유 중인 건물에만 적용되는 능력이었다.
즉, 포장마차는 부술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5분 뒤 카오스 게이트 상점이 해제됩니다.]
“아오. 몽룡아. 부럽다.”
5분밖에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
지금처럼 송몽룡의 시간 정지 능력이 간절한 적은 없었다.
“아, 잠깐. 시간 정지라면…….”
생각해보니 주민성에겐 유사 시간 정지 능력이 존재했다.
그 예로 소멸을 앞둔 장 박사의 영혼 유지에 성공한 전적이 있다.
“일단 인벤토리에 넣고 보자.”
인벤토리의 규칙은 간단하다.
블랙홀보다 크지 않은 소유물이라면 뭐든 수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포장마차는 소유물이 아니었기에 포장마차를 포장할 만한 소유물을 갖춰야 했다.
“…….”
포장마차를 통째로 감쌀 수 있는 소유물이라면 이전에 잘 써먹은 위장 천막이 대표적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위장 천막이 지금 최선아의 소유라는 것.
고블린 군단을 숨기는 데엔 그만한 것이 없었다.
다음으로 긴 물건이라면 성아영의 입을 막는 테이프.
테이프는 부피가 문제였다.
“적당한 물건이…….”
애석하게도 이곳은 술과 안주만이 있는 포장마차.
떠오르는 거라곤 해장을 위한 라면뿐이었다.
“아.”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포스트잇을 꺼냈다.
그리고 내용을 적어 넣었다.
-밀가루 반죽 최대한 크게. 즉시 만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