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게이트 (2)
(202/250)
카오스 게이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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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게이트 (2)
2022.06.21.
“…….”
협회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의 상황을 분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피해의 피해를 전가한다는 건가.”
놀랍게도 협회장은 단번에 답을 도출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파훼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이현과 비슷한 능력을 갖춘 채로 도망간다 해도 페널티는 계속해서 누적될 테니까.
최후의 승리자는 이미 정해졌다.
“후후.”
체념 섞인 목소리였다.
협회장에게도 미래가 보인 모양이다.
물론 동정의 여지는 없다.
“정말로 내가 지다니. 허허.”
“저항하지도 않네요? 뭔가 필사적인 발악을 기대했는데.”
“자네는 모를 테지. 난 여태 계속 필사적이었어. 이제야 쉬어갈 뿐.”
“…….”
그 말을 끝으로 협회장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메시지는 뜨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추해지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 모양이다.
“아쉽군. 거의 다 왔는데.”
“…….”
“궁금한 건 없나? 곧 한계라네.”
겉보기완 다르게 협회장의 몸 상태는 최악에 다다른 모양이다.
마지막 양심인지 선뜻 호의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고아였습니까?”
바로 부모님에 관한 질문이었다.
“아아.”
직접 깨물기라도 했는지 입가엔 피가 흐르고 있다.
“자네 부모 말이지.”
“예.”
순간 협회장의 눈빛에 독기가 스쳐갔다.
“그 인간들은 내 원수였네.”
“…….”
“자네는 모르겠지만, 알아도 입장이야 다르겠지만. 나에겐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인간들이었네.”
주민성은 침음성을 삼키며 물었다.
“……두 분. 살아는 계십니까.”
“그래.”
처음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대답이었다.
곧장 꺾였지만.
“절대 못 죽이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해 뒀네.”
“……하.”
연명 방법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저 협회장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들 능력이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뿐.
“내가 자네를 왜 살려뒀는지 알고 있나? 그 인간들 죽지 말라고. 그게 전부였네.”
“…….”
“허나 잘 사는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래서 자네가 제대로 능력자로 데뷔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네.”
터무니없던 언론 박제의 비밀이 밝혀졌다.
역시 그 사건엔 협회장이 얽혀 있었다.
“아아. 그렇다고 FFF급까지 내가 만들어낸 건 아니야. 자네 등급은 실제로 FFF급이 맞아. 덕분에 관심이 크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 적당히 굴리다가 실험체들에게 던져줄 생각이었네.”
임진석이 쫓아왔던 이유도 알게 됐다.
“피는 못 속이더군. 그 임진석이가 꺾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황태범에 성아영까지. 그게 고작 한 달만의 성과였어.”
하위 차원을 다녀온 이후의 이야기였다.
주민성에겐 훨씬 긴 시간이었지만, 실제론 고작 한 달의 시간이 흘렀을 시점이었다.
“심지어 자네는 2차 대격변의 정보까지 가지고 있었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세력도 구축하지 못했을 테고.”
이제 협회장은 자신의 패배 요인을 분석하려 했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들을 가치 없는 이야기였다.
“……잠깐. 내 부모님이 왜 당신의 원수였는지 말하지 않았다.”
“아아. 그래. 쿨럭!”
협회장의 상태가 악화됐다.
“자네 부모도 건물주였네.”
“……뭐?”
“지금과는 달라. 당시의 건물주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안정적이고 유망한 직업이었으니까.”
확실히 주민성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특히 서울의 집값은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상승해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가격을 자랑했었다.
“대격변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야. 그때의 나는 임차인이었네. 자네 부모님이 가진 건물을 빌려 쓰던.”
“…….”
왜인지 다음 이야기가 예상되기 시작했다.
갑을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이야기가.
“입주 뒤 2년쯤 지났을까. 당시 일으킨 사업은 아주 큰 성공을 거뒀네. 작게나마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도 알리며 방송에도 출연했어.”
당시의 기억이 재현됐는지 협회장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임대료를 올리더군. 그것도 터무니없이 많이. 위치가 너무 좋았거든. 역세권에 유동 인구도 엄청나게 많은 장소라서.”
여기까진 아무리 부모가 얽혀 있다 하나 협회장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나쁜 쪽을 따지자면 상대의 상황을 악용한 건물주 쪽이 나빴으니까.
“건방지더군.”
“……뭐?”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한 거라곤 장소 제공뿐이었으면서, 건방지게 임대료를 올리다니.”
“…….”
“심지어 근처 건물주들과 담합까지 해대서 임대료를 동결시켰어. 연장 계약 외의 선택지는 전부 없애겠다는 듯이. 내가 어떻게 사업을 성공시켰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겁도 없지……!”
건물주 쪽이 나쁜 것도 맞지만, 핀트가 이상하게 어긋나 있었다.
“대격변이 일어난 건 그때부터였네.”
광신도에게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에게 능력이 생긴 순간이었지. 대격변만큼은 나의 억울함을 알아준 게야. 감동하였었네. 오로지 나만을 응원하는 글귀들이 나를 행동케 했지.”
특수 각성자.
세상을 구해낸 핵심 능력자들.
대격변과 동시에 능력을 깨우친 극소수에 해당했다.
그리고 협회장이 글귀는 메시지인 걸로 추정된다.
“그때부터 뭐든지 살 수 있게 되었네. 덕분에 제2의 인생이 시작됐어.”
이젠 인자한 미소였다.
“그 결과, 나는 건물주부터 시작해 정부, 군대, 온갖 기업체들까지 갑이라는 것들을 싸그리 지워버릴 수 있었어.”
“…….”
잘 나가다가도 이상해지는 협회장의 논리였다.
“멀쩡한 가족들 찢어놓고 갑이 되셨구만.”
“아아. 그래. 가장 이상적인 갑이 되었지.”
“…….”
“태어났는데 부모가 건물주다? 있어선 안 될 일이야. 그래서 자네를 보육원에 처넣었지. 이상적인 갑으로서 자네에게 을의 의무를 부여한 게야.”
주민성은 그동안의 고생들을 떠올렸다.
상상도 하지 못할 온갖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또래 중에서도 유난히 독하게 살아왔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주민성이. 너만큼은 인정하마. 나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갑의 재목으로.”
“……미친놈.”
악착같이 싸우자고 할 땐 언제고, 지금은 호의적이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부모님 어디다 가뒀는지나 말해. 그러다 곱게 못 죽는다.”
“……듣고 싶은 얘기는 전부 들은 모양이군.”
“뭐, 대충.”
주민성은 협회장의 광기에 어울려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아 있다는 정보.
이것 하나면 충분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과 만들어나가면 그만이니까.
“흐흐……. 쉽게 알려줄 수는 없지. 어떻게 일궈온 자리인데…….”
“…….”
“그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은 잘 숨겨뒀네. 찾아가는 과정도 나름 재미있을 걸세.”
느껴지는 생명력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느새 협회장의 몸 반절이 붕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 전가는 주민성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이었다.
“……하.”
원한다면 협회장의 목숨을 강제로 유지할 수도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만 중첩시키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목숨만 살려 놓고 영원히 괴롭히는 방식은 협회장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정혁수 씨. 죽는다고 끝나는 거 아니야.”
“클클……. 영혼이라도 다룬다 이건가?”
“…….”
“그 기회는 자네 손으로 직접 뿌리쳤네. 차원 연결을 무산시킨 그 순간부터.”
협회장에겐 영혼과 관련된 지식도 있는 모양이다.
1000억을 후원해 시도했던 차원 연결까지 함께 언급됐다.
“해볼 테면 해보게. 어차피 실패하겠지만. 참고로 내 영혼은 아주 인기가 많네.”
“……뭐?”
“이제 대화는 힘들겠군. 성대가 녹아버리기 직전이라서 말이야.”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혁수 님의 영혼이 카오스 게이트에 임시 귀속됩니다.]
[혼돈의 위령제가 시작됩니다.]
[카오스 게이트와 모든 차원이 연동됩니다.]
“나는 여기서 물러나겠지만, 여태껏 쌓아온 위업들은 영원히 기억될 걸세.”
그 말을 끝으로 협회장의 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쿠구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카오스 게이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온갖 빛들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슨 현상인지 주민성은 알고 있다.
“차원문…….”
메시지에 쓰여 있듯, 카오스 게이트와 모든 차원이 연동되는 현상이었다.
지잉.
차원문은 빠르게 열렸다.
뒤이어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대체 얼마만의 혼돈의 위령제인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
정혁수가 죽기 직전 일으킨 혼돈의 위령제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혼돈의 위령제가 무엇인지는 아무런 설명도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의 현상이 무엇인지는 주민성만이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주민성은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마냥 막막한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이 협회장이 가장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오스 게이트와 경매 보류 차원이 연결됩니다.]
협회장이 자신을 카오스 게이트로 부른 걸 후회할 거라 자부하고 나서 떠오른 메시지였다.
[건물주의 요청으로 차원의 연결이 무산됩니다.]
결국 막혔지만.
따라서 혼돈의 위령제는 협회장의 차선책이었다.
목숨까지 버려가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렇다는 건, 이 상황을 통해 내가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소리겠지.”
우선은 혼돈스럽게 꼬여 가는 서열부터 확립하는 게 먼저였다.
“거기 괴물 씨들. 일렬로 섭니다.”
“…….”
“…….”
하나같이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들은 서로를 향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아. 그쪽 맞아요. 아닌 척하지 마시고.”
“……설마 내가 괴물 씨?”
“예. 말귀는 좋은 듯하니 특별히 1번 괴물 씨로 해드리죠.”
주민성에게 1번 괴물이라는 호칭이 주어진 존재는 황당함에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말로 나야? 카오스 게이트는 분명 하위 차원에 생성되었을 텐데?”
“하. 소수점까지 붙여야 하나. 지능이 좀 떨어지는 모양인데.”
그러자 주민성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고작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피해 무효 메시지만 수백 개 가까이 떠오른 것이다.
이것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가진 전투력을 가늠할 이유는 사라졌다.
그냥 더럽게 강하다로 충분했다.
“……터프하시네.”
물론 주민성이 쫄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라면.
주민성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는 괴물 1이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카오스 게이트의 소유주라고? 고작 하위 차원에?”
“상해 시도에 하위 차원 비하까지. 벌점 무한으로 드립니다.”
“…….”
“아무튼 두고 봅시다.”
혼돈의 위령제라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신은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의 소유주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분명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터였다.
“자, 잠깐…….”
“응. 얘기 끝났어. 꺼져.”
방금의 대답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괴물들이 주민성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큭!”
태양의 순례지 시즌 2가 될 것 같았던 카오스 게이트의 분위기는 그렇게 한방에 정리됐다.
심지어 숨 막힐 듯 쏟아지던 적대감조차도 호의로 바뀌었다.
‘효과가 좋은데?’
주민성은 그런 기세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이벤트를 개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카오스 게이트에 대해 파악하는 것보다, 혼돈의 위령제의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벤트였다.
“이벤트 하나만 합시다.”
“으음?”
이들의 허점을 노린 간단한 이벤트였다.
주민성이 카오스 게이트에 대해 모르듯, 다른 차원의 존재들 역시 주민성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이곳 카오스 게이트 어딘가에 대충 나랑 비슷한 체격의 남자가 있거든요? 상처 없이 멀쩡하게 데려오시면 됩니다. 보상은 상점 1점.”
벌점과 상점의 가치가 재평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