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게이트 (1)
(201/250)
카오스 게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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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게이트 (1)
2022.06.20.
처음엔 희망 사항이었다.
수단은 언제나 빈틈을 노린 편법.
능력 자체가 편법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게 되네.”
이번엔 달랐다.
전성기의 카오스 게이트는 존재 자체가 사기였다.
“주민성.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냥 대박 터졌지. 뭐.”
카오스 게이트에 대한 주도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명철의 눈치를 보며 작전을 구상하는 플랜도 마찬가지.
카오스 게이트라는 거대한 배의 손잡이는 이제 주민성의 차지가 되었다.
“주변 경계만 조금 부탁한다.”
“……여기 말고?”
“응. 저거 소유권 넘어왔어.”
“…….”
당장 해야 할 것은 둘 정도로 추릴 수 있다.
협회장의 견제와, 이현의 구출.
여기서 주민성은 후자를 택했다.
‘이현 씨는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구하는 게 맞아.’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그대로 카오스 게이트에 발을 들였다.
불타는 것처럼 일렁이는 외견과 달리 그렇게 뜨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곧이어 시야가 점멸하고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
난데없이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주민성은 침착할 수 있었다.
여태 수차례 겪었던 일이니까.
“……격리 공간이군.”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격리된 건 처음이었다.
빗대자면 건물 관조보단 인벤토리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것도 건물로 판정되는 위치가 고정된 인벤토리.
주민성은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팟.
다시금 주변 풍경이 변했다.
이번엔 격리 공간이 아니다.
사방이 타들어 가고, 용암이 들끓는 장소였다.
그와 동시에 끔찍한 살기가 주민성을 향했다.
“잉?”
[카오스 게이트 소유주입니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어느새 주민성의 미간엔 괴상한 낫이 꽂혀 있었다.
“아앙?”
“엥?”
처음 보는 몬스터의 짓이었다.
물론 말도 통한다.
만물 소통이 적용 중이다.
“너 뭐냐?”
“음.”
주민성은 대답 대신 몬스터의 멱살을 잡았다.
“……!”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
그냥 잡기만 했을 뿐인데도 피해를 무효화시켰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른다.
“너 뭐야. 왜 아무렇지도 않지?”
아무튼 멱살은 잡은 상태.
몬스터는 도망칠 수 없다.
이젠 몬스터가 원하는 대답을 선사해도 된다는 판단이 선다.
“나 여기 주인인데.”
“헛소리……! 이곳의 왕좌는 수만 년째 공석이다!”
“와. 전통의 맛집.”
주민성은 그대로 몬스터를 들어올렸다.
딱히 무겁진 않다.
“커헉!”
“사람 하나 찾고 싶은데. 대답해줄 수 있지?”
피해 무효화만 아니었으면 질문도 못 했을 터였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건 당연한 진리.
몬스터에게 가해지는 악력이 배로 상승했다.
“여기 나 같은 사람 왔었을 거야. 맞으면 고개 끄덕여.”
몬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현은 이곳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어디 있지?”
“크르륵!”
이번엔 끄덕이지 않는다.
“모르면 고개 끄덕여.”
“크륵!”
그제야 끄덕인다.
“……역시 쉽게 풀리진 않겠군.”
주민성은 그대로 손에 힘을 풀었다.
팟.
몬스터가 기다렸다는 듯 도망쳤다.
이유 있는 방생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이런 장소에서 이현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럴 땐 주민성의 존재감을 알려 이현이 직접 오게끔 하는 쪽이 효율적이다.
‘이현 씨가 죽었을 리 없어.’
카오스 게이트는 협회장조차도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 반쯤 확실해져 있었다.
이전의 차원 판매 건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이현에겐 공간 점멸 능력도 있다.
최소한 이곳의 몬스터에게 죽임당할 일은 없다.
굶어 죽는다면 모를까.
“흠.”
몬스터라면 아까 도망친 녀석이 전부가 아니었다.
호시탐탐 주민성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는 녀석도 있었고, 다른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살기를 보내는 녀석도 있었다.
“일단 밑밥이나 최대한 깔아보자.”
주민성은 몬스터들에게 뛰어들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놈들이다.
태양의 순례지 그 이상으로.
푸푹!
그저 뛰어들었을 뿐인데도 주민성의 온몸엔 각종 무기들이 꽂혀 있었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그 어떤 공격도 보이지 않는다.
안력으로 쫓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불사자랑 다른데?”
잡을 수 있는 몬스터는 지금처럼 근접해 공격하는 몬스터 뿐이었다.
“으응?”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행히 주민성의 손길을 뿌리칠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은 없었으니까.
“어, 어떻게……!”
“나 말고 다른 인간. 어디 있어?”
“커헉! 모른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했다.
덕분에 접근하는 몬스터도 사라졌다.
속도만큼은 엄청나게 빨랐으니 소문은 금방 퍼질 수 있으리라.
“이현 씨 쪽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은 협회장을 견제할 차례였다.
이곳에서라면 협회장과 맞붙어도 자신 있었다.
지지 않을 자신이.
“이 건물은 딱히 설명서가 없단 말이지.”
원래라면 메시지가 전부 설명해 줘야 했다.
건물이 가진 고유 효과부터 사용 가능한 수단까지 전부.
하지만 메시지의 설명은 가동 효율 상승뿐이다.
따라서 주민성이 할 일은 이 건물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였다.
‘생각해보니 건물 등급이랑 최초 메시지도 뜨지 않았었지.’
전성기가 아니었음에도 차원 단위의 영향력을 끼치는 건물이다.
심지어 협회장조차도 밑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일단 돌아가 볼까.”
다행히 지금은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가 건물로 판정됐으니까.
“건물 관조.”
여의도로 돌아가는 데엔 10분이면 충분했다.
“왔군.”
카오스 게이트 주변엔 신우빈과 봉춘향을 비롯한 핵심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시간 많이 지났어?”
“17분.”
“오호.”
카오스 게이트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1대1로 흐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물론 예상했던 바였다.
아무리 미지의 공간이라도 주민성 소유의 건물인 이상, 건물주에게 해가 될 일은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띠링!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부재중 통화 81건
모르는 번호였지만, 누구인지 예측은 가능하다.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발신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 전화. 많이 하셨네요?”
-주민성! 네놈이 감히! 감히이!
발신 상대의 정체는 협회장이었다.
자신의 계획이 밑도 끝도 없이 꼬이고 있으니 걸었을 터였고.
“그보다 아직도 멀쩡히 살아 계셨다니. 유감입니다.”
-크으윽!
이미 끝이 정해진 싸움이었다.
협회장이 건물 이용자가 되면서 잠시 삐끗했었지만, 주민성이 이용료를 받지 않는 순간부터 전세가 역전됐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이용료를 내지 못해 온갖 페널티가 중첩되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통화할 수 있다는 건, 협회장이 모종의 수단을 써서 버티는 거라고 봐야 했다.
-두고 봐라……. 다음이 정말 마지막…….
“아뇨.”
주민성은 냉정하게 협회장의 말을 끊었다.
“이제 끝을 봐야겠습니다.”
-……건방지군.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소리였다.
이젠 다르다.
협회장을 끝장낼 마지막 무대가 갖춰졌다.
카오스 게이트라는 주민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무대가.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담담한 건 주민성 뿐이었다.
신우빈이 물어왔다.
“방금……. 협회장 맞지?”
“응.”
“하…….”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주민성이 협회장을 도발했다는 걸.
“아버지와 좀 더 연계해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 방법이라면 이현 씨를 포기해야 해.”
“…….”
“카오스 게이트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더라.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야. 어찌어찌 몬스터를 먹으며 연명한다고 하더라도, 곧 한계일 거다.”
목표는 협회장을 끝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2차 대격변 자체를 끝내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다.
이를 앞당기려면, 이현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했다.
“이 정도 어그로면, 협회장만 오는 건 아니겠지?”
“내가 협회장이라도 알겠다. 네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걸.”
“그거면 됐어. 협회장 걱정은 마라. 소환할 수 있으니까.”
“……그런 능력도 쓸 수 있게됐나?”
“원래 있던 능력이다. 이길 자신이 없어서 못 써먹었을 뿐.”
“하……. 젠장. 알아서 해라 그럼.”
“응. 카오스 게이트만 지켜 줘.”
“오케이.”
그렇게 주민성은 카오스 게이트 내부로 유유히 돌아왔다.
다시 펼쳐진 격리 공간.
이젠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움직이면 아까의 지옥 같은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걸.
“후우. 할 수 있다. 주민성.”
벌집을 질겅였다.
이것이 협회장을 소환하기 위한 최소 조건.
설령 상대 쪽에서 세입자 호출 능력을 거부할 방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고민될 터였다.
그동안 주민성의 행방의 묘연해져 안달하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먹힐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가만히 호출되면 그토록 원하던 맞대면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주민성은 한 걸음을 움직이고, 벌집을 씹었다.
팟.
능력은 거의 같은 타이밍에 이뤄졌다.
“세입자 호출. 정혁수.”
“…….”
예상대로 협회장은 주민성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성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대신 받으며.
콰콰콱!
카오스 게이트 특유의 환영식이었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경계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
역시 이곳의 몬스터들도 협회장을 죽이진 못했다.
대신 죽어나가는 쪽은 카오스 게이트의 몬스터들이다.
투콱!
몬스터들의 머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갔다.
“오랜만입니다. 협회장.”
“……여긴.”
“그쪽이 그토록 원하던 카오스 게이트죠. 정확히는 내부지만.”
“……음?”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었다.
협회장의 입가가 실룩인다.
“하……. 하하…….”
“…….”
무안해지는 건 주민성 쪽이었다.
“아직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크흐흐. 아주 재미있지. 그럼.”
협회장이 웃었던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원 연결을 위한 후원금이 기부됩니다.]
[카오스 게이트에 1000억 원이 수납됩니다.]
[카오스 게이트와 경매 보류 차원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주민성이 간과했던 점이었다.
협회장에겐 카오스 게이트의 지식이 있었다.
“아. 이거였어?”
“크큭……! 이제 끝이다. 주민성.”
하지만 마음 졸일 필요 없었다.
카오스 게이트는 주민성의 것이니까.
“연결 안 할 건데.”
[건물주의 요청으로 차원의 연결이 무산됩니다.]
기부자인 협회장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처럼 울먹이는 표정을 지을 리 없다.
“크아아아아!”
쿵!
어느새 주민성은 협회장에게 붙잡혀 맨땅에 처박혀있었다.
“페널티. 심할 텐데.”
“이이……!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쾅!
주민성의 뒤통수가 쉴새 없이 바닥에 찍혔다.
나름의 저항은 했다.
협회장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서.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확실히 힘으론 안 되는군.’
주민성은 저항하길 포기했다.
그것이 최고의 반격이었으니까.
쾅!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건물 이용자 정혁수에게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모든 피해를 무효화시킵니다.]
[건물 이용자 정혁수에게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
결국 먼저 피를 토해낸 쪽은 협회장이었다.
“쿨럭!”
“이야. 오래 버티셨네요.”
“흐흐……. 피해 무효인가…….”
“정답.”
짚이는 바는 있었는지 협회장의 표정엔 허탈함이 가득했다.
“하. 이런 능력까지 갖췄을 줄이야. 고작 건물주에게 어째서…….”
주민성도 마찬가지였다.
협회장의 업적 중엔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의 업적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협회장에게도 피해 무효 같은 능력이 있다는 걸.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뚫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것은 이현 같은 SSS급 중에서도 특출난 공격 능력을 갖춘 이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래. 고작 건물주가.”
그렇다고 주민성에게 특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는 있었다.
이 권리는 불량 이용자들을 징벌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했다.
“아아. 모욕적이야. 정신적 피해가 너무 크다.”
“……또 그 패턴인가.”
“아니. 조금 달라.”
주민성은 협회장을 통해 새로 얻은 능력을 첨가했다.
이번 대전을 구상하며 사용할 핵심 카드이기도 했다.
“피해 전가.”
“……이 능력은 이미 막았던 능력일 텐데.”
협회장의 말대로 이 능력은 상대 쪽에서 돈을 내면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카오스 게이트에서만 가능한 응용법이 한가지 더 있었다.
“주민성.”
[건물주 주민성 님에게 손실을 전가합니다.]
[손해 비용 1200만 원이 청구됩니다.]
1200만 원은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모여서 생긴 결과물이었으리라.
“……자학인가?”
“아니. 전혀.”
주민성은 다음 능력을 연달아 사용했다.
“피해 전가. 정혁수.”
“……뭐?”
[건물 이용자 정혁수 님에게 손실을 전가합니다.]
[손해 비용 1200만 원이 청구됩니다.]
“돈 내려면 내 봐. 지금 내가 받는 피해는 당신이 끔찍하게 죽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여태 무한히 받았던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
이것이 주민성의 노림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