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 (2)
(19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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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8.
무려 100조 원의 투자.
그리고 신명철이라는 이름 세 글자.
동명이인일 거라는 일말의 의심도 들지 않는다.
방금의 투자자는 무조건 신성 회장이었다.
“……뭐야. 따로 연락이라도 한 거야?”
신우빈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전혀.”
심지어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100조라는 돈을…….”
언급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금액이다.
시대를 풍미하던 초거대 재벌조차도 이런 금액을 다루는 데엔 엄청나게 많은 절차를 거칠 정도.
그럼에도 신성의 회장은 단박에 100조라는 거금을 투척했다.
“당연히 이해가지 않겠지. 하지만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돈이 모이는 장소에 사람도 따른다는 논리로.”
“…….”
“그리고 너 자신에게 되물어봐라. 큰돈이 모이는 장소엔 어떤 사람들이 따를까.”
“큰 사람……?”
“정답이다.”
“이게?”
처음엔 터무니없는 논리로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우빈의 설명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판이 크면 클수록, 큰 사람이 모이지. 그렇게 돈을 먹고 큰 사람들은 더욱 큰돈을 갈구하게 되고. 몇 천 억쯤 다루던 사람이 백억만 잃어도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고통받는 것과 같은 논리야.”
“…….”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남는 돈으로 버티고 사는 건 죽는 것과 마찬가지. 적어도 우리 사람들은 더욱 큰돈을 갈구하며 투자하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런 얘기지.”
“어렵군.”
신명철의 투자를 시작으로 아는 이름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대규모 투자!]
[도지환 님께서 1조 원 후원하셨습니다!]
[대규모 투자!]
[박두섭 님께서 1조 원 후원하셨습니다!]
…
이들은 하나같이 주민성이 롤모델로 삼았던 부자들이었다.
신종 코인을 이용해 파격적으로 성장하고, 극도로 안전하게 자산을 지켜나가는 케이스에 해당한다.
“아니. 이 사람들은 개인 벙커까지 전부 있잖아……. 그런데도?”
조금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위험한 투자로 성장했다는 과거가 존재하지만, 어느 수준부턴 철저하게 안전 지향적인 행보를 이어가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지금 규모의 투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기회로 보였겠지. 비트코인보다도 더욱 파격적인.”
신우빈은 자랑하듯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투자다. 너는 100조라는 액수를 보고도 확신이 서지 않나? 심지어 협회장까지 뛰어든 판이다. 움직일 수밖에.”
신우빈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벨은 그런 신우빈을 말없이 부축하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파벨에겐 좀 미안하게 됐군. 투자 얘기라면 전문 분야일 텐데.”
“괜찮습니다. 돈이라면 대격변이 끝난 이후에 벌어도 충분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발은 담가두는 게 좋아.”
“……예?”
자리에서 일어난 신우빈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 뭐 있어?”
“그래.”
“……진짜 있네.”
놀랍게도 회의실을 향해 전용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당연히 테러 목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에 거대한 신성 마크가 달려 있었으니까.
곧이어 비행기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신우빈의 비서였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아아. 역시 척하면 척이군.”
“너 설마…….”
“후후.”
전용기에선 비서만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수량의 돈 가방도 함께였다.
“원래는 너에게 투자하려는 돈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예정이 바뀌었다.”
“저거……. 다 얼마야?”
“한 10조쯤?”
“…….”
신우빈은 주민성에게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계획했던 모양이다.
이를 능력적으로 활용해 보자면, 신도시 하나를 세우는 건 일도 아닌 수준의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돈이라면 다른 장소에도 숨겨 뒀으니까. 지금 끌어온 자금은 마포구에 숨겨뒀던 투자금에 불과해.”
“……다 계획이 있었구나?”
“당연하지.”
굳이 합류하지 않고 마포구에 자리 잡았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 모양이다.
확실히 다급할 때의 지원은 시기적으로도 가장 큰 효율을 보일 수 있었다.
지잉.
신우빈 앞에 핏빛으로 일렁이는 인벤토리가 떠올랐다.
투자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가진 소지금을 인식하고, 투자 금액을 결정하면 된다.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규모 투자!]
[신우빈 님께서 10조 원 후원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아버지 심기에도 거슬리지 않을 테고.”
“더 투자할 수도 있었다는 거야?”
“앞서 말했지만, 총알은 충분히 있다. 신성의 후계자면 이 정도가 적당해.”
“어휴.”
급전이라면 주민성도 얼마든지 당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쯤이면 고래 싸움이다.
가장 위협적이던 협회장마저도 신성 회장이 견제하고 있는 이상, 신우빈처럼 카오스 게이트 지분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게 현명했다.
‘메시지를 거친 투자다. 적어도 해가 되는 일은 아니야’
메시지에 대한 이해도라면 최상위를 차지하는 0.1%라 자부할 수 있었다.
협회장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금의 사태를 오랜 기간 준비해온 면모까지 보였으니까.
‘그 인간의 목표는 카오스 게이트 형성. 악마와 손을 잡아 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온 이유가 분명 있겠지.’
아마도 이번 카오스 게이트가 판도를 굳힐 수 있는 결정적인 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도 나쁘지 않다.
신성 회장인 신명철과 면식은 없었지만, 후계자인 신우빈과는 생사의 고비까지 함께 넘겨왔다.
게다가 정식적인 투자까지 받을 정도의 힘도 길렀다.
최소한 협회장보단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주민성. 괜찮나?”
“괜찮아. 거액 투자도 확연히 줄었고.”
빌런 세력은 협회장의 눈치를.
재계 세력은 신성 회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후계자인 신우빈조차도 눈치를 보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라고 방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눈치껏 최소한의 지분만 챙기고, 사리는 쪽이 현명하다.
“근데 이 펀딩. 목표 금액이 얼마길래 아직도 투자를 받는 거야? 귀찮네.”
신우빈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최소한 카오스 게이트가 인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을 텐데.”
말이 씨가 된 걸까.
투자가 뜸해지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잠시 후 카오스 게이트 펀딩이 종료됩니다.]
[투자금액에 비례한 카오스 게이트가 형성됩니다.]
[투자자는 주어진 지분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주민성은 이 상황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했다.
“카오스 게이트. 형성된다네요. 슬슬 움직이겠습니다.”
“예.”
이번 카오스 게이트는 협회장뿐만아니라 무려 전 세계적인 투자를 받은 게이트였다.
그럼에도 결과는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대처라면 혹시라도 튀어나올 몬스터들의 대한 격살이 최선일 터였다.
도착한 BBA 방송국이 있던 자리는 건물 폭발에 의해 폐허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새빨간 카오스 게이트만이 일렁이며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결국은 생성되는군. 막으려고 꽤 노력했었는데.”
“……쯧.”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주민성의 핵심 전력 대부분이 오직 카오스 게이트만을 대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력원들은 봉춘향이 설계한 배치에 따라 카오스 게이트 사방에 포진되어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차라리 협회장을 상대하는 게 유리하지 않았을까.”
주민성은 협회장과의 일전을 떠올렸다.
파벨의 존재 덕분에 방어적인 부분에선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었다.
능력을 빼앗길 일도 없었고, 부당거래에 눈뜨고 목 베일 걱정도 없었다.
“너에게만 그렇겠지. 우리라고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냐? 능력 자체를 아예 봉쇄당했었다.”
“그런 일도 있었군.”
다른 이들에겐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나은 모양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길 주고받다보니 펀딩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카오스 게이트 펀딩이 종료됩니다.]
[투자자 권한이 해금됩니다.]
[주민성 님은 0.001%의 지분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30분 뒤 카오스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소수점 올림 처리라도 했는지 주어진 지분은 생각보다 큰 편이었다.
최고 투자자가 쏟은 금액이 100조인 걸 고려하면 만족할 수 있는 수준.
반면, 신우빈의 표정은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뭐야? 왜?”
“……아버지가 주도하는 판이라서 다행이군.”
신우빈이 확인한 메시지는 이러했다.
[VIP 투자자 권한이 해금됩니다.]
[신우빈 님은 8.4%의 지분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차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고액 투자자에겐 차원 의결권이라는 새로운 권한이 추가되는 모양이다.
차원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상, 절대 만만한 능력은 아닐 것이 확실했다.
“빌런들이 노렸던 권리가 이거란 말이지?”
“그렇겠지. 협회장이 최고 투자자로 군림하고, 네 말처럼 능력자들에게 빙의한 악마들이 뒤따르는 그런…….”
순간 신우빈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듯 변했다.
현자 타임이라도 온 것 같은 표정이다.
“……이게 맞는 거냐? 겨우 이런 권리 가지고 거액을 투자해 가며 게이트를 만든다는 게?”
“뭔가 더 있겠지. 일단은 정보가 우선이다. 신우빈. 회장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건 어때?”
“무리다. 100조라는 금액이 투자된 이상, 정보료를 반드시 요구할 거다. 아니, 돈을 준다고 해도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커.”
“아버지라며.”
“기업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후우.”
결국은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인 모양이다.
“그럼 이건 어때. 회장님과 협회장이 뭘 노리고 이 판에 뛰어들었는지 예측하는 건?”
“이쪽이 그나마 생산적이군.”
신우빈 또한 이견 없이 주민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대격변조차도 기회로 보셨을 거다. 아까의 펀딩도 같은 맥락이고. 심지어 협회장까지 뛰어든 판이다? 절대 못 참지.”
신성 회장 신명철.
협회장보다 훨씬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주민성이 아는 건 세계적인 기업인, 자산가, 회장 등 기호에 맞게 편집되어 인자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전부였다.
즉, 얼굴밖에 모른다.
업적도 꽤 많다곤 하는데, 주민성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신성에서 주민성을 후원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젠 네 차례다. 주민성.”
“그래.”
신우빈도 인식하고 있을 터였다.
주민성의 능력과 이전의 현상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메시지라면 이용료 청구를 통해 진작에 선보였다.
메시지는 지금이 두 번째였으리라.
“일단 팩트만 체크하지.”
“좋다.”
“협회장은 내 부모님과 관련되었던 인물이다. 내막은 모르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협회장은 수많은 가족을 박살 내고 남겨진 고아들에게 간접적으로 개입했다.”
협회장은 주민성 외에도 성우혁과 성아영, 이현의 약혼녀와 가족들에게도 개입했었다.
목적은 모르지만, 이런 공통점은 추리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흐음…….”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
“당연하지. 신성 후계자란 인간이 협회 소속으로 경비나 보던 걸 잊었나?”
“그랬었지. 확실히.”
지금의 이야기는 전에도 한 적 있었다.
신성과 협회장이 좀 더 격하게 대립하던 시기, 협회장이 신성을 코너에 몰았던 당시.
신우빈은 협회에 묶여 볼모 생활을 했었다.
그것도 후계자 자격을 유지한 채로.
어쩌면 가족 파괴라는 주제엔 신우빈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다.
“분명 목적이 있는 행동이지?”
“어. 적어도 협회장이 돈에 집착하던 이유는 오늘 밝혀졌으니 확실하다.”
기업도 아닌 개인이 기다렸다는 듯 투척한 자금만 수조 원 상당.
아무리 세계 최강의 능력자라 하더라도 당장 융통할 수 있는 금액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당장 주민성만 하더라도 대놓고 열심히 긁어모아 만든 자금이 39억이었으니까.
“집착한 건 돈뿐만이 아냐. 실험체를 만드는 연구소부터 시작해서 자기장 발생기, 카오스 게이트 생성기까지 운영했지.”
“막아낸 게 이 정도라면. 뭔가 더 있다는 소리겠군.”
“100%.”
“그렇다면 뭔가 더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실험체 연구는 장 박사의 포획으로 무산시켰고, 자기장 발생기는 연구원들을 해산시킨 덕분에 가동되지 않는다. 그리고 카오스 게이트 생성을 위해 대중을 상대로 한 감정 선동은 다큐멘터리로 억제했지.”
“맞아.”
“여기서 유일하게 애매하게 막아낸 건 카오스 게이트뿐이다. 너도 잘 알겠지.”
전부 맞는 얘기들뿐이었다.
확실히 카오스 게이트만 찜찜하게 마무리된 상황이다.
그 대가로 지금 눈앞에 카오스 게이트가 생성되는 중이고.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너라면 당장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을 텐데?”
“아.”
그제야 주민성은 신우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건물 초월?”
“그래.”
지금은 건물 초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