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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찬스 (3) (196/250)


변수 찬스 (3)
2022.06.15.


“…….”

난감한 상황이다.

인벤토리 내부에서의 탈출은 건물 관조와는 다른 개념이었을 줄이야.

“설마 너….”

장 박사의 의심.

“…….”

그리고 대답없는 모습에 확신까지 생긴 모양이다.

“여기 갇힌 거냐? 나처럼? 크흐흐?”

주민성은 대꾸 대신 다른 능력부터 사용해 봤다.

괜히 허점을 더 노출하면, 장 박사와 이어 오던 갑을관계에도 부정적인 변화가 생길 위험이 있었으니까.

츠츳.

주민성의 손아귀엔 어느새 보온병 커피가 들려 있었다.

“으응? 갑자기 커피?”

호록.

한입 마시고, 다시 치웠다.

그리고 주민성은 확신했다.

‘수납 메시지가 뜨지 않아.’

인벤토리 내부의 물건은 주민성이 원하는 대로 가져다 쓸 수 있었다.

치우면 인벤토리 어딘가로 치워질 뿐.

수납되는 개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장 박사가 멋대로 활용한 공간.

라면 개발에 도움되는 물건들만 차곡차곡 정리된 그런 장소였다.

“갇힌 게 아냐. 잠시 시행착오를 거칠 뿐이다.”

인벤토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장 박사는 위협이 아니었다.

장 박사 또한 인벤토리에 수납된 영혼 중 하나였으니까.

이를 반증하듯, 장 박사의 표정엔 미미한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뭘 봐?”

“크흠! 아무것도 아니다!”

“볼일 봐라. 관심 두지 말고.”

“쳇.”

장 박사가 물러나고, 주민성은 스크린을 응시한 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

‘메시지만 뜨지 않지, 인벤토리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하지만 건물 관조가 사용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스크린 너머의 건물 관조가.’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텐트라면 건물 관조도 가능했다.

10분간의 격리도 동일하다.

하지만 스크린 너머로의 건물 관조에 있어 메시지는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았다.

‘인식 자체가 안 되는 건가?’

이상했다.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건물 관조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확실히 특정 건물을 지정해서 볼 수는 없다는 차이는 있지만…….’

지금은 인천 게이트에 있는 생존자 거주 구역이 비쳐지고 있었다.

이전에 구했던 폐차장 자매들이 보인다.

왜인지 슬퍼 보이는 표정이다.

“후우.”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인벤토리 내부에선 어떤 능력도 사용할 수 있지만, 바깥에 개입할 수 없는 걸로.

“이곳에서 나가려면 바깥에 인벤토리를 생성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라.”

주민성은 애꿎은 휴대폰의 화면을 껐다 켜고, 사진첩을 슥슥 넘기며 고민을 이어 갔다.

언제 찍었는지 성아영의 셀카가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 밖에 있는 사람을 이쪽으로 불러올 수는 있잖아?”

여태 잘 쓰진 않았지만, 주민성에겐 이런 능력도 있었다.

바로 여왕벌의 권능을 이용한 세입자 호출이었다.

다른 차원의 세입자조차 불러낼 수 있는 이 능력은 즈쉬의 합류를 통해 검증된 능력이기도 했다.

“잠깐. 저 능력. 성아영도 있잖아.”

심지어 주민성과 성아영이 봤던 메시지는 미묘하게 달랐다.

주민성은 수첩을 빠르게 넘기며 이전에 적어 둔 내용을 살폈다.

“찾았다.”

이쪽이 주민성이 정리해 둔 내용이었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특이하게 가공된 건물을 섭취합니다.]

[절대자의 손길이 닿은 건물입니다.]

[포식자의 허기의 효과가 다섯 배 증가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일부 흡수합니다.]

[피식 대상 땅굴 벌집의 기능성이 부여됩니다.]

[여왕벌의 자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휘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여기서 성아영은 여왕벌의 자질에 부합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다음처럼.

[여왕벌의 자질을 충족했습니다.]

[하수인 지정 권한이 부여됩니다.]

[하수인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하수인 강화 권한이 부여됩니다.]

[하수인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여왕의 출현으로 여왕벌의 적대를 받습니다.]

주민성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건 된다. 무조건.”

성아영이 이용중인 건물은 안산 게이트의 아파트, 인천의 개인실, 평소에 잘 입지 않는 텐트까지 무려 셋.

세입자라는 조건이 충족되고도 남는다.

즉,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케이. 부를 수 있는 건 확실해졌고.”

남은 문제는 성아영이 주민성처럼 여왕벌의 권능으로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후. 평소에 관심 좀 더 가질걸.”

안타깝게도 성아영에게 세입자 호출 능력이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기울이지 못한 탓이었다.

“일단 가진 능력부터 분석해 보자.”

그녀에게 추가된 능력은 하수인과 관련된 능력.

주민성과는 궤를 달리했다.

“성아영 능력은 특정 대상을 강화시키는 느낌인데. 흐음.”

확실히 건물주 능력과는 다르다.

이런 차이에는 주민성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분신 능력 때문이겠지.”

봉춘향이 임시 서비스로 획득했던 분신 능력.

이는 성아영의 것으로 잠정적 결론이 난 상태였다.

굳이 추궁하진 않았지만.

“분신을 하수인처럼 다뤄 왔으니까.”

이것이 성아영의 전투법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신을 이용해 여태껏 상대를 제압해 오고, 죽을 위험이 생기면 분신이 대신 죽는.

이후의 행보도 비슷했다.

나름의 호위였던 가르취와 차크취도 하수인으로 대했으니까.

그 결과가 하수인과 관련된 여왕벌의 권능이다.

“하수인 호출이라면 가능성 있겠군.”

주민성이 성아영의 하수인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조금 찝찝했지만, 꽤 가능성 있는 전략이었다.

그 외의 조건이라면 내부의 상황을 바깥에 있는 성아영에게 알릴 수 있는 메신저의 유무.

일단 즈쉬를 비롯한 다른 차원의 세입자들은 논외였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고, 최대한 수준 높은 공간이동 능력자를 섭외해야 한다.

“어?”

주민성 세력엔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이현이다.

“잠깐. 그냥 이현 씨한테 꺼내 달라고 해도 되겠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고위 능력자 이현.

그에겐 한번이라도 가봤던 장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사기적인 공간점멸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이 여기서도 통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현을 부르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물론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그 또한 인벤토리에 갇혀 버릴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이현의 부재 또한 주민성의 부재만큼 큰 타격이었다.

“일단 이현 씨가 뭘 하고 있는지부터 봐야겠군.”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

인천, 안산, 강서구, 양천구, 강북구 등등.

계속해서 화면이 넘어갔지만 이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신우빈을 비롯한 핵심 인원들은 여의도에 모여 있었고 이현만 없었다.

“…어디 갔지?”

이상했다.

바깥이 너무 평화로운 것도 마찬가지.

이런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기엔 협회장이 마지막에 저지른 사고가 심상치 않다.

설령 주민성이 건물 폭발을 통해 억제했다 하더라도.

“여기서 이현 씨를 부르는 게 정말 맞는 판단인 걸까.”

주민성은 계속해서 고심했다.

이후의 판도는 분명 신우빈과 봉춘향등의 남은 인물들이 이끌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이현은 주민성의 시야가 닿는 곳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이현의 부재가 부정적인 변수가 되면 곤란하다.

최선의 결과는, 그 누구도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고 주민성만 무사히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오는 것.

“쯧. 차라리 협회장이라도 보였으면 덜 부담스러운데.”

마찬가지로 협회장 또한 보이지 않는다.

여의도의 회의가 끝나지 않는 이유와 관계있을 터였다.

“더 생각하자. 민성아. 제발.”

결국 주민성은 이현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이현을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 둘 뿐.

결국 가장 핵심인 성아영으로 되돌아왔다.

“……다음 선택지는 춘향이인가.”

봉춘향의 분신을 호출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리스크가 동반된다.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봉춘향의 본체가 어느 쪽인지 주민성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 잠깐…….”

성아영과 봉춘향을 비교분석하던 도중,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만약 성아영이 분신과 본체를 마음대로 맞바꿀 수 있다면?”

여기서 성아영이 봉춘향과 분신을 다르게 운용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도 떠올렸다.

“그때도 죽은 건 성아영의 분신이었지.”

분신과 본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이 성아영이 가진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죽음의 공포에 아예 무감각할 수는 없으니까.

“좋아.”

주민성은 스크린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성아영의 시점으로 넘어가고, 그녀가 분신 능력을 사용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도 생기지 않을 테고.

“…….”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성의 표정은 점차 심각해져 갔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여의도는 특히 더했다.

“저건 또 무슨 몬스터들이람.”

여의도는 생지옥으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온갖 몬스터들의 침공을 당해.

“……생각보다 많이 센데?”

하나같이 개성 강한 몬스터들의 침공이었다.

그렇다고 약한 것도 아니다.

서풍과 아린의 공동전선이 휘청일 정도였으니까.

“음? 저건 아직 미완성품인데…….”

“뭐?”

몬스터들의 괴성 때문인지, 어느 샌가부터 장 박사도 끼어들었다.

“지금 보이는 저 녀석들. 100번대 이후의 실험체들이다.”

“…….”

지금 보이는 몬스터는 협회장의 주문과 장 박사의 가공이 더해진 혼종이었다.

“능력 쓰는 몬스터라는 거지?”

“그래. 특수 목적용으로 개발된 녀석들이다. 전투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지.”

“저게 약한 거라고?”

“그래. 물론 초기 실험체들보다야 강하겠다만, 다른 두자리 수 실험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게 맞다.”

장 박사의 표정에 아쉬움이 스쳐 갔다.

“저 녀석들은 전투용이 아닌 생산용이니까.”

“……더 말해 봐.”

“……음?”

“빨리.”

주민성은 어느새 장 박사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놓고 얘기하지. 말해 줄 테니.”

“…….”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쯧. 녀석들이 흘리는 피를 주목해라.”

우선 주목한 것은 가고일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

실험체는 아린 길드의 합동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음?”

자세히 보니 피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다.

“생산용이라며. 저기서 또 다른 몬스터가 나오는 거야?”

“그래. 대략 하루 정도면 2차 생산을 할 수 있는 개체로 진화하지.”

“하…….”

돈도 아니고 몬스터가 복사된단다.

심지어 설명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에겐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전자도 삽입되어 있다. 만약 발화계 능력자에게 상처를 입었다면, 발화내성을 지닌 몬스터가 되는 거지.”

“……그딴 걸 대체 왜 개발하는 건데?”

“흥.”

장 박사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이해되지 않을 논리일 게 확실하다.

당장은 대책부터 마련하는 쪽이 우선.

“저거도 제대로 대응해야 할 텐데…….”

실험체의 피는 계속해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끓다못해 기화될 정도로.

“음? 저건 무슨 현상이지?”

황당하게도 장 박사가 하는 소리였다.

“지금쯤 증식을 끝내고도 남아야 할 텐데?”

“뭐?”

“피가 계속해서 끓고 있잖나! 이러면 증식 조건에서 벗어나게 된다!”

“잉?”

신우빈 측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한 걸까.

아무튼 장 박사의 의도가 빗나갔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은 묘한 기시감을 선사한다.

‘잠깐……. 피가 기화된다는 건…….’

이는 협회장과 주민성이 겪은 현상이었다.

이는 카오스게이트를 발동시키는 조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미친.”

그제야 실험체 습격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민성이 폭발시켰던 카오스게이트 발생기를 부활시키려는 속셈으로 추정된다.

“아오.”

스크린이 비춰 주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어느새 다른 팀의 시점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전환된 시점은 다행히도 뇌전 지팡이가 꽂혀 있는 컨테이너.

강북 팀의 것이었다.

“됐다. 드디어 성아영을 찾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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