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찬스 (2)
(195/250)
변수 찬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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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찬스 (2)
2022.06.14.
어떤 건물이라도 상관없었다.
소유한 건물이라면 전부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것이 카오스 게이트든, 전설 등급의 건물이든.
“협회장님……. 대체 무슨 승부를 걸어버리신 겁니까…….”
주민성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태 수상한 계획들을 세워 오고 나름의 그럴 듯한 그림을 그려 둔 것은 이해한다.
여기서 문제는, 세워 둔 계획에 건물이 왜 포함되어 있냐는 것이다.
“건물주를 상대로 건물을 이용한 계획이라니.”
말을 마침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카오스 게이트 발생기가 폭발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하락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하락합니다.]
…
핸디캡은 있었다.
하지만, 협회장의 목숨을 건 승부수를 깨버린 대가로는 너무나도 관대한 대가였지만.
심지어 전설 등급 건물을 폭발시켰다고 혜택까지 얻어버렸다.
[최초로 전설 등급 건물을 폭발시켰습니다.]
[피해 전가 권한이 해금됩니다.]
[건물주가 입은 손실을 건물 이용자에게 전가합니다.]
그것도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는 능력이었다.
“아이고. 이번에는 즉시 개봉을 해줘야겠네.”
새로 얻은 능력을 사용해야할 대상.
당연히 협회장이었다.
“피해 전가. 정혁수.”
[건물 이용자 정혁수 님에게 손실을 전가합니다.]
[손해 비용 28억 원이 청구됩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조금 다른 능력이었다.
피해 전가 능력은 건물의 가치에 기반한 손실을 이용자와 나누는 기괴한 방식이었다.
곧이어 메시지가 이어졌다.
[손해 비용 28억 원이 모금되었습니다.]
[손실 전가가 종료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쯧.”
역시 협회장은 살아 있었다.
게다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송금 하나는 끝내주게 빠르다.
“주민성 씨!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거대하던 방송국 하나가 폭발해버린 탓에 서풍 길드원들이 재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몬스터는요?”
“아직 제압 중입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네?”
“머리에서 피가…….”
“아.”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주민성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협회장과 마찬가지로 흘린 피들은 BBA 방송국이 있던 자리로 흩뿌려지고 있다.
“쯧. 폭발로는 부족한 건가.”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인벤토리에 수납했던 신우빈과 위희린을 다시 꺼냈다.
“……너. 대체 뭐냐.”
신우빈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질책했고.
“옴뇸뇸.”
위희린은 장 박사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라면을 정신없이 음미하고 있었다.
주민성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만 몰두했다.
그저 묵묵히 건물 잔해에서 몸져누워 있던 파벨을 일으켜 세웠다.
“후우…….”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취했다.
그제야 주민성은 뒤따라오던 신우빈에게 말했다.
“신우빈.”
“……뭐냐.”
머리에서 흘리는 피는 단순히 상처로 생긴 피가 아니었다.
앞서 카오스 게이트가 흡수한다는 생명력.
정확히 생명력이 빠져나가며 나오는 피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뒤를 부탁한다.”
“……어? 잠깐……. 야! 이게 무슨 상황인데!”
협회장은 물러났다.
앞서 말했듯, 시간 싸움을 걸어왔다.
카오스 게이트도 건물 폭발만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까……. 알아서 해…….”
“기다려 봐! 뭐가 문젠데! 회복할 수 있잖아!”
털썩.
주민성이 쓰러졌다.
* * *
의식이 돌아왔다.
주민성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죽진 않은 모양이군.’
혹시라도 영혼 상태가 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멀쩡했다.
“…….”
눈을 떴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컴컴했다.
“아. 아.”
목소리도 나온다.
메아리도 치지 않는다.
공기의 질도 깔끔하다.
밀실은 아닌 모양이다.
“누구 없습니까.”
적어도 주민성을 이곳으로 옮긴 누군가는, 아군일 터였다.
“일어났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
아니, 들어본 목소리였다.
“정신이 좀 드나?”
“……정신 나갈 것 같아.”
주민성을 찾아온 사람은 장 박사였다.
그것도 생존자들에게서 수납한 의사 가운을 걸친.
“그보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그래. 네 공간이지.”
놀랍게도 이곳은 인벤토리였다.
“하. 미치겠네.”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인벤토리는 타인을 자유롭게 수납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빠져나가는 방법은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신 들면 이것부터 먹어 봐. 덕분에 12차 개발까지 끝냈거든.”
“…….”
주민성의 앞엔 어느새 식욕을 돋우는 라면 상이 차려져 있었다.
“네가 이곳에 온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더군. 덕분에 시간의 흐름도 돌아왔고, 바깥 상황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어.”
장 박사가 벽을 바라봤다.
그러자 벽이 스크린처럼 바뀌기 시작한다.
화면에선 신우빈과 봉춘향을 비롯한 이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바깥 상황이 보이는 거야?”
“그래. 전부 네가 소유한 건물들이겠지? 계속해서 바뀌더군. 아주 신기한 광경이야.”
장 박사는 나름의 분석마저도 끝낸 모양이다.
그리고 화면이 또다시 바뀌었다.
그곳에선 고블린 두어 마리가 새로운 고블린을 교육하는 현장이었다.
“폐건물…….”
화면은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성아영이 걸치고 있는 텐트였다.
“여전하구만.”
화면 속 성아영은 11번 세입자와도 합류해 있었다.
등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신나게 놀리는 모습이 참 해맑다.
“……하성은 제압한 건가?”
“아니. 사라졌다.”
“뭐?”
“말 그대로 사라졌어. 한창 싸우던 도중.”
협회장에 이어 하성도 자취를 감춘 모양이다.
지금은 김정남이 둘의 사이를 중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은 다음 건물로 넘어갔다.
-크라라라!
-캬르륵!
이번엔 태양의 순례지였다.
지금은 순례지보단 온갖 악령과 시끄러운 영혼들이 가득한 수용소에 가까웠지만, 일단은 그렇다.
장 박사는 이미 봤던 화면이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나왔군. 더럽게 시끄럽기만 한 건물.”
장 박사는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널브러진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소음 차단 기능을 활용하려는 모양이다.
“저 건물. 대체 뭐냐? 시끄럽기만 하고 하등 쓸모없는 영체들만 가득하더군.”
“알 것 없어.”
“쳇.”
“아무튼, 바깥 상황은 멀쩡하다는 거네?”
“그래.”
다행이었다.
희생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전설 등급 건물 하나가 파괴되었을 뿐이다.
“나갈 방법부터 고민해야겠군.”
“가기 전에 라면 시식만 해주고 가라. 네가 의식을 잃은 덕분에 손님이 끊겼거든. 지금은 12차 개발품이다.”
“…….”
여전히 라면에선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위희린의 마지막 모습도 가관이었다.
그렇게 무게 잡던 천마께서도 옴뇸뇸거리며 라면을 시식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맛이길래.”
“흐흐. 일단 드셔 봐.”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먹어서 손해 볼 것도 아니었고.
“참고로 독 같은 거 타면 네 손해다. 알지?”
“흥. 통하지도 않던데 무슨.”
“……뭐?”
“아, 아무것도 아니다.”
“…….”
이러나저러나 주민성의 몸뚱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도 않는다.
이 부분은 장 박사를 통해 의도치 않게 검증된 모양이다.
딱히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라면 끓이는 고양이가 자는 사이에 깨물었다 정도의 감각이었으니까.
“에휴.”
협회장과의 일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정말 큰 경험이었다.
특히, 뺨을 후려친 것으로 협회장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많이 해소됐다.
지금의 주민성은 객관적으로도 강했다.
‘메시지는 없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원.’
하성과 협회장도 당장은 사라졌으니 눈앞의 라면이나 먹으며 지금으로선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쨌든, 잘 먹으마.”
“그래. 클클.”
주민성은 각종 고명이 올려진 라면을 천천히 시식했다.
“……!”
어마어마한 맛이었다.
심지어 전보다 훨씬 발전된 맛이었다.
이 정도면 천마나 7번 세입자가 감동하는 게 당연한 수준.
맛부터 식감까지.
종로구에서 먹었던 것보다 최소 30배 이상으로 맛있는 라면이었다.
“……장 박사.”
“맛이 어때? 흐흐.”
“내가 종로구에서 먹었던 라면이 몇 번째 개발품이었지?”
“그때는 3차였지.”
“…….”
주민성은 장 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기 전에 라면 시식만 해 주고 가라. 네가 의식을 잃은 덕분에 손님이 끊겼거든. 지금은 12차 개발품이다.
뭔가 괴리감이 상당했다.
3차에서 12차로 단숨에 넘어온 것부터 이상하다.
“……혹시. 나 며칠이나 의식을 잃었어?”
“그걸 내가 알 턱이 있나. 관심도 없는걸.”
“……그럼 신제품 라면은 몇 시간에 걸쳐서 완성되는데?”
“아아. 그거라면 알지. 평균적으로 125시간. 이번 11차에서 12차로 넘어오는 데 걸린 시간은 211시간이었다. 스크린으로 바깥 구경하는 게 워낙 재미있어서 제법 걸렸지.”
“콜록!”
장 박사는 이런 말도 했었다.
-네가 이곳에 온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더군. 덕분에 시간의 흐름도 돌아왔고, 바깥 상황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어.
인벤토리 내부와 바깥에서 흐르는 시간이 같아졌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즉, 주민성이 의식을 잃고 수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깨우지 그랬어!”
“나는 할 만큼 했다! 심지어 극독을 주입해도 멀쩡한 놈은 처음이었…….”
“…….”
장 박사는 최선을 다한 모양이다.
단지 주민성이 어울려주지 못했을 뿐.
“아오.”
신우빈과 봉춘향이 여의도에 있길래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성아영과 11번 세입자도 강북에 있었고.
몇 시간쯤 지났을 거라 생각했었다.
“몇 주는 가뿐히 지난 거네?”
“그렇겠지?”
“에라이.”
주민성은 남은 라면을 서둘러 들이켰다.
협회장과 하성의 소식은 여기선 도저히 알 수 없었고, 대격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민성이 없어도 남은 동료들의 활약 덕분에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잠시 후 스크린이 전환됐다.
이번에는 임진석의 텐트였다.
“…….”
임진석은 콩이를 데리고 폐허가 된 강남을 산책 중이었다.
왜인지 모르는 생존자들이 굉장히 늘었지만, 하나같이 마석을 상납하는 모습이었다.
“흥! 임진석 저 가증스러운 놈!”
사람이 몬스터를 산책시키고 쓰다듬는 모습에도 다른 생존자들의 표정엔 두려움만 있을 뿐.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각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은 건가?”
“아아. 그거라면 알려 줄 수 있지.”
“뭔데?”
“네가 의식을 잃은 뒤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어.”
이는 카오스 게이트와 연관되어있는 걸까.
건물 폭발이 마냥 소용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대격변이 끝난 건 아니라는 소리군.”
그래도 다행이긴 했다.
협회장이나 하성, 악마 등의 개입이 없는 분위기였으니까.
스크린이 몇 차례 더 바뀌었지만, 기존 세력원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심지어 아린의 박진우마저도 살이 좀 많이 빠진 것 같았지만, 꽤나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길드장 곁을 지키고 있었다.
“오케이. 대충 알았다.”
척.
주민성은 텅 비어 있는 라면 그릇을 내려놨다.
“맛은 어땠지?”
평가는 느낀바 그대로 할 생각이었다.
딱히 평가 절하할 이유도 없었고.
“쯧.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여섯.”
“……흥. 역시 더 개선해야겠군.”
“이거면 됐지. 대체 무슨 라면을 만들려는 건데?”
“누가 먹어도 호들갑 떨 정도의 라면을 만들 거다. 인간의 감정을 미각만으로 지배하는 거지. 크큭.”
“……어휴.”
늙어서 걸리는 중2병도 있는 모양이다.
주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 이곳저곳을 풀기 시작했다.
다행히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근손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가라. 이제 나는 14차 라면 개발에 몰두할 예정이니.”
“오냐.”
주민성은 스크린 너머를 바라보며 동료들과 재회를 상상했다.
건물 관조의 감각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
“…….”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인벤토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안 가나?”
“…….”
주민성이 힘겹게 대답했다.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