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면전 (1) (192/250)


전면전 (1)
2022.06.11.


어느덧 저녁.

일과를 마친 인천 게이트의 생존자들은 식사를 위해 주거지로 모여들었다.

“여어. 오늘은 괜찮은 물건 건졌냐?”

“중고 세탁기 하나 건졌다. 넌?”

“나는 게임기 한 박스 득템.”

“뭐? 한 개도 아니고 박스?”

“그래.”

“미쳤네? 고기 쏴야지!”

“크크크……. 따라와라. 오늘은 이 몸이 쏜다.”

화기애애하게 오늘의 수확을 자랑하는 이들도 있었고.

“오늘 너무 늦었나 봐. 겨우 헌 옷 조금 건졌어.”

“그게 어디야. 나는 종일 선반만 나르고 이용료 겨우 치렀는데.”

“그 정도면 굶진 않고 휴대폰 충전까지 할 순 있겠네.”

초라한 수확으로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극과 극의 차이였지만,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휴게시간을 이용한 방송 시청이었다.

방송을 통해 유입된 생존자인 만큼, 이들의 여가엔 방송 시청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헐. 티몽 죽었네?”

“게이트 잠복 콘텐츠 하다가 갔다더라.”

“아오. 대격변이면 몸이라도 사리지. 제발 좀 안전한 콘텐츠만 했으면.”

“이 동네 말고 안전한 콘텐츠 가능한 지역이 있었냐?”

“…….그것도 그렇네. 쯧.”

“그냥 노아 방송이나 봐라. 속 편하다.”

“재방으로 볼래. 어차피 우리 하는 일이 노아 콘텐츠랑 똑같잖냐.”

생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대체로 자극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근데 협회장은 뭐하길래 아직도 잠잠하냐.”

“모르지. 입장 발표 기다리다 늙어 죽을 듯.”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공중파 나온다!”

“……진짜로?”

“어! 대박!”

호기심에 채널을 돌린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이 정보는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덕분에 모여든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공중파 채널로 돌린 상태.

목소리엔 희망이 가득했다.

“협회장 입장 발표 떴냐!”

“대박 사건!”

“믿고 있었다고! 젠장!”

그리고 10분 뒤.

-사슴이 질주를 시작합니다. 육식 동물이라도 감지한 걸까요.

생존자들은 절망했다.

“……뭐야.”

“사슴의 생태계가 대격변이랑 무슨 상관인데.”

“슬퍼……. 내 미래 같아……. 엉엉.”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나오는 방송이라곤 하나같이 기분을 처지게 만드는 종류였다.

“앵커들 왜 안 나와. 뉴스는…….”

“혹시 몰라. 곧 8시니까 그때 나올지도…….”

1시간 뒤.

안타깝게도 생존자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가 끝나면 슬픈 영화가 송출되고, 영화가 끝나면 또 다른 다큐멘터리가 반복됐다.

“으어어…….”

“우튜브가 선녀로 보인다…….”

갑작스런 공중파 송출 덕분에 생존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이 이 꼴 났는데도 협회는 일을 안 하네…….”

“……대체 왜?”

협회장에 대한 신뢰가 의구심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 * *

같은 시각 방송국.

주민성은 신우빈과 합류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방송국을 점거했을 줄이야.”

신우빈은 푹신한 의자에 눕다시피 몸을 젖혔다.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줬던 텐트는 어쩌고?”

“날려먹었지.”

“쯧.”

주민성은 혀를 차며 새로운 텐트를 건넸다.

“땡큐.”

“뭐 하다가 날려 먹었는데? 유럽에서 보스 몬스터라도 사냥하고 다녔나?”

“겨우 그 정도로? 훨씬 바쁘게 지냈다.”

신우빈은 천천히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처음엔 비석 조사로 시작했었지. 덕분에 대격변 발생은 일주일 전부터 예측했었고.”

“……오호.”

의기양양한 표정.

생각보다 거둔 성과가 큰 모양이다.

신우빈은 국장실 바깥을 향해 말했다.

“파벨.”

“예. 도련님.”

신우빈과 동행하던 말끔한 차림의 외국인이다.

“전속 호위 바뀐 거야?”

“아니. 한 명 추가된 셈이지.”

그리고 외국인이 주민성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우.”

“…….”

“파뷀 임뮈다.”

“굳이 한국어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호오?”

방송국도 주민성의 건물 중 하나였다.

만물소통이 적용되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따윈 없었다.

“파벨이라고 합니다.”

“주민성입니다.”

“오! 주민성 씨! 발음이 상당히……. 음?”

파벨의 표정이 해괴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능력? 아닌데. 능력이라기엔 좀 더 다른…….”

만물 소통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덕분에 주민성의 표정도 해괴하게 변했다.

“과연 FFF급은 다르군요.”

주민성의 이름은 세계에도 널리 알려졌다.

스쳐가는 이슈였지만, 이름만 들어도 바로 연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할 리는 없다.

“FFF급은 다르다라.”

파벨의 말투에는 비아냥거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진지했다.

“아아. 저는 FF급 능력을 각성해서요.”

“……FF급?”

이번에도 비아냥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진지했다.

진짜 FF급 능력자라도 되는 것처럼.

주민성은 신우빈과 파벨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실이다. FF급.”

신우빈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눈앞의 파벨이라는 남자는 진짜로 FF급 능력자였던 것이다.

“……건물주는 아닐 테고. 무슨 능력이신지.”

“아아. 저는 분석가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분석가요?”

“예.”

과연 FF급답게 특이한 능력이었다.

직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분석가라는 단어에 다른 수식어가 붙어야 진짜 직업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수십 년 전 꿈의 직업이라는 건물주도 그랬다.

사실은 단순히 건물의 주인을 뜻하는 호칭이었다.

“능력.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하면서도 복잡한 질문이었다.

FFF급이 말하는 능력 설명은 단순히 어떤 능력이라고 답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니까.

그리고 파벨이 답한다.

“아뇨. 설명하긴 어렵군요.”

“……맙소사.”

이 대답은 주민성을 가장 경악시키는 대답이었다.

때문에 확인 차 되물었다.

“성장하는 능력입니까?”

“그렇습니다.”

“……메시지는요?”

“뜹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눈앞의 파벨이라는 남자는 주민성과 같은 부류였다.

“그럼 여태 유럽에 있던 이유가…….”

“그래. 파벨 때문이었지. 참고로 파벨은 한국에 왔었다.”

“헐?”

신우빈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협회에서 빼돌리려는 걸, 중간에 낚아챘지.”

“……나이스.”

아니나 다를까.

파벨은 협회장도 노리던 타겟이었다.

주민성과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에 있던 모양이다.

“신우빈. 협회장 능력 아냐?”

“몰라. 끔찍하게 악랄한 인간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것밖에.”

“후후.”

덕분에 주민성의 표정도 한결 밝아질 수 있었다.

이현 덕분에 협회장의 능력을 알았으니까.

“협회장. 타인의 능력을 사거나 빼앗을 수 있대.”

“그건 무슨 미친……. 아아……. 그럴 수도 있겠군.”

다행히 쉽게 납득했다.

주민성에 이어 파벨까지 겪어 봤기에 답은 쉽게 도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빼앗겼으면 큰일 날 뻔했군.”

“그보다 파벨 씨 능력이나 설명해 줘. 넌 알 거 아냐.”

파벨의 능력은 제3자인 신우빈이 더욱 잘 설명할 수 있을 터였다.

본 것만 그대로 설명하면 되니까.

“아주 유용한 능력이지. 공간을 분석하고, 답을 도출해내는.”

“어렵다. 좀 더 쉽게.”

“예를 들면.”

신우빈이 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주민성의 미간을 노렸다.

“……뭔데.”

“내가 널 공격한다 치자. 죽이기 위해.”

“…….”

실제로 신우빈에겐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민성도 경계할 정도로.

“굳이 피하지 않아도 된다.”

“……얼굴에 구멍 날 것 같은데.”

곧이어 잭나이프가 주민성을 향해 던져졌다.

쉬익!

“……아.”

덕분에 주민성은 파벨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됐다.

잭나이프가 허공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설명은 파벨이 대신했다.

“국장실의 분석은 끝났습니다. 어떤 공격이라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거친 설명을 가만히 당할 이유 따윈 없었다.

때문에 다음은 주민성의 차례.

“그렇군요.”

주민성의 손엔 어느새 짱돌이 들려 있었다.

“……야. 주민성. 잠깐만.”

“분석 끝났다며? 나도 테스트는 해야지.”

파벨은 가만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힘 조절 안 한다?”

콰드득.

주민성의 악력에 짱돌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읏차.”

이후엔 전력 투구.

쐐애애액!

짱돌은 정확히 신우빈의 미간 앞에서 멈춰 있었다.

여기까진 예상대로였지만, 예상을 벗어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메시지였다.

[이미 분석된 공격 패턴입니다.]

[유효하지 않은 공격으로 처리됩니다.]

친절하게도 어떻게 공격이 실패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대박이네.”

파벨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는지 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석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군요?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분석가 능력도 대단하네요.”

“하하.”

“둘이 뭐라는 거야.”

덕분에 파벨이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는 파악했다.

주민성은 신우빈의 핀잔에 대꾸하지 않고 파벨에게 물었다.

“파벨 씨.”

“네.”

“인벤토리. 있죠?”

“예. 있습니다. 분석용 인벤토리라고 하더군요.”

“역시.”

주민성은 세계 최초 공식 FFF급 능력자일 뿐.

비슷한 능력자라면 다른 나라에도 존재했다.

특히, 미국엔 이런 능력자들이 모인 집단도 있었다.

바로 스미스가 소속된 길드였다.

“신우빈과 협회 말고도 스카우트 제안은 안 왔습니까?”

“예. 각성 제안은 한국 능력자 협회와 신성 말고는 없었지요.”

여기서 궁금해지는 점.

신성은 어떻게 파벨의 존재를 알아차렸는가였다.

또한, 어째서 주민성 자신은 스카우트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 탓 아니다?”

눈치빠른 신우빈이 재빨리 대답했다.

“파벨 스카우트는 아버지 제안이었어.”

“아.”

이번엔 신성 회장 신명철이었다.

확실히 협회장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 회장님. 무슨 능력자야?”

“나도 몰라.”

“흐음…….”

일단은 아군이라고 봐야 했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협회장의 위험성을 진작 알아차리고 견제해온 인물이었으니까.

“혹시 미국과도 연계……. 아아.”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스미스는 신성 측 용병이었으니까.

신명철과 미국 능력자 집단 사이엔 접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덕분에 구도가 그려졌다.

“일단은 협회장 빼고 다 같은 편이라고 보면 되는거지?”

“그래. 그 부분은 걱정마라. 협회장만 제대로 끝장내면 2차 대격변은 우리가 극복해낼 거다.”

“…….”

주민성은 차마 답하지 못했다.

어느 미래에선, 여전히 2차 대격변을 극복해내지 못했으니까.

‘그 세입자. 조만간 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똑똑.

“대장님.”

찝찝한 기분을 느끼려는 찰나, 봉춘향의 노크가 이어졌다.

“들어와.”

“예.”

봉춘향이 국장실에 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현재 작전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보고하기 위해서.

“의정부 팀에서 하성과 교전을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의정부 팀은 최선호와 김정남, 유호영이었다.

“강북팀도 합류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케이. 이현 씨한테 전달해 줘.”

“예.”

이미 빵빵한 의정부팀 스펙에 강북팀까지 합류하면 일살은 이걸로 확실히 몰아세울 수 있을 터였다.

“교전 상황은?”

“처음엔 다소 고전했지만, 지금은 최선호 씨의 활약으로 역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30분 안에 승기를 잡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행히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의외로 최선호가 활약하고 있다는 걸로 보아 추방자 능력은 지금도 매우 순탄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제법이군. 주민성.”

“인재야 워낙 많으니까.”

봉춘향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은 강남 팀입니다. 임진석 씨가 포획한 생존자들이 폐허를 계속해서 헤집고 있지만, 협회장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다는 소식입니다.”

“임진석이 포획한 생존자? 임진석은 뭐 하는데?”

봉춘향은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괜찮아. 편히 말해 봐.”

“그, 그게……. 콩이 줄 마석 때문인지 몬스터 위주로 사냥 중입니다.”

“…….”

임진석은 골 때리는 개인 임무를 수행 중인 듯하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상대가 협회장이라 저항감도 있었을 테니까.

“흠. 이래도 협회장이 안 나오네.”

“방송 좀 더 자극적인 걸로 가 봐. 협회장 행태 폭로 방송이라든지.”

“그래야 하나.”

아직 카오스게이트에 관해서 새로운 발견은 없는 상황.

방송과 건물, 그리고 협회장이 연관되어있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파벨이 신우빈에게 당황스런 표정으로 말을 건네왔다.

“도련님.”

“음?”

“여의교에 설치한 트랩이 파훼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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