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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작전 (4)
2022.06.10.


“……심각한데.”

[생명력을 흡수해 카오스 게이트를 생성합니다.]

레이너가 쓰러진 이유는 분명 이 효과 때문이다.

그동안의 건물 부가효과는 전부 이용자에게 혜택만을 안겨줬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건물 내부이기 때문에 외국인을 상대로도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고통스러워도 절대 기절하시면 안 됩니다.”

“크윽……! 알겠습니다……!”

입 안을 깨물었는지 레이너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한 수단이리라.

주민성 역시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조치를 취했다.

“이용료 청구.”

“……!”

“침착하게 돈 내세요.”

가장 안전한 수단은 레이너를 건물 밖으로 빼는 것이지만, 정작 이 방법은 호위를 줄여 주민성을 역으로 위험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 건물, 정확히는 카오스게이트 발생기를 설계한 누군가는 생명력 흡수라는 터무니없는 디버프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여, 여기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용료 납부 과정이 끝나고 잠시 후.

“……맙소사.”

다행히 레이너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기존 부가효과가 증폭된 덕분이었다.

소모된 생명력 때문인지 크게 지쳐 보였지만,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어때요?”

“……괜찮아졌습니다. 저는 대체 무슨 공격을 당했죠?”

“아직 몰라요. 이 건물이 위험한 건물이라는 사실밖엔.”

“…….”

레이너는 분노 어린 눈으로 천장을 노려봤다.

보이지 않는 공격에 당했다고 착각한 것 같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력이 흡수되는 불쾌함이 제대로 가셨는지 레이너는 계속해서 건물을 탐사하길 원했다.

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성우혁과 합을 맞추는 SS급 능력자인데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고 당했으니 말이다.

“어떤 놈의 짓인지 몰라도, 머리통만 남기고 짓이겨버릴 겁니다.”

“응원하죠.”

이제 건물 내부를 본격적으로 탐사할 차례.

1층은 잠잠했으니 이제 위층을 확인해야 한다.

건물이 주민성의 소유가 된 만큼, 선봉은 굳이 레이너가 설 필요 없었다.

소유 건물 안에서의 건물주는 거의 무적이니까.

“엄호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벅. 저벅.

엘리베이터는 응시만 한 채로 타진 않는다.

이곳에 만약 주민성과 레이너 말고도 누군가가 있다면, 절대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2층도 비었습니다.”

“흐음.”

하지만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텐트를 덧입어 탐색 범위를 넓혀봤지만 여전했다.

“대체 여기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점점 찝찝해집니다.”

섬찟한 일이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방송국은 멀쩡히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편집실에선 수십 년 전 방송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전 예능 방송이 나오고 있다.

누군가가 일부러 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이너.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게이트 공기와 다를 바 없어요.”

방송국에 사람이 들렀던 건 확실한 상황.

남은 답은 한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주민성은 생각을 레이너에게 공유했다.

“이곳에 들렀을 누군가는 근처의 다른 방송국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렇습니까?”

레이너의 입가가 실룩였다.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앞두고 기대감이 부푼 모양이다.

“쫓거나, 기다렸다가 잡거나. 어떤 방법을 선호하시는지?”

주민성 일행이 어웨이인 이상,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핵심 지배층만 제대로 낚아채면 그만이니까.

다른 방송국도 의미 모를 카오스게이트 발생기인지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무방했다.

“당연히 기다리는 쪽이죠.”

“좋습니다. 화력이라면 옥상이나 로비. 기습이라면 여기나 화장실도 괜찮을 듯합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보다 레이너 씨.”

“예?”

레이너의 제안은 나쁘지 않다.

전부 도움 되는 방향이니까.

하지만 빠져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페널티를 중화시켰다곤 해도, 지금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태일 텐데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흐음.”

이 건물은 지금도 유일한 생존자인 레이너의 생명력을 야금야금 흡수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용료 청구는 임시방편.

건물 부가효과라면 텐트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기에 방송국에 계속 머무르는 건 득보단 실이 더 많았다.

“일단 바깥에서 대기해주세요. 건물은 점거했으니까.”

“……점거요? 잠깐 들렀다는 쪽이…….”

“아무튼 점거 맞습니다.”

“…….”

어쩌겠는가.

갑은 주민성인데.

적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건물주 능력의 유용함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일단 바깥에서 잠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레이너는 순순히 물러났다.

“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판단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아군을 떨어트린 이유가 있었다.

“이젠 꺼내도 되겠지.”

바로 콰트리취의 안대를 쓰기 위함이었다.

“괜히 우리 편한테 미친놈으로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건물이 기능을 할 경우.

이럴 땐 높은 확률로 영혼이 관련되어 있다.

헬스장도 그랬었고.

그렇게 주민성은 혼자 남아 콰트리취의 안대를 착용하며 어딘가로 향했다.

“영혼이 있는 장소는 아마도…….”

도착한 장소는 편집실.

고전 예능이 틀어져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하하…….”

“흐흐…….”

헬스장과 비슷한 사연인걸까.

눈빛이 죽어있는 영혼들이 가득했다.

“……대체 왜?”

예능과 영혼.

아무런 이유 없는 막무가내식 배치는 아닐 터였다.

이 설비의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영혼을 활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제멋대로 알아서 돌아가는 건물이라면 이전에 태양의 순례지를 봐 와서 알고 있었다.

“보자……. 건물 효과가…….”

주민성은 건물을 소유했을 당시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전설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이용료를 소모하여 건물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 목록은 건물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재화를 통해 강화되는 건물. 재화는…….”

[생명력을 흡수해 카오스 게이트를 생성합니다.]

이 건물의 재화는 생명력이었다.

그리고 영혼들은 영혼 없는 웃음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영혼의 웃음을 재화로 쓰는 것마냥.

“어라? 뭔가 그럴듯한데?”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건물의 복구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니까.

주민성은 그대로 인벤토리에서 바위덩이를 꺼내 편집실 모니터에 집어 던졌다.

“읏차.”

콰장창!

놀랍게도 효과는 있었다.

그제야 영혼들이 주민성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좀 많이 허해지셨네.”

“으어……?”

이 건물의 영혼들이 건물에 이용당하고 있는 게 반쯤 확정된 이상, 가만히 내버려둘 이유는 없었다.

보낼 곳도 얼마든지 있었고.

“영혼 재배치.”

주민성에게 해를 끼친 영혼은 태양의 순례지로 유배된다.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카오스게이트 발생기에 존재하는 모든 영혼들.”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그리고 해를 끼치지 않은 영혼은.

“헬스장.”

초월한 헬스장에서 재활 훈련을 거쳐 건강한 영혼으로 탈바꿈된다.

“으어?”

“나중에 다시 봅시다.”

파밧!

능력이 발현됨과 동시에 모든 영혼들이 사라졌다.

그제야 주민성은 편하게 의자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무슨 의도였을까. 이것도 협회장과 관련 있는 걸까.”

주민성은 BBA 방송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BBA라면…….”

정상적인 언론은 아니었다.

중립이라기 보단 한쪽에 명백히 치우쳐진 언론이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대격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줄도 못 서면 곧장 나락으로 가버리는 시대였으니까.

“그 당시의 친정부파였지.”

다시 생각해보니 협회가 정부를 집어삼키기 몇 달 전.

BBA는 소리 소문 없이 공중파에서 밀려났었다.

폐국 선언도 따로 없었고, 다른 채널에선 협회장 취임식이 대대적으로 방송되었던 시기였다.

“임진석이나 성아영이면 알려나?”

연구에만 미쳐있는 장 박사보단 협회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둘이라면 이 방송국이 사라진 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물론 거기까지 파고들 생각은 없었지만.

“방송국 사람들은 협회장 입맛대로 죽어나간 거고. 죽어서도 이용됐다고 봐야겠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 건물을 통해 협회장은 어떤 이득을 취하려 했는가였다.

2차 대격변 이후, 언론은 지금까지도 입을 열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분명 카오스게이트와 협회장. 그리고 악마 집단과 대격변은 일종의 관계성을 띠고 있다.

“카오스게이트가 뭘까.”

카오스는 혼돈.

게이트는 말 그대로 게이트다.

긍정적인 뜻은 아니었기에 카오스게이트는 협회장을 적대하는 주민성에겐 해가 되는 요소가 확실해 보인다.

“아무튼, 협회장이 하는 일과 반대로만 하면 되잖아?”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나중에 초월시키자.”

주민성은 그대로 방송국을 빠져나와 성우혁과 합류했다.

“레이너가 부상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

“저야 멀쩡하죠.”

방송국 바깥엔 마저 합류한 서풍 길드원들과 이현이 있었다.

“그보다, 작전을 조금 바꿔야겠어요. 왜냐면…….”

영혼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협회장에 의해 문을 닫게 된 방송국과 희생된 방송사 직원들에 대해서만 설명해도 충분했다.

“그,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협회장을 증오한다.

하나같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건물 안에선 고전 예능 방송들이 틀어져 있더군요. 사람의 웃음을 통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이 정보는 직접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체험을 해본 레이너가 아주 잘 해석할 수 있었다.

“인간만을 상대로 한 대량 학살 무기…….”

덕분에 주민성도 협회장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그것도 원격이죠. 방송만 보면 바로 당해버리는.”

방송을 보기만 해도 해를 입는 상황은 정말 그럴듯했다.

대격변이 일어난 이후, 정상적인 방송사는 아무런 방송도 내보내지 않고 오직 우튜브로만 정보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중파 채널이 가동된다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것이 확실했다.

여기서 협회장의 공식 입장이라도 나온다고 예고된다면 더더욱.

“네. 그래서 작전을 바꿀 계획입니다.”

아직 주민성이 말했던 장소에서 집결 중인 인원이라면 꽤 있는 상황.

대표적으로 임진석이 여기에 해당했다.

“이현 씨.”

“네.”

“성남시청 팀. 목적지는 강남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강남은 이미 봉춘향에 의해 폐허가 된 상황.

오히려 좋았다.

거기 있던 방송사도 전부 박살 났을 테니까.

여기서 협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방송국은 지방 방송국, 그리고 여의도 방송국이 있었다.

“강남에서 뭘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가서 소란만 피우라고 전해 주세요. 그쪽 몬스터나 쓸어버리면서.”

“예.”

협회장의 본진은 강남.

파주나 여의도에도 나름 시설을 갖춘 느낌이지만, 그 또한 돈을 사용하는 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많은 돈이 모여드는 강남을 포기할 수는 없을 터.

여기서 임진석은 협회장을 자극해 지방 방송국 쪽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다른 방송국까지 전부 챙깁시다.”

그렇게 주민성과 각 팀은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작전을 시작했다.

“…….”

주민성 팀의 점령 과정은 너무나도 순탄했다.

BAC, KUG. UBS 등의 메이저 방송사 건물이 전부 주민성의 차지가 됐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들이 쓰는 건물이 카오스게이트 발생기가 아닌 평범한 방송국이었다는 것.

“이거 참…….”

그리고 3사 방송국 직원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따로 가둘까요?”

레이너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주민성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답했다.

“아뇨. 마침 송출 준비 중인 것 같은데. 이거나 우리 입맛대로 하죠.”

“……예?”

주민성은 방송국장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송출합시다. 원래 편성하던 프로 말고. 최대한 슬프고 재미없는 것들로. 다큐멘터리, 슬픈 영화. 뭐든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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