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장 (2)
(187/250)
협회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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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 (2)
2022.06.06.
“2차 대격변 전부터요? 그게 가능해요?”
몬스터를 수하로 부리는 것.
절대로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설령 가능하다 한들, 협회장이라는 직함에 걸맞은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차질이 있어야 했다.
“예. 그 악마 같은 인간은 가능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게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는 게 것 정도…….”
“어떤 몬스터였는데요?”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처음엔 단순히 머디머디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머디머디……. 맞나요?”
“네.”
머디머디는 진흙 슬라임의 변종이었다.
이것으로 정혁수가 다루는 몬스터는 액체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피도 흐르고, 고통도 느끼는 것 같은. 더욱 끔찍한 녀석이었죠.”
“아.”
기괴한 표현이었지만, 주민성은 이현이 표현하는 몬스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거의 크라슈잖아?’
크라슈는 기괴한 살덩어리 그 자체였다.
사람 얼굴만 붙어 있었을 뿐.
이현이 당시 목격했던 건, 대충 얼굴 없는 크라슈 정도였을 터였다.
그리고 크라슈의 정체는 악마였다.
“그때 이미 협회장은 악마와 연계 중이었던 거군요.”
“맞습니다.”
“그에 관한 뉴스는 여태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니, 폭로도 실패하셨고요.”
“……예.”
과거의 이현은 협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 최강으로 불리던 남자였다.
아마도 둘 사이의 격차가 벌어진 건, 협회장이 악마와 손을 잡고 난 이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협회장에게 능력을 빼앗긴 이후였으리라.
“심각하네요.”
협회장의 막장스러운 대응엔 이유가 있었다.
진작에 침공자들과 한통속이었으니 제대로 된 대응을 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협회장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봐야 한다.
강남 실종사건과 협회장의 능력을 매치시켜 알 수 있었다.
“강남에 고등급 능력자를 모았던 이유가 있었네요.”
“아아. 그쪽은 기억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주민성은 이현에게 강남과 관련된 정보들을 공유했다.
또한, 실종 사건과 더불어 하성의 움직임을 상세히 알려줬다.
“강북과 강남. 양쪽 다 문제군요.”
“네…….”
처음엔 단순히 협회장의 움직임만 주시하며 하성부터 확실히 견제하려 했었다.
“빙의했던 악마. 목적이 뭐였죠?”
“……확실히는 모릅니다. 머지않아 악마들이 종로구로 집결한다는 것밖엔.”
“후우…….”
하지만 이현의 신병이 주민성에게 넘어간 지금.
주민성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상대는 협회장이었다.
악마들이 종로로 모이는 이상, 협회장도 이곳에 올 가능성이 컸으니까.
‘세입자 넷으로 감당이 될까?’
물론 세입자는 약하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허무하게 밀리는 구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세입자들이 패배했을 경우의 리스크가 너무나도 컸다.
‘만약 협회장이 세입자들의 능력까지 빼앗게 되면…….’
그땐 모든 게 협회장 마음대로 될 터였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미래였다.
“그래도 지금 회복 속도라면 이전의 기량은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SSS급 전력인 이현이 추가된다.
그 또한 협회장과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있었기에 실력은 100%로 보일 게 확실하다.
마찬가지로 패배 후 재도전의 찬스는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상황이다.
패배하면 모든 걸 잃는다.
“……그렇습니까.”
절망적인 상황과 반대로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능력자가 된 이후엔 언제나 이런 식이었기에 떠오르는 미소였다.
“거하게 한 판 저질러야겠네요.”
“……네?”
주민성은 강심장이다.
적어도 인간 중엔 최고의 강심장을 자부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마석까지 이식되었으니.
“변수야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흑막들이 죄다 종로에 모인다는 거잖아요? 대비해야죠.”
악마가 태양의 순례지로 유배되고, 이현의 정신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상대가 모른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협회장도 메시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는 게 맞다.
타인의 능력을 빼앗는 건, 정상의 범주를 넘어섰으니까.
“이현 씨.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직설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기존 식구들이야 주민성이 공식 후원자로 나서서 상관없었지만, 보통은 능력자에게 가장 실례되는 대표적인 질문이었다.
“……능력이 궁금하신 거죠?”
“네. 그래야 작전을 구상하니까요.”
역시 이현은 주민성의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거절하기도 어려운 질문임을 알고 한 것이다.
눈앞의 상대가 은인이라면 더더욱 힘들 테고.
“……알겠습니다.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오셨다는데 돕지 않을 수가 없지요.”
조력자 하나 없이 실패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이현의 표정은 개운해 보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제 대표 능력은 초가속이었죠.”
“네.”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속도에 있어선 이현이 세계 최고라는 걸.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은 아닙니다.”
“……예?”
“그 능력의 정체는 공간 점멸입니다. 원하는 위치 어디로든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죠. 목적지가 어디든. 가봤던 장소라면 0.001초 안에 갈 수 있습니다.”
“…….”
월드클래스 능력자답게 첫 능력부터 사기였다.
이런 능력이라면 징검문으로 이동하는 크룩스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센터장 이규석을 완벽한 하위호환으로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능력은.”
“…….”
“소거입니다.”
“소거요?”
“말 그대로 지정한 공간을 소거시킵니다. 대상이 심장이라면, 그대로 지워버릴 수 있죠.”
“……”
두 번째 능력은 더 사기였다.
자르기로 마음먹은 건 뭐든 잘라버리는 임진석을 하위호환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었다.
“세 번째는 보호 장막입니다. 지정된 공간에 들어오는 모든 간섭을 막아낼 수 있죠. 설령 그것이 정신간섭계라 하더라도.”
“…….”
이현은 사기 능력으로 점철된 초사기 능력자였다.
악마가 빙의해 온 와중에도 자아를 지켜낸 건, 이 능력 덕분일 터였다.
이쯤이면 협회장에게 패배한 게 신기할 정도.
“그런데도 협회장에게 왜 패배했냐는 표정이군요.”
“……아.”
“그럴 만도 합니다. 이해해요.”
기동력, 공격력, 방어력.
모든 게 완벽한 삼위일체 능력을 갖추고도 진다는 건, 상대가 이 모든 걸 맞받아칠 수 있을 더 사기적인 능력으로 무장했다는 뜻이리라.
“맞대결은 이뤄지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절 유인해 왔었어요. 제 목숨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인질 삼아.”
“…….”
그리고 주민성은 이현의 변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인질로 붙잡혀도, 정작 구하러 온 당사자가 패배를 인정해버리면 인질도 전부 상대 마음대로 유린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주민성은 아군이 납치당할 것도 대비해 온갖 조처를 끝낸 상태였다.
“처음엔 놈의 상반신 전부를 없앴습니다.”
“……공격이 불발된 건가요?”
“아뇨. 실제로 없앴습니다.”
“…….”
뭔가 이상했다.
상반신이라면 심장과 뇌 모두가 해당된다.
하지만 지금의 협회장은 아주 멀쩡했다.
게다가 보호 장막 능력이 있으면 환각이나 최면 등의 능력도 통하지 않았을 테니, 이현의 주장은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그놈. 죽지 않습니다. 머리와 심장이 날아가도 멀쩡히 살아있더군요.”
그러면 협회장이 이현의 공격 수단을 전부 파악했던 거라 봐야 했다.
상대가 이현인 만큼, 더욱 철저하게 함정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공격이 실패했다는 걸 깨닫기까진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부모님과 여자친구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공간 점멸 능력을 사용했었죠.”
이번엔 부정형.
실패를 암시했다.
“그땐 이미 제 몸이 움직이지 않더군요. 몸도 의식도 전부 악마에게 빼앗긴 이후였습니다. 저항이라곤 악마 놈이 보는 걸 같이 보는 정도. 그것도 하루에 10분 남짓이었습니다.”
이현이 말했던 끔찍했던 기억들은 그 10분이 쌓이고 쌓여 누적된 것이리라.
이 부분에 대해선 주민성도 더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나 사연은 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상대의 아픔은 헤집지 않는 게 주민성의 신념이다.
“능력.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지금 해야 할 건, 주어진 전력으로 최선의 작전을 짜내는 것이다.
“덕분에 협회장이 해 오던 것들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협회장의 비밀 한 가지가 추가로 밝혀졌다.
바로 실험체였다.
‘협회장은 모종의 이유로 이현의 능력을 빼앗지 않았다. 아니면 빼앗지 못했거나. 때문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실험체나 간부를 육성했겠지.’
크룩스에겐 공간 이동 능력이, 장 박사가 끌고 온 실험체 중엔 문어 같은 녀석이 있었다.
여기서 당장 주어진 단서만 종합해도 새로운 정보를 끌어올 수 있었다.
첫째로 심장을 소거시켜도 살 수 있었던 점.
문어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은 3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민성이 직접 균열로 보내 버렸던 실험체는 누가 봐도 문어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협회장은 진작부터 여분의 목숨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봐야겠군. 정확히는 불사일까.’
제르취의 존재를 협회장이 모르고 있던 게 천운이었다.
‘게다가 나나 크룩스는 계속해서 성장해나갔지.’
주민성의 성장 속도는 말할 것도 없었고, 크룩스 또한 출력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지금의 크룩스는 수백 미터쯤은 간단하게 이동할 수 있는 징검문을 열 수 있었다.
주민성을 벼랑 끝에 밀어 넣고도 엉뚱하게 관대했던 협회장의 태도와 상황이 얼추 들어맞기 시작했다.
‘적당히 성장하면 그때 직접 능력을 수확하려는 생각이었군. 임진석이나 성아영도 수확 대상이었을까?’
새로운 단서는 얻었지만, 의문점은 또 있었다.
장 박사의 또 다른 실험체 때문이다.
그 실험체는 지금도 주민성의 게이트에서 숙면 중이었다.
‘말도 안 되게 빠른 실험체였…….
순간, 이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능력의 정체는 공간 점멸입니다. 원하는 위치 어디로든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죠. 목적지가 어디든. 가봤던 장소라면 0.001초 안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덧붙였다.
’그 실험체가 이현 씨 하위호환은 맞는 걸까?‘
수마에서만 벗어난다면 완성형 실험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주민성이 안산보다 인천에 상대적으로 수비인력을 몰아넣은 것도, 실험체의 전투 능력을 믿는 덕분이었으니까.
“골치 아프네. 지금도 강한데 더 강해져서 뭘 하겠다는 건지……. 아.”
이현은 어느새 라면집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름의 배려로 보인다.
덕분에 주민성은 자유롭게 작전을 구상하기로 했다.
“일단 정면 대결은 무리. 기습이라면 기회 한 번 정도는 있으려나…….”
물론 이번 기습 담당은 이현이 아니었다.
협회장이 확실히 눈치채지 못할 만한 카드는 세입자였으니까.
게다가 이현과 협회장의 맞대결도 먼 과거의 이야기.
지금의 협회장이라면 한 번의 기습조차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민성은 한 번의 기습을 확신했다.
“그동안 내가 일궈 왔던 거의 모든 것들을 협회장은 몰라.”
그리고 당연히 기습의 대상엔 하성도 포함된다.
시간, 지리적인 문제는 이현의 공간 점멸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 주민성의 역할은 탄약만 넉넉히 지급해줌과 더불어 조금의 양념을 곁들이는 것뿐이었다.
“세입자들은 어떻게 운용하는 게 좋을까.”
특징이 파악된 기존 전력들과 달리, 세입자들은 전부 초면인 상황.
그런 탓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무하게 5번 세입자를 잃을 뻔했다.
거기에 몇몇 능력만 없었다면 주민성 자신도 위험할 수 있었다.
세입자를 잃어본 적은 아직 없었지만, 페널티 또한 확실히 존재할 터였고.
따라서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핵심 임무는 좀 그렇고, 손발부터 먼저 맞춰봐야겠군.”
이로써 세입자들은 임시 기습 멤버에 포함됐다.
다음은 기습 작전을 위한 명령 하달 차례.
이는 문자로 충분하다.
-호명된 인원은 전투 준비를 갖춰 지정된 장소에 집결 바랍니다. 대규모 기습을 시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