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장 (1)
(18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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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 (1)
2022.06.05.
“이, 이게 무슨…….”
녀석도 메시지를 읽은 모양이다.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물주 능력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다.
악령이라든지 고대의 영혼을 정확히 지정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런 것도 가능했다.
“얘.”
그냥 손가락질로 대상을 가리키면, 알아서 필터링되는 방식도 가능한 것이다.
[악마 연금술사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아, 안 돼애애애!”
“돼.”
털썩!
이런 황당한 전개에 악마 사냥꾼이 읊조렸다.
“주, 죽은 건가?”
그리고 11번 세입자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배를 꿰뚫리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전부 반대로만 이뤄지는 자문이잖아요!”
“그럴 리가 없는…….”
꿈틀.
악마 연금술사의 영혼이 빠져나갔음에도 남자는 한차례 피를 토하고는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헉! 여긴 대체…….”
놀라운 정신력이었다.
악마에 상당 기간 씌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남자는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살폈다.
“목소리가 달라요……. 전처럼 기분 나쁘지 않은 목소리에요.”
악마 탐지 1타 강사 천사의 평가였다.
영혼이 재배치되었음에도 의식이 있다는 점 역시 눈앞의 남자가 인간이 확실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끄으……. 당신들 대체 누구야…….”
악마를 태양의 순례지로 유배 보낸 이상, 자초지종은 이 남자에게 들어야했다.
따라서 주민성의 선택은 눈앞의 남자를 살리는 것.
“이용료 청구.”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악마 사냥꾼과 악마에 씌었던 남자는 몸 상태를 완벽하게 회복했다.
“이건 대체 무슨 치유 능력인지……. 엘릭서랑 다를 게 없잖아…….”
악마 사냥꾼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배를 매만지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그냥 능력이에요. 조금 사기적인.”
이는 주민성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원 경매장처럼 부담스러운 능력도 아니었고, 그냥 발 한번 디뎌서 아무렇지 않게 챙긴 건물이 알아서 효과를 발휘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건물 밖으로 나가면 여러분과 의사소통이 안 됩니다. 따라서 대화는 이곳에서 전부 끝낼 계획입니다.”
“끄, 끝내다뇨?”
3번 세입자가 크게 당황했다.
“앗…….”
생각해 보니 천사의 목표는 악마 토벌.
그러나 정작 악마는 전부 주민성이 퇴치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유급이라고요…….”
“아차상 드립니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다른 악마가 있는 장소부터 알려 주세요!”
처음 느낀 감정은 뻔뻔함이었다.
전부 따지고 보자면 지금의 사태의 원흉은 천사였으니까.
“……내가 왜요? 그쪽이 첫 악마 놓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텐데.”
주민성은 마지막으로 유배시킨 악마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협회장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아는 악마였고, 더욱 가까워진다면 약점부터 대격변의 타개책을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차선책인데, 왜 내가 미안해하면서 악마를 대령해 줘야 하냐 이 말입니다.”
“으, 으으…….”
“그렇다고 내가 판을 이상하게 깔아 준 것도 아니죠? 악마는 정확히 찾았어요. 공략은 당신의 몫이었고.”
“하, 하지만……. 그 녀석이 갑자기 탈피까지 해 가며 도망쳤다고요….”
“그게 세입자 씨의 실책이었습니다.”
“……흑.”
주민성은 아미를 찌푸리며 말없이 수염을 쓰다듬는 7번 세입자에게 보온병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도움 감사했습니다.”
“이건…….”
“한정판 라면입니다. 육수에 면 말아서 드시면 되고요. 여기 젓가락이요.”
“끄응…….”
이것으로 동정여론까지 막아냈다.
5번 세입자인 악마 사냥꾼이야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 충분했고, 11번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했기에 발언권이 부족했다.
악마에 씌었던 남자 역시 눈치챘다.
주민성이 자신을 구해냈음을.
“유급은 그쪽 사정이잖아요. 재촉보단 부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
다행히 말귀는 있는 천사였다.
“……죄송해요. 다음에 마주치는 악마는 제가 꼭 잡을게요.”
“좋습니다.”
다행히 이번 세입자 집단은 주민성의 통제범위 안에 들었다.
하성을 끌어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30분간 정비하겠습니다. 보물은 차원문 통해 도착했던 건물에 있으니 알아서들 챙기시고요.”
“오오!”
“먼저 챙긴 사람이 가지는 거 맞죠?”
5번과 11번의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둘 다 보물이 목적이었던 만큼, 이들에게 있어 보물은 악마보다 우선이었다.
“네. 얼마든지.”
파밧!
팟!
그렇게 둘은 순식간에 주민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 상관없겠지.’
차원 경매장을 다룰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우두머리인 악마들까지 처리했으니 단순한 방해꾼인 몬스터들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으리라.
그리고 7번 세입자인 노인은 라면에 잔뜩 몰입했다.
“어마어마한 탄력……. 조리되자마자 먹었으면 어땠을는지……. 흐으.”
심지어 젓가락질조차 범상치 않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간격으로 면발에 육수를 머금게 튕겨낸다.
능력이라도 같이 사용하고 있는지 허용량이 넘은 육수는 면발에 침투하지도 않는다.
후룩.
한 번의 젓가락질.
그럼에도 면발은 끊임없이 올라간다.
이쯤이면 젓가락은 기분 상 들고 있는 수준이었다.
“으음……!”
노인의 표정이 쉴 새 없이 변했다.
이는 주민성에게도 중요한 부분으로, 차원급 강자인 노인을 포섭하느냐 마냐의 문제였다.
쿠구구구……!
곧이어 건물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으음! 음!”
동시에 가공할 정도의 열기가 퍼져나갔다.
이는 주민성에게도 부담스러울 정도.
“저기……. 아직 겨울 아닌데요.”
“……!”
그제야 노인은 주민성과 라면을 번갈아 바라보며 탄식했다.
“허어……. 미안하네. 내가 이런 실수를…….”
다행히 기운을 갈무리해냈는지 열기는 금세 가라앉는다.
“미안하네. 세기의 면 요리 장인을 못 알아봤구먼.”
“……크흠.”
“아아. 소개가 늦었군. 길지황이라고 하네. 이제 막 속세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
“주민성입니다.”
“주 씨라……. 좋은 성을 가졌구려.”
“그렇습니까.”
“적어도 내가 있는 차원에서 주 씨 가문은 걸출한 인물이 많기로 아주 유명하지.”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신중하게 라면을 음미했다.
아까처럼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잘 풀리겠군.’
주민성은 말없이 여분의 보온병을 테이블에 올렸다.
노인은 악마처럼 한 번만 먹고 미식이니 폭식이니 같은 헛소리는 하지 않을 터였다.
맛있으면 더 먹는 게 정상이니까.
그리고 말했다.
“대화. 조금만 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예.”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던 남자.
스프레이로 단단하게 고정했던 머리카락이 건물 부가효과에 풀리며 헝클어지자 누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현. 맞죠?”
“…….”
이현.
한때 협회장과 함께 한국의 자랑이었던 SSS급 능력자의 이름이었다.
“절……. 알아보십니까?”
“당연하죠.”
“……시간이 많이 흘렀을 텐데.”
한때는 그랬다.
모든 능력자들의 롤모델은 정혁수 아니면 이현이었으니까.
최근의 이현은 언제부턴가 유해 능력자들의 대표격 인물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반인은 그의 근황을 조금도 알 수 없었다.
“협회장하고 마찰이 있으셨겠죠.”
“……그걸 어떻게.”
“저도 피해자입니다. 주민성은 아시죠?”
“……잘 모릅니다.”
“…….”
의외의 대답도 아니었다.
악마에 씌었던 그동안의 행적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유해 능력자가 되었을 그 시점.
이현은 이미 이현이 아니었을 터였다.
“몇 년 되셨죠?”
“……10년쯤 되었습니다.”
악마에 쓰인 와중에도 최소한의 의식만큼은 지켜낸 모양이다.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정신 질환을 얻은 모양이지만.
이현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아. 이거라도 쓰면 조금 나을 겁니다.”
주민성은 이현에게 텐트 패션을 전수했다.
보기엔 우스꽝스럽겠지만, 더할 나위 없는 치료제였다.
“후우……. 후우……. 감사합니다.”
“진정되면 말해 주세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디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건지도.”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반드시 알아야 했다.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협회장을 쫓는 데 있어 이현은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보셨을 겁니다. 몸을 빼앗긴 이후로도 당신은 협회장과 접촉했을 테니.”
“…….”
“추궁이 아닙니다. 10대 길드와 접촉해도 협회장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어요. 대체 무슨 짓을 꾸미길래 이렇게까지 모습을 감추는지…….”
이현은 눈을 끔뻑거리며 주민성의 분노를 읽었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도울 수 있으면 도왔지.”
“그건 압니다……. 주민성…… 씨가 제 은인이라는 것도.”
“…….”
“끔찍한 기억 때문에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5분. 아니 1분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
주민성은 느긋하게 5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현의 입이 열린다.
“……정혁수. 악마보다 더한 놈입니다. 협회장 자격도 없어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저항했었죠. 녀석에겐 협회장의 자격이 없다고.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여기부턴 주민성도 모르는 얘기였다.
“놈은 유명해짐과 동시에 정치인부터 암살하기 시작했죠.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 인간을 지지하기까지.”
“…….”
협회장은 예상보다 훨씬 행동파였다.
“그리고 다음은 제 차례였죠.”
협회장의 타겟이 되었음에도 이현이 살아있다는 것.
이는 협회장의 의도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100%의 실패는 아니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이현은 악마에 씌었으니까.
“…….”
이현은 감정이 북받치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피를 토해내듯 또박또박 읊조렸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박제되었습니다.”
“……!”
이현이 말하는 박제는 주민성이 겪었던 언론 박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끔찍한 박제였다.
“능력으로 안 되니 더욱 비열하게 나오더군요. 제 여자친구는 지금도 핏기 없는 얼굴로 그 악마 놈의 집 한켠 벽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
“부모님이요?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영상까지 보내오더군요. 그런 와중에 언론은 이미 정혁수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권력 싸움이라기엔 그 방식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악독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게 정혁수의 능력입니다. 타인의 능력을 돈으로 사거나, 빼앗을 수 있습니다.”
“…….”
주민성은 온몸에 돋은 소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건물주보다 훨씬 해괴한 능력이었다.
“……빼앗는다고요?”
“예. 믿기 힘드시겠지만…….”
“아뇨. 믿을 수밖에 없어요…….”
이제 확실해졌다.
협회장은 주민성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럼 여태까지 실험체를 양성해 온 이유가…….’
타인의 능력을 사거나 빼앗는다는 것.
주민성을 여태껏 살려 두고 실험체를 양성해온 이유와 연관성이 있었다.
‘능력을 성장시키고 회수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단순히 부하를 늘리려는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놈에게 조력자가 생겼더군요. 저에게 씌었던 놈도 그 집단과 한패입니다.”
“……수장도 아니고. 한패요?”
“네. 중간 이상은 되는 듯하지만, 우두머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는 강남에 있었거든요. 그때 알게 됐죠.”
“…….”
웨어울프에게 들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네놈에게도 도움 될 정보겠지. 종로구엔 악마가. 강남구엔 지옥 연금술사들이 강림할 예정이다. 그리고 놈들은 한패다.
그리고 영혼 재배치 당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악마 연금술사의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이 정보엔 연금술사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협회장……. 처음부터 게이트 몬스터와 한패였네요…….”
“2차 대격변 이전부터입니다…….”
“…….”
주민성이 꾸려온 것과는 달리, 협회장은 도시 한복판에서 세력을 불려 오고 있었다.
스케일이 처음부터 달랐다.
그 인간은 진작에 전 세계를 상대로도 싸울 수 있는 전력을 갖춘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