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악마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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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악마지? (4)
2022.06.04.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뭐야. 폭죽놀이 정도는 학습된 거 아니야?”
“내가 아는 놀이의 뜻은 이렇지 않다!”
확실히 크라슈는 상당한 어휘를 구사했다.
만물 소통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주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이다.
그런 탓에 주민성은 조금 귀찮더라도 설명을 덧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더욱 큰 공포를 느끼길 바라며.
“폭발은 알지?”
“아, 알 것 같기도 하고?”
“뭐. 올라가서 이해해도 되고. 대충 여기 대포에서 한 번. 공중에서 한 번. 합쳐서 두 번 폭발할 예정이야.”
크라슈의 포신에 밀어 넣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용자 입장에서 건물주에게 저항하는 건 상당한 페널티가 적용되기에 쉬운 과정이었다.
“설명은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충분하지 않다!”
이렇게까지 압박했음에도 도망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천사가 어마어마한 부상을 입혔거나, 악마가 모종의 페널티가 있는 수단을 이용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주민성에겐 잘된 일.
“그러면 어쩔 수 없고.
주민성은 바닥에 누워 텐트포의 폭발 범위에서 멀어졌다.
그리곤 나직하게 말했다.
“건물 폭발.”
콰광!
“크아아아아아!”
과연 악마랄까.
맷집이 장난 아니었다.
녀석이 포신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폭발력을 버텨냈을 정도로.
물론 그 대가는 더욱 큰 부상.
놈의 살점이 폭발력을 대신 받은 탓에 화약 대신 사용하는 다른 텐트는 멀쩡했다.
그 말은 즉, 추가 발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건물 폭발.”
콰과광!
“끄어어어어어!”
화약 대신 넣은 텐트는 5개.
이번에도 크라슈는 폭발을 버텨냈지만 텐트는 3개가 더 남아있었다.
“건물 폭발.”
꽈광!
“끄르르륵!”
“건물 폭발. 건물 폭발.”
콰과광! 쾅!
“끄어어……!”
드디어 발사에 성공했다.
조준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던 상태라 크라슈는 그대로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얼굴을 찌푸리며 멀어지는 크라슈를 바라보며 2차 타격의 계산을 끝마쳤다.
“3. 2. 1.”
하급 건물과 고대 건물은 폭발력부터가 다르다.
하급 건물인 텐트의 폭발력이 1이라면 고대 건물인 고대 땅굴 벌집은 5 정도.
거의 5배의 가까운 폭발력을 자랑한다.
“건물 폭발. 벌집.”
크라슈의 몸뚱이에 박아 넣은 벌집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제 녀석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끔찍한 육편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질 뿐.
하늘은 어느새 새빨간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부족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부족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부족 등급이 상승합니다.]
…
이어지는 메시지는 녀석이 확실히 죽었음을 재확인시켜줬다.
게다가 이젠 건물주 등급과 부족 등급이 함께 상승하기에 보상은 더더욱 달콤했다.
수많은 보상들 중 눈여겨볼 만한 것도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에 악마 덫 효과가 추가됩니다.]
[악마 종족이 건물주가 소유한 건물에 더욱 이끌립니다.]
[악 성향 개체의 수명을 감소시킵니다.]
건물 부가효과에 새로운 능력이 추가된 것이다.
이는 상당히 드문 경우로, 악마 크라슈를 사냥했기에 해금되는 능력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부족 능력도 추가됐다.
[부족 제물(풍장)이 해금됩니다.]
[제물을 하늘로 날려 보내 부족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별게 다 추가되네. 좋군.”
이 정도면 신호탄으론 충분할 터였다.
땅에 떨어지는 것만큼 허공을 비산하는 육편도 많았으니까.
“읏차.”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눈삽을 꺼내 크라슈의 조각난 육편을 라면가게 앞으로 모았다.
이는 세입자를 위한 배려로, 봤으면 빨리 들어와서 다른 악마까지 처리해 달라는 신호.
즉, 주민성은 라면 가게에 방문한 또 다른 악마까지 사냥할 계획이었다.
‘내가 크라슈가 아니라는 것도 머지않아 들키겠지. 살려 보내면 내 손해야.’
마무리 작업까지 끝마친 주민성은 우비를 대신하던 텐트를 벗어던지고 라면 가게 내부로 돌아왔다.
또 다른 악마는 지금도 만족스런 표정으로 장 박사표 라면을 음미 중이었다.
“자네. 제법 예술에 조예가 깊군.”
“……그렇습니까?”
역시 녀석도 정상은 아니다.
고어물에서나 볼 법한 연출조차도 예술로 바라볼 정도였으니.
“아주 감명 깊게 봤네. 자네와는 좋은 만남을 이어갈 수 있겠어.”
“…….”
눈앞의 악마는 크라슈와는 격부터가 달랐다.
심지어 부상도 입지 않은 아주 온전한 상태.
정면으로 맞붙어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온몸의 피부가 알리고 있었다.
물론 이용료 청구도 하고 싶었다.
능력이 어떻게 파훼되는지만 알아도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청구는 녀석이 약화됐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시간을 끌며 세입자들이 합류하기만 기다려도 되는 상황이다.
“라면. 더 드시겠습니까?”
“괜찮네. 폭식은 미식이 아니니까.”
“아하.”
식사를 마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색이었다.
‘시간을 더 끌어야 하는데.’
주민성은 남자와의 전투를 빠르게 시뮬레이션했다.
이기진 못해도, 버티는 것이라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회피 수단인 건물 관조가 보험으로 든든하게 있었으니 목숨은 절대 위협받지 않을 터였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괜찮겠지. 세입자 넷이라면 충분해.’
생각을 마친 주민성이 말했다.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저 사실. 크라슈 아닌데.”
“풋.”
남자는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네?”
단순히 오해했을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냥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봤어.”
“…….”
“자네. 인간이잖나?”
“…….”
그럼에도 여전히 위협은 없었다.
오히려 남자는 더욱 즐거워진 모양이다.
“인간이 나쁜 건 아니야. 우리에게 도움 되는 인간도 있으니까. 아주 많이.”
“…….”
“예를 들자면 정혁수라든가.”
협회장의 이름이 언급됐다.
이는 만물 소통이 아닌 명확한 한국어 발음이었다.
“자네도 마찬가지. 그 사내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모양이더군.”
놀랍게도 눈앞의 악마는 협회장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악마에게 도움까지 되는 인간이란다.
주민성도 그런 능력의 소유자로 보고 있고.
“이 사태. 인간들은 대격변이라고 한다지?”
“…….”
“우리에겐 아니라네. 지금은 기회…….”
남자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들 때문이었다.
푸슉!
남자의 가슴팍엔 어느새 화살이 꽂혀 있었다.
“……흐음.”
“어쩌죠. 이제 대화는 더 못 하겠네요.”
주민성은 그제야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개소리도 반복되면 고문이었으니까.
핵심은 이것이었다.
협회장은 적.
악마는 협회장과 한 편.
따라서 악마도 적.
그나마 눈앞의 남자는 회유의 여지가 있는 적.
이뿐이다.
그리고 주민성에겐 확실한 계약 관계의 아군이 존재한다.
바로 세입자였다.
콰르르!
부가 효과가 적용 중인 건물임에도 벽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 틈 사이로 세입자들이 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강한 개성이 느껴진다.
“……이게 대체?”
언제나 여유롭던 남자의 표정에 당황이 깃들었다.
특히 천사를 보고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남자는 주민성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해진 대답은 하나뿐.
“저 남자. 제압하면 추가 보상 있습니다.”
“……!”
세입자들은 어느새 남자의 사방을 포위했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쪽은 중절모를 쓴 세입자.
“보상!”
푸슈슈슉!
처음의 화살도 이 남자가 쐈던 모양이다.
느낌상으론 5번 세입자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너희들에게 허가되지 않았다! 어째서!”
푸슉! 푸슉!
남자의 입은 어느새 화살에 꿰뚫려 있었다.
“아니. 정식으로 입주를 허가받았어.”
그리고 3번 세입자인 천사가 끼어들었다.
“얼굴은 안 돼요! 온전히 목을 잘라가야 한다구요!”
“귀찮은 아가씨구만.”
그리고 다른 방향을 지키는 쪽은 노인과 젊은 여자였다.
‘코멘트로 떠올린 이미지라면 노인 쪽이 7번. 저 여자가 11번인가.’
대충 면 덕후 할아버지와 정의로운 아가씨의 이미지였으니 얼추 맞아 보인다.
남자가 주민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
주민성은 미소로 답했다.
“건물 관조.”
“뭐?”
주민성은 그대로 격리됐다.
이제 세입자 넷과 악마의 싸움을 팝콘이라도 먹으면서 지켜보면 된다.
“딱 봐도 강해 보이는데 뭐 하러 목숨 걸고 싸워?”
호승심도 호승심 나름이었다.
상대는 인간도 아니었고, 악마 중에서도 격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개체.
싸움은 해볼 만해야 싸움이라는 단어가 성립되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콰장창!
건물 내부 설비들이 고작 고함한번에 박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민성이 해야 할 건, 하나뿐.
[보온병이 수납됩니다.]
[보온병이 수납됩니다.]
“이건 챙겨야지. 상품용인데.”
주민성은 신나는 표정으로 세입자들을 응원했다.
그중 라면을 품은 보온병이 사라진 것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쪽은 노인이었다.
“……끔찍한 마물이로고. 용서할 수 없다.”
콰광!
“와. 맨몸 격투 할아버지.”
노인의 무기는 몸 그 자체였다.
이는 몸을 가리던 옷이 찢어지며 어마어마한 근육이 드러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정남 씨가 게이트 헬스장에서 50년쯤 운동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
퍼벙! 펑!
심지어 그런 할아버지의 맹공조차 악마는 제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크흐흐흐! 으하하하하!”
콰지지지지!
악마의 손에서 시커먼 구체가 뿜어져 나왔다.
인벤토리보다 더욱 끝을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격리 공간 너머로도 전해진다.
그리고 11번 세입자도 움직였다.
드디어 정상적인 무기인 검도 볼 수 있었다.
“하아압!”
검에서 뿜어지는 눈부신 빛이 악마의 구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뿐.
악마는 어느새 11번 세입자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크윽! 비겁한!”
주민성은 수첩에 세입자 전투력을 적어 나갔다.
“보기엔 11번이 가장 약해 보이네. 왠지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악마의 기술을 소멸시키는 기술은 높이 쳐 줄 만해.”
푸슈슉!
악마의 발목에도 화살이 꽂혔다.
동시에 느껴지는 기세도 감소한다.
“대충 상대를 약화시키는 화살이군. 디버퍼로 봐야하나? 악마 사냥꾼이라는 직업과는 잘 어울리네.”
정말 강한 상대였지만, 주민성의 수첩이 채워져 갈수록 승기는 세입자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이, 이 노옴!”
“에고. 벌써 10분이네. 건물 관조.”
이렇게 주민성의 격장지계까지 더해진 상황에 최강자들 간의 4:1 싸움이었다.
아무리 격이 높다 한들, 악마조차도 차원을 넘나드는 강자들의 공세는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30분이 지났다.
“커, 커억!”
털썩.
드디어 악마가 무릎을 꿇었다.
오히려 여태까지 서 있던 게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녀석의 몸통엔 수백 개의 화살이 꽂혀 있었고, 왼팔은 천사의 거대한 도끼가 잘라냈으며 온몸엔 7번과 11번 세입자가 남긴 상처가 가득했었으니까.
“후우……! 드디어 끝났나?”
5번 세입자 악마 사냥꾼의 승리 선언이었다.
“앗……. 끝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11번은 그런 악마 사냥꾼을 나무랐고.
콰직!
악마의 마지막 일격에 악마 사냥꾼은 배를 꿰뚫렸다.
“커헉!”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건물 관조 시간이 곧 끝난다는 것.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주민성은 5번 세입자에게 빠른 조치를 시작했다.
“이용료 청구.”
“……크윽! 무슨 짓이지?”
“치료 능력이요. 유료라서 효과가 좋습니다.”
“…….”
“이대로라면 아무리 그쪽이라도 죽을걸요. 완전 제대로 꿰뚫리셨구만.”
5번 세입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둔 악마는 그런 주민성의 모습을 핏발선 눈으로 뚫어질 듯 바라봤다.
“크흐흐…….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또 다른 몸뚱이로 돌아올 테니…….”
“……아하?”
악마의 비밀 하나가 또 드러났다.
녀석은 유물과 달리 직접 사람에게 빙의가 가능한 모양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주민성의 표정은 환희에 가득 찼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무슨 소리냐.”
“상대가 하필 나네?”
그리고 주민성은 악마가 눈을 감기 전에 작게 속삭였다.
“영혼 재배치. 태양의 순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