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악마지? (3)
(184/250)
이제 누가 악마지? (3)
(184/250)
이제 누가 악마지? (3)
2022.06.03.
[소유자가 없는 건물입니다.]
[소유자를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상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건물에 배치한 설비들의 효과가 2배 상승합니다.]
훼손이 거의 되지 않은 깔끔한 가게였다.
당연히 상급 건물이고.
“좋네.”
평범한 사람이 가지려면 협회의 승인도 받아야 하고 인테리어비에 임대료까지 내야 하는 등 밟아야 할 절차들이 너무나도 많은 건물이었다.
그럼에도 주민성은 발만 가져다 대는 것으로 진정한 능력적 소유를 실천할 수 있었다.
“잠깐만 쓰다 가겠습니다. 주인장.”
주민성은 식탁을 간단하게 정리한 뒤 이전에 예약해 둔 보온병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뜨끈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라면은 진작 완성된 모양이다.
꺼낸 보온병은 총 4개.
그중 하나엔 포스트잇이 있었다.
-보온병 하나 더 꺼내라. 네가 먹을 것도 만들어 뒀으니.
“아하.”
하나는 주민성의 것이었다.
“확실히 이게 유독 묵직하긴 하군.”
묵직한 보온병은 곱빼기인 모양이다.
주민성은 근처의 나무젓가락을 간단히 똑딱이며 입맛을 다셨다.
“악마야 천사가 제대로 처리해 줄 테니 잠깐의 식사쯤은 괜찮겠지.”
선물 챙겨주랴, 부족원 모집하랴, 세입자 모집하랴 정신없던 하루였다.
여기선 나를 위한 선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곁들여 먹을 건…….”
냉장고엔 락교와 단무지 등의 반찬들이 있었다.
김치라면 인벤토리에 얼마든지 있었으니 충분한 상황.
이것으로 밑반찬 세팅도 끝났다.
“읏차.”
주민성은 설레는 마음으로 보온병을 열었다.
윗칸은 삶은 면.
아래엔 육수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오호. 이런 센스까지.”
이런 세팅이라면 면이 불어버릴 걱정은 없을 듯하다.
7번 세입자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을 터였고.
시간을 끌 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비주얼이었으니까.
고명으론 팔크라스 고기가 들어갔는지 색깔부터가 영롱하다.
“흠흠흠.”
주민성은 육수통에 삶은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면에 국물이 스며들게끔 했다.
젓가락으로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면의 탄력이 계속해서 설렘을 자극한다.
“잘 먹겠습니다.”
이제 완벽한 세팅이다.
지금이 면치기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호로록! 호록! 호로로록!
예상대로 장 박사표 삶은 면은 굉장한 식감이었다.
끊어 먹기 아쉬울 정도로.
“으음……!”
육수도 팔크라스 고기를 사용했는지 감칠맛도 장난 아니었다.
“음!”
밑반찬을 집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맛이었다.
뭘 곁들여 먹든, 라면 본연의 맛을 해칠 것 같은 강박감을 심어주는 맛이었다.
따라서 주민성의 선택은 ‘그냥 먹는다’였다.
“……!”
무슨 반죽을 썼는지 씹을수록 고소함이 퍼져나간다.
중간 중간 섞인 야채들이 아삭한 식감을 더했다.
단순히 좋은 재료를 썼을 뿐만 아니라, 모든 조리 과정에서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맛이었다.
“맙소사.”
수십 대를 이어온 올곧은 라면 장인이 절로 연상된다.
하지만 주민성은 진실을 알고 있다.
이 라면은 장 박사가 만들었음을.
장인 정신은커녕 인류애라곤 조금도 없는 악당의 작품임을 알고 있었다.
“아니. 이런 재능이 있었으면서 왜 이상한 연구를…….”
주민성은 말을 멈췄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단순히 라면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연구를 성공시킴이 더욱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면으로 대성하더라도 그 본연의 맛은 장 박사만이 끌어낼 수 있을 것을 확신했다.
“그러네. 이건 양산해낼 수 없는 맛이야. 레시피가 있어도 따라 하기 힘든…….”
주민성은 아쉬운 탄식을 마치고 라면을 계속해서 들이켰다.
호로록! 호록!
곱빼기라 면은 넉넉한 편이다.
국물도 마찬가지였고.
부족함이라곤 전혀 없는 완벽한 맛이었다.
그렇게 두 젓가락쯤을 남긴 시점.
주민성은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감지했다.
‘……세입자인가?’
현재 종로구에 도착한 세입자는 5번 악마 사냥꾼을 제외한 셋이었다.
그중 외모가 파악된 상대는 천사뿐.
7번과 11번의 얼굴은 주민성도 모른다.
띠링.
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멀끔해 보이는, 그러나 기괴한 차림의 옷차림을 한 남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민성에게 말을 걸어온다.
“여유롭군.”
“…….”
이 말 한 마디론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최소 SSS급.’
명일학과 성우혁에게 느껴지는 기세 이상이었다.
과연 세입자답다.
‘진짜 악마로 추정되는 녀석은 이미 3번 세입자가 상대중이고. 타인의 개입도 원치 않겠지. 유급이 걸린 문제니까.’
상황 파악을 마친 주민성은 느긋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보온병을 건넸다.
“벌써 여기까지 오실 줄이야. 일단 드시죠.”
“……흐음.”
남자는 라면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7번인가? 말투가 좀 다른 느낌이긴 한데.’
그리고 보온병을 열어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요리군. 팔크라스 고기로도 이런 맛을 끌어낼 수 있었던가?”
“오호. 팔크라스 아시는구나.”
“여러모로 효율적인 고기니까. 나 또한 굶주리던 시절은 있었고.”
남자는 추억에 젖은 표정으로 팔크라스 고기를 고명처럼 올려 육수에 휘휘 젓기 시작했다.
그리곤 입에 넣는다.
“어때요. 맛있죠?”
“……호오.”
남자의 덤덤한 표정에선 묘한 귀기마저도 느껴졌다.
여러모로 꺼림칙한 느낌이다.
하지만 표현만큼은 긍정적이었다.
“……아주 훌륭하군.”
“그쵸?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라면일 겁니다.”
“특별한 선물을 받았군. 이번 1차 회의 때 자네 지분은 따로 더 챙겨 주겠네.”
“…….”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주민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국물을 들이킬 뿐이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뭐야. 세입자 아닌가?’
보물, 악마, 라면.
세입자들이 목표로 했던 무엇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대신, 회의나 지분 등의 엉뚱한 주제가 꺼내졌다.
“후후. 기쁘지 않은 표정이군. 제법 야망이 있어. 듣기론 인간들의 문화에만 심취했다던데, 전부 위장이었던 게야.”
이것으로 반쯤 확실해졌다.
세입자가 인간과 천사로 한정되어있는 만큼, 알 수밖에 없었다.
이 남자는 악마와 연관된 인물이라는 것을.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장단을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전부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호로록.
아마도 이 남자는 주민성을 종로구의 악마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만물 소통 덕분에 언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직 주민성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일 수밖에. 강북에 빙의한 놈은 너무 대놓고 나선단 말이지.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강북의 빙의한 놈이란 하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명일학이 제공했던 정보로 끼워 맞출 수 있었다.
“후후……. 하여튼, 선물은 아주 감명 깊었네. 아주 깊은 의미를 담았어. 후후후…….”
“……아하.”
의미를 담아도 장 박사가 담았을 터였다.
주민성은 알 수 없었지만, 악마에겐 뭔가 와닿은 모양이다.
‘아오. 세입자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더 이상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세입자 입장에선 당장의 방해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일 테니.
결국 지금의 난관은 직접 극복해야만 했다.
‘이용료라도 청구해 볼까? 그러기엔 호의적인 인상을 심어 준 게 나름 메리트 같은데.’
상대의 경지가 너무나도 높았다.
임진석에게 이용료 청구를 파훼당한 적도 있었기에 이용료 청구는 정말 최악의 상황에 꺼내야만 하는 카드였다.
‘계속 어울려주다가 빈틈을 노려야겠군.’
어찌되었든 처리해야 할 상대였다.
남자가 착각하고 있는 악마는 분명 3번 세입자가 상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으로 찾아올 누군가도 그녀일 가능성이 컸고.
‘그때가 최적이겠군. 아니면 다른 세입자의 합류라든지.’
남자의 시선이 주민성이 깔아둔 밑반찬으로 향했다.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기에 하나같이 가득 차 있었다.
“후후. 인간의 식재료는 그저 장식일 뿐이라.”
주민성은 최대한 악당 같은 썩은 미소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자네와는 말이 잘 통할 것 같아 기쁘군.”
“……감사합니다.”
이후의 대화는 없었다.
남자는 기꺼운 마음으로 주민성이 건넨 라면을 아주 맛있게 음미하며 먹었다.
곧이어 새로운 인기척이 감지됐다.
“음?”
남자 역시 알아차렸다.
식사를 방해받아 기분이 상했는지 살기가 넘실댄다.
벌컥!
문이 열리고, 피 칠갑을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 살려줘!”
“…….”
놀랍게도 여자의 정체는 3번 세입자가 아니었다.
얼굴만 여자였을 뿐, 그 이외의 부분은 끔찍하고 기괴한 살덩이가 가득했다.
‘진짜 종로구의 악마인가.’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답은 하겠다! 나 크라슈의 이름을 걸고!”
“……크라슈?”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주민성을 보며 말했다.
“자네를 사칭하는 녀석이 있군.”
“…….”
“……뭐? 크라슈는 나야!”
상황이 맞아 떨어졌다.
남자는 주민성을 크라슈라는 악마로 알고 있었다.
결국 사칭을 해온 건 주민성 쪽.
‘여차하면 2대1인가.’
자칫하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어디서 쓰레기가 굴러온 모양이네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남자의 표정이 풀렸다.
“……자네에게 맡기지.”
“…….”
덕분에 2대1 상황은 모면했다.
하지만 저 크라슈라는 악마를 처리하지 못하면 되레 위험해지는 건 주민성이 될 터였다.
“식사를 방해하는 건 내가 키우는 데빌도그만 할 수 있는 건데.”
“무슨 미친 소리냐! 네놈은 누군데 나를 사칭하는 거냐!”
주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크라슈의 앞에 당당히 섰다.
“내가 크라슈다. 버러지야.”
그리고 동시에 능력을 사용했다.
‘이용료 청구.’
크라슈에게 상급 건물인 라면집의 이용료가 부과됐다.
“크윽? 이, 이게 무슨!”
주민성은 약하지 않았다.
부상으로 너덜너덜해진 악마에게 쉽사리 당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콰직!
주민성의 손이 녀석의 살덩이를 꿰뚫었다.
그리곤 남자에게 말했다.
“식사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나가서 처리하죠.”
“……그러시게.”
다음은 크라슈의 차례.
“이제부터 누가 크라슈인지 정해 보자고.”
“마, 말도 안 돼! 네놈은……!”
이용료는 이미 청구됐다.
주민성에게 불리한 내용은 말할 수 없으리라.
크라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주민성에게 질질 끌려가는 것뿐이었다.
‘3번은 대체 악마 잡다 말고 어디 간 거야?’
녀석은 방금까지도 절실하게 살려 달라고 외쳤었다.
그렇다는 건, 3번 세입자의 제압에 실패했으며 도리어 쫓기고 있다는 뜻.
천사의 무시무시한 추적 능력에서도 벗어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때문에 주민성은 후속 조치도 철저하게 진행했다.
“딱 대.”
“……이, 인간?”
건물 밖으로 나와 만물소통이 풀려서일까.
녀석은 그제야 주민성의 말이 한국어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주민성은 이 말을 끝으로 인벤토리에서 벌집을 꺼내 녀석의 살덩이에 욱여넣었다.
콰직!
“헛소리하면 폭발한다.”
“너, 너는 누구냐! 악마라면 악마답게 이름을 밝혀라!”
“…….”
이쯤이면 관상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천사에 이어 악마에게도 악마 취급이었다.
“잠깐 이름 좀 쓰자. 조금만 크라슈 할게. 참고로 이거 통보야. 부탁 아니고.”
“……!”
주민성은 그대로 녀석의 멱살을 잡고 고민했다.
‘조금만 더 상황을 보고 싶은데.’
눈앞의 보잘것없는 악마보단, 지금도 라면을 음미중인 진짜배기의 정체가 궁금했다.
녀석이라면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 거라는 심증도 있었고.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5번 입주 신청자가 차원 이동을 시작합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분.]
5번은 악마 사냥꾼.
지금의 상황에 가장 걸맞은 세입자였다.
그의 합류라면 주민성의 행동 범위도 훨씬 넓어질 수 있었다.
‘차라리 세입자들을 전력으로 활용하자.’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텐트포를 꺼냈다.
그리곤 포신 안에 벌집들과 건물 잔해들을 쏟아 부었다.
뒤이어 크라슈도 포신에 욱여넣었다.
주민성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크라슈가 고개를 내밀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자, 잠깐만!”
하지만 주민성은 단호하게 텐트를 우비처럼 입으며 답했다.
“생각이 바뀌었다. 너는 지금부터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