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악마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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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악마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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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악마지? (2)
2022.06.02.
“입주 신청자 3번, 5번, 7번, 11번 승인.”
[입주 신청자 3번, 5번, 7번, 11번이 승인되었습니다.]
[입주자는 24시간 이내에 입주를 마쳐야 합니다.]
[시간 초과 시 위약금 30%가 수납됩니다.]
1세대 4인.
혹시 모를 페널티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입주가 목적이라기보단 다른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입주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주민성 역시 이들을 정식 입주자로 받을 생각은 없었다.
입주자들이 소란만 잔뜩 피우며 악마들만 퇴치하면 성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위약금 문제 역시 각오했던 바였다.
마력 대신 돈을 쓴다는 개념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보다 입주자는 언제 도착하나.”
주민성은 두 가지 플랜을 짜 둔 상태였다.
첫째는 입주자가 예상보다 약할 경우.
그럴 땐 입주자들을 부가효과나 잔해 추락 같은 간접적인 수단으로 그들을 지원하며 추가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
“일단 누구라도 도착해야 손을 쓸 텐데.”
두 번째는 입주자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그땐 무조건 방치였다.
이는 가르취나 차크취를 다룰 때 자주 써먹던 방식으로, 전투는 입주자들에게 맡기고 주민성은 강북으로 이동해 하성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는 작전이었다.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건물 관조.’
10분은 생각보다 빨랐다.
따라서 악마들의 이목은 재빠른 자가 격리로 회피해야만 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려나. 라면이라도 주문할까?”
그렇게 맛있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즈민성조차도.
치료가 급했던 천마조차도 이곳에 오기까지엔 긴 시간이 걸렸다.
“1시간은 기다려야…….”
주민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세입자 모집 이후 첫 관조였음에도 바로 차원문이 개방됐기 때문이다.
[3번 입주 신청자가 차원 이동을 시작합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분.]
“와. 빠르네. 천사라서 그런가?”
주민성은 흡족한 표정으로 3번 세입자를 지켜봤다.
“휴! 제대로 도착했을까요?”
나타난 건 양날 도끼를 들고 있는 여자였다.
몸집보다 커다란 도끼가 주민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크르르륵!”
그리고 여자의 혼잣말은 악마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바로 옆 건물인데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럼에도 여자는 태평하게 혼잣말을 이어나간다.
“어라? 악마가 저렇게 생겼었나?”
“크륵!”
창을 든 악마가 순식간에 여자의 목덜미를 찔러왔다.
“에잇!”
콰지지직!
놀랍게도 목덜미가 떨어진 쪽은 악마였다.
“놀랬잖아요!”
이런 황당한 전개에 주민성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세입자의 전투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어휴. 다른 차원이라 그런지 몸이 무거워요.”
왜인지 혼잣말도 존칭인 여자였다.
주민성은 수첩과 여자를 번갈아 보며 3번 세입자가 맞는지 재확인했다.
“천사라며…….”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존칭으로 혼잣말을 이어가니 더욱 섬뜩하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양날도끼도 닦지 않는다.
머리 위에 빛나는 고리도 없고, 날개도 없다.
“비주얼은 그냥 사이코패스 그 자첸데…….”
곧이어 다른 악마들 역시 일단 천사로 보이는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크히히!”
악마들은 확실히 개성이 강했다.
불덩이를 쏘아내는 녀석도 있었고 이상한 바늘을 뿌려대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목이 잘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에잇. 에잇.”
콰지직! 우직!
도끼날을 제대로 관리하질 않아서인지 매끄럽게 잘리는 소리는 조금도 없었다.
전부 부러지고 찢겨지는 소리였다.
“이얍.”
“캬아아악!”
완구점을 습격한 악마는 수십을 가뿐히 넘었다.
그럼에도 녀석들이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흘러가네?”
지금의 상황은 두 번째 플랜에 가까웠다.
일단 천사로 추정되는 여자가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용료부터 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이것도 보물찾기의 일환일까요?”
천사는 주민성을 찾는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이쪽은 세입자들에게 맡기고 마음 편히 강북으로 진입하면 그만이었다.
[건물 관조 종료까지 2분 남았습니다.]
“슬슬 다른 건물로 이동해야겠군.”
마침 건물 관조도 끝날 시간.
주민성은 동묘앞역 방향으로 인벤토리를 옮겨 텐트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아? 저쪽인가요?”
천사로 추정되는 여자가 텐트가 있는 곳으로 쇄도했다.
콰르르르!
[완구점2가 크게 손상됩니다.]
[건물 고유 효과가 반감됩니다.]
“아무도 없고 이상한 천 쪼가리만 있어요……. 이건 대체 뭘까요?”
상황이 바뀌었다.
저 여자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 인벤토리의 움직임조차도 알아차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
“젠장.”
주민성은 건물 이동을 포기했다.
이렇게까지 기척에 예민한 세입자를 속이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지금의 상황을 대처하고자 했다.
“뻔뻔하게 나가야겠군.”
타개책은 만물 소통.
상대가 누구든지 말이 통한다는 장점을 살릴 계획이다.
“설마 건물주를 죽이기야 하겠어?”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주민성은 천사가 쥐고 흔드는 텐트가 아닌, 부서진 완구점에서 출현했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의자를 세우곤 차분히 앉았다.
“어? 악마예요!”
당연히 천사는 주민성의 움직임 역시 알아차렸다.
왜인지 이상한 소리를 해오고 있었지만.
쉬이익!
쉬익!
쉬이이익!
“어라? 이상해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세 번의 도끼질이 있었다.
다행히 건물주와 세입자라는 관계성 덕분에 공격은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지만.
“……저 악마 아닙니다.”
천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메시지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저 함정에 빠진 걸까요……. 큰일이에요. 이런 상황은 있을 수가 없는데…….”
“악마 아니라니까요.”
“아아……. 악마의 속삭임이 이해되고 있어요. 심지어 공격할 수도 없어요. 이대로라면 유급은커녕 다른 차원에서 죽어버릴지도…….”
“아오.”
주민성은 말없이 이용료 납부를 위한 인벤토리를 내밀었다.
“에휴. 이용료부터 내세요. 악마 아니고 건물주입니다.”
“……으에?”
“내라고요.”
이번엔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니라, 확실한 억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금이었다.
“이건 확실히…….”
“아니. 제발 내 주세요. 여기 안전지대도 아니에요.”
“네…….”
[천사의 깃털이 수납됩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들이 내는 이용료는 현금이 아니었다.
위희린이 인형설삼을 수납시켰던 것처럼, 천사는 천사의 깃털이라는 개성적인 재화를 납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재화가 아니었다.
세입자가 건물주를 공격할 수 없다는 규칙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휴. 편안.”
이제 진짜 세입자가 된 천사가 말했다.
“저기요. 질문이 있는데요…….”
“네.”
“제가 악마를 죽여야 하거든요.”
3번 세입자의 목적은 악마 토벌.
악마라면 이곳에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주민성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네. 얼마든지 잡으세요.”
“악마 어디 있어요?”
“……네?”
주민성은 눈앞의 천사가 악마가 뭔지 모를 가능성을 계산했다.
그리고 이곳의 몬스터가 악마가 아닐 가능성도 체크했다.
‘어라.’
후자 쪽의 가능성이 더욱 컸다.
악마를 잡아야만 유급되지 않는 천사가 악마를 모를 리 없었으니까.
“방금 죽였던 녀석들은 뭐였죠?”
“네? 보셨어요?”
“…….”
천사는 지금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빙글거리며 답했다.
“그건 악마가 아니에요.”
“……아하.”
그렇다고 종로 게이트에 악마가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튜버 핑퐁을 죽인 기괴한 몬스터.
한국말까지 습득한 그 몬스터만큼은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은요…….”
주민성은 그럴싸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에 악마가 숨어 있어요. 방금 죽인 녀석들은 미끼. 진짜 악마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틈을 노리고 있죠.”
효과는 굉장했다.
“맞아요! 그래야 악마죠! 저는 기필코 악마 녀석의 모가지를 따 버릴 거예요!”
“네. 수고하세요. 파이팅. 그럼 저는 이만…….”
주민성의 발걸음은 길지 않았다.
천사가 어느새 소매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제가 이 차원은 처음이거든요. 길 안내 좀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네.”
주민성은 매정히 천사의 손길을 뿌리쳤다.
“저는 길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고 건물주입니다.”
“그래도요…….”
“여기서 세입자분이 하셔야 하는 건 보물찾기고, 저는 상품을 지급하고. 딱 여기까지의 관계입니다. 악마 토벌은 부가적인 거 아시죠? 녀석들은 단순히 방해꾼이에요.”
무난하고 단호한 답변이었다.
왜인지 천사는 크게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고.
“그래도 그냥 가면 매정하니까 악마라도 불러드릴게요.”
말을 마친 주민성은 곧장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폭발. 벌집.’
콰과광!
벌집이 있던 옆 건물이 그대로 폭발했다.
소란을 일으키기에 건물 폭발은 최고의 능력이었다.
“키야아아아!”
“캬아아아!”
천사피셜로 놈들이 악마가 아니라고 했었으니 이쯤이면 잠재적 악마라고나 할까.
멀리서 녀석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수고하세요.”
“으아아?”
주민성은 전력으로 동묘앞역까지 달렸다.
콰과과과과!
뒤이어 피보라가 주민성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천사가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쫓아 달려오는 것이었다.
“미치겠네.”
주민성은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나게 빨랐다.
꽃을 통한 도핑까지 있었기에 이 속도는 몬스터들조차 따라올 수 없는 속도였다.하지만 어떻게 되어 먹은 신체 능력인지 이 천사는 따라온다.
“아까 약해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정도야?”
이쯤이면 대격변 자체를 다른 차원에 맡겨버릴까 고민되는 정도였다.
적어도 몬스터에 전멸당하는 시나리오는 생겨나지 않을 테니까.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방금의 대답은 주민성이 한 게 아니었다.
다른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
“능력자님! 살려주세요!”
누가 봐도 우튜버 핑퐁을 죽였던 녀석의 목소리였다.
주민성이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아서일까.
너무 노골적이었다.
“……!”
천사가 걸어오는 말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곳은 건물 밖.
만물 소통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후우. 봐요.”
주민성은 바디랭귀지로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다.
손가락을 추켜세워 뿔을 만들고, 살려달라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가리켰다.
“악마. 저기.”
“……?”
그리고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이어갔다.
“죽이세요. 그럼 끝.”
그리고 작별 인사의 제스처로 마무리했다.
“……!”
천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디랭귀지가 통한 모양이다.
“그럼 수고해요. 나는 갑니다.”
“……!”
드디어 아름다운 이별이다.
천사는 악마에게 다가갔고, 주민성은 동묘앞을 지나 강북으로 향하면 된다.
[7번 입주 신청자가 차원 이동을 시작합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분.]
[11번 입주 신청자가 차원 이동을 시작합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 1분.]
뒤이어 새로운 세입자도 차원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과는 굳이 소통할 필요가 없다.
악마는 천사 선에서 끝날 테니까.
“좋은 테스트였다. 강북에는 세입자 한 명만 풀어놔도 되겠군.”
주민성은 이번 경험을 양식 삼아 더욱 효율적으로 세입자를 받을 것을 다짐했다.
“강북엔 아예 폭파광을 받는 게 나을지도.”
건물 폭발만 하더라도 몬스터 끌어들이는 효과는 일품이었다.
아예 폭발에 특화된 능력자를 섭외하는 데 성공한다면 주민성의 작전은 더욱 성공적일 터였다.
“7번이랑 11번은 둘 다 인간이었던가.”
[코멘트: 천하의 면 요리는 전부 먹어봤다. 나를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코멘트: 세상을 구원할 보물이 필요합니다.]
코멘트로 볼 때, 두 세입자 모두 온건한 성향일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사고를 친다면 그나마 7번.
천사의 사례로 볼 때 세입자들은 추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11번이야 보물만 챙기면 그만일 테고. 역시 7번이 걱정이군.”
이들을 실망시킬 경우엔 주민성도 감당하기 힘들 가능성이 컸다.
“혹시 모르니 라면까진 세팅해 둘까? 그럼 알아서 찾아와서 먹겠지.”
마침 지나가는 길에 일식 라면집이 보인다.
“저기가 좋겠군.”
주민성은 메모를 간단하게 적어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시식용 라면 4인분. 보온병에 넣어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