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악마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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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악마지? (1)
2022.06.01.
떨어진 장소가 하필 데이터도 거의 없는 몬스터가 출몰하는 종로구였다.
이런 사실에 주민성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후우.”
그래도 최악까진 아니었다.
창신동이라면 종로구 외곽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중구나 성북구, 동대문구로도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강북 근처네. 성북구 방향으로 이동하면 되겠어.”
하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을 예정이었다.
벌집이 추락하며 생긴 충돌음 때문에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주민성이 아직 격리 공간이라는 사실.
“건물 관조 몇 분 남았더라.”
[건물 관조 종료까지 6분 남았습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쏘아졌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히 남아있었다.
가양대교에서 종로까지 4분.
전부 김정남의 무시무시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6분 안에 어떻게든 저 녀석들을 요리해야 한다는 거네.”
곧이어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추락 장소 부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민성은 녀석들이 왜 악마라 불렸는지 깨달았다.
말 그대로 악마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우. 살벌하게도 생겼네.”
핏빛의 피부와 흰자위라곤 조금도 없는 새까만 눈.
박쥐같은 날개와 어마어마한 근육량이 누가 봐도 나 악마요 하는 비주얼이었다.
“저놈들이 몽룡이가 겪었던 악마였을까.”
악마는 웨어울프에게 들었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
더욱 전부터 송몽룡이 언급했었다.
심지어 쪼글쪼글한 노인 시절 송몽룡의 기절 버튼이었다.
“시간 정지 능력자에게도 트라우마가 되는 수준이라면 절대 만만하진 않을 텐데. 흐음.”
일단 맞붙어서 싸우는 건 하책.
상대를 떠볼 계획은 조금도 없었다.
주민성은 곧장 다른 건물로의 이동을 시도했다.
“저 건물이라면 놈들 눈에 띄진 않겠지.”
인벤토리는 벌집이 추락한 건물의 옆에 있는 완구점에 떠올랐다.
다행히 시점 범위는 꽤 넓은 편이라 옆 건물 내부가 비어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케이. 일단 저기로 하자.”
툭.
인벤토리에 있던 또 다른 텐트가 떨어졌다.
녀석들의 귀가 밝지만은 않은지 알아차리진 못하는 모양이다.
“그 사람도 녀석들이 파둔 함정에 죽었지, 쫓기다 죽진 않았으니까.”
주민성은 핑퐁의 마지막 방송을 되새기며 놈들을 분석했다.
“추적 능력은 떨어지나 영악하고, 맞붙으면 답 없는 수준이라.”
상황만 보자면 주민성에게 너무나도 유리했다.
특히, 지금처럼 격리 공간에 숨어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방식이 아주 유효해 보인다.
“하지만 안 돼. 정보가 부족하니까.”
주민성은 송몽룡을 아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시간 정지 능력을 가지고도 목숨을 건진 게 전부라면, 악마들에게도 나름의 끗발이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이렇게 가자.”
어느덧 건물 관조 종료까지 10초를 앞둔 상황.
주민성은 새로 꺼내둔 텐트의 번호를 기억하고 관조 종료를 맞이했다.
떨어진 벌집 위에서 주민성이 나타났다.
“안녕?”
건물 소유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눈앞에 있는 몬스터의 수를 줄여야 한다.
주민성은 주먹으로 눈앞에 있는 악마의 정수리를 전력으로 후려 갈겼다.
“적이다!”
빠각!
“크아아아아!”
공격은 적중했다.
손맛은 나쁜 편.
몬스터는 주민성의 일격으로도 죽지 않았다.
“새로운 제물이다!”
“건물 관조. 텐트 444.”
444번 텐트는 벌집이 떨어진 옆 건물에 잘 모셔져 있었다.
악마의 반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민성은 다시 격리 공간으로 이동했다.
“후우. 역시 쉽게 안 죽네.”
정수리를 맞고도 살아남은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전력으로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정상이긴 하지.”
주민성은 신체 강화 능력자가 아니었다.
물론 몸뚱이가 사기적이긴 하지만, 한계는 명백히 존재한다.
김정남의 성장을 보고 깨달은 점이었다.
“신체 단련에 진심인 사람은 이길 수 없으니까.”
주민성은 건물주였다.
건물주에겐 건물주의 방식이 존재한다.
이제부턴 건물주의 전투를 할 예정이다.
“10분 동안 만반의 준비를 갖춰 보자.”
주민성은 분노하여 벌집을 콱콱 찔러대는 악마를 무시하고 주변 건물들을 체크했다.
“문구점. 완구점. 종합문구점. 흐음.”
주변 건물들 상태가 이상했다.
완구 거리라도 되는지 전부 같은 콘셉트의 건물들뿐이었다.
“장난감이라. 저걸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거네.”
주민성은 건물 관조가 끝난 직후, 곧장 세입자 모집을 할 계획이었다.
정확히는 주민성 대신 악마들을 퇴치할 세입자를.
“난감하군.”
인천에선 맛있는 고기에 나름의 시설을 갖춘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곳은 때려잡을 수도 없는 몬스터가 득실대고, 잡히면 곧장 죽을 위기에 빠지는 게이트였다.
괜히 시설을 설치하거나 고기를 구워도, 세입자들과 대화를 나눠도 들킬 가능성이 크다.
즉, 주어진 건물들로만 어떻게든 장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물건들 상태는 좋은데.”
대격변에 문구나 완구는 쓰임새가 거의 없었다.
생존에 도움 되는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마가 서식하는 게이트다.
대격변 이후론 그 누구도 이곳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봐야 세입자에겐 전부 꽝이나 다름없고…….”
그때, 주민성의 뇌리에 좋은 아이디어가 스쳤다.
꽝 덕분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보물찾기?”
보물이라면 있었다.
심지어 즈민성의 창고를 털어서 잔뜩 챙겨 둔 상태였다.
동료들에게 뿌리고도 남을 정도로 아주 많이.
“오오. 뽑기 게임.”
장난감 속에 숨어있는 진짜 보물을 찾아라.
이것이 주민성이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됐다. 이거다.”
[건물 관조가 종료됩니다.]
생각을 구체화하니 2차 건물 관조도 끝을 맞이했다.
옆 건물에서 잠시 기척을 살폈지만, 악마들의 관심은 여전히 벌집에 꽂혀있었다.
그 사이, 주민성은 소유한 건물과 관련된 메시지를 빠르게 읽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입니다.]
[소유자를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상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건물에 배치한 설비들의 효과가 2배 상승합니다.]
다행히도 변수를 일으키지 않는 효과였다.
고유 효과는 오히려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었다.
‘나이스.’
이젠 작전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 챙겨둔 보물들을 꺼냈다.
‘음?’
왜인지 보물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장 박사가 붙여둔 모양이다.
-드디어 시험작이 완성됐다. 최대 30인분까지 가능하니 시식할 인원을 모아라.
개발 중인 라면도 제법 진전을 보였는지 시식단을 모으라는 내용이었다.
이 또한 주민성의 작전과 일치한다.
‘보상으로 적절하겠군.’
덕분에 몬스터 토벌 성공 시 요리 제공이라는 문구를 삽입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주민성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선반 이곳저곳에 보물을 숨길 수 있었다.
‘좋았어.’
건물 소유도 끝냈고 보물도 숨겼다.
이젠 정말로 본격적인 세입자를 모집해야 할 때.
주민성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옆 건물에 텐트를 숨기고 다시금 건물 관조 능력을 사용해 재격리됐다.
“아오. 힘들다.”
이렇게까지 격리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차원 경매장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퍼져나가는 파장 때문이었다.
악마라면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차원 경매장. 세입자 모집.”
이제 본격적인 모집 시간.
“음?”
앞으로 느껴질 탈력감엔 제법 대비를 해 뒀지만, 탈력감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강도였다.
이는 건물주의 기품 덕분인 모양이다.
다행히 주민성은 세입자 모집 문구를 더욱 편하게 삽입할 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종로 게이트 상가 1세대]
[일세 138만 원]
[차원에서도 내로라하는 보물이 숨겨진 건물]
[건물 내에선 치료 효과 있음]
[악마 다수 존재]
[보물 획득 시 한정판 면 요리 증정]
[이용료는 모든 악마 토벌 이후 받음]
“좋아. 등록.”
주민성은 만족한 표정으로 세입자 등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동시에 쏟아지는 메시지.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입주 신청 1건이 들어왔습니다.]
……
“후후후후…….”
전부 예정된 미래였다.
자신이 등록한 건물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주민성은 세입자를 골라 받을 수 있었다.
“누가 좋을까나. 입주 신청 확인.”
주민성은 세입자 리스트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우선순위는 선착순.
그중에서도 가장 간절한 세입자를 모집할 계획이었다.
간절한 만큼 협조적일 테니까.
[입주 신청자 명단을 표시합니다.]
[입주 신청 번호: 1]
[종족: 악마]
[입주 사유: 악마 토벌]
[코멘트: 원한다면 악마들 전부 회유할 수 있습니다.]
[입주 신청 번호: 2]
[종족: 천사]
[입주 사유: 악마 토벌]
[코멘트: 악마고 뭐고 전부 죽여주지.]
[입주 신청 번호: 3]
[종족: 천사]
[입주 사유: 악마 토벌]
[코멘트: 이번 달에도 악마 못 죽이면 유급이에요.]
[입주 신청 번호: 4]
[종족: 천사]
[입주 사유: 악마 토벌]
[코멘트: 악마를 산채로 씹어 먹어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입주 신청 번호: 5]
[종족: 인간]
[입주 사유: 보물 획득]
[코멘트: 제가 악마 사냥꾼으로 유명합니다.]
……
초반부만 읽었음에도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1번 지원자가 악마인 것부터 시작해 2, 3, 4번은 전부 천사였다.
하나같이 컨트롤하기 까다로워 보인다.
특히 전부 죽이겠다는 2번 세입자는 전투력은 강해 보이지만, 반드시 걸러야 할 세입자였다.
건물주인 주민성까지 죽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 라면도 관심 좀 주라고.”
심지어 면 요리가 목적인 세입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유급한다는 천사랑 악마 사냥꾼은 무난해 보이는군.”
아무리 유급을 앞뒀다지만 차원 경매장 능력을 쓸 수 있는 천사였다.
기본적인 전투력은 갖췄으리라.
또한 악마 사냥꾼 역시 깔끔한 거래 관계를 만들 수 있어 보인다.
“3번하고 5번을 모집해야겠군.”
너무 많이 모집하면 통제가 안 되고, 너무 적게 모집하면 악마들에게 역으로 죽임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 정지 능력자를 궁지에 몰았던 놈들이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두 명만 더 받아보자.”
주민성은 이어지는 입주 신청자들을 살폈다.
[입주 신청 번호: 6]
[종족: 인간]
[입주 사유: 생존]
[코멘트: 이번엔 종로인가? 일단 입주부터 시켜라.]
이번에도 미래 차원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어김없이 코멘트를 남겼다.
꺼림칙한 내용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강압적이다.
“버릇 고칠 때까지 패스.”
[입주 신청 번호: 7]
[종족: 인간]
[입주 사유: 증정 요리 시식]
[코멘트: 천하의 면 요리는 전부 먹어봤다. 나를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이번에는 왠지 천마와 비슷한 말투의 코멘트였다.
다소 오만해 보이긴 하지만, 그 말은 즉 위희린급의 전투력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과도 같다.
7번 신청자는 악마를 아예 경계 대상으로도 보고 있지 않으니까.
“7번은 합격.”
이것으로 3번, 5번, 7번이 세입자로 확정된 상황.
이제 한 명 정도만 더 받으면 첫 모집은 끝이 난다.
[입주 신청 번호: 8]
[종족: 마족]
[입주 사유: 악마 스카우트]
[코멘트: ★즉시 입주 가능★]
“아…….”
이번 세입자는 코멘트에 특수문자를 넣을 수 있는 기괴한 세입자였다.
“저런 메시지를 전에 본 것 같은데. 마왕성이었나? 아무튼 정상적으로 소통하기 힘들 것 같은 상대라서 패스.”
[입주 신청 번호: 9]
[종족: 에일리언]
[입주 사유: 숙주 획득]
[코멘트: 없음.]
이번엔 종족부터가 심상치 않다.
“……패스.”
[입주 신청 번호: 10]
[종족: 침팬지]
[입주 사유: 입주]
[코멘트: 반갑습니다.]
10번은 너무 무난해 보였다.
심지어 종족도 침팬지란다.
그것도 차원 경매장 능력을 쓰는 초강력 침팬지.
이 점이 주민성을 더욱 꺼림칙하게 만들었다.
괜히 지구라도 정복해올 것 같은 느낌이다.
“패스.”
[입주 신청 번호: 11]
[종족: 인간]
[입주 사유: 보물 획득]
[코멘트: 세상을 구원할 보물이 필요합니다.]
“오. 좋은데?”
다행히 11번은 예의 바른 입주자로 보였다.
사유도 무난했고.
“오케이. 합격.”
최종 합격자 4인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