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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30.
시작부터 파격적인 정보였다.
임진석 쪽에선 별다른 문제 없이 너무나도 수월하게 점령을 진행 중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지원은 무조건 필요할 것 같은데.’
김정남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천마에게도 인정받은 지금은 누굴 상대하더라도 좋은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SSS급 능력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인천에 체류중인 성우혁만 하더라도 위희린과 즈민성 급이 아니면 그를 1대1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봉춘향 정도.
‘춘향이도 이제 갓 능력을 각성해서 애매하겠지.’
물론 기습전이라면 송몽룡이나 임진석, 성아영에게도 승산은 있겠지만, 세력과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기습 성공 가능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절대 방심하지 않을 테니까.
‘일단은 하성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주민성은 순간 생각을 멈췄다.
명일학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대격변에서 유물을 쓰지 않는 쪽이 더 비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운 길드장 조주현은 사망. 일살 길드는 10대 길드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지요.
좀 더 멀리 봐야 했다.
강자들의 갑작스런 돌연사와 돌발행동에 주목해야 했다.
“일살 길드장 하성. 어떤 사람이죠?”
“……음흉하긴 해도 제 부하들은 살뜰히 챙기는 녀석이었지요.”
“……흐음.”
여기까지만 보자면 하성이라는 인물은 주민성과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부하들을 챙긴다는 점에서.
하지만, 현 상황에 하성이라는 남자를 빗대어보자면 모순되는 점이 있었다.
“일살 길드도 꽤 소수라고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인원수만 따지자면, 서울을 본거지로 하는 10대 길드 중엔 자운이 가장 많은 길드원을 보유하고 있지요. 아린과 일살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물론 누가 더 낫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제가 더 낫겠지만.”
주민성 또한 세력을 이끌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수십 명의 판자촌 능력자론 한 개 지역 지키기도 버겁다는 사실을.
“……목적이 명확히 보이는 움직임이네요.”
“맞습니다. 하성 그 녀석의 목적은 유물. 이미 점거한 게이트엔 애착을 가지지 않고 있지요.”
상당한 발견이었지만, 이제 밝혀진 답안은 고작 하나에 불과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하성이라는 인물 그 자체였다.
“하성이라는 사람. 부하들을 살뜰히 챙기는 녀석이었다고 했습니다. 과거형이네요?”
“알아차리셨군요.”
명일학의 표정엔 씁쓸함과 복잡함이 끊임없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일살은 와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제 손으로 부하를 죽였거든요. 지금은 반절이 떠나고 녀석에게 목숨까지 맡긴 충신들만 남아있지요. 안타깝게도.”
안타깝게도 주민성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실력이 검증된 인재들이 풀려났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해야 할 것들이 차차 그려지기 시작했다.
김정남 측을 지원하고, 강북 방면으로 진입할 틈새를 찾아내는 것으로.
당연히 후퇴는 선택지에 없었다.
하성이 수도권으로 눈을 돌린 이상, 먼저 게이트를 정벌하는 쪽이 모든 유물을 쟁취할 테니까.
‘여기서 협회장의 움직임만 알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협회장을 견제할 카드인 신성은 서풍 길드에서 꾸준히 접촉 중인 상황.
이는 주민성 세력이 10대 길드보다 우위인 부분이었다.
“협회장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협회라든지.”
“음……. 협회라. 이런 시국에 협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마다 살아남겠다고 지역 길드에 소속되는 상황이니 협회장 직속 능력자 말곤 전부 쓰레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랄한 평가였다.
이 정도면 협회장의 힘이 상당수 꺾였다고 봐야 하지만, 왜인지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협회장의 움직임은요?”
“글쎄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강남이 완벽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밖에요. 내 개인적인 견해라도 알려줄까요?”
“개인적인 견해라 함은?”
“자운의 조주현. 협회 측에 암살당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습니까?”
명일학에겐 나름의 확신이 있어 보였다.
“일살과 자운. 둘 다 강남과 가까운 지역에 자리하고 있지요. 특히 자운은 강남 실종 사건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착실하게 대응 준비를 갖춰 가고 있었어요.”
이는 박진우가 내놓았던 정보와 상당히 일치했다.
여기서 좀 더 디테일한 차이가 있다면 어느 길드가 협회장을 더욱 경계했는지 나온 정도.
하지만 자운 길드장 조주현과 협회장 정혁수가 친구 관계라는 사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영원한 친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조건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관계였는데. 당장 조주현이 SSS급이 아니었다면, 협회장이 무능력했다면 어떻겠어요?”
“……음.”
이는 주민성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FFF급이 되었기에 깨져버린 우정도 있었고,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고 한결같았던 인력소 식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명일학의 개인적인 견해.
둘의 관계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협회장이 강남의 유물을 얻고, 조주현의 유물을 탈취했다. 하성 역시 강북의 유물을 얻고, 가까운 지역의 유물을 탈취했다. 이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명일학 씨 역시 양천의 유물을 얻고 강서의 유물을 노렸다가 됩니까?”
“노리긴 했었습니다. 겸사겸사.”
“……참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명일학을 비난할 필요까진 없었다.
어차피 승자는 주민성이었고, 승자의 권리로 얻어낼 것들만 착실히 얻어내면 될 일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어때요. 내 견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
허무하게 당해서 그렇지, 명일학은 세상 돌아가는 데 빠삭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대부분의 경험에 있어 월등하다.
‘쉽게 흘려보낼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 구체적이고.’
게다가 이용료 청구 효과로 해가 되는 거짓말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으면 명일학의 목소리는 더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도움됐습니다.”
“호오.”
주민성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덕분에, 주민성이 더더욱 중요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나머지 정보들도 털어내시고, 서로 갈길 갑시다. 바빠질 예정이라서.”
“좋지요.”
주민성은 명일학에게 아린이 가진 나머지 정보들도 받아냈다.
굳이 회의 안건으로 올리거나 할 필요도 없었다.
봉춘향이 직접 오든, 분신이 오든 전달하고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통성명 할 생각 있습니까? 강서구의 왕.”
“머지않아 알게 될 겁니다.”
“거절이군요. 좋습니다.”
여태 상대했던 사람이 FFF급으로 유명해진 주민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명일학의 태도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컸다.
적어도 지금 마주한 주민성은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인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호의를 살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 가기 전에 그거 다 놓고 가십쇼.”
“……예?”
“유물요. 그거 없어도 강하잖습니까.”
“…….”
물론 유물도 빠트릴 수는 없었다.
2차 대격변의 유물은 주민성이 사용할 치트키였다.
유물에 씌인 무언가가 악령이든 수호령이든 영혼이라는 범주에 속해있는 이상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신, 이거 드릴게.”
“…….”
그리고 명일학의 유물을 대신해서 내밀어진 텐트 하나.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여태까지의 박진우를 봐왔기에 알 수밖에 없을 터였다.
“당연히 하루치만 대출이고, 이틀째부턴 직접 돈 가져와야 합니다. 아, 대리인 보내는 것도 안 돼요.”
“…….”
양천구의 핵심은 아린 길드였지만, 진정한 가치는 여태껏 은행을 잘 지켜왔음에 있었다.
10대 길드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은행이라면 어마어마한 현금이 잠들어 있을 테니까.
“하루 94만 원 되시겠습니다. 텐트 효과는 아시죠?”
“……하하.”
명일학은 이런 주민성의 제안을 허탈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좋아요. 어차피 당한 마당에, 유물 대신할 녀석은 챙겨두는 게 좋겠지.”
새로운 텐트 계약이 체결됐다.
이로써 주민성이 얻은 것은 명일학의 건물 이용료와 양천구를 장악해서 얻은 유물.
그리고 아린 길드와의 확실한 불가침이었다.
‘차원 불가침 능력이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상관없겠지.’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은 진작에 사용해뒀다.
[위대한 부족원 모집에 성공합니다.]
[‘아니 부족명을 지으라는데’ 부족이 대폭 성장합니다.]
[부족 성역 권한이 해금됩니다.]
[특정 구역을 부족의 성역으로 지정합니다.]
[성역 내에선 부족원 간 적대 행동이 통제됩니다.]
덤으로 아군끼리의 다툼을 방지할 능력도 얻었고.
이제 명일학은 부족원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흔쾌히 동의도 했고.
“…….”
여차하면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려 했었으니 부족원 명일학이라는 포지션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아. 유물도 드렸고. 가는 길 막는 식인꽃이나 조금 치워주시면 고맙겠네요?”
“그거라면 얼마든지 해 드리죠.”
“연락은 이쪽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언제든 1시간 이내에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가세요.”
“푸흐…….”
그렇게 주민성은 명일학의 배웅까지 마치고 양천구의 유물이 덩그러니 놓인 폐건물로 돌아왔다.
“후후후후…….”
주민성이 명일학에게 호의적이었던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유물 때문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어.”
유물 속 영혼이 태양의 순례지로 재배치될 경우, 남겨진 유물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던 상황이었다.
강서구는 식인 꽃 보스를 토벌하지 않아 피스 하나가 모자란 상황이었고, 인천의 경우는 리치를 제외하곤 네임드급 몬스터들이 전부 주민성의 부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유물이려나.”
지금의 유물 역시 범상치 않은 물건이 확실했다.
양천구는, 하피는 탐내던 지역임과 동시에 웨어울프는 나중을 기약했었던 과거도 있었다.
이중 양천구를 거르는 선택은 게이트 보스 누구도 하지 않았다.
“확실한 보상이겠지.”
주민성은 그대로 명일학의 유물들을 수납했다.
[마스커의 탐식 반지가 수납됩니다.]
[마스커의 황금 견장이 수납됩니다.]
[마스커의 질식 목걸이가 수납됩니다.]
[마스커의 무릎 족쇄가 수납됩니다.]
[마스커의 환청 귀걸이가 수납됩니다.]
하나같이 기괴한 이름의 유물들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름이 아무리 살벌하다 한들, 가장 나쁜 놈이 태양의 순례지로 유배된 이상 최악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추가적인 장 박사의 조언은 필요 없었기에 주민성은 마스커의 유물들을 바로 꺼내 착용했다.
“음?”
유물 성능을 알아보기도 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것도 아주 놀라운.
[최초로 세트 유물 전체 수집에 성공합니다.]
[건물주의 기품 권한이 해금됩니다.]
[기품 수치만큼 건물주의 모든 권한이 배가됩니다.]
[적용 중인 기품 수치: 3]
“헐.”
주민성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건물주의 기품 효과가 바로 체감됐기 때문이다.
기품 수치는 무려 3.
능력의 가동 범위가 3배쯤 증가한 것이 직접 느껴졌다.
“패시브 만세…….”
이는 건물 부가 효과를 이을 새로운 대표급 패시브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급 건물 소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상급 건물부턴 수집한 유물을 장식해 건물의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으아……. 으아아!”
아무리 건물주 등급을 올려도 불가능했던 상급 건물 소유가 드디어 가능해졌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동수저가 사실은 금수저였다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선사했다.
“됐어! 드디어 됐다고! 으아아아!”
주민성은 그동안의 한을 풀어내는 것처럼 계속해서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건물주 만세! 나 만세! 명일학 만세! 아무튼 만세!”
“키, 키익?”
소란에 찾아온 꽃블린도 축하의 대상이었다.
“꽃블린도 만세!”
“키힉! 만세!”
고양된 기분이 진정된 건 30분쯤 후.
주민성의 눈가엔 여전히 탐욕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으흐흐. 이제 내 세상이다.”
굳이 건물을 부수지 않아도 어지간한 건물은 전부 소요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주민성의 행동 범위를 어마어마하게 넓힐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하성과 협회장. 모두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드디어 생겼다. 크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