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어도 레벨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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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어도 레벨업 (1)
2022.05.26.
오크들의 방식도, 현대의 방식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대 한국의 방식도 아니었다.
거기에 최선호의 센스가 더해졌는지 게임 속에서 본 것만 같은 효율적인 배치까지 더해졌다.
“집……. 건물…….”
대체 어떤 등급의 건물일지.
군침이 절로 도는 순간이었다.
“혀, 형?”
“선호야.”
주민성은 최선호에게 부탁했다.
“내 거도. 하나만 지어 줘.”
“무, 물론이죠!”
추방자로서의 몰입이 풀려서일까.
잔뜩 고양되었던 최선호의 분위기는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휴! 여기요.”
이전보단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부서진 돌을 다듬어 쌓아올린 집이었다.
많은 걸 바랄 필요까진 없었다.
주민성에겐 그저 새로운 등급을 가진 건물에 대한 기대감뿐이었다.
“잘 쓸게.”
“네. 형. 저도 잠시 용도 변경 좀 할게요.”
“응.”
그렇게 둘은 각자의 건물로 들어갔다.
“과연.”
그리고 한 걸음.
예상대로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방자의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임시 건물주 최선호가 소유 중인 건물입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변경.”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건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보유 건물 목록에 추방자의 쉼터가 추가됩니다.]
[최초로 추방자 등급의 건물을 소유했습니다.]
[파멸이 깃든 건물입니다.]
[건물 유지력이 급격히 하락합니다.]
다시금 떠오른 파멸.
파멸급 곡괭이는 역시 무기로 쓰는 게 적합해 보인다.
그리고 다음 메시지는 반복되는 메시지였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
주민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다.
물론 머릿속에선 정신없는 계산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여기서 괜히 건물 보수 같은 행동을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등급이 바뀔까? 건들지 않는 게 나은가?’
반면, 최선호가 들어간 집은 달랐다.
애초에 최선호는 건물주이자 건축가였다.
처음부터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메리트는 생각보다 컸다.
쿠르르……!
최선호의 돌집이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쌓인 돌은 적당한 수준으로 녹아 빈틈을 메웠고, 멋대로 다른 재료들을 흡수해가며 성분까지 바꾸고 있었다.
‘대박이네. 저 능력은.’
최선호의 용도 변경은 주민성도 자주 봐 왔던 편은 아니었다.
본인이 알아서 능력을 발전시키며 노하우를 쌓아 왔기에 조언 또한 필요 없었다.
오히려 이쪽 방면은 주민성보다 최선호의 전문 분야였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건물 고유 효과를 분석 중입니다.]
……
최선호의 건물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사이에도, 메시지는 수백 번은 가뿐히 넘어갈 정도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고유 효과 분석이 끝났습니다.]
[허기를 덜 느끼게 됩니다.]
장시간 분석 끝에 나온 결과라기엔 너무 조촐한 효과였다.
“…….”
심지어 고유 효과는 그게 전부.
그래도 다행인 점은, 탄식하기 전에 다음 메시지가 이어졌다는 것.
[최초로 추방자 등급의 건물을 소유했습니다.]
[압류 대상 등급입니다.]
[추방자 권한 일부가 개방됩니다.]
[부족 형성 권한이 개방됩니다.]
[부족을 형성하여 부가 효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공유되는 부가 효과는 추방자 등급에 한정됩니다.]
[공유되는 대상은 부족원에 한정됩니다.]
오랜만의 최초 메시지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조건의 능력이 발목을 붙잡았다.
“부족? 부족이라…….”
확실히 집터 분위기상 세력원보단 부족이 어울렸다.
‘선호에게도 이 능력이 생긴 걸까?’
오리지널 추방자는 무언가 다를 수도 있었기에 주민성은 한창 집중 중인 최선호에게 말을 걸었다.
“선호야.”
“……아? 형! 이제 말해도 괜찮아요?”
“응. 능력 생겼지? 뭐 생겼어?”
“저 이것저것 많이요.”
“……많이?”
역시 오리지널은 달랐다.
최선호가 보유한 능력은 다음과 같았다.
“하급 광물 가공, 하급 무두질, 하급 도축, 최하급 연금술, 그리고 버림받은 신앙이라는 능력이에요.”
“……어?”
주민성의 황당한 표정에 최선호가 설명을 보충했다.
“형도 뜨지 않았어요? 추방자 능력 이거. 건물주처럼 성장하는 형태더라고요. 거기다 완전 제 타입이에요.”
“…….”
“……형?”
“나는 다른 능력 떴는데…….”
“헐! 진짜요?”
그렇게 둘은 서로 얻은 능력을 상세히 공유했다.
최선호의 능력 역시 부족 형성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원시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동물이든 몬스터든 도축할 수 있는 지식이 생겼고, 돌이나 질 나쁜 철 같은 광물 정도는 가공해낼 수 있다는 거지?”
“네. 적당한 돌칼만 완성하면 몬스터 가죽도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숙련도가 부족해 채집량은 좀 떨어지겠지만요.”
“……그럼 연금술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당장 연금술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서요.”
최하급은 하급과는 또 다른 느낌인 모양이다.
“그보다 형 능력은 신기하네요? 부족 형성이라니. 건물주 능력이 임시라서 그런가? 아니면 형이랑 제가 일궈놓은 것들이 달라서일까요?”
“음……. 전부 그럴듯한데.”
“그러면 저 부족 초대해주세요!”
“……괜찮겠어? 너도 언젠간 이런 능력쯤은 쉽게 얻을 것 같은데.”
최선호에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반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인데요. 형 아니었으면 병원에서 대격변에 휘말려 죽었을걸요.”
“음…….”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셔요. 오히려 부담은 제가 가져야죠.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러니까 형. 1호 부족원은 저로 써 주세요!”
“…….”
최선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주민성에게도 뺄 이유는 없었다.
가진 능력은 전부 써먹으며 아득바득 살아가는 게 지금의 모토였으니까.
“그래.”
어차피 추방자 부가효과는 공유해서 나쁠 게 없었다.
건물 부가효과는 부족원 누군가가 받으면 부족원 전체에게 적용되는 것이었기에 광역 버프로서의 역할도 해낼 터였다.
“부족 형성.”
[부족을 형성하여 부가 효과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부족명을 정해주십시오.]
고블린 꽃과 달리, 부족명은 반드시 짓고 넘어가야 했다.
“형? 됐어요?”
“아니. 부족명을 지으라는데?”
“오오. 뭔가 길드명 짓는 것 같아서 설레네요. 이 기회에 저희도 멋진 이름으로 가요! 만렙토끼즈라든지!”
“…….”
주민성은 말이 없었다.
최선호의 네이밍 센스가 이상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만렙토끼즈는 은근히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어째서인지 즈민성도 좋아할 것 같았고.
“……형?”
“…….”
“형……. 왜 그래요……. 불안하게…….”
주민성은 참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부족명. 정해졌어. ‘아니 부족명을 지으라는데’로.”
“…….”
[아니 부족명을 지으라는데 부족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최선호 또한 말을 잃었다.
하지만, 주민성처럼 참담한 표정까진 아니었다.
최선호는 게임 속에서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고인물이었기에 사고방식부터가 달랐다.
“……대박. 왜 이런 걸 생각 못 했었지?”
“……응?”
“이름 멋진데요? 아니 부족명을 지으라는데! 크큭!”
“…….”
주마등처럼 최선호의 게임 속 캐릭터가 떠올랐다.
핑크색 엑스 반도에 흰 팬티.
과장된 아프로헤어 속엔 무지갯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앵무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처음부터 상식을 벗어난 캐릭터였다.
“……그래. 부족명은 둘째 치고, 다음 메시지 알려줄게.”
“네!”
부족이 형성된 이후엔 새로운 능력이 해금되어 있었다.
[부족원 모집 권한이 해금됩니다.]
[1개체의 부족원 모집이 가능합니다.]
[부족 활동을 통해 추가 부족원의 모집이 가능합니다.]
추방자 능력은 건물주 능력과 마찬가지로 까면 깔수록 뭔가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차이가 있다면 임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음에도 최선호의 추방자 권한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정도.
주민성은 새로운 메시지도 최선호와 공유했다.
“부족원 모집이라……. 신기하네요. 뭔가 형 능력이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응? 뭐가?”
“콩이요. 절대 을이잖아요.”
“아아. 그랬었지.”
절대 을은 이용료를 낼 수 없는 건물 이용자의 자유를 건물주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괴랄한 능력이었다.
악용하자면 한없이 사악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렇긴 한데 한도 추가 조건을 모르겠단 말이지. 분명 건물주 등급은 계속 꾸준히 올렸는데도 한도는 안 늘어나.”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굳이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이젠 사람이건 몬스터건 다 형을 따르잖아요.”
“그렇기야 하지. 여튼 네 말대로 생각해보니 부족원 모집은 이용료 청구의 순한 맛이 좀 섞여 있네.”
“정말 다행이죠. 건물주 능력과 궁합이 좋은 능력이라.”
“혹시 몰라. 일단은 봐야 알겠지. 능력 쓴다?”
“넵.”
“부족원 모집. 선호.”
능력을 사용함과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1개체의 부족원 모집이 가능합니다.]
[해당 개체가 부족원으로 합류합니다.]
메시지는 이것이 전부였다.
서류도, 추가적인 조건도 필요 없었다.
“뭐지? 이용료 청구 같은 건가? 그냥 바로 되는데?”
“아. 저한테 메시지 떴어요. 가입하겠냐고. 처음부터 가입할 생각이라 그런지 별다른 절차 없이 넘어가네요.”
“그래? 다행이다.”
다행히 강제적인 능력은 아니었다.
“부가 효과는 느껴져? 일단은 허기가 줄어든다는데.”
“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건물 부가 효과가 워낙 좋다보니.”
“상관없겠지. 추방자 능력은 이제 시작이니까.”
“그렇죠. 그보다 형. 저 근처에 있는 몬스터 좀 잡아도 될까요?”
“응? 몬스터? 갑자기 왜?”
“뼈도 쓰임새가 많거든요. 기초적인 무기 정도는 될 거예요.”
“그것도 능력이야?”
“아뇨. 게임에서 하던 건데, 추방자 능력이랑도 통할 것 같거든요. 일단은 뼈도 재료고.”
“괜찮겠어? 지금 신체 능력으론 살짝 위험한데.”
인천 지부 주위를 배회하는 언데드.
적어도 고블린보단 여러모로 강한 몬스터였다.
“추방자 능력 덕분인지 용기가 막 솟거든요. 건설 행동도 그렇지만, 사냥 행위로도 추방자의 기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오호라.”
확실히 그럴듯했다.
추방자의 기록은 일기 형태.
분명 상당한 경지의 도달했던 인물일 터였다.
몬스터와 관련된 지식 또한 어마어마하리라.
“좋아. 무기는 곡괭이면 충분하겠지.”
주민성은 파멸의 곡괭이가 지닌 파멸 속성과 건물의 인과관계를 추가로 설명했다.
“아……. 파멸엔 그런 단점이 있었구나. 건물 지을 땐 다른 강화석을 사용해서 곡괭이 속성을 바꾼다든지, 다른 곡괭이를 구하는 게 낫겠네요.”
“그렇지. 일단 오늘 일정 끝나면 추가로 강화석이랑 곡괭이도 구해볼게.”
“감사해요. 형. 대신, 제가 새집 팍팍 지어드릴게요. 짓다 보면 컨테이너보다 더 쓸 만한 건물이 나올 것 같아요.”
“좋네. 기대해도 되겠지?”
“물론이죠!”
그렇게 최선호는 파멸의 곡괭이를 들고 근처의 스켈레톤에게 접근했다.
“그어어…….”
보스 몬스터였던 리치의 소멸 덕분에 스켈레톤은 어마어마하게 약해진 상태.
지금 최선호가 가진 무기라면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잔뜩 착용시킨 방어구는 최선호를 지켜줄 것이었으며, 부가 효과는 희박한 확률로 다친 몸 상태마저 회복시킨다.
즉,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었다.
“읏차.”
최선호는 재빠르게 스켈레톤의 뒤를 선점.
곡괭이로 정수리를 찍었다.
깡!
그것으로 끝이었다.
스켈레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한번의 공격으로 뼈가 모조리 박살났다.
파스스슥!
“저거……. 가루만 남겠는데 괜찮겠어?”
“…….”
최선호는 말이 없었다.
메시지가 떠오른 모양이다.
“네. 뼛가루도 활용할 수 있었어요. 거기다 자동 수납이네요. 대박.”
“헐.”
“뼛가루는 건축 자재에 섞으면 더욱 튼튼해진대요. 무기에도 활용 가능하고……. 오 연금술에도 써먹을 수 있어요. 아직은 뼛가루 단지 제작법만 떠올랐지만.”
고작 한 마리의 몬스터를 잡았음에도 능력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리고 동시에, 주민성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다.
[부족 등급이 상승합니다.]
[부족원을 추가로 모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건축 재료가 확보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