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결과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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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5.
“살고 싶다?”
“네.”
최선호의 감정은 명확했다.
“지금도 살아 있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좀 더 복합적인 느낌인데, 이대로라면 끝이다. 반드시 죽을 거다. 이런 감정이에요.”
“흐음…….”
단순히 생존과 연관된 능력으론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의 생존과 연관되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의 판단은 맞아?”
“……네?”
“스캐너실에 처박히는 거. 그게 최선이냐 이말이지.”
앞으로의 생존.
추방자 능력은 오히려 주민성의 성향과 일치했다.
“적어도 나는 미래의 영양 불균형까지 걱정하고 농사를 시작했지. 지금도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너희들 각성시키고, 활약을 기대하고 있어.”
“……아.”
주민성은 나름 생존계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제대로 된 전투 능력 하나 없이 게이트에 부딪혀 살아남은 확실한 경력도 있었다.
앞으로가 두렵다고 도망친 적 역시 없었다.
“내가 너라면 달랐을 거야. 차라리 해상 요새를 다시 끌고 건물주 등급을 올리며 추방자 능력이 가진 비밀을 알아냈겠지. 지금처럼 스캐너실에 처박혀있는 와중에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했어.”
“…….”
이런 닦달은 원래 계획엔 없었다.
그동안 언제나 좋은 결과만 물어오는 에이스에겐 필요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생존과 연관되어 있다면 다르다.
좀 더 독해져야 했다.
적어도 주민성이 처음 콩이를 만나 사투를 벌이던 당시의 독함은 끄집어내야 했다.
“네가 얻은 능력. 너만의 능력이잖아. 이러고 있을 시간 있냐고.”
“……죄송해요. 형.”
“죄송할 필요도 없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돼. 참고로 나는 각성하고 바로 다음 날 게이트로 찾아갔었다.”
그 과정엔 나름의 준비들이 있었지만 너무나도 부끄러운 흑역사가 많아 전부는 말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동기 부여니까.
“시간 줄게. 3일이면 되겠어?”
“…….”
주민성은 일부러 최선호의 자존심을 긁었다.
일반인만도 못한 몸뚱이로 살아남았던 주민성도 하루만에 적응했었다.
그럼에도 건물주 능력에 온갖 사기 건물까지 갖춘 최선호에게는 3일.
이는 과도한 배려를 넘어 모욕에 가까웠을 터였다.
“아뇨. 오늘 안에……. 적응할게요. 꼭.”
다행히 동기 부여는 상당히 된 모양.
최선호의 눈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혼자서 게이트도 점령했었어요. 3일은 너무 많아요. 형.”
그제야 주민성은 만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저녁까지 기다린다.”
“네.”
그리고 처음부터 주기로 했던 선물을 건넸다.
“뭐예요? 오다 주웠어요?”
“아니. 하위차원 보물창고에 잠깐 다녀왔어.”
“와……. 그랬었죠. 형은 자유롭게 그런 곳도 다닐 수 있었죠.”
“근데 추방자는 무슨 무기가 좋으려나…….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봐.”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있던 온갖 무구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최선호는 무엇도 고르지 않는다.
대신 난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요청해 왔다.
“형.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
“곡괭이로 주시면 안 돼요?”
“응? 곡괭이?”
“봤었거든요. 형이 곡괭이질 하는 거.”
“…….”
최선호는 파멸의 곡괭이를 원했다.
“어어?”
“그게……. 제 영혼이 원한다고 해야 하나……. 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쪽이 가장 유용해 보여서요.”
“……그래?”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파멸의 곡괭이를 꺼냈다.
“하아……. 바로 이거야…….”
“…….”
최선호의 눈빛엔 찐득한 탐욕이 깃들어있었다.
곡괭이를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대하는 눈빛은 주민성도 처음이었다.
“너 근데 곡괭이 쓸 줄은 알아? 많이 무거울 텐데.”
최선호에겐 신체 강화 계통의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몸 자체가 튼튼한 것도 아니었다.
오래된 병실 생활로 최근에나마 헬스장을 통해 기본 근육을 만들어나가는 단계였다.
“괜찮아요.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했더니, 살아남아야 한다가 개척해야 한다로 바뀐 느낌이에요. 꼭 써보고 싶어요.”
“……흠?”
긍정적인 변화는 지금도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아니면 내가 다른걸로 사 줘도 되는데.”
최선호를 위해서라면 차원 경매장 이용 부담쯤은 얼마든 감수할 수 있었다.
“……그게 좋아요. 완전 새까맣고 타들어가는 느낌이…….”
“아아…….”
뭔지 알 것 같았다.
최선호가 선호하는 색은 최선아의 취향과도 상당히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일단 나와. 이 곡괭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 조금 위험하거든.”
“형. 그거 농사할 때 쓰지 않았어요?”
“응. 맞는데, 잘못 다루면 좀 위험해.”
그냥 곡괭이도 아니고 앞에 파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실제로 파멸의 강화석이 소모된 곡괭이였다.
그런 탓에 사용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주민성이 정말 섬세한 손길로 땅을 내려찍어도 우지직 콰지직 거리며 땅이 갈라질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주민성과 최선호는 인천지부를 벗어나 계속 이동했다.
“……형? 여기서 더 가요?”
“응. 적어도 건물들 있는데선 쓰면 안돼. 다 무너져.”
“그 정도예요?”
“너도 봐서 알잖아. 평범한 곡괭이 아니라는거.”
“그야 그렇다만……. 단순히 소재만 좋은 줄 알았거든요.”
“아니야. 강화석까지 썼어.”
“……혹시 제가 아는 그 강화에 사용되는 강화석과…….”
“비슷할걸? 강화석으로 물건 때리면 그 물건이 강하되거든.”
“…….”
당황스러울 수밖에.
강화 과정을 직접 본다면 더욱 놀랄 터였다.
“그러면 손이 미끄러진다거나 하면 실패하는거예요?”
“손이 왜 미끄러져? 건물 부가효과 때문에 그럴 일 없어.”
“대박……. 형. 저 강화석도 조금만 주면 안 돼요?”
“음…….”
최선호의 창의력은 믿을만했다.
하지만 강화석의 이름이 문제였다.
“근데 강화석 이름이 파멸의 강화석이래. 느낌 어때?”
“앗……. 하필 파멸이요? 축복의 강화석 같은 건 없어요?”
“오. 그건 따로 검색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최선호의 아이디어는 믿을 만했다.
축복의 강화석은 누가 봐도 좋은 결과만 있을 것 같은 이름이었다.
“그런게 있다면 더 난감해지는데…….”
“그래도 최악은 아닐 거예요. 적어도 저주의 강화석은 아니잖아요?”
“그야 그렇지……. 뭐, 비싼 것도 아니니까. 자.”
주민성은 최선호에게 파멸의 강화석 5개를 건넸다.
“와……. 이게 강화석. 이걸로 때리면 뭐든 강화되는 거죠?”
“혹시 모르니까 해상 요새엔 쓰지 마. 핵심 건물이니까.”
“물론이죠. 잃어도 아깝지 않은 물건에 쓸게요. 고마워요. 형.”
“그래.”
그렇게 둘이 도착한 장소는 계양동에 있는 어느 공원이었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이제 곡괭이 써 봐.”
드디어 곡괭이 인계가 이뤄지고.
최선호는 설레는 마음으로 곡괭이를 잡았다.
“오오……. 드디어 곡괭이가……. 아아……. 어? 어어?”
최선호는 곡괭이 특유의 무게중심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잡으면 안 돼. 그래. 그쪽을 잡아야지.”
이는 주민성의 조언으로 극복됐다.
그리고 대망의 곡괭이 시연을 앞둔 상황.
“직접 써보는 건 처음이지?”
“네. 게임에서만 써봤어요.”
온갖 노가다란 노가다는 다 뛰어본 주민성에게 곡괭이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때문에 전수해줄 노하우도 많았다.
“그럼 다리는 이렇게 벌리고, 팔은 이 정도 각도로. 그립은 풀지 말고 가볍게.”
“네. 했어요.”
“해봐. 처음은 엄청 살살. 땅에 노크하듯이.”
“네! 후우!”
최선호의 곡괭이질이 시작됐다.
쿡.
다행히 주민성의 말대로 최선호는 가볍게 땅을 두드렸다.
“형! 이렇게…….”
최선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것 맞냐고 물어봤을 터였다.
그리고 그 질문의 정답은 아니오였다.
콰지지지지직! 콰르르!
땅이 지진 수준으로 요란하게 갈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어?”
“……그래서 파멸의 곡괭이야. 더 살살 쳤어야 해.”
“이걸로 대체 농사를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섬세하게.”
주민성은 최선호에게 곡괭이를 다시 건네받아 갈라진 땅을 메꿨다.
푹.
콰지직! 콰직!
갈라진 땅을 다시금 무너뜨려 틈을 메우는 방식이었다.
“하여튼 이런 느낌의 곡괭이야. 좀 위험한 무기처럼 쓰이…….”
이번엔 주민성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최선호가 뭔가에 홀린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지라도 뜬 건가?’
이런 경우엔 주변에 신경을 쓰기가 여간 힘들어진다.
묵묵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최선호가 입을 열었다.
“형…….”
“메시지 떴지?”
“네…….”
“건물주? 아니면 추방자?”
전자였어도 흥미로운 메시지가 떴을 터였고, 후자는 더더욱 기대가 컸다.
그리고 최선호의 대답은.
“추방자요.”
후자였다.
“대박……. 무슨 메시지야? 일단 수첩에…….”
수첩은 필요 없었다.
대답을 대신하는 매개체가 따로 있었으니까.
쿠르르르……! 쿵! 쿵!
황당하게도 최선호의 소맷자락에서 몸집보다 큰 바위가 튀어나왔다.
“바위가 수납됐대요. 이게 인벤토리에요?”
“…….”
주민성은 차마 답하지 못했다.
인벤토리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방식은 비슷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인벤토리는 아닌데. 어째서 추방자라고 말한 거야?”
이런 경우엔 건물주 능력을 먼저 떠올리는 게 정상이었다.
최선호는 주민성의 인벤토리에 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메시지가 떴거든요. 추방자의 기록이라고.”
“……응?”
최선호는 주민성의 수첩에 메시지 내용을 적었다.
-추방자의 기록.
-땡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곡괭이질이었다.
-쉴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이 메마른 대지를 일궈야만 했다.
여태 봐왔던 메시지들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의 일기장 같은 메시지였다.
“……메시지 그대로 쓴 거 맞지?”
“네…….”
확실했다.
이는 건물주 능력과 연관된 메시지가 아니었다.
아예 대놓고 추방자의 기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형. 그리고요…….”
“뭔데?”
“추방자 능력에 대해 조금 알았어요. 설명보단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일단 곡괭이좀 다시 쓸게요.”
“응.”
최선호는 소매에서 꺼낸 바위를 곡괭이로 찍었다.
콰지직!
그리고 잘게 부서진 바위를 주워 모아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추방자는 이렇게 생활했었나 봐요.”
주민성은 차마 답하지 못했다.
최선호가 능력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신없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여기가 불터예요. 돌을 이렇게 감싸고, 지푸라기나 나무 조각을 모아 불을 지펴요.”
“…….”
“그리고…….”
이번엔 좀 더 큰 돌멩이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몸집보다 큰 화로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능력의 영향이 맞았다.
몰입 도중에는 근력과 관련된 버프라도 있는지 무거운 바위도 번쩍번쩍 들어 올린다.
그렇게 완성된 무언가는.
“이것이 추방자의 용광로예요. 화력이 강한 연료만 있다면 철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요.”
“…….”
“당장은 나무 정도만 구할 수 있으니, 벽돌까지만 구워낼 수 있겠지만요. 대박…….”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방금의 행동으론 추방자의 능력을 정의할 수 없었다.
소매에서 바위를 꺼내는 건 인벤토리와 유사했을 뿐, 인벤토리가 아니었다.
곡괭이를 한 손으로 들며 바위를 아무렇지 않게 어깨 위로 들어 올리는 건, 근력 강화 계열과 비슷했다.
게다가 용광로나 불터, 벽돌을 만드는 지식까지 주입되고 있다.
이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능력의 사용법을 떠올리는 것과, 무언가를 직접 제작하는 건 엄연히 달랐으니까.
“완성이에요.”
그렇게 최선호가 만든 건 원시 형태의 주거지였다.
“뭐 이런 능력이…….”
그런 와중에도 최선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형. 잠깐만요. 아직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아직도 능력이 더 있어?”
“네.”
이번에는 나무 차례였다.
콰지직!
멀쩡한 나무가 곡괭이질 단 한방에 부서졌다.
그것도 초고도 비만 남성의 허리둘레보다 두꺼운 나무가.
“추방자는 나무도 활용했어요. 이거보단 훨씬 건조하고 가벼운 질감의 나무였는데. 상관없겠죠.”
“…….”
최선호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완성한 건.
“나름 허름하긴 해도, 이걸로 집까지 완성이에요.”
추방자 능력은 건물주 능력과도 연계되는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