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결과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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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결과표 (2)
2022.05.24.
“아니…….”
주민성은 황당함에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A급, B급도 아니고 무려 S급이다.
S급 능력자의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
거기다 한국 능력자 협회에 소속되는 S급 능력자는 더욱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기업 수준의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고작 한순간에 김정남 씨와 같은 등급이 됐잖아요.”
“아뇨. 스승님은 S급에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언젠간 SSS급 신체 강화 능력자로 명성을 떨치실 분이에요.”
“…….”
주민성은 차마 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김정남의 꿈은 소박한 헬스장 운영이었으니까.
“휴……. 그럼 차라리 이건 어때요.”
“네? 어떤 거요?”
주민성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원소 발현 능력자이기에 가능한 판타지였다.
“주먹에 불을 붙여서 때린다든가, 발차기 한번 날리면 물보라가 휘날린다든가. 이런 것들요.”
“……어어?”
물론 이런 방식의 능력 운용은 원거리 발현보단 효율이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유호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반인의 신체로도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피지컬을 타고난 축복받은 인간이었으니까.
“4대 원소면 이거죠? 불, 물, 땅, 바람. 땅은 대충 방어용 속성으로 활용하고, 불, 물을 메인 공격용으로. 바람을 회피나 속공용으로 쓰는 거예요.”
“…….”
유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한 쪽이 정확했다.
주민성이 말한 것들을 홀린 듯한 표정으로 전부 상상하고 있었으니까.
“불꽃 펀치…….”
“……네. 그런 것도 유호영 씨라면 가능하겠죠.”
“…….”
힘법사의 길.
주민성이 제시한 길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생겼어요!”
“하하…….”
그렇게 유호영이 떠나고, 다음은 최선호의 차례.
너무 터무니없는 고민을 상담해줘서일까.
주민성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선호야. 고생했어.”
“……오셨어요?”
최선호는 비좁은 스캐너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자괴감에 빠진 상태였다.
“왜 이렇게 기가 죽어있어? 어차피 건물주면서.”
“…….”
이번에도 상대의 고민을 알기 위해선 능력부터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유호영 덕분에 마음이 놓인 상황.
간단한 농담부터 주고받기로 했다.
“일단 고등급이지?”
“……아뇨.”
“응? 그럴 리가 없는데.”
재능이라면 최선호에게도 있었다.
어떤 게임을 하든 끝장을 보는 끈기.
게임이 지루해진다 하더라도 자기가 할 것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창의력이 최선호를 대표하는 재능이었다.
“죄송해요……. 저 등급 낮아요…….”
“에이. 등급이야 무슨…….”
“FFF급이에요.”
“응?”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FFF급이라면 주민성도 이미 한 차례 받았지만, 협회의 주작이라는 의심도 있었다.
등급에 비해 능력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최선호의 경우는 달랐다.
봉춘향과 마찬가지로 임시 서비스를 이용 중인 최선호는 격리 공간으로 전송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혹시 룰렛은 봤어?”
“……네.”
이상했다.
만약 정말로 운이 지지리도 없어 FFF급이 걸렸다면, 이는 봉춘향도 목격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설령 FFF급이 아니라 하더라도 FF급이라는 표본쯤은 거뒀어야 했다.
“거기서 FFF급이 나온다고?”
“……아뇨. 그건 아니에요.”
“응? 무슨 말이야 그럼.”
최선호는 침울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격리 공간은 춘향이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나름 대책을 준비했었죠.”
“대책? 건물주 능력으로 거기서 할만한 게 있었나?”
생각해보니 할 만한 건 있었다.
퇴장 직전 인벤토리로 대피한다든지, 건물 관조를 또 다시 사용해 2중 자가 격리를 한다든지.
하지만 이 능력은 주민성만이 얻은 능력이었다.
최선호는 다른 방향의 건물주로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용도 변경이요.”
“어?”
“용도 변경이……. 되더라고요.”
“정말?”
역시 용도 변경 능력도 사기였다.
이런 능력조차 다른 사람이 가졌었다면, 평범할 수 있었겠지만 사용자가 최선호라서 사기였다.
“룰렛을 조작했어요.”
“맙소사…….”
“강제 퇴장도 방지 차원에서 탈출구 자체도 재시도 선택 장치로 바꿨거든요?”
“……응. 계속 말해 봐.”
역시 최선호의 방식도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이럴 땐 듣는 수밖에 없다.
“되더라고요. 룰렛 속도도 감소시키고, 버튼 반응 속도도 더욱 예민하게 바꿨죠. 강제 퇴장 수단은 아예 장식물로 바꿨어요.”
“……소유는 어떻게 하고?”
“격리 공간에 진흙을 발랐어요. 정확히는 진흙집.”
“……어?”
확실히 획기적인 수단이었다.
진흙처럼 바르는 타입의 집은 어느 공간에서든 사용할 수 있었고, 인벤토리 없이도 소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격리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룰렛보단 공사가 먼저였겠네.”
“맞아요. 형. 거기까진 진짜 좋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으으!”
최선호는 다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부터 하자.”
주민성은 텐트를 추가해 최선호에게 씌웠다.
“……고마워요. 형.”
“괜찮으니까 차분히 말해봐.”
“네…….”
최선호가 말을 이었다.
“용도 변경은 전부 성공했었어요. 룰렛도 잘 돌아갔고요.”
“그러면 춘향이랑 같은 상황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최선호는 지금도 각성 중이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SSS급 뽑기는 실패했다.
“네……. 처음엔 A급이었어요.”
“능력은?”
“몰라요. 목표는 SSS급이라 능력 부분 룰렛은 취소했거든요.”
“그런건가…….”
여기서 차이가 있었다.
봉춘향은 분신을 통해 결과를 받아들였고, 최선호는 결과 자체를 거부했던 것.
“메시지가 뜨더라고요.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어?”
소름돋는 내용이었다.
혹시 몰라 수첩에 메시지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보라고도 했다.
-결과를 받아들여라.
기분의 영향이었을까.
평소에 보던 최선호의 글씨체가 아니었다.
“이런 짤막한 내용이었어요.”
“…….”
이런 메시지는 주민성도 처음이었다.
메시지는 언제나 존칭이었고, 언제나 건물주의 편이었으니까.
지금의 메시지는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고압적이었다.
“……메시지 형태는 어때?”
“틀은 같아요. 단지 폰트가 조금 달랐어요.”
“흠…….”
새로운 정보였다.
각성할 때의 격리 공간은 아예 다른 메커니즘이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찝찝하긴 했지만, 메시지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각성의 기회는 한 번이 정상이다.
물론 최선호의 작전도 파격적이었다.
룰에서 너무 벗어났을 뿐.
이런 경우엔 오히려 리스크를 감당하는 봉춘향의 작전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A급 능력에 건물주 능력.
앞으로의 최선호는 더욱 주민성의 힘이 되어줄 터였다.
“SSS급이 뭐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지금의 결과도 좋다고 생각해. 고생했어.”
“…….”
“에이. A급이 어디야. 우리 에이스 김정남 씨도 A급이잖아.”
평소의 최선호라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주민성의 말에 위안을 얻은 표정을 짓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저 A급 아니에요…….”
“……응?”
“아직 다 얘기 못 했어요. 당시의 상황.”
“……거기서 더 있었어? 거절하려 했지만 강제 집행.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거절도 성공했어요.”
“……어?”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의 진가가 이 정도였던가.
최선호는 주민성의 예측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벗어난 상태였다.
“저도 느꼈거든요. 이대로라면 반드시 A급 능력이 주어질 거라고. 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어요. 오히려 시원하게 해볼 수 있는 건 전부 해보자고 투지를 불태웠죠.”
“…….”
“진흙집을 뿌리 형태로 바꿔서 아예 스크린에 내다 꽂았어요. 그리고 통제 모드로 용도를 추가로 바꿨죠.”
“……맙소사.”
가슴이 웅장해지는 각성 시스템과 고인물의 대결이었다.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를 누구보다도 독창적으로 사냥해 왔던 최선호의 자부심은 주민성이 쉽게 얕볼 것이 아니었다.
“그랬더니 메시지도 깨지더라고요. 거기까진 좋았어요. 아! 되는구나! 리셋도 할 수 있겠구나! 했었죠.”
“근데 또 뭔가가 일어난 거구나.”
“네. 맞아요. 역시 형은 잘 아시네요.”
“……이젠 일상이니까.”
앞으로의 일은 모른다지만, 건물주 능력자가 되고 나선 더더욱 심해졌다.
끊임없이 사건과 사고가 반복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최선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메시지가 떠올랐거든요.”
“어떤 메시지?”
주민성의 급박한 상황을 구원해주는 건 언제나 메시지였다.
하지만 최선호는 달랐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어요.”
최선호는 비어있는 수첩에 문장을 채워나갔다.
-능력 각성 거부에 성공합니다.
-특수 각성이 진행됩니다.
-등급 판정에 실패합니다.
-추방자 권한이 부여됩니다.
-격리 지역에서 이탈합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각성 결과를 알리는 메시지란다.
“무슨 메시지가……. 건물주 능력은 반응 안 해?”
“네……. 이게 마지막이었어요.”
“참나…….”
등급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능력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일단은 추방자라는 게 능력이네?”
“네…….”
“그래도 아직 몰라.”
“……추방자라는데요? 이름만 봐도 엄청 불길한데.”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호야.”
“네. 형.”
“건물주도 한때는 꿈의 직업이었어.”
그랬었다.
한때 1억으로 구할 수 있던 아파트는 10억을 넘어 50억까지도 치솟았었던 과거가 있었다.
“집값 쌀 때 샀으면 대박이었겠지. 집값은 계속 오르니까 돈이 자꾸 복사되는 거야.”
“그랬었죠…….”
“근데 지금은 어때? 소유는커녕 지급받는 게 고작이잖아? 자산으로도 인정 못 받고. 사람 일 모르는 거다.”
“……휴.”
“혹시 아냐. 추방자라는 능력이 대박일지?”
최선호에겐 행복회로가 필요했다.
설령 추방자가 정말 좋은 능력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 게임 좋아하잖아. 히든클래스 하나 얻었다고 생각해봐. 게임 판타지 소설도 그렇잖아? 주인공은 죄다 히든클래스야.”
“……그리고 나쁜 히든 클래스도 등장하죠. 조연이나 악역들의 직업이 그렇잖아요. 완전 망한 직업이 떠서 캐릭터 삭제하기도 하고…….”
왜인지 최선호는 기운을 차리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진작 힘을 냈을 텐데도.
“저. 그거 봤어요.”
“……뭐?”
“천마님이 서풍 길드 혼자 전부 제압하는 거.”
“……나는 못 봤는데?”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더라고요. SSS급 능력자가 상대인데도 애들 다루는 것마냥 싸우던데요?”
“그랬었구나.”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SSS급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죠. 근데 건물주 능력과 SSS급 능력이라면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했어요.”
“…….”
최선호는 주민성이 모르는 사이에도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다들 그랬었다.
요즘 들어 더욱 바쁘게 돌아다니는 최선아도 그랬고, 봉춘향도 능력 각성에 사활을 걸었다.
S급 능력을 얻었음에도 낙담한 유호영도 있었다.
“선호야.”
“네…….”
“너가 약하다고 생각해?”
“……그건 아닌데. 부족하다고 느껴요. 형한텐 갈수록 강한 사람들만 모여드니까.”
“에휴.”
주민성은 최선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건물주. 아무한테나 주는 능력 아니야. 정말로 너에게 자격이 있어서 맡긴 거지.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지금처럼만 도와주면 돼.”
“…….”
“그리고 추방자라는 능력. 네 고유의 능력이잖아? 희망을 걸어봐. 내 생각이지만, 분명 뭔가 있다. 평범하게 얻은 능력도 아니었고.”
주민성에겐 확신이 있었다.
추방자는 절대 평범한 능력이 아니라는 걸.
메시지와 연관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일단은 능력에 대한 갈피부터 잡아봐. 나도 스미스 씨한테 연락해서 힌트라도 얻어 볼 테니까.”
“고마워요. 형…….”
다행히 이번 위로는 제법 힘이 된 모양이다.
주민성은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일단은 능력부터 감을 잡아보자. 분명 뭔가를 계기로 본격적인 효과가 있을 테니까. 일단 지금 당장의 욕구는 뭐야?”
이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능력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서 반드시 분석해야할 것이었다.
예를 들어 건물주는 건물이라도 찾아간다든지 하는 욕망이 있었다.
“……아.”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네. 사실 각성 이후로 계속 느끼고 있었어요.”
“……!”
다행히 최선호는 빠르게 감을 찾은 모양.
“뭔데? 말만 해. 뭐든 도와줄게.”
뒤이어 난해한 대답이 들려왔다.
“……살고 싶어요. 전부 막막하고, 일단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앞서요.”
추방자는 생존과 관련된 능력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