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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언젠가 또 오겠다는 간단한 인사만 남긴 주민성은 홀가분히 하위 차원을 떠났다.
물론 하위 차원에서 챙긴 오크들은 잘 수납해뒀다.
오크들의 소식은 언젠간 즈민성의 귀에도 들어가겠지만, 괜히 시간을 지연시킬 수는 없었다.
여태 정체되었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인천 지부는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대격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이런 파티가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상대로 봉춘향이 SSS급 능력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주민성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로비로 향했다.
“대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봉춘향의 눈가엔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그동안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각성 룰렛만 미친 듯이 돌려댔으니 그럴 만했다.
“일단 이것부터 받아.”
“이, 이게 다 뭡니까?”
건넨 건 보물창고에서 챙긴 각종 유물급 보물이었다.
이미 사기적인 무기는 소지 중이었기에 보물은 방어구 위주로 전달했다.
“오다 주웠다.”
“…….”
“팔 아프니까 빨리.”
“선물 감사합니다…….”
“에이. 이건 선물도 아니지. 진짜 선물은 나중에 줄게.”
“……진짜 선물 말씀이십니까?”
“응.”
진짜배기 서프라이즈 선물은 하위 차원에서 챙겨온 오크 둘이었다.
이번에 새로 챙긴 신입들은 의미가 달랐다.
가르취와 차크취보다 더욱 앳된 오크들이었으니까.
물론 정신 연령은 제외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교육했어야 해. 나는 교육자로선 실격이지만, 춘향이라면 다르지.’
똑똑한 봉춘향이라면 분명 오크들을 배불뚝이 형제들보다 뛰어난 오크로 성장시킬 수 있을 터였다.
‘가르취와 차크취는 너무 늦어버렸지.’
파주 가는 길에 하차시켰던 두 오크는 주민성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후발 교육은 성아영의 담당.
능력은 뛰어날지언정, 성격적인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강사진 구성이었다.
‘춘향이라면 나처럼 방치하지도 않을 테고, 성아영처럼 무식하게 다이어트만 시키지도 않을 테지.’
주민성은 사람 좋은 미소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주기는 뭣하니까 이따가 따로 줄게.”
“어으……. 그, 그런 선물…….”
“기대해. 분명 만족할 테니까.”
왜인지 봉춘향은 크게 당황했다.
엉뚱한 소리까지 보태 가며.
“저, 저희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으으…….”
“응? 나이가 상관 있어? 이미 너는 충분히 유능하고 존경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야.”
주민성은 봉춘향을 어린애 취급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중용할 계획이었다.
세력에 있어선 최선호보다 더욱 중요한 사람이 바로 봉춘향이었으니까.
“으으…….”
“얼굴 빨개졌다. 확실히 피곤한 모양이네. 일단 텐트 하나 추가해 줄게.”
“아아. 넵…….”
당장이라도 봉춘향을 쉬게하고 업무에 복귀시키고 싶었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SSS급이면 능력 3개지?”
확실히 텐트 처방이 효과 있었는지 봉춘향은 빠르게 차분해진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SSS급은 여태 3번 나왔습니다만, 왜인지 룰렛도 느려져 너무 시간을 끌면 제가 죽을 것 같아 멈췄습니다. 어쩔 수 없었지만 나름 괜찮은 능력이기도 했습니다.”
“잘했어. 일단 살아야 뭐든 하니까. 그래서 각성한 능력은 뭐야?”
“제 능력은…….”
보는 눈이 많았기에 능력은 메모로 건네받았다.
“어디 보자…….”
그리고 주민성은 말이 없어졌다.
“……와.”
터무니없이 쓸만해 보이는 능력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중력 조절 능력.
-공간 왜곡 능력.
-버프 증폭 능력.
“다 읽으셨습니까?”
“……응. 어어?”
주민성의 대답과 동시에 메모가 사라졌다.
“대외적으론 이 능력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괜찮겠습니까?”
“…….”
봉춘향은 벌써 능력에 적응한 모양이다.
“어……. 능력이 뭔들. 다 쓸만하네…….”
“감사합니다.”
방금 보인 능력은 공간 왜곡 능력의 응용일 터였다.
메모를 사라지게 하려면 그뿐일 테니까.
“그보다 의외네. 편의성 면에선 다른 게 낫지 않아?”
주민성이 짚은 쪽은 중력 능력이었다.
실제로 중력을 다루는 능력자는 꽤 되는 편이었다.
염동력과 함께 간섭계 능력 중 가장 대표적인 능력이기도 했고.
“맞습니다.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신체 강화 능력자와도 대등한 조건도 만들 수 있습니다.”
봉춘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근데 왜?”
“게이트에서 지내다 보니 공간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크룩스의 징검문이라든지, 차원문과도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아.”
그렇다면 확실히 공간 왜곡 능력 쪽이 중력보다 디테일한 접근이 가능했다.
‘어쩌면 공간 왜곡이 대격변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도…….’
언젠가 다른 이들은 출입할 수 없는 차원문에도 간섭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의 봉춘향은 인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냥 마음 편히 하위 차원으로 가는 차원문을 열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그만이니까.
“역시 춘향이. 너는 천재야.”
“과, 과찬입니다…….”
이것으로 봉춘향이 당장 해야 할 일은 끝이 났다.
이제 충분한 휴식만 취한 후, 업무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봉춘향이 잠드는 12시간 동안만 조심하면, 주민성도 자유롭게 외부 활동이 가능해지게 된다.
“이제 쉬러 가야지? 일단 나가자. 선물도 줄 겸.”
“히엑?”
“……어?”
텐트가 중첩되었음에도 당황할 정도의 충격이었던 걸까.
봉춘향의 표정에 다시금 당황이 깃들기 시작한다.
“윽! 일단 나오십시오!”
그리고 봉춘향은 주민성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인첝디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이러시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어? 괜히 미안해지네.”
“뭐가 미안한 건지 알고 계십니까?”
“…….”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이었다.
남자들이 여자를 상대로 겪는 대표 시련 중 하나였다.
“미…….”
“…….”
봉춘향의 눈빛이 날카롭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사과는 뭐가 미안한지 정확한 답을 설명해야 하는 패턴이었다.
그리고 주민성에겐 확고한 정답이 있었다.
“미안. 난 오크가 아니라서 시련은 좋아하지 않아.”
“……예? 아니, 잘못 들었습니다?”
확답 덕분인지 봉춘향의 표정은 다시금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무튼, 선물부터 받아.”
“아, 알겠습니다.”
방해되는 언데드는 진작에 고블린들이 처리한 상황.
주민성은 한적한 장소로 이동해 인벤토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하위 차원에서 데리고 온 오크들을 꺼냈다.
“취! 너무 맛있다!”
“환상의 요리! 취히히!”
“…….”
생각해 보니 인벤토리엔 오래된 입주민이 있었다.
그것도 라면을 연구하는.
“취? 헛것이 보인다!”
“못생기고 작은 생명체! 취힉!”
“…….”
일단 오크가 못생겼다고 하는 건 칭찬이었다.
봉춘향에게 만물 소통 능력이 없다는 것이, 그리고 오크들의 언어를 전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방금 못생겼다라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헐.”
아니었다.
봉춘향은 천재였다.
고블린어만 제법 숙지했을 거라 생각했던 봉춘향은 오크들의 언어도 일부 알고 있었다.
“……그보다 저게 선물이란 말씀이십니까?”
“응.”
“……선물은 라면입니까? 그것도 오크들이 먹던.”
100% 삐졌다.
오크들은 초면부터 봉춘향에게 밉보인 듯하다.
“아니. 오크가 선물이야.”
“…….”
봉춘향의 표정엔 왜인지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필 두 마리의 오크였고, 게이트에서 가장 사고뭉치인 오크들 또한 둘이 붙어 다니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아직 실망하기엔 일러. 얘들은 다르니까.”
“뱃살 대신 근육이 도드라진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만…….”
선물에는 포장이 기본.
순서가 조금 애매했지만, 주민성은 오크들을 열심히 포장했다.
“얘들 엄청 강해. 특히 쟤. 대검 쓰는 애.”
“음……. 확실히 강력한 기운은 느껴집니다.”
정식 능력자가 되어서인지 봉춘향은 이제 상대의 경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됐다.
본인부터가 SSS급이니 자기보다 약한 상대쯤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저 상태에서 기 모아서 대검 휘두르면 전방 1km는 전부 쓸려나갈걸?”
“음? 능력도 사용하는 오크입니까? 그런 오크라면 아직 본 적 없으니 확실히 제르취만큼 희귀한 개체입니다.”
다행히 포장은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제르취만큼의 특별함은 부여된 모양.
“그치? SSS급이잖아. 이제 수족도 늘려야지.”
당연히 봉춘향은 주민성 세력의 핵심이었기에 호위도 빵빵하다.
기본적으로 크룩스가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중이며, 분신이 아닌 본체엔 언제나 송몽룡이 함께였다.
물론 지금은 주민성이 나섰기에 직접 나섰기에 예외였지만.
송몽룡은 최선아와 함께 안산 게이트에 진입한 골드급 생존자들의 안전과 감독을 책임지고 있었다.
“장거리 무기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해.”
“장거리 무기라면 총 하나로…….”
“그럼 대포.”
“이 총이 통상적인 대포보다야 세긴 하겠지만, 대장님의 뜻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확실히 대포라면 광역피해도 입힐 수 있는 다른 타입의 무기입니다.”
“대충 맞췄어. 게다가 분신 능력 사용 도중이 약점이잖아?”
“……그렇습니다.”
활용 가능한 무기의 추가.
그제야 봉춘향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저는 대장님한테 계속 받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절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 하루만 더 늦게 각성했으면 나 역시도 죽을 맛이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응. 침실은 따로 세팅해 뒀으니까 얼른 가서 쉬어.”
“예…….”
봉춘향은 오크들을 아리송하게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대장님.”
“응?”
“저것들 아직도 라면을 취식 중입니다만.”
“아아.”
다른 사람도 아닌 봉춘향의 눈치였다.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특제 라면 47723이 수납됩니다.]
[특제 라면 47723이 수납됩니다.]
“……됐지?”
“감사합니다.”
어느새 장 박사의 특제 라면은 4만 대를 돌파했다.
어마어마한 연구량이었다.
주민성은 이를 못 본 척할 예정이었다.
라면이야 언제든 챙겨 먹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봉춘향을 보내고도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응. 푹자고 이따가 보자.”
“예.”
봉춘향은 그대로 오크들의 멱살을 잡았다.
“취, 취익?”
“저항할 수 없다! 취!”
어느새 능력이 사용된 모양.
아마도 중력 조절이리라.
툭.
봉춘향은 정말 가볍게 땅을 박찼다.
“취에에이잇!”
“취이익!”
그 결과는 공중부양이었다.
“능력을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심지어 봉춘향의 모습은 깜빡거리기까지 했다.
공간 왜곡 능력도 함께 쓰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는 건, 버프 증폭 능력을 이용해 텐트의 건물 부가효과를 높이는 것도 함께일 가능성이 컸다.
“후우.”
주민성은 다시 인천 지부로 돌아왔다.
아직 축하 대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선호랑 호영 씨는요?”
“아, 잠시 두 분 모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시다며…….”
“각성은 마친 거죠?”
“예…….”
직원의 표정으로 보아 썩 좋은 능력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애초에 봉춘향의 룰렛 돌리기가 사기였다.
이것이 평범한 결과였으리라.
‘상관없어. 어차피 선호는 건물주 능력을 키우면 그만이고, 호영 씨는 무슨 능력을 받든 피지컬이 사기니까.’
이미 건물 관조를 통해 각성의 비밀을 일부나마 알게 된 상황.
유호영이면 몰라도 최선호는 봉춘향과 마찬가지로 임시 서비스를 받았기에 이전의 격리 공간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위로 선물이나 이것저것 챙겨 봐야겠군.’
봉춘향에겐 방어구만 넘긴 덕분에 무기나 장신구류 유물은 제법 남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최선호에겐 할 말이 많아질 듯하니 유호영이 먼저였다.
“신체 강화가 아녔나 봐요?”
“……네.”
유호영에겐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으리라.
신체 강화 능력이었으면 김정남처럼 승급의 여지라도 남아있었을 테니까.
“호영 씨라면 그래도 신체 관련 능력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게요……. 휴.”
“그래도 대격변이라 능력은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호영 씨는 무슨 능력을 각성하셨죠?”
“……이상한 능력이에요. 사대 원소 발현이라는…….”
“……네?”
주민성도 익히 아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흔한 능력은 절대 아니었다.
발현계 중에서도 굉장히 유니크한 능력이었으니까.
‘원소 발현계는 대부분 마법사 스타일이던데.’
다만 유호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게 함정이었다.
“그럼 등급은요?”
“S급이요…….”
“…….”
유호영은 S급 힘법사로 각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