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4)
(17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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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4)
2022.05.22.
“별게 다 있네.”
은행 금고 보안 시스템이라도 작동하는 걸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주민성은 한숨을 내저었다.
“취이!”
“취!”
이어지는 오크들의 난입.
하지만 결백을 주장할 필요는 없었다.
즈쉬와 즈민성에게 들은 말들이 있었으니까.
-로드의 위업을 후대에도 알려야 하니까요. 취익.
들은 얘기였지만, 이제 하위 차원엔 주민성의 얼굴을 모르는 오크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석상부터 시작해 조각상, 그림 등의 각종 굿즈까지 판매한다는데 오히려 모르는 오크가 간첩이란다.
“취, 취익?”
숨 정도는 쉽게 참을 수 있는 수준.
주민성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여기 저렇게 생긴 보물도 있었나취?”
“진짜같이 생겼다! 취익.”
오크들은 경계하기보단 신기한 듯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보다 고장 난 주술 토템은 부숴라취!”
“취익!”
쾅!
한 오크가 가볍게 도끼를 휘둘러 토템을 파괴했다.
과거에 봤던 오크와는 달리 지금의 오크는 본성을 되찾은 모양이다.
‘저게 주술인가?’
보물창고 전체에 울리던 소음이 멎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소음은 분명 보물창고 전체에 퍼지고 있었고,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것도 하나 챙겨 가면 괜찮겠군. 나한테 통하는 물건이면 어지간해선 다 통하겠지.’
곧이어 오크들이 접근했다.
아직까진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보물로 보이는 모양.
“취익. 여태 봐 온 것보다 더 못생긴 것 같은데.”
“목 굵기도 이상하다. 취.”
“…….”
오크들의 미적 감각이 다를 뿐.
주민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크들의 수준을 가늠했다.
‘A급? 아니 S급인가?’
당연하게도 현실에서의 S급 능력자는 엄청나게 희귀한 편이었다.
수백만 명 중에서 하나쯤 될까.
‘보물창고를 지키는 오크니까 이 정도는 되겠지.’
강남에 있는 은행만 해도 그랬다.
그곳을 지키는 대표 능력자는 SS급.
워낙 큰돈이 오가는 지점인 데다, 은행이 직접 나서서 후원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하위 차원의 대표 후계자급인 즈민성의 보물창고 경비치곤 약하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강력한 오크가 둘이나 된다는 것.
‘대놓고 놀려먹기엔 좀 까다롭고.’
물론 이 오크들에게 악감정은 없다.
딱히 적대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아니었고.
“워!”
그냥 가볍게 놀려줬다.
“취에잇!”
“췩!”
바라던 리액션이다.
원래 있던 세상이 까다로워서인지, 하위 차원의 오크들에게선 상당히 순수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게 된다.
“말을 하는 보물취!”
“못생기고 이상한 보물! 취익!”
심지어 아직도 주민성을 그냥 보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은 이곳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줬다.
“대충 그런 사연이야.”
“취…….”
하위 차원에서의 주민성은 살아 있는 레전드 그 자체.
심지어 지금도 수많은 오크들이 인천 게이트로 수많은 물자를 보내 오는 형편이었다.
이곳의 시간 기준으로 몇 개월에 걸쳐서.
“몰랐구나?”
“취익! 그렇다! 성인식을 치르고 3년이 지나지 않은 오크는 부락을 떠날 수 없으니까!”
“…….”
심지어 한창때의 젊은 오크들이란다.
그것도 한국식 나이로 계산하자면 송몽룡보다도 어린.
‘이렇게 어린 오크가 S급 수준이라고?’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인식을 치른 오크라면 더 거친 느낌이 있어야했다.
‘오크가 이렇게 순한 종족은 아니었는데.’
제르취도 그랬고, 카르파크도 그랬다.
놈들은 거칠고 잔혹하며 파괴적이었다.
심지어 이 오크들은 차원 전체를 평정한 지배종이었다.
“너네. 싸움은 꽤 하지 않니?”
무려 보물창고 경비들이다.
토템에 관한 상식까지 갖춘 걸로 보아, 여러 방면으로 유능한 오크일 터였다.
“취익! 당연하다! 또래 중엔 우리가 가장 강하다!”
“취힛!”
오크들은 자신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했다.
‘실전 경험도 없는 오크들일 텐데, 이렇게까지 강한 비결이 뭘까.’
궁금했다.
오크들의 비결만 알 수 있다면, 이는 봉춘향은 물론이고 주민성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될 터였다.
세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신경 쓰이는 부분을 그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니까.
대격변이 종결되는 것은 논외였다.
반쯤 멸망한 세계의 한국인이 차원 경매장을 통해 보낸 메시지는 여전히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문답보단, 직접 겪어보고 핵심을 짚는 게 낫겠지.’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오크들을 가볍게 도발했다.
“너희 얼마나 강한지 궁금한데.”
“취! 우린 엄청나게 강하다!”
“그래?”
대답과 동시에 손에 잡히는 무기를 휘둘렀다.
쉬익!
“췻!”
7할 정도의 힘으로 휘두른 무기였다.
그럼에도 오크들은 여유롭게 주민성의 공격을 피해냈다.
“생각보다 힘이 세다? 취익?”
“취! 실제론 못 생기긴 했어도 주민성은 황무지의 전설이다!”
오크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주민성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쉿! 쉬쉭!
쾅!
호신용으로 짬짬이 즈민성에게 배워온 오크식 무기술이었다.
오크들 입장에선 익숙한 경로에서 뻗어지는 공격이었으니 피하기도 한결 쉬웠으리라.
덕분에 주민성의 공격을 대신해서 받은 건 보물들이었다.
“왜 피하기만 해? 근육이 아깝다.”
“취익! 보물이 망가진다! 여기선 안 돼!”
“아하. 그게 문제였구나.”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젠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로 뛰어난 인벤토리 능력이 있었으니까.
쉬쉿!
“이젠 괜찮지?”
“……취이잇!”
드디어 오크들의 첫 반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대가는.
콰광!
“……헐.”
나름 창고 중앙에서 벌인 싸움이었는데, 한 번의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벽 끝까지 밀려났다.
무기끼리 충돌했을 때의 충격으로 봐선, 김정남의 일격보다 좀 더 묵직한 수준이었다.
물론 섬세함은 떨어졌기에 방어는 쉬운 편.
“얘들 진짜 대박이네.”
“췩! 대박의 일격!”
콰과광!
심지어 현대식 표현도 물을 반쯤 머금은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오크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주민성의 평가는 계속됐다.
‘힘은 끝내주게 센데 능력은 없는 건가?’
의문에 부응하기라도 하려는 듯, 한 오크의 기세가 달라졌다.
“대박이다! 취익!”
심지어 대박이라는 말조차 제대로 써먹고 있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얻어걸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단어의 사용이 아니었다.
오크의 기세가 정말로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출력을 끌어올린다고?’
곧이어 오크가 쥔 대검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취익! 실제로 써보는 건 처음이다!”
“……처음이면 좀 더 안전한 장소에서 쓰는 게 어떨까.”
애석하게 주민성의 바람은 무산됐다.
오크는 기술에 아예 몰입했는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영광을 황무지의 대영웅 주민성에게 바친다! 취!”
“아오.”
저런 기술은 제르취나 카르파크도 쓰지 않는 기술이었다.
가능하기야 하겠다만, 이렇게 시간을 지연시키는 공격을 가만히 맞아줄 상대가 없는 탓이었다.
“쯧.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네.”
하지만, 처음 보는 기술은 아니었다.
비슷한 기술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기술을 실전에 녹여낸 인간이었다.
바로 위희린이었다.
당시엔 고깃집 개업 기념 회식에 참여한 대가로 선보인 기술이었다.
-좋은 대접을 받았구나. 선물이라도 해야겠지.
-본좌가 있는 차원에선 이를 검기라고 칭한다.
처음엔 화려하기만 한 능력일 줄 알았다.
실제로 그녀의 검은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냈으니까.
-건물주여. 막아볼 텐가?
결과적으론, 막아선 안 되는 기술이었다.
막을 수도 없었지만.
-전혀 모르는 표정이구나. 손속을 두길 잘했어.
위희린의 검기는 임진석의 절단 능력이 미사일처럼 발사된 것과 비슷했다.
앞을 가로막던 건물 잔해는 말 그대로 찢겨나갔다는 표현이 정확했고, 공격 경로는 눈으로 좇는 것이 전부였다.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스쳐 간 검기는 주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다.
“취에에잇!”
오크의 기합이 커지면 커질수록 느껴지는 위기감도 함께 커졌다.
대검엔 이제 가공할 정도의 기운이 담겼다.
이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진 수단으론 절대 방어해낼 수 없는 공격인 것을.
‘3.’
오크의 힘줄이 쉴 새 없이 요동치는 와중에도 주민성은 숫자를 세고 있었다.
‘2.’
계산대로라면 카운트다운이 끌날 때가 검기 발출 시점이다.
‘1.’
알고도 못 막는 공격이라고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희린처럼 순간적인 검기를 쏘아대면 모를까.
“취아아아!”
검기가 쏘아지는 순간.
구석에 떠오른 인벤토리에선 텐트 하나가 떨어졌다.
콰과과과과!
‘건물 관조. 텐트 20.’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건물 관조 능력을 이용해 완전 회피에 성공했다.
곧이어 주민성이 있던 공간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위희린의 검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파괴였다.
콰르르!
“어휴. 저것도 빡세네.”
주민성은 느긋하게 오크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취힉. 췩……. 이게 무슨…….”
“피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췩!”
그리고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보물창고 벽면은 그대로 뜯겨나갔다.
벽 너머 본 풍경은 이전에 봐 왔던 황무지 마을이 아니었다.
“……뭐야 저게?”
중세 도시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했다.
축제라도 있는지 캄캄한 밤이었음에도 화려한 마법 같은 조명들이 가득하고, 한껏 치장한 오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의 문명 발전이었다.
그리고 오크의 검기는 축제 현장을 찢어발긴 걸로 모자라 저 멀리에 보이는 산까지 쏘아졌다.
“어쩐지…….”
보물창고가 소유되지 않은 이유도 짐작 가능했다.
“고대 등급 건물이 아니었네.”
보물 창고는 대충 봐도 상급 수준의 건물이었다.
그것도 신축.
“이러면 좀 미안해지는데.”
주민성의 양심이 다시 한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거, 하위 차원에 선물이나 조금 남겨줄까.”
주민성은 그대로 인벤토리를 운용했다.
이동 장소는 오크들의 머리 위.
“잔해 정도야 쉽게 막겠지.”
건물 잔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취익! 기습!”
“위다! 취!”
콰과광! 콰광!
예상대로 오크들은 건물 잔해를 쉽사리 막아냈다.
아니, 막아낸 걸로 모자라 건물 잔해를 튕겨내며 반격하기 시작했다.
“어디야! 취익!”
“취! 대영웅이 내리는 시련이다!”
신세대 오크들 역시 시련 매니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 잔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취익! 보이지 않으면 전부 쓸어버릴 테다!”
“취취!”
오크의 피가 끓기라도 했는지 녀석들은 크게 흥분하며 잔해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덕분에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쾅! 쾅!
“좋아. 조금만 더.”
주민성은 오크들이 좀 더 화를 낼 수 있게 치사량 수준이 아닌, 거슬릴 수준의 미세먼지를 섞어냈다.
“취힉! 췩! 비열하다!”
“취이힉!”
콰르르! 쿵!
보물창고를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졌다.
뒤이어 천장도 내려앉는다.
“흐흐.”
건물 관조가 종료된 시점은, 보물 창고가 전부 박살 난 이후였다.
물론 난동을 부리던 오크들은 근처의 경비대에게 구속됐다.
“억울하다! 취익!”
“뭐라도 말이라도 해줘! 취!”
하지만 주민성은 쏟아지는 메시지를 읽기 바빴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셨습니다.]
[소유자: 스취 (직속 수하)]
[소유권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스취? 오랜만이네. 일단 줘봐.”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보물 창고(완파)가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건물 완파로 인해 부가효과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건 상관없었다.
하위차원의 모든 오크는 현실과는 다른 의미로 주민성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취, 취익?”
“대영웅의 귀환이다! 췩!”
건물이야 얼마든 보수하면 그만이었고, 보수가 끝난 이후의 건물은 하위 차원을 더욱 부강하게 만들 터였다.
“황무지의 전설을 뵙습니다! 취익!”
즈쉬의 밑 작업이 있었기에 대우는 극진했다.
덕분에 주민성은 대출혈 서비스를 감행.
현실에는 몇 초 늦게 귀환하겠지만, 주민성은 꼼꼼하게 건물 보수를 마쳤다.
“뭐, 선물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황무지 오크는 건물 부가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활용하는 종족이었다.
“그럼 나도 선물 좀 챙겨야겠지?”
“취익! 뭐든 말씀하십시오!”
주민성은 지금도 여전히 손발이 묶인 채 구속당한 오크들을 가리켰다.
“얘들 추방 대상이라며? 그냥 나 줘.”
“취익?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봉춘향에게 줄 선물이 추가됐다.
장거리 미사일을 대체할 이름 모를 오크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