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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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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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3)
2022.05.21.
주민성이 서풍 길드원들과 어색한 만남을 이어가는 사이, 강북구의 일살 길드는 엄청난 속도로 근처 지역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쿵!
일살 길드장 하성의 마지막 일격에 사두왕의 육중한 몸뚱이가 무너졌다.
“이 녀석이 마지막인가?”
“그, 그렇습니다! 마스터!”
뿌드득.
하성은 굳이 사두왕의 나머지 머리를 전부 짓밟아 터뜨려가며 여태까지 쌓인 분을 풀어냈다.
“이놈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빌어먹을.”
사두왕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교활하고 신중하며 재빠르기까지 한 보스 몬스터였다.
놈과 처음 마주쳤던 장소는 상계 6동.
그리고 이곳은 수락산 중턱이었다.
콰직! 콰직!
하성은 사두왕의 나머지 두 개의 머리까지 박살내고 나서야 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상황은.”
“아, 노원구는 저 녀석이 마지막입니다. 드디어 그 귀찮은 사두귀들도 약화되겠군요.”
“그런가.”
하성의 곁엔 오직 한 명의 간부만이 동행한 상태였다.
빠른 지역 통합을 위해 모든 길드원들을 사방으로 파견한 탓이었다.
너무나도 위험하고 빈틈 많은 방침이었다.
심지어 부길드장은 중랑구에 파견된 상태.
“강북에 이어 도봉구와 노원구까지 순식간이었습니다. 유물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
“죄,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여태 굳건하게 강북만을 지켜오던 일살 길드가 이렇게까지 변화한 계기가 있었다.
길드장 하성이 강북 전체를 장악해 얻은 유물을 착용하고 나서부터였다.
“명령을 잊었나? 유물 빼고는 전부 허락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언했습니다.”
“다시 말하지. 유물만큼은 욕심내지 말길 바란다.”
“예…….”
정확히는 하성이 강북구의 유물을 전부 착용한 이후, 다음 날 아침부터 바뀌었다.
-도봉구로 진출하겠다.
-생존자는 나중이다. 보스 토벌이 우선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대는 없었다.
하성은 언제나 신중했고, 그의 선택은 항상 일살에 큰 이득을 가져왔으니까.
그렇게 일살은 단 하루만에 도봉구를 정복해냈다.
큰 희생을 치르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역 장악이 우선이야.
-부길드장이 정확히 봤다. 한강 이남 지역은 전부 협회장 차지라고 봐도 된다. 우리도 빠르게 움직여야해.
-유물? 미안하지만 유물 또한 내가 전부 착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 대신, 질서를 위한 모든 규칙들을 파기하겠다. 생존자들은 자유롭게 쓰도록.
불만은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처지는 다른 길드원들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락했고.
사회적 지위가 높건 말건, 능력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다.
일살이길 거부한 사람은 전부 노예 취급이었다.
-노원구로 간다.
-동행은 한명이면 충분하니 퇴로만 틀어막도록.
다음 날은 곧장 노원구 진출이 확정됐다.
하성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져서일까.
하성 특유의 신중함은 사라졌고, 냉혹함이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유물에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니, 기회가 두 번이면 기회라고 할 수 없다.
-반성은 죽어서 해도 늦지 않아.
중계동의 유물을 탐내던 간부는 그렇게 사망했다.
무려 SS급의 전력이었음에도, 하성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하성의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간부는 똑똑히 목격했다.
사두왕 추격전 도중에, 하성이 처음 보는 능력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오늘 봤던 모든 것들은 전부 함구하도록.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협회장이라는 녀석. 아니, 협회장이지.
자운 길드장 조주현의 사망 소식은 일살에도 알려진지 오래였다.
물론 협회장의 짓이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굳건하고 강인하던 조주현이다.
협회장 정도 되는 능력자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암살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상식이었다.
“후우우…….”
“마, 마스터?”
여기서 시간이 좀 더 지난 지금.
하성에겐 신중함이 사라져 있었다.
“……크흐. 괜찮다.”
하성은 사두왕에게서 얻어낸 유물을 바로 착용했다.
사두왕의 머리를 직접 밟아 부술때도 이상하게 느꼈지만, 끈적끈적한 피가 묻어 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깔끔하기론 아린 길드장 다음간다는 하성이.
“먼저 내려가 있도록. 나는 조금만 쉬고 내려가겠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수락산 중턱에 홀로 남은 하성은 게이트만 남아버린 도심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네놈인가.”
그러자 근처의 나무가 말했다.
정확히는 나무를 등지고 있던 한 사내가.
“말이 많이 짧아졌군. 하성.”
“그렇다는 것은 네놈이 협회장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로군.”
근처에서 나타난 남자의 정체가 협회장임이 밝혀졌음에도 하성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으음……. 하성이 아니었던 건가.”
“그렇다고 연금술사도 아니지.”
“…….”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는 쪽은 협회장이었다.
“네놈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알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지켜볼 예정이지.”
“자네.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어떤가. 이런 태도라면 조주현과 같은 결과만 나올 걸세.”
“건방지구나. 인간.”
눈 깜짝할 사이, 협회장은 피를 가득 머금은 감옥에 갇혀버렸다.
“아아. 그쪽 양반이었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믿는 구석이 있으신 양반이시군.”
끼릭.
황당하게도, 협회장은 그대로 감옥 문을 열고 나왔다.
이 문은 하성의 승인 없이는 열리지 않는 문이었고, 하성은 협회장이 나오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문은 닿는 모든 것을 분쇄해버리는 문이었다.
하지만 협회장은 멀쩡했다.
“……어, 어떻게?”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당신들과 좋은 비즈니스를 하는 걸세. 하수인이 아니라는 소리지.”
그렇게 하성 앞에 도달한 협회장이 기세를 일으켰다.
쿠구구구……!
단순한 위압 행위일 뿐이었음에도 산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하성.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힘든 훌륭한 젊은이지.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해 참 안타까워.”
“…….”
툭툭.
협회장은 그런 하성을 격려라도 한다는 것처럼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손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유죄다.”
파직.
동시에, 협회장의 손이 으깨졌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협회장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다.
“허허. 또 죄를 지어버린 모양이야.”
오히려 허허 웃어넘기고 있었다.
덕분에 하성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
“죄를 목숨으로 갚기 싫다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협회장의 손이 멀쩡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걸로 죗값은 전부 치렀네.”
“…….”
하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늦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이에 관한 것도 함께 셈했네. 충분한가?”
“…….”
“충분한가 보군.”
협회장은 사람 좋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랑구까지만 적당히 먹고 빠지시게나. 욕심이 커지면 비즈니스도 없는 걸세.”
“…….”
“그럼 종로에서 다시 만나지. 그때는 부디 자네가 하성이길 바라네.”
협회장 정혁수는 이 말만을 남기고 하성에게서 물러났다.
* * *
그리고 이틀 뒤.
주민성은 꽃집에서 이로운 꽃들을 조합해 꽃다발을 만들어 인천 지부로 가고 있었다.
봉춘향이 각성을 마쳤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카지노가 끝난 건가.”
봉춘향이 없는 나날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서풍 길드와의 본격적인 협상, 추가 생존자 합류, 차원 경매장 쇼핑, 현금 정산, 농사 감독, 임진석과의 소통 등등.
전부 주민성을 거치거나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핵심 한 명 빠지는 게 이렇게 클 줄이야.”
봉춘향의 합류 없이는 외부활동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였다.
덕분에 이번 각성 소식은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는 것보다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물은 뭐가 좋으려나.”
대격변 덕분에 각성 비용은 마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상당한 돈이 굳은 상황.
게다가 앞으로 더욱 활약할 봉춘향을 떠올리니 꽃다발만으론 한없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건물은 얼마든 줄 수 있으니 오히려 가치가 떨어져 보이고…….”
지금은 특별한 선물이 필요했다.
“……취, 취익!”
꽃집 근처엔 즈민성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주민성의 이상 행동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후후후후……. 그게 좋겠군.”
“다, 다가오지 마라!”
“어허. 존댓말 해야지. 너희들을 누가 먹여 살렸는데.”
“요취!”
주민성은 그대로 즈민성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살갑게 말했다.
“너네 동네. 잠깐만 놀러가자.”
“취, 취익! 엄마 허락 없이는……!”
“에헤이. 잠깐이면 돼. 괜찮은 보물 하나만 챙기고 나올게.”
하위차원의 보물.
이거라면 괜찮아 보였다.
오직 주민성의 게이트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차원인데다, 아무나 출입할 수도 없는 장소였다.
오크를 제외하곤 차원문의 출입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주민성과 위희린에 한정될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위희린 같은 경우엔 출입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한다.
“취익…….”
“나도 별로 가고 싶은 동네는 아니거든? 아니면 바로 보물창고로 전송하든가.”
“……정말로 그거면 돼?”
“당연하지!”
즈민성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이 차원의 지배자였다.
그 동네에선 따라올 자가 없는 금수저였기에 보물 몇 개쯤 없어지는 건 크게 상관하지 않으리라.
“취익……. 그럼 한 시간만…….”
“한 시간이면 여기서 몇 초 정도였나. 오케이.”
“그리고 조건이 하나.”
“뭔데?”
“저기 꽃. 가지고 싶다. 취익.”
“꽃이라면 얼마든지.”
매수는 성공적이었다.
콧김을 췩췩 뿜어대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시작한다. 취익.”
즈민성이 본격적인 차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는 아직 주민성이 얻지 못한 능력이었지만, 언젠가는 주민성도 얻을 수 있으리라.
지이잉.
“보물창고로 가는 문이다. 여기서 1분 기다린다. 취익. 다녀와라요.”
“오케이.”
주민성은 그대로 차원문에 입장했다.
타인의 능력이어서인지 별다른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팟.
주변 배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즈민성이 말하던 보물창고에 도착한 모양.
“와…….”
말 그대로, 상상 속에서나 볼법한 보물창고였다.
사방에는 금화가 깔려 있고, 온갖 무구들이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우리 민성이가……. 조금 많이 순진하네…….”
주민성의 입꼬리가 한없이 솟구쳤다.
“고작 꽃 몇 송이랑 보물창고 이용권을 바꿔줄 줄이야.”
인벤토리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넘실대기 시작했다.
“…….”
혼자라서 그런 걸까.
평소였다면 보이는 대로 냅다 수납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왜인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즈민성이 너무 순수했던 탓이었다.
“생각해 보니 맛있는 고기 하나 먹겠다고 건너와서…….”
즈민성이 차원을 건너온 이후의 행적들이 차례로 스쳐갔다.
-고기……. 맛있다……. 옴뇸뇸.
-햄버거……. 신기한 음식……. 옴뇸.
즈민성은 오크답지 않게 미식가였다.
송곳니로 한 번에 씹으면 맛을 느끼는 데 방해된다며 앞니를 이용해 어떤 음식이든 깨작깨작 먹을 정도였으니까.
-취익! 또 이상한 버릇! 오크답게 먹어라! 취!
-으앵취!
그런 모습을 즈쉬에게 들켜 혼이 나도 자신의 의지를 언제나 관철하던 즈민성이었다.
“……쯧.”
결국 최후의 승자는 양심이었다.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다시 회수하며 넋두리했다.
“그래……. 눈앞에 먹을 게 있다고 전부 먹어 치우면 콩이 밖에 더 되겠냐.”
그 대신,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크로비츠의 장검이 수납됩니다.]
[대현자의 오브가 수납됩니다.]
[비술사의 고무 토템이 수납됩니다.]
유물급으로 쓸 만해 보이는 무기 종류부터.
[고대 제국 금화가 수납됩니다.]
[필리온 왕실 특별 금화가 수납됩니다.]
[암시장 금화가 수납됩니다.]
범상치 않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금화까지.
전부 필요한 물건이긴 했다.
생존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주민성의 세력원이 될 터였고, 무구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금화는 보험으로 필요했다.
“음. 문제는 선물용인데…….”
온갖 물건을 챙기던 그 순간, 주민성은 심상치 않은 에너지를 감지했다.
“……뭐지?”
위이이이잉!
곧이어 사이렌 소리와 흡사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