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받지 않은 손님 (2) (170/250)


초대받지 않은 손님 (2)
2022.05.20.


콰지직!

레이너의 전기톱이 완전히 박살났다.

뒤이어 위희린의 발길질이 작렬했다.

쾅!

“커헉!”

천마의 검은 잔챙이를 치우는 검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하나.

성우혁 뿐이었다.

“보이거라. 그 창이 가진 전부를 보이란 말이다.”

천마신검이 움직였다.

고작 한 번의 움직임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태까지의 깨달음이 담겨있었다.

콰과과과과!

성우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출력을 잔뜩 끌어올려 맞불을 켰다.

콰광!

창으로 변화했던 바다는 다시금 퍼져나가 상대를 에워쌌다.

“재미있는 기술이군.”

위희린이 검세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눈부시게 새하얗던 검은 순식간에 새까만 검강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바다를 상대로는 처음이구나. 어디 한번 이것도 받아 보거라.”

처음 성우혁의 공격을 전부 증발시켰던 검강이었다.

“큭!”

기세 좋게 몰아치던 파도가 순식간에 멎어 들었다.

그럼에도 검강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역으로 파도를 잡아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공을 제대로 갈무리할 줄 모르면 이런 결과만을 낳을 뿐이니라.”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제기랄!”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성우혁 입장에선 그저 본능적으로 살아야 할 길을 찾을 뿐이었다.

거대하던 파도는 어느새 다시 한 자루의 창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재미있는 아해야.”

“크아아아!”

쾅! 쾅! 콰광!

다시금 순수한 무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변화무쌍한 창술과 중후하기 짝이 없는 검술이 한데 뒤엉켰다.

콰지지! 콰직!

후폭풍으로 무식하리만큼 거대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큭! 길드장님!”

“젠장! 접근할 수가 없다!”

“접근은커녕 버티는 것도 한계다! 다들 준비해!”

“크윽! 컥!”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분노 어린 기운만이 남게 되었다.

“……고작 이게 전부란 말이냐.”

“쿨럭!”

콰직!

승패가 명확해진 순간이었다.

성우혁은 위희린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내공이 아깝구나. 정말로.”

성우혁을 따르는 서풍 길드원들 역시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어느 순간 나타난 성아영의 기습 때문이었다.

* * *

주민성은 침입자들이 출몰했다는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위희린과 성아영,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30명의 능력자들이 있었다.

“뭐야. 이 사람들 생존자 아냐?”

“늦었잖아!”

주민성은 어느새 다가와 해맑게 알짱거리는 성아영을 치우고 위희린에게 향했다.

“죽인 건 아니죠?”

“그래.”

위희린과는 사전에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게이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리되, 혹시 모를 침입자가 발생하거나 게이트가 위험해질 경우엔 성아영을 도울 것.

그리고 사람은 죽이지 않을 것.

심플한 조건이었다.

“주민성! 나 빨리 칭찬해 줘! 잘했지?”

“응.”

“헤헤.”

정신줄을 반쯤은 놓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성아영은 제 역할을 충분히 했을 터였다.

정말 믿기 괴로운 일이지만, 성아영은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보이지 않을 때 일 처리를 잘한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어?”

그 순간, 주민성의 시선에 아는 얼굴이 포착됐다.

“……저기 쓰러진 남자. 성우혁 맞지?”

“내가 어떻게 알아? 유명한 사람이야?”

“서풍 길드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블랙리스트도 아닌데.”

“……너한테 기대한 내 잘못이지.”

“어허. 누나래도.”

결국 주민성은 성아영의 브리핑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보라면 위희린에게도 얻을 수 있었다.

“희린 씨.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든 호칭이군.”

“하하……. 그보다 저 남자. 물로 만든 창 들고 있지 않았어요?”

“……아아. 그랬었지. 바다를 다루는 인간은 동방의 마인들 이후론 처음이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위희린에게 제압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서풍 길드장 성우혁이 확실했다.

“대체 서풍 길드가 여길 왜 왔지?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길드 아니었나? 허.”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이 대격변 시국이라는 사실이었다.

게이트로 바뀐 건, 지상뿐만이 아니었다.

해상도 마찬가지였다.

“성아영.”

“누나.”

“지금 누나거릴 때가 아닐 텐데?”

“우와……. 갑자기 이렇게 들이대는 거야?”

주민성의 촉은 성아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우혁과 성아영.

뭔가 그럴듯한 연관성이 느껴졌다.

“시끄럽고. 저 남자랑 무슨 관계야. 가족이야? 뭐 사고치고 집 나온 여동생같은 그런 설정이야?”

“뭐라는 거야! 나 가족 없거든?”

“…….”

성아영의 대답 덕분에 더욱 그럴싸한 느낌이 차올랐다.

“대충 알았다. 둘이 있을 시간 정도는 주도록 하지.”

“야! 내 말 들어! 무슨 헛소리야!”

위희린과 성아영의 상태는 아주 멀쩡했다.

그 무시무시한 서풍 길드조차도 천마의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걸 어쩐다…….”

투혼 갑옷의 부작용으로 한 차례 엿을 먹었다는 사실과 협회를 대놓고 적대하는 서풍 길드의 존재가 주민성의 내면에서 한 차례 싸움을 일으켰다.

결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승리였다.

“가벼운 회복 정도는 상관없겠지. 성아영도 마냥 논 건 아니니까. 동생 찾아 이렇게 먼 길까지 찾아왔으니.”

성아영에 대한 정보는 신우빈이 제공했으리라 추측된다.

신성과 서풍은 밀월관계였으니까.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 하나를 꺼내 의식을 잃은 성우혁을 회복시켰다.

“크으…….”

“안녕하세요. 성우혁 씨. 팬입니다.”

“누, 누구…….”

위희린의 손속이 보통이 아니었는지, 텐트의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성우혁은 쉽사리 눈을 뜨지 못했다.

“사정이 있어 신원은 밝힐 수 없지만, 투혼 갑옷은 잘 쓰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뭐예요.”

“이 목소리는…….”

“아무튼 성아영은 안전합니다. 부디 행복한 가족 상봉의 시간 되시길. 끝나면 잠시 저와도 대화 부탁드리고요.”

서풍 길드의 지원은 인력난을 겪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주 유효하게 작용한다.

위희린이 워낙 사기적인 강자라서 그렇지, 성우혁은 무려 세계 랭킹 5위의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최전방 게이트를 믿고 맡겨도 될 정도.

하지만 성우혁은 뚱딴지같은 소릴 이어가기 시작했다.

“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이런 규모의 세력을 가지고도 정혁수 같은 인물과 손을 잡는단 말이냐!”

“……예?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강서구의 왕. 네놈과 협회의 관계는 세상이 알고 있다. 이번엔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냐.”

“…….”

선을 넘어도 거하게 넘어버린 상황.

하지만 주민성은 인내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성의 정보통이 어찌 된 건지는 몰라도, 그렇게 찾아 헤매던 여동생이 엉뚱한 신원 미상 능력자의 게이트에서 발견되었다면 분노할 만도 하니까.

“뭔가 신우빈 씨랑 소통이 잘 안 된 것 같은데. 일단 진정부터 하세요. 성아영은 제 동료입니다.”

“도, 동료? 나 동료 맞아? 정말? 데헷……. 읍!”

주민성은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성아영의 입을 테이프로 봉인했다.

성아영을 만날 땐 항상 품속에 테이프를 챙겨 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우빈……. 그 망나니도 협회와 한 통속이었나…….”

“……곧 회복될 겁니다. 일단 오해부터 푸시죠. 다른 길드원 분들도 회복시키겠습니다.”

“…….”

새로운 사실 한 가지가 밝혀졌다.

서풍 길드는 신우빈과 손을 잡은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회장인 신명철 쪽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오해할 만하군. 뭐, 신성 회장 쪽도 협회와는 전쟁을 걸 정도로 사이 나쁘니까 크게 상관은 없겠지.’

왜인지 신우빈의 근황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신우빈은 알아서 잘을 누구보다도 잘 실천하는 진짜배기 동료였으니까.

“…….”

“…….”

다른 서풍 길드원들도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다.

길드장의 신병이 넘어간 상태였기에 격한 대응은 없었다.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며 눈치를 살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차례.

“…….”

“…뭔데.”

주민성은 테이프에서 해방된 성아영과 성우혁을 붙여줬다.

“가족 상봉 잘하시고.”

“…….”

둘은 말이 없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서로가 자신의 가족임을 부인했다.

황당하고도 남을 만남이었지만, 둘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럴 수밖에.

성우혁과 성아영의 외모는 피를 나눴다는 게 확실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성아영이라고 했던가. 부모님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협회장님이 내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야.”

“…….”

이쯤 되면 더 볼 것도 없었다.

이번에도 협회장이 협회장해서 벌어진 일이리라.

그렇게 주민성은 둘을 남겨두고 다른 길드원에게 향했다.

“부길드장님이 안 보이시네. 2인자 누굽니까?”

그러자 한 남자가 고개를 들어 주민성을 바라봤다.

“……강서구의 왕.”

“길드장님이 바쁘셔서 묻겠습니다. 분위기로 봐선 가족 구출을 위한 방문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

“여기 왜 왔습니까?”

남자는 성우혁을 잠시 바라봤다.

길드장과 똑 닮은 여자가 있으니 상대 쪽에서도 심란할 수밖에.

거기다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치긴 했어도, 치료까지 제대로 해줬으니 지금의 질문에는 대답해주는 것이 예의였다.

“길드장님께선 당신과 협회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협회장의 위치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이 양 측의 관계를 끊어낼 타이밍이라고 봤었고.”

“……그런 목적이었나.”

알고 보니 서풍은 괘씸한 목적을 가진 손님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

주변의 폐건물 몇 개가 쓸려나간 게 아쉽긴 해도 더 속 쓰릴 사람은 최선호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위희린이 먼치킨이었지 서풍은 절대로 약한 길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린 길드 전체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보시면 알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습니다. 전 협회 편까진 아니고, 협회장과 간단한 협상을 했을 뿐이고요.”

“…….”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조금만 더 오픈해 줄까요?”

“…….”

주민성은 텐트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에게 작은 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이용료 청구.”

“……!”

그리고 정체를 밝혔다.

“주민성. 그게 접니다.”

“……FFF급?”

“네.”

협회에 의해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불운한 능력자.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협회에 앙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 불쌍한 남자의 인상착의 정도는 기억한다. 외모가 너무 다르군.”

“…….”

“주민성은 당신보다 훨씬 못생겼지.”

“…….”

지금의 뛰어난 외모를 칭찬하는 말이었음에도 기분이 영 찝찝하다.

과거의 자신 또한 주민성이었기에.

“강남에서 케어 좀 받았습니다.”

“…….”

“지금은 그쪽이 아는 일반인 흙수저 주민성이 아니거든요.”

“…….”

남자는 신중했다.

더욱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 모양.

“하. 신우빈 카드 긁어서 관리 받았어요.”

“……그렇다면 말이 되는군.”

신성의 미용기술은 당연하겠지만 세계 제일.

평범한 남자도 훈남으로 가꿔내는 기술은 신성 백화점을 더욱 빛나게 만든 요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괴팍한 능력. 보셨습니까. 메시지도 보이잖아요? 건물주라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의심으로 일관하던 남자가 항복을 선언했다.

“……믿겠다. 너는 주민성이 맞군.”

“말투 좀 어떻게 안 됩니까. 너무 있어 보이는데.”

“크흠…….”

그러는 와중에도 성우혁과 성아영은 몇 가지 문답을 나누고 있었다.

상당한 진전이 있었는지 둘의 표정엔 황당함이 가득하다.

“부모님이 누군지 모른다라. 그리고 어릴 적 버려졌었고…….”

“……어.”

그리고 성우혁이 말했다.

“내 부모님은 협회장에게 잔혹하게 죽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널 빼돌렸을 가능성도…….”

“…….”

평소의 성아영이라면 협회장에 대한 비난을 참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자신의 친오빠일 가능성이 있는 성우혁이었기에 참아냈다.

“네가 뛰어나서. 그래서 협회장이 중용했겠지.”

“…….”

동시에 주민성의 심경도 복잡해져만 갔다.

주민성 역시 성아영과 같은 처지였기 때문에.

‘협회장도, 장 박사도 내 부모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어쩌면 협회장 정혁수는 주민성이 태어날 때부터 원수였을지도 모른다.

1654886128159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