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1)
(16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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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1)
2022.05.19.
주민성의 농사는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됐다.
반복된 학습으로 작업에 익숙해진 고블린들과, 교육과정으로 농업 지식을 공유한 판자촌 능력자들의 지원 덕분에 수확된 푸푸 열매는 이제 트럭에 쌓아도 될 정도였다.
“…….”
“…….”
그리고 이들을 복잡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최선호와 김호영이었다.
둘은 각성을 마치지 않은 상태로 게이트에 복귀했다.
봉춘향의 각성이 너무나도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끼니부터 해결할 겸, 둘은 아지트 근처에 있는 초월 편의점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라면, 삼각김밥, 볶음김치, 햄, 치즈, 닭 가슴 살 등등.
상당히 호화로운 식사 거리가 펼쳐졌음에도 둘은 젓가락조차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뭐. 춘향이 각성 끝날 때까진 대기할 수밖에. 편히 있어.
-형은 어디 가세요?
-응. 인천 게이트에 잠깐.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 편하게 릴렉스. 알았지?
주민성의 표정은 평소 같지 않았었다.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 중이었음에도 그런 표정이었다면, 무언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는 뜻.
그런 와중에도 별말 하지 않았다는 건 각성을 앞둔 최선호와 김호영을 향한 나름의 배려였으리라.
‘……인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렇게 거대한 농지를 만들어 놓고 자리를 비울 형이 아닌데.’
여태 알던 주민성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의 농지도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이었지만, 최선호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직 일은 제대로 벌이지도 않았다는 걸.
‘인벤토리 능력도 있는데 수확물을 굳이 따로 비축한다는 건, 다른 생각이 있어서일 거야.’
푸푸 열매에 관한 설명은 들었다.
용도 역시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맹독 열매는 암살용으로, 정상적인 열매는 식자재로 활용했을 터였다.
‘못해도 하루쯤은 더 남아서 성과를 봤어야 했어.’
씁쓸한 표정으로 치즈 봉투를 뜯어낸 최선호가 천천히 말했다.
“인천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최선아는 강서구 전방에서 생존자 인계를, 김정남은 신방화역에 남아 인계된 생존자들을 차량에 탑승시키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봉춘향이 분신을 해제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최선호보단 김호영 쪽이 정보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김호영의 친구들은 인천에서 대기 중이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임시 대피소에 있다네요.”
“후우. 정말 괜찮으려나.”
“그래도 많이 심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 증거로 저분들도 여기 계시잖아요?”
김호영이 가리키는 사람은 판자촌 능력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민성 세력의 최정예 병력.
만약, 인천 게이트에 심각한 일이라도 벌어졌다면, 이들 또한 이곳이 아닌 인천 게이트에 있어야 했다.
“아마 우리 때문일 수도 있어요. 기대 받는 유망주니까요.”
“선호 씨나 춘향 씨는 그렇겠다만……. 저까지요?”
“네.”
봉춘향이나 최선호는 지금도 주민성 세력의 핵심 일원이었다.
그리고 김호영은 김정남의 공식 제자이자 미친 피지컬을 가진 일반인이었다.
“전부 말해드리긴 곤란한데, 제가 호영 씨랑 같은 입장이었다면 정말 세력에 아무런 도움도 못 됐을 거라서요.”
순수한 칭찬에 김호영은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크흠……. 저랑……. 동갑이시죠?”
“……네. 아마도요…….”
“말 편하게 하실래요?”
“……그, 그래도 될까요.”
최선호와 김호영은 둘 다 스무 살로 동갑이었다.
하지만 김호영은 누가 봐도 스무 살로 보이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네……. 제가 좀 나이 들어 보이긴 해도 스물은 맞거든요…….”
“……그럼 말 편히 할게요……. 아니, 할게…….”
“고, 고마워…….”
홀로 병실에서 게임만 하던 최선호와 운동이 전부였던 김호영의 관계가 개선되는 순간이었다.
“근데 선호야. 인천도 여기만큼 안전한 거 아냐?”
“꼭 그렇지만도 않아. 바다에도 몬스터는 있으니까. 대격변인 만큼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데다, 블랙씰처럼 지상에 상륙할 수 있는 몬스터가 침입해 올 수도 있거든.”
“블랙…… 씰?”
“대충 물개랑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야. 차이가 있다면 이마에서 파괴 광선을 쏴대는 정도?”
“……그, 그렇구나.”
유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스켈레톤과의 싸움을 상기했다.
“각성만 마치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거겠지?”
“아니. 계속해서 발전해야지. 당장 나도 민성이 형한테 큰 도움은 못 되는 걸. 이제 겨우 1인분이라도 하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와…….”
“일단 밥부터 먹자. 몸 상태만 잘 끌어올려서 각성만 잘 마치면, 밥값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밥값.”
유호영은 그제야 테이블의 놓인 음식들의 무게감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생존자였다면 제대로 누리지도 못할 사치스런 음식들이 가득했다.
“응. 밥값.”
왜인지 유호영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부담감이라기 보단, 뭔가 다짐한 듯한 표정이었다.
“선호야. 인천 쪽 상황. 좀 더 알아볼까?”
“어떻게? 친구들 대피소에 있다며.”
“맞아. 근데 걔들 중 한 명이 망원 능력을 각성했거든. D급이긴 하지만.”
“망원 능력이라면……. 그 멀리 있는 것도 자세히 볼 수 있는 능력이었지?”
“맞아. 지금 있는 대피소에 창문이 없는 게 좀 문제긴 한데, 탈출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탈출까지……?”
“응. 무리수긴 해도, 공이라도 잘 세우면…….”
유호영이 하려는 것은 무리한 행동이었다.
편의점의 호사스런 음식들을 혼자 먹는 것에 대해 나름의 죄책감이 있던 모양이다.
“아니. 잠깐.”
“응?”
“민성이 형은 그런 거 싫어해. 변수잖아. 대피소에서 빠져나오면 완전 마이너스야.”
“……아. 그렇구나……. 망했네.”
유호영은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최선호는 유호영이 가진 정보를 가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어.”
“……정말?”
“응. 대피소. 어떤 건물이었어?”
“오래된 서점이었나? 혹시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그제야 최선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능해. 대피소로 마련한 건물들이라면.”
“정말?”
인천의 폐건물 소유권 대부분은 최선호에게 있었다.
“그 서점. 창문만 있으면 굳이 빠져나갈 필요 없잖아.”
“……맞아. 하지만…….”
우장산을 정복한 최선호에겐, 새로이 얻은 원격 용도 변경 능력이 있었다.
“기다려봐. 서점에 창문 하나씩 뚫어줄 테니까.”
* * *
인천 앞바다.
그곳엔 주민성 세력 그 누구에게도 인계받지 않은 생존자 집단이 도착해 있었다.
“……길드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몬스터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오차 따위 없는 S급 감지 능력자의 보고였다.
“……게이트 상태는?”
“미점령 게이트와 같은 농도입니다. 대격변 이전에도 존재하던 게이트라서 다른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니다. 공유받은 정보에 의하면, 기존의 게이트도 대격변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보스 몬스터를 제압해 지배가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었어.”
“……그럼 보스 몬스터 짓이겠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군중 제어 능력을 가진 보스 몬스터는 흔하니까. 여기 보스 몬스터는 꽤 예민한 모양이야.”
말을 마친 남자가 걸음을 옮겼다.
츠츳.
백사장을 걸음에도 불구하고 모래 한 알갱이조차 그의 신발에 파고들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남자가 오른손을 높게 치켜 올렸다.
쿠구구구구……!
그러자 남자의 손을 따라 바다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표현으로는 설명조차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바다는 우리 편이니까.”
인천 앞바다에 도착한 인원은 총 30명.
바다를 끌어당겼음에도 물에 젖거나 모래사장에 발이 파묻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이 남자가 사용한 능력 덕분이었다.
“보스 몬스터만 빠르게 제압해내고 강서구로 이동한다.”
“예.”
이 무시무시한 일행들이 여기까지 방문한 목적은 간단했다.
최근 우튜브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는 강서구의 왕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타니그라. 현 시간부터 경계 대상엔 타 조직원들도 포함시키겠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남자의 표정엔 어울리지 않는 근심이 있었다.
애초에 그것이 남자를 먼 유럽 땅에서 이곳까지 방문하게 만든 이유였다.
‘협회 측에서 이렇게 또 다른 칼을 숨겼을 줄이야. 이 또한 신성 회장의 실종과 연관 있겠지.’
남자의 이름은 성우혁.
다국적 길드 서풍의 길드장이자, 세계 랭킹 5위의 SSS급 능력자였다.
또한, 이 남자와 함께 도착한 일행들 역시도 전원 S급 이상의 서풍 길드 최정예 멤버들이었다.
“길드장님!”
지역 감지를 전담하는 타니그라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누군가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셋……? 아니, 두 사람입니다. 한 명은 조금 떨어져 있습니다.”
“……경계 태세.”
처척!
끌어온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서풍의 능력자들 전원은 빠르게 전투태세를 정비했다.
그 순간.
“쿠에시. 온다.”
“예!”
곧이어 매서운 에너지파가 성우혁을 향해 뿌려졌다.
콰쾅! 쾅! 쾅! 콰과광!
다행히 쿠에시라 불린 흑인 여자의 활약으로 방어는 성공.
하지만 후폭풍은 상당했다.
“컥! 쿨럭!”
고작 한 번의 방어에 성공했을 뿐인데도 쿠에시는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을 정도였다.
“……다들 뒤로 물러서라.”
성우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상대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다음 공격은 성우혁이 직접 막아내야만 할 정도라는 것을.
“…….”
하지만 에너지파는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공격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단 두 명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30명을 상대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타니그라. 한 명은 어디 있지?”
“공격자와 가까이 있습니다!”
“은신 능력자인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까다롭군. 협회에서 숨겨둔 게 칼 한 자루만은 아니었던 건가?”
곧이어 공격자의 모습이 성우혁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동양인이군. 국내의 고위 능력자라면 전부 확인되었을 텐데.”
“일본이나 중국인이겠군요.”
“국적은 상관없다. 협회의 개들은 전부 수장시킬 뿐.”
본격적인 성우혁의 반격이 시작됐다.
쿠구구구구……!
여태껏 끌어온 바다가 한 점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격자에게 쏘아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초.
그럼에도 충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파스슥! 파스스슥!
대신, 바다가 통째로 증발하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질 뿐이었다.
“……검사인가? 흔치 않은 능력자군. 왕웨이. 리에. 저자가 쥐고 있는 유물에 대해서 알고 있나?”
대답해온 건 왕웨이라는 중국인 남자였다.
“양날 직검의 형태……. 상당히 특이한 형태입니다만, 신강성 게이트에서 발견된 유물과 흡사합니다.”
“중국인인가. 협회가 중국에까지 손을…….”
성우혁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상대가 더욱 거대한 기세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레이너.”
“예!”
레이너라 불린 남자는 곧장 우회에 나섰고, 성우혁 또한 상대가 출력을 전부 끌어올리기 전에 돌진했다.
그리고 성우혁의 오른손엔 어느새 바다가 형태를 바꾼 장창이 들려 있었다.
“……오만한 여자군.”
공격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성우혁의 공격을 허락이라도 하려는 듯 기세를 낮췄다.
그리고 성우혁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쾅!
상대의 검과 성우혁의 창이 부딪혔다.
“누구냐. 넌.”
콰광! 쾅!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협회에 투신한 이유가 뭐냐.”
공격자가 답했다.
“……구나. ……좌의 식사를…….”
“……음?”
“방해…….”
상대 역시 중국어로 답했지만, 성우혁이 여태껏 알던 언어 체계와는 다른 중국어였다.
때문에 전부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창술. 보여라.”
“…….”
마지막 대답은 그나마 아는 단어들의 조합.
여자는 성우혁의 창술에 크게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혁은 1:1 결투의 승리 같은 명예 따위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우혁의 전쟁은 이런 것이었다.
“레이너!”
“예!”
미국인 능력자 레이너가 전기톱을 휘둘러 여자의 옆구리를 노렸다.
콰지지지지! 파각! 파가각!
레이너 또한 서풍의 대표 능력자였다.
딜링 능력 하나만큼은 성우혁과도 맞먹을 정도.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레이너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톱의 톱날은 상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며 박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가 말했다.
“……는 빠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