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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적 농사 (2) (168/250)


파멸적 농사 (2)
2022.05.18.


어망 하우스에 심어진 씨앗이 꿈틀거렸다.

정말 미세한 소리였지만, 주민성은 이를 느낄 수 있었다.

‘물은 딱히 가리지 않는 건가.’

어망 하우스는 둘.

어느 한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푸푸 열매 씨앗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츠츠츠.

씨앗은 게걸스럽게 물을 흡수했다.

파멸적으로 뒤집힌 땅이 계속해서 맥동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쿠구구구!

‘큰 거 온다!’

기합이 아니었다.

실제로 푸푸 열매는 개량된 진흙과 약초 비료의 영양소, 거기에 기호에 맞는 물까지 전부 흡수해 강대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쿠직. 쿠지직.

씨앗이 갈라지며 뿌리가 내려앉았다.

동시에 뻗어진 줄기는 땅을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정말 그대로의 평가였다.

푸푸 열매 씨앗은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 같은 느낌으로 성장했다.

단지, 성장속도가 비정상적인 것이 문제였다.

예를 들면 키 195cm에 몸무게 110kg의 사기적인 피지컬을 갖춘 초등학생이랄까.

쿠구구구!

성장은 계속됐다.

뻗어진 줄기는 어망을 휘감고, 근처 땅까지 덮어나갈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원인은 쉽사리 파악할 수 없었다.

범상치 않은 소재가 너무나도 많았다.

‘파멸적인 곡괭이? 아니면 그 곡괭이로 일군 땅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진흙도, 비료도 평범하진 않은데. 건물 부가효과나 고유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흐음.’

어찌되었든, 가장 먼저 확인해야할 건 따로 있었다.

핵심 수확물인 열매에 대한 분석이었다.

“좋아.”

푸푸 열매는 호리병처럼 생긴 열매였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방식이 아닌, 줄기에서 자라난 혹이 열매로 변형을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주민성은 근처 폐건물에서 기웃거리던 고블린에게 말했다.

“제군. 이리로.”

“키엑!”

직접 먹어 보기엔 애매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최악의 경우 중 하나인 열매에 독이 들어있는 경우.

그런 경우에도 주민성에겐 문제없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따라서 테스트는 평범한 고블린이 우선이었고, 다음이 사람의 차례였다.

“맛만 괜찮으면 쓸 구석이 참 많을 거란 말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과육의 가치는 커질 예정이었다.

당장은 마트나 과수원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도 당장 몇 달만 지난다면 얻기 힘든 귀한 식품이 될 테니까.

이는 초월한 편의점에서도 보충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기껏해야 적은 재고의 통조림 과일과 과일 푸딩이 전부였기에.

“자. 먹어 봐.”

주민성은 푸푸 열매를 가볍게 따 고블린에게 건넸다.

물론 안전을 위해 시식은 텐트 내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물 소통이 발동됐다.

“먹어보고 무슨 맛인지 알려줘.”

“키익! 알겠습니다!”

고블린은 그대로 푸푸 열매를 거침없이 입에 넣고 씹었다.

맹목적인 충성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고블린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돼.”

그제야 고블린이 입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키히히히! 기분 좋은 맛!”

“음?”

혹시나 알콜 성분이라도 있을까 냄새를 맡아 봤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새콤한 향이 강했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맛! 키히힉!”

그렇다고 웃음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을 가능성도 적었다.

건물 부가효과는 이용자의 정서적 안정을 보장하니까.

따라서 약물 등을 통한 부자연스러운 즐거움은 발생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이는 즉, 고블린은 순수히 열매의 맛을 통해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하여튼 오케이. 맛은 보장이군.”

고블린이 즐거워하는 맛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적어도 유해한 느낌은 없었다.

이쯤 되면 곧장 임상실험에 들어가도 될 정도.

주민성은 어망 하우스 2에 맺힌 열매를 고블린에게 건넨 뒤, 어망 하우스 1에 맺힌 열매를 입에 넣었다.

“냠.”

보통 수준보다 작게 깨물었음에도 엄청난 과즙이 입안에 퍼졌다.

“……허.”

고블린이 기뻐하던 이유가 확실히 밝혀진 순간이었다.

푸푸 열매는 엄청나게 맛있었다.

“미쳤다. 대박이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도 떠올랐다.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먹을 때 발동되는 포식자의 허기 때문이었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흡수합니다.]

[복합적인 대상입니다.]

[가장 강력한 기운을 흡수합니다.]

[파멸적인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건물 고유 효과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기운.

여기까지만 봐선 건물 고유 효과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그동안 올려온 건물주 등급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가 선택한 답은 주민성의 예상과는 달랐다.

[파멸적인 기운을 흡수합니다.]

[파멸과 연관된 모든 행위에 미량의 보정을 받습니다.]

가장 강력했던 기운은 파멸이었다.

“……의외네.”

파멸의 강화석은 나름 저렴한 가격에 구했던 놀이용 장난감이었다.

그런 장난감이 건물 고유 능력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정화수는 현실의 물건이라서인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보다 파멸 행위라…….”

파멸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단순히 사전적 뜻만을 보자면 파괴되어 없어진다는 내용이었지만.

“밭도 멀쩡하고 곡괭이도 멀쩡한데.”

미량의 보정이라 효과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적어도 과다 복용해서 좋을 일은 없으리라.

포식자의 허기가 파멸의 기운을 완벽히 흡수해낼 테니까.

“에이. 맛은 괜찮았는데.”

다음은 소금물을 머금고 성장한 어망 하우스2의 푸푸 열매 차례였다.

“키힉?”

“……어때?”

“키히히힉? 키힉?”

“…….”

소금물로 성장한 식물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맛은 아니리라.

“키힉! 달다!”

“달아?”

“키힉? 짜다? 짜다가 달다?”

“…….”

“아니다! 달다! 키힉!”

“…….”

적어도 소금 맛은 확실히 포함된 모양.

이는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짠맛이라면 게이트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맛이었으니까.

학교의 라면도, 편의점의 과자나 햄버거 등의 각종 군것질거리들은 대부분 짠맛이었다.

물론 다행인 점도 있다.

단맛이 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달아! 키히! 달다!”

최종 결과도 단맛이었고.

주민성은 아쉬운 표정으로 어망 하우스2의 다른 푸푸 열매를 입에 넣었다.

“…….”

확실히 1번 하우스의 열매보단 복잡 미묘한 맛이 앞섰다.

하지만 주민성의 미각은 고블린보다 더욱 뛰어났다.

“뭐야. 짠맛 그렇게 거슬리진 않는데? 오히려 중독성도 있는 것 같고.”

곧이어 포식자의 허기가 떠올랐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피식 대상의 힘을 흡수합니다.]

[복합적인 대상입니다.]

[가장 강력한 기운을 흡수합니다.]

[파멸적인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건물 고유 효과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맹독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어?”

이전과 비슷했지만, 전에 못 봤던 메시지가 한줄 더 있었다.

[맹독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2번 하우스의 푸푸 열매엔 독이 들어있었다.

“……갑자기 맹독이라고?”

원인이라면 하나뿐이다.

두 어망 하우스의 차이는 정화수와 바닷물뿐이었으니까.

주민성은 나름의 분석을 시작했다.

“가정 하나. 바닷물 또는 소금물과 푸푸 열매 성분이 섞이면 맹독이 된다.”

가장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답이었다.

다른 차원의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기에 유력한 가정이었다.

“가정 둘. 바닷물이 오염되었다.”

이 역시도 그럴듯한 분석이었지만, 이 주장엔 알리바이라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고깃집에서 사용하는 소금 일부는 증발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생산했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바닷물에 맹독 성분이 있었다면, 소금에도 반영되어야 정상이었다.

“두 번째 가정에 대한 변수라면……. 역시 건물인가.”

주민성에겐 오염된 바다라는 조건을 상쇄시킬 만한 수단이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는 건물 이용자 또는 건물주에게 유해한 맹독 성분을 중화시킬 수도 있었다.

이 과정을 통과한 바닷물은 정화수가 된다.

“확실히 그럴듯해. 고깃집도 내 건물이니까.”

심지어 소금을 운반하는 과정엔 저마다 개인용 텐트를 착용중인 판자촌 능력자들이 개입된다.

소금은 얼마든 건물 부가효과에 노출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챙겨온 바닷물은 건물 부가효과를 적용시키지 않았었지.”

이런 이유들 때문에 두 번째 가정 역시 상당히 그럴듯한 가정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빈 퍼즐까지 맞추면 이 가정은 더욱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낸다.

“……맹독. 그리고 균열 아래의 맹독충.”

인천 앞바다는 최선호의 독무대였다.

정확히는 해상요새가 전부 해먹었지만.

바다를 뒤엎으며 맹독충 애벌레를 쓸어 담는 과정에서 바닷물이 오염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골 때리는군. 맹독 바닷물이라니.”

“키히히히! 달다! 달아!”

주민성은 고블린이 먹던 푸푸 열매를 압수했다.

“둘이 먹다 둘 다 죽는 맛이야. 자제해.”

“키익…….”

그냥 독도 아닌 맹독이다.

독성에 대해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입이 아플 정도.

텐트 내부였기에 망정이었지, 소중한 상급 고블린을 잃을 뻔한 순간이었다.

“근데 이것도 좋단 말이지…….”

위험성은 둘째 문제였다.

단짠을 전부 가진 이 푸푸 열매는 주민성의 입맛은 물론 고블린의 입맛까지 만족시켰기에 활용도는 어마어마하다 할 수 있었다.

특히, 파멸적인 용도로 말이다.

“아예 이 녀석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다른 게이트에 풀어도 될 것 같은데.”

주민성이 지배 중인 구역을 제외하면,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되는 장소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제공한 건물이라면 스미스가 소속된 부처와 박진우에게 대여한 것, 그리고 신우빈을 비롯한 일부 신성 측 사람들에게 넘긴 것이 전부였다.

즉, 2번 푸푸 열매는 이를 제외한 모든 게이트에서 활약할 수 있는 달콤한 성배였다.

심지어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열매에 담긴 파멸적인 기운이라는 은밀한 독이 2차 공격을 위해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번은 1번대로 좋지.”

1번 푸푸 열매는 순수한 식재료로 활용하면 그만이다.

고기에 곁들여도, 배급하는 식량에 섞기에도 좋았다.

더불어 이중 가장 꺼림칙한 파멸 속성의 경우엔, 건물 부가효과를 통해 최대한 줄여 볼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은 넘치도록 많았다.

이곳엔 고블린이라는 우수한 노동력이 있었으니까.

“후후. 후후후…….”

이후 작업은 더 볼 것도 없었다.

파멸적인 농사의 시작이었으니까.

“반복 창조 가즈아!”

주민성은 구획을 나눠 새로운 어망 하우스를 설치했다.

홀수 구역은 홀수 번호의 어망 하우스가.

그리고 짝수 구역엔 짝수 번호의 어망 하우스가 추가됐다.

당연히 홀수는 정화수를 먹여 키우는 푸푸 열매가 자랄 것이고 짝수는 바닷물이었다.

“고블린 제군들. 이리로.”

“키에엑!”

건설은 창조라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주민성이 직접 담당했지만, 다른 잡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명령만 해두면 알아서 일하는 고블린들이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저 열매를 따서, 지정된 위치에 비축시키면 된다.”

식용 목적의 홀수 푸푸 열매는 인천 게이트로 향하는 입구 근처 폐건물에 쌓아두기로 했다.

그 이후엔 오크든, 알바 겸 나선 생존자들이 알아서 나를 터였다.

그리고 암살 목적의 짝수 푸푸 열매는 전부 아지트 행이었다.

잔뜩 모았다가 날 잡아서 제대로 푸는 순간은 주민성이 또 한 번의 완벽한 암살 기록을 추가하는 날이 되리라.

“키엑! 키엑!”

다행히 똑똑한 고블린들은 주민성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

곧이어 고블린들은 세세하게 자신의 역할들을 쪼개나갔다.

대충 줄기에 맺힌 푸푸 열매를 수확하는 담당, 수확한 열매를 지정된 장소로 옮기는 담당 등으로 나뉘었다.

“훌륭하군.”

이것으로 반쯤 자동화된 농지가 완성됐다.

정화수 수량이 한정된 게 아쉽지만, 어차피 홀수 열매는 추가적인 개량이 더 필요한 상황.

메인은 맹독성 푸푸 열매의 양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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