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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적 농사 (1) (167/250)


파멸적 농사 (1)
2022.05.17.


파멸이 깃들었든, 축복이 깃들었든 농기구는 여전히 농기구였다.

그리고 곡괭이의 용도는.

콰과과광! 쾅! 콰광!

“어이쿠.”

씨앗을 심기 좋게 땅을 고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강화된 곡괭이라 그런가? 성능 확실하구만.”

당연하게도 폐허 도시는 농사하기 좋은 땅이 아니다.

기름진 땅도 아니었고, 오히려 메마르기 짝이 없는 상태.

심지어 한참 동안 사용되지 않은 녹슨 하수관까지 지하에 뻗어있었다.

“추가 작업이 좀 더 필요하겠어.”

하수관이 문제라면 하수관을 뽑으면 된다.

어차피 초대형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지금은 푸푸열매 씨앗이 어떤 작물인지 확인하려는 테스트 단계였다.

콰지직!

우직!

하수관 정리 작업이 끝나고, 자그마한 주민성만의 농지가 완성됐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엔 더욱 처참한 폐허였지만.

“씨앗 간격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그냥 하나만 심을까? 음음. 아니지. 평균은 내야 하니까 셋으로.”

1평 남짓한 뒤집어진 땅에 푸푸열매 씨앗 3개가 적당한 간격으로 박혔다.

“다음은…….”

땅에 생기를 부여할 시간이었다.

물론 방법은 간단하다.

주민성의 인벤토리엔 진짜로 축복받은 진흙도 있었고, 특수 배양 약초 비료도 있었으니까.

“진흙은 조금만. 비료는……. 많이 넣어야 하나?”

당연하게도 주민성에겐 농업 지식이 없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귀농=힐링이라는 사고방식만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시작한 농사는 절대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라면 잔뜩 내세울 수 있었다.

다방면의 지식을 고루 갖춘 장 박사라는 조수.

그리고 건물 부가효과가 대표적이었다.

“알아서 보정되는 걸로.”

촤르르르!

반 포대 남짓한 비료가 씨앗 위로 쏟아졌다.

다음은 진흙을 살짝 섞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

“이 정도면 되겠지?”

왜인지 벌써부터 씨앗이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첫 농사의 설렘이 주는 착각이리라.

“여기부터가 진짜 진짜 핵심이지.”

다음 과정은 주민성의 특기 분야를 뽐낼 시간이었다.

“일단은 비닐하우스부터.”

비닐은 장식에 불과했다.

핵심은 하우스.

즉, 건물이었다.

“흠흠흠.”

우선은 뼈대가 필요한 상황.

재료는 따로 구할 필요까진 없었다.

텐트 폴대를 활용해도 되고, 새로이 수급한 건물 잔해에 박혀 있는 철근을 활용해 건물 뼈대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도 철근 쪽이 낫겠지.”

양쪽 모두 활용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따진다면 텐트 쪽이 압도적이었다.

따라서 주민성의 선택은 건물 잔해에 박혀 있는 철근들.

콰직.

이미 몇 차례 뒤엎은 땅이었기에 철근은 쉽사리 박혀 들어갔다.

다음은 철근과 철근을 이어 줄 비닐의 차례.

하지만 가진 비닐이라고 해 봐야 편의점 봉투나 쓰레기 봉투가 전부였다.

“근데 꼭 비닐이어야만 할까?”

물론 만들려는 것은 비닐하우스가 맞았다.

외부 온도에 영향받지 않는 온실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냥 건물이면 될 것 같은데.”

처음부터 전문적인 지식으로 시작한 작업도 아니었다.

비닐하우스의 조건을 따르기보단 건물주 능력이 적용되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모양새만 내자.”

다행히 인벤토리엔 비닐을 대체할 만한 재료가 있었다.

인천 해안가를 거닐며 회수했던 어망이었다.

그중엔 배불뚝이 오크 형제들이 휘감던 것과 최선호가 해상요새를 끌고다니며 회수한 어망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양은 꽤 넉넉한 편.

“읏차.”

주민성은 구멍이 숭숭 뚫린 어망으로 철근과 철근을 휘감았다.

“좋군.”

상식적으로 내부 온도 유지가 전혀 될 것 같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결과물은 주민성의 상상을 초월했다.

[새로운 건물을 창조했습니다.]

[창조된 건물의 등급을 판정합니다.]

[파멸적인 대지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건물입니다.]

[수많은 영혼을 수확한 재료가 포함된 건물입니다.]

[건물주가 직접 지은 건물입니다.]

[유일 등급 건물로 판정되었습니다.]

[유일 등급 고유 효과가 적용됩니다.]

[건물 내부의 생명체를 파멸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이름이 없는 건물입니다.]

[효과가 반감됩니다.]

놀랍고도 황당한 일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조금 변형되었을 뿐인 어망 하우스가 유일 등급으로 판정되는 것은 주민성도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

게다가 판정되는 과정도 너무나 신박했다.

“이, 일단 이름부터 지어줘야겠군.”

새로 만들어낸 건물은 과거의 고블린 꽃처럼 이름을 지어줘야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는 건물이었다.

물론 이번 경우엔 건물에게 지어줄 이름이 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어망 하우스.”

이름을 정하자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건물의 이름이 어망 하우스로 정해졌습니다.]

[건물 고유 효과가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최초로 유일 등급 건물을 창조했습니다.]

[반복 창조 권한이 부여됩니다.]

[이미 창조한 건물의 창조 과정을 완벽히 반복합니다.]

모처럼 새로운 능력까지 추가됐다.

전투와는 연관 없는 과정을 통해 얻은 능력이라 그런지 독특한 매커니즘을 가진 능력이었다.

“딱히 변수도 없네? 이러면 안 써 볼 수가 없지.”

주민성은 곧장 어망 하우스 옆의 빈땅을 바라보며 반복 창조 능력을 사용했다.

“반복 창조. 어망 하우스.”

능력 사용과 동시에 주민성의 몸이 절로 움직였다.

군더더기라곤 전혀 없는 움직임이었다.

“어어?”

콰지직! 콰직!

땅을 쪼개고, 인벤토리에 쟁여 둔 씨앗을 뿌리는 등의 이전 과정이 반복됐다.

그렇다고 머리가 인지하는 것과 달리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기억했던 건설 과정이 그대로 체득된 느낌이었다.

“이런 능력이었군. 나쁘지 않네.”

시간도 절약되고 가진 재료도 낭비하지 않는 효율적인 능력이었다.

“재료만 있다면 소유물 복제처럼 써먹을 수 있겠네. 첫 창조가 중요하긴 하겠다만.”

[어망 하우스 2를 창조했습니다.]

덕분에 어망 하우스 2는 별다른 노력 없이 완성됐다.

돈 복사도 아닌 건물 복사가 실현된 순간이었다.

“좋고. 좋고.”

이제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씨앗이 본격적으로 흡수할 수분을 제공하는 과정이었다.

“근데 정화수로도 괜찮으려나? 오히려 미생물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어차피 어망 하우스는 두 개나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두 방법 전부 사용하면 된다.

“일단 한쪽엔 정화수를 먹이고.”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정화수를 꺼내들었다.

딱히 건물 출입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어망의 촘촘한 구멍 덕분에 물만 부으면 알아서 땅까지 스며드는 구조였다.

게다가 건물 부가효과로 내부 온도 조절은 알아서 되는 상태였기에 어망 하우스는 비닐하우스의 압도적인 상위호환이었다.

“다른 한쪽은 음…….”

안타깝게도 그동안 받아둔 빗물은 전부 정화해둔 상태였다.

남은 선택지라면 편의점이나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수돗물과 지하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민성은 더더욱 괴랄한 선택을 했다.

“수돗물이나 지하수는 뭐 평범하니까.”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푸푸 열매 씨앗이 정화수로도 성장한다면, 수돗물과 지하수로도 성장할 터였다.

따라서 주민성의 선택은 바로 이것.

“바닷물을 먹여 보자.”

어망 하우스2에 쏟아질 물은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이었다.

고상수와 함께 고기에 써먹을 소금을 연구한답시고 상당한 양의 바닷물을 쟁여둔 덕분에 인천에 들를 필요는 없었다.

쪼르륵.

“그래도 너무 짜면 곤란할 테니 적당량만.”

이렇게 모든 과정이 끝났다.

이젠 푸푸 열매의 성장만 기다리면 된다.

꿈틀.

굳이 아지트로 돌아가진 않았다.

어망 하우스는 유일 등급으로 판정되고 건물 내무의 생명체를 파멸적으로 성장시킨다는 고유 효과가 적용됐으니까.

오히려 여기서 신경을 끄고 아지트로 돌아가버리면 파멸이라는 단어가 주민성에게 새로운 변수를 심어줄 게 뻔했다.

“당할 줄 알고? 안 속지.”

[파멸적인 대지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주민성은 방금 떠올랐던 꺼림칙한 메시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잔뜩 경계했다.

“제3의 콩이는 더 이상 나와선 안 돼.”

그리고 잠시 후.

푸푸 열매 씨앗에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 * *

한편, 임진석이 이끄는 무리는 어느새 수천 명 가까이 불어난 상태였다.

이쯤 되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상위호환 격이라 할 수 있었다.

“컹! 커러컹! 컹컹!”

“그래. 배고픈 모양이구나.”

임진석은 말없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눈을 마주친 생존자중 한 명이 마석을 내밀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흐음……. 중급인가.”

“더 높은 등급도 찾아보겠습니다.”

“좋다. 살려주지.”

“감사합니다!”

마석지상주의.

임진석이 만들어가는 질서였다.

콰드득! 빠득!

다행히 콩이는 마석이라면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그저 임진석 혼자 가슴 찢어지는 공허감을 느낄 뿐이었다.

“하루 준다. 하루 안에 상급 이상의 마석을 대령해라.”

“물론입니다! 다른 생존자들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음.”

임진석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이미 화성과 수원은 물론, 용인까지 제압을 마치고 성남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성남, 분당 지역의 제압만 끝난다면, 서울과 붙어 있는 수도권 남부 지역은 전부 주민성의 세력권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시 휴식한다.”

“흡!”

임진석이 휴식을 선언했다.

이는 콩이에게도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휴, 휴식이다!”

“휴식! 전달!”

생존자들은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저마다 귓속말로 임진석의 선언을 전달했다.

그리고 생존자들끼리의 경쟁이 시작됐다.

“이번 마석조는 5명으로 구성할거야. 불만 없지?”

“무, 무슨 소리야! 6명은 가야지! 나까지 껴 줘!”

“자리 지킬 사람은 있어야지! 기다리고 있어!”

“젠장!”

대열 선두의 그룹은 고등급 능력자 집단의 차지였다.

임진석에게 가장 직접적인 시달림을 받지만, 가장 안전한 자리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전부 목격했다.

임진석이 여태껏 만난 보스 몬스터를 전부 한 방에 죽이는걸.

“죽고 싶나? 너무 시끄럽군. 휴식에 방해된다.”

“죄, 죄송합니다!”

폭군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존자들에게 폭군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어느 지역이건 힘 있는 자는 대부분 폭군이었고, 약자들의 위에 군림했다.

그런 이들만 봐 왔던 생존자들에게 오히려 임진석 정도면 양심적인 폭군이었다.

왜인지 덩치가 3배쯤은 거대하고 털에서 광택과 윤기가 번지르르한 데빌도그에 홀린 것 말고는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출발한다. 포지션 유지해.”“그래.”

생존자들이 흩어졌다.

누군가는 마석을 얻기위해, 누군가는 식량을 얻기위해 달려나갔다.

임진석의 아래라면 누구나 평등한 마석 셔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생존자들에게도 경쟁에 참여할 기회는 열려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물건을 털어보자.”

“일단 식량이 최우선이야. 고급 통조림부터 찾는다.”

“좋아.”

개중엔 도망을 택한 이도 있었다.

경쟁을 포기했거나, 도태된 이들이었다.

물론 이들 전부 임진석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생존자들이 죽건 말건 주민성이 지정한 지역만 정복하며 콩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컹.”

그럼에도 이 집단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안정적이고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수도권의 어지간한 길드건, 악덕 집단이건 임진석의 힘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진석 역시 최소한의 수완은 발휘했다.

“거기 너.”

“아, 예!”

“너는 이제부터 저 건물을 사수한다. 연락하면 받아라. 안 받으면 죽인다.”

“알겠습니다!”

투툭. 툭.

챙겨온 보존식량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생존자들은 임진석의 이 행동을 간택이라 불렀다.

“……부럽다. 젠장.”

“쉿. 목소리가 너무 커.”

간택 당하는 생존자는 하나같이 A급 이상의 능력자였다.

“보스도 없는 게이트다. 여기서도 살아남지 못한다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 주지.”

“마,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 조만간 연락하겠다.”

“예!”

씨앗을 뿌리는 건 주민성만이 아니었다.

임진석도 나름의 농사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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