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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다른 게이트 (1)
2022.05.14.


“어……. 음……. 계산해 주세요.”

노아는 머쓱한 표정으로 삼각김밥 3개와 사이다를 내밀었다.

“키힉.”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편의점 직원이 고블린이라니.

삑. 타닥. 탁. 삑.

심지어 전자기기도 자유롭게 다루는 고블린이었다.

-9800원입니다.

노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만 원이었지만, 지금의 만 원은 그 가치가 너무나도 달랐다.

“흑……. 여기 만 원이요…….”

“키히히.”

짤랑.

삼각 김밥 3개와 사이다, 200원이 노아에게 돌아왔다.

정말 사소한 수확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키히힉! 키힛!”

일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일상을 누리기 위해선 적잖은 희생이 필요했다.

“휴. 오늘은 어떻게든 이걸로 버텨 보자.”

노아는 안산 게이트에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은 전부 인천 게이트에서 거주하고 있기에 지금의 경우는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오늘만 벌써 6만 원이나 썼으니까…….”

노아의 방송 수입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단지 제대로 정산되지 않을 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우튜브는 다행히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겨우였다.

그들 역시 현지 능력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겨우겨우 서버를 유지하고 있었고, 정산은 대격변이 끝난 이후 처리될 예정이었다.

그 탓에 당장 얻을 수 있는 수익이라곤 그 사람이 정산해주는 현찰뿐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이렇게 멀쩡히 방송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잖아.”

인천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안산 또한 그 사람의 영역이었다.

몬스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 사람의.

“이 넓은 구역이 전부 그 사람 거였지……. 자치권까지 있었고.”

심지어 그를 따르는 이들 역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노아에게 플래티넘 등급을 부여해 준 성아영이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다이아 등급이었으며, 자신을 인천 게이트의 총괄 책임자라고 소개했었다.

“플래티넘이 이 정도면 다이아는 어떨까…….”

노아는 나름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방송으로 수많은 생존자를 끌어모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플래티넘 등급이 된 노아는 무려 5만 원을 투자해 안산 게이트 왕복권을 구매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왕복권의 구매 자격조차 플래티넘 등급 이상에게만 허용된다.

“좋아! 정신 차리자!”

노아에겐 내일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다.

이곳이라면 대격변이 끝날 때까지도 유효하리라.

이런 와중에도 다른 생존자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물품 수집 원정에 나섰다.

“나에겐 이게 길이니까!”

무려 5만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단순한 5만 원이 아니다.

지금의 5만 원은 그동안의 500만 원보다 더 가치 있었으니까.

따라서 그에 맞는 콘텐츠를 뽑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노아가 가진 사명이었다.

“옴뇸뇸.”

삼각김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노아는 본격적인 컨텐츠를 위해 게이트 탐방에 나섰다.

***

같은 시각, 인천 게이트엔 어마어마한 수의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다.

차량뿐만이 아니었다.

각 차량엔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 역시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부 주민성이 이끌고 오는 사람들이었다.

“대장님? 이, 이게 다 뭡니까?”

“그 파주쪽 연구소 사람들인데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주민성에겐 연구소를 날로 먹어버린 대가로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게이트 식구들의 관점은 또 달랐다.

“어마어마한 고급 인력들이군요……. 다들 각성도 하셨을 테고.”

“……그렇죠?”

하나같이 엄청나게 기대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면 역시 대격변 이후의 세상을 구축해낸 실적 때문일 터였다.

“여기도 머지않아 눈부시게 발전하겠네요. 감사합니다. 대장님.”

“아……. 네.”

주민성의 생각은 달랐다.

자기장 발생기만 제대로 파악하고 전부 복직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장만 잘 활용해도 게이트 전체를 도시처럼 바꿀 수 있어.’

누구의 생각이 더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은 좋은 변화였으니까.

연구소 투입 전까지 최대한 이들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성과는 나올 터였다.

“일단 이분들 데리고 식사부터 시켜 주세요.”

“예. 대장님은 식사 안 하십니까?”

“인천지부만 들렀다 올게요. 애들 각성 결과도 봐야하고.”

“아아. 알겠습니다.”

이용료 청구는 진작에 끝내둔 상태였다.

덕분에 연구원들의 표정은 저마다 복잡하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팀장님. 이런 컨디션은 20년 만입니다.”

“나라고 어련하겠냐…….”

“대체 뭘까요. 버프라기엔 지속력이 말도 안 되고, 입증시키기도 어려운 문자들이 떠오르고…….”

“천천히 알아보자고. 당분간 지루할 일은 없겠지.”

“예.”

연구원들의 귓속말을 엿듣는 것도 나름 쏠쏠했다.

그렇게 연구원들을 인천 게이트에 하차시킨 주민성은 곧장 인천지부로 향했다.

***

이장호와 연구원들이 도착한 곳은 독특한 분위기의 고깃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아. 총 82명입니다.”

“으음. 실내엔 스무 분까지만 수용 가능합니다. 야외 테이블도 이용하시겠습니까?”

“그러죠.”

연구원들은 언제나 배고픔도 함께 했던 이들이었다.

사실은 식사 시간조차 아까워 대충 때워 온 게 대부분이었지만.

“밖에서 먹어도 상관없지?”

“예.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고기나 구우며 때워야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파주 연구원들은 저마다의 테이블에 앉았다.

한 자리를 제외하고.

“아, 그 자리는 안 됩니다. VIP 전용이라.”

“…….”

그렇게 착석을 마친 연구원들은 저마다의 흥밋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는 건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뭐든 탐구하는 시간만이 의미 있었다.

“마석 불판이군.”

“출력량 230. 회로 장치가 조금 부실해.”

“요즘도 이런 불판으로 고기를 굽나?”

“방출기도 함께 손보는 게 좋겠는데요?”

그래도 이들에게 최소한의 눈치는 존재했다.

고깃집 사장 앞에선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흐흐. 뭐 장비는 부실해도, 맛 하나는 끝내줄 겁니다.”

척.

거대한 고깃덩이가 불판에 올려졌다.

“세팅 값 그대로 드시면 됩니다. 5성급 전문가의 세팅이니 괜히 조절하지 마시구요.”

“아……. 옙…….”

“맛있게 드십쇼.”

오픈된 주방 너머에서 묵묵히 칼을 갈고 있는 남자.

그가 바로 사장이 말하는 5성급 고기 전문가이리라.

“5성급 전문가 세팅이라면 믿어 볼 만해.”

“……3성급이라도 믿어야겠지만 말이지.”

머쓱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고기 먹은 게 언제였지?”

“나는 작년 여름 휴가 때.”

“용케 휴가까지 다녀왔었네?”

“그때 와이프가 한국에 왔었거든.”

“뭐야. 근데 왜 올해 휴가는 안 갔어?”

“웬일로 왔나 했더니, 이혼 서류를 내밀기 위해 왔었지 뭐야.”

“…….”

“……고기나 굽지.”

“그래.”

이들은 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연구원이었지만, 가족들에겐 쫓겨난 가장들이기도 했다.

처지는 대부분 비슷했다.

“식당 불판보다 상태가 안 좋은데.”

“3개월 전에 식당 문 닫았다.”

“엥? 대체 왜?”

“우리 때문이지. 너희들이 하도 식당 이용을 안 해서 식당 이모도 다른 지부로 파견됐고.”

“……크흠.”

이곳의 사람들은 사회성과 생활력을 전부 희생시켜 연구력에 몰빵한 극단적인 인간의 결정체였다.

치이이익!

다행히 고기는 알아서 구워진다.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부터 자글자글한 고기 굽는 소리가 연구원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질이 아주 좋은 한우군.”

“……돼지 아니었어?”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도 토론은 계속된다.

언제나 이들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고깃집 사장뿐.

“거 메뉴판 좀 봅시다. 저어기.”

“……허억.”

“맙소사. 이걸 놓치고 있었다니.”

-팔크라스 고기: 200g당 14000원.

-팔크라스 고기(양념): 200g당 18000원.

-팔크라스 고기(숙성): 200g당 25000원.

-팔크라스 고기(숙성양념): 200g당 33000원.

-기본 차림: 인당 10000원.

-물은 셀프가 아닙니다. 돈 내고 드세요.

그리고 정수기에 붙어있는 작은 스티커.

-한 컵당 500원.

이들의 감상은 한결같았다.

“팔크라스가 뭐지?”

“새로운 교배종이겠지. 식품연구팀은 이런 것도 공유 안 해준단 말이지. 아무튼 싸네. 배나 채우자고.”

“요즘은 물도 컵당 가격을 매기는구나. 재밌는데?”

고깃집 사장은 연구팀장 이장호와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상식적이고 말이 통하는 인물로는 그가 유일했기에.

“오늘 제공하는 식사는 무료가 아닙니다. 전부 빚이고요. 대장님께 물물교환에 대한 설명은 들으셨습니까?”

“아뇨. 일단 방송으로 본 게 전부입니다. 더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일단 연구원 양반들이니 몸 쓰는 일보단 당신들의 두뇌에 기대하는 바가 클 겁니다. 뭐든 개발하고, 가치를 평가받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저희 쪽을 예로 설명 드리자면……. 대격변이 일어나기 직전에 고기 전문가가 도착했거든요. 덕분에 개발한 메뉴가 저 양념육이었죠.”

이장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기 전문가가 양념 중인 고기를 감상했다.

연구원들에겐 기본 팔크라스 고기가 제공되었기에 양념육은 고급 메뉴라고 할 수 있었다.

“양념육은 얼마 정도의 가치를 판정받았습니까? 물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저렴해 보이는 가격대인데요.”

“허허…….”

물론 상식적인 선에서 보자면 이 고깃집은 아주 양심적인 가격에 고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팔크라스 고기 1kg의 원가는 49800원.

즉, 5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으니 200g당 원가는 10000원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인건비를 비롯한 기타 비용까지 고려해보면 200g당 14000원이라는 가격은 나름 양심적인 편이다.

“1000만 원이었습니다. 여기에 매상 당 5%의 추가 인센티브가 붙고요.”

“음……. 상당히 파격적이군요. 맛이 궁금해졌습니다. 양념육도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이게 전부 빚이라는 사실만 기억해주시길.”

“부하가 되기로 했으니 공은 어떻게든 세워야겠지요. 후후.”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고상수라고 합니다.”

“이장호입니다.”

그렇게 팀장 테이블에 양념육이 추가되고, 기본 팔크라스 고기는 어느덧 전부 익어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일단 구워진 고기부터 드시지요.”

“예.”

소금은 찍지 않는다.

첫입은 고기 본연의 질과 맛을 느끼는 게 기본.

이장호는 고기를 집어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후후. 고기 좀 먹을 줄 아시는군요.”

“…….”

이장호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

고상수는 그런 이장호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른 테이블로 서빙을 이어갔다.

“티, 팀장님?”

이장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기라면 자주 먹어 봤었다.

그것도 아주 질 좋은 고기만을 먹어 왔었다.

팀장이라는 지위가 있어 바깥 활동도 자주했었고, 사내 정치 탓에 사회성도 나름 충실하게 지켜온 남자였다.

“어흐…….”

팔크라스 고기는 그런 이장호마저 단번에 울릴 수 있는 맛이었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시끄러……. 그보다 고기……. 타기 전에 빨리 먹어라. 지금……. 무조건 지금 먹어…….”

“……아.”

연구원들의 원인 분석 회로가 팽팽 돌기 시작했다.

팀장이 눈물을 흘린 원인은 팔크라스 고기.

고기를 맛보는 것으로 자연스레 팀장의 심리에 도달할 터였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연구원들은 거의 동시에 같은 결과물에 도달했다.

일단 먹어보는 것으로.

텁. 텁.

“…….”

“…….”

고기깨나 먹어 왔다는 팀장의 반응이 이 정도다.

연구에 영혼까지 팔아먹은 연구원들에게 팔크라스 고기가 주는 자극은 멀쩡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으아아.”

“……아흐.”

단순한 고기의 맛이 아니었다.

팔크라스 고기는 제왕 그 자체였다.

그동안의 노력을 치하하는, 온 세상을 아우를 품격 있는 왕의 풍미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으어엉! 엄마아!”

“팔크라스……. 고기 개발자의 이름인 걸까……. 그는 신인가?”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메뉴 추가가 이뤄졌다.

“양념 고기 추가요! 빚이라면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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