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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길 (2) (160/250)


나만의 길 (2)
2022.05.10.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식인꽃은 이제 주민성을 적대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수납할 수도 있었고, 꽃을 채취해도 저항하지 않는다.

이용료를 청구해서 직접 부리는 것도 가능하며, 보스 몬스터를 죽임으로 지배의 비석과 유물 회수라는 선택지도 떠올랐다.

“녀석이 활약할 거라곤 생각했는데…….”

꽃블린의 활약은 예상 범위 안이었다.

하지만 그 활약이 주민성에게 이 정도의 자유도를 선사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얻는 만큼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있었다.

마석을 잔뜩 모으면 콩이가 먹어치우고.

유물을 얻으면 하위 차원으로 보내지고.

강해져서 돌아오면 게이트에 갇혀버리고.

땅굴 벌이라는 꼼수를 준비하면 배불뚝이 오크들이 사고치고.

협회장과 협상하면 당당한 첩자가 붙고.

임시 서비스로 능력을 부여한 동생들을 각성시키려니 예고된 대격변이 갑작스레 일어났다.

FFF급이라서, 운이 없어서 오늘 또한 당연하리라 생각했다.

여태까지 쭉 그래왔듯이.

“이건 무조건 의심해야 해.”

주민성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지금의 이득은 반드시 리스크가 따를 거라는 냄새가 났다.

저벅. 저벅.

식인꽃 보스 코앞까지 접근했지만, 적대해오지 않는다.

오히려 식물 줄기가 차분히 뻗어지며 자연적인 계단을 형성했다.

주민성은 계단을 올라 꽃블린 앞에 도달했다.

녀석은 여전히 화관을 높이 치켜든 채 힘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키엑.”

주민성은 그런 꽃블린의 반짝이는 머리를 토닥이며 칭찬했다.

“수고했다.”

“키엑…….”

화관은 지상에 뿌리를 깊게 내린 상태였다.

다소 고생은 하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뽑아서 재활용도 가능해 보인다.

“그나저나 이게 가장 신기하단 말이지.”

모여야만 제대로 된 능력을 일으킬 수 있는 단순한 세트 유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론 아니었다.

꽃블린은 화관을 독자적인 방법으로 개화시켰다.

즉, 쓰기 나름이라는 말.

“이런 식으로도 유물 활용이 가능하다면, 굳이 꼭 세트를 모아야만 할까?”

주민성의 상상 속에 하나의 가정이 그려졌다.

세트 유물을 얻고, 무언가를 잃는.

여기서 좀 더 뻗어나간다면 강서구를 얻고 무언가를 더 잃는다는 이야기로도 파생된다.

“물론 세트 효과가 대단할 수야 있겠지. 문제는 화관이 지금 개화한 능력을 유지하느냐인데…….”

몬스터를 제압하는 유물은 꽤 많다.

하지만, 조종하는 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이렇게 복합적으로 보스급 몬스터마저 복속시키는 수준이라면 더더욱.

때문에 식인꽃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지배의 비석을 얻는 시나리오의 매력은 점점 사라져갔다.

“보류.”

이것이 욕심을 덜어낸 주민성의 선택이었다.

“지역을 장악한 이후, 지배의 비석이 주는 효과에 대해 확실히 알고 움직여도 늦지 않아.”

10대 길드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아린조차도 강서구를 주민성의 세력권으로 인정했다.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진 않을 터였다.

무언가 알고 있는 협회장쯤 되지 않고서야.

“당분간 여기서 지내.”

주민성은 꽃블린에게 땅굴 벌 폭풍에 찢긴 텐트 대신 새로운 텐트를 망토처럼 감아줬다.

“여태 해왔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꽃을 개발해봐. 알았지?”

“키익!”

* * *

한편, 임진석은 별동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지금의 목표는 수원 게이트.

서울에 관한 정보가 유독 적었기에 수도권 남부를 우선적으로 점령하려는 의도였다.

콩이가 함께였기에 주민성의 명령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콰지직!

콩이의 일격에 모래 골렘의 형체가 무너져내렸다.

“컹!”

“잘했다. 콩아.”

“컹! 컹!”

모래 골렘은 수원 게이트를 공포에 빠트린 몬스터였지만, 임진석과 콩이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진석은 모래 골렘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콩이에게 양보했다.

모래 골렘은 콩이를 위한 스크래쳐였기 때문이다.

“컹! 커컹!”

“그래. 옳지.”

임진석은 눈앞의 마석을 먹기 위해 달리려는 콩이를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온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좋다. 여기도 쓰다듬어주마.”

“컹! 컹! 커러컹!”

무려 삼십여 분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칭찬 시간.

주민성의 괴롭힘 덕분에 임진석의 집착은 배로 증가해 있었다.

“능력자님! 저희도 합류……!”

“닥치지 않으면 죽인다.”

중간에 마주치는 생존자들 역시 임진석을 따랐다.

보이는 족족 전부 썰어버리는 괴물 능력자는 생존자들에겐 걸어 다니는 안전지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주제 파악해라. 쓰레기들. 멋대로 쫓아오는 건 상관없다만,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으면 죽이겠다.”

“히익…….”

무시무시하게 날카로운 살기가 생존자들을 향했다.

“왜 말 걸었지? 의미 없는 내용이어도 죽인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생존자 집단의 리더가 벌벌 떨며 말했다.

“……그, 그동안 얻은 유물과 마석을 진상드립니다.”

“……살려주지.”

“감사합니다……. 크흑!”

남자가 건넨 것은 무려 수원 게이트 일부를 장악중인 보스를 죽여 얻어낸 유물이었다.

그럼에도 임진석의 시선은 마석을 향했다.

마석은 이 남자가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최상급 마석이군.”

“컹크어! 컹컹! 커르러컹!”

조금 시끄럽고 괴상했지만, 수원 게이트 점령 작업은 나름대로 순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 * *

주민성은 그대로 신방화역으로 귀환했다.

가용 인력이 워낙 부족한지라 느껴지는 인적이라곤 봉춘향의 분신과 교대 근무 중인 판자촌 능력자 일부가 전부였다.

“……대장님? 등촌동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거기 끝났어. 꽃블린이 혼자 다 해먹더라.”

“혹시 그쪽에서 일어난 폭풍도…….”

“응. 그것도 꽃블린표 폭풍.”

“그런 능력도 있었을 줄이야…….”

“그보다 유물은 도착했어?”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주민성은 최선아와 카르파크가 보낸 유물들을 확인했다.

[이베리카의 목재 완드가 수납됩니다.]

[이베리카의 햇살 부츠가 수납됩니다.]

“……세트 맞네.”

“세트 말씀이십니까?”

새로이 얻은 유물들 또한 이베리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이젠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주민성은 이 사실을 봉춘향에게 공유했다.

“이 동네 보스들 잡고 나오는 유물. 다 세트더라구.”

“아까의 회초리와 장화도 해당된다는 말씀이신지…….”

“응. 유물 이름은 이베리카의 목재 완드. 그리고 이베리카의 햇살 부츠. 그 전에 얻은 망토와 화관 역시 이베리카표야.”

“…….”

봉춘향의 표정이 절로 심각해졌다.

“……혹시. 그 신기한 컨테이너의 지팡이도 이베리카였습니까?”

“아냐. 그건 달랐어.”

잠시 고민하던 봉춘향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유물은 지역마다 세트 유물이 발견된다는 가정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이젠 다른 지역 또한 세트 유물을 수집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작전을 구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 그래서 자문을 좀 구하려고.”

“……제게 말씀이십니까?”

“응. 사실 등촌동 게이트 몬스터들. 복속만 시키고 돌아왔거든.”

“……아?”

“강서구. 당장은 통합 보류했어.”

“세트 유물의 성능은 평범한 유물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인 것으로 압니다만…….”

“그게 말이지…….”

주민성은 꽃블린이 일으킨 화관의 변화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그게 가능하면 세트 유물 수준을 초월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보류했지. 물론 세트 유물과 지역 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도 저울질해 볼 생각이야. 그래서 말인데.”

“말씀하십시오.”

“아린 길드를 지켜볼 생각이야. 정보를 얻어내면 더 좋고.”

“제가 직접 투입하면 되겠습니까?”

봉춘향의 능력은 분신이다.

능력만 놓고 보자면 첩보에도 탁월한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좀 더 극단적으로 작전을 구상한다면 아예 포로가 되어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건 안 돼.”

하지만 봉춘향은 여중생이고, 미성년자다.

어떤 험한 꼴을 볼지 모를뿐더러, 분신의 고통은 본체에도 다소 전달되기에 절대 허락해선 안 될 일이었다.

“나이가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냐. 너는 각성 마저 해야지.”

“아…….”

인천 지부에선 여전히 각성 스캐너의 복구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이젠 게이트 발생이라는 변수도, 협회와의 연결이라는 변수도 전부 차단했으니 맘 편한 각성이 가능하다.

마석 수급도 문제없다.

인천지부 주변을 배회하는 하위 언데드를 잡아 채취하는 마석이면 충분하다.

“아……. 확실히 각성의 우선도가 높습니다.”

“그치? 너랑 선호 각성 끝내면 정남 씨 제자를 시작으로 일반인들도 본격적으로 각성시킬 계획이야.”

각성 기준은 작업 실적, 그리고 인성이었다.

적어도 아군의 발목을 잡으려는 인원은 대격변 초기엔 발생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대장님. 제가 각성으로 빠지면 아린 길드 정찰 역할이 없지 말입니다.”

“있어.”

“……잘못 들었습니다?”

“정남 씨가 말하지 않았나? 생존자 중에 아린 길드원도 있었거든.”

“하아……. 김정남 씨 성격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보다 아린 길드원이면……. 대장님의 능력으로 이중 첩자를……. 아!”

봉춘향은 머리가 좋다.

많은 과정이 생략된 상황에서도 알아서 정답에 도달할 정도로.

“응. 그거야.”

“역시 대장님! 훌륭한 전략입니다.”

“정보가 어느 정도 쌓일 때쯤 되면, 수확하러 가야지. 수확물이 알아서 걸어올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강서구에 관한 방침도, 유물도, 아린 길드에 대한 대응책도 정리됐다.

이젠 차후 계획에 대한 의논이 남았다.

“몬스터를 통해 얻은 정보들이 신경 쓰입니다. 서울 내에 존재하는 미지의 위협, 그리고 협회장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추가 진군은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춘향이 생각은 어떤데?”

“장 박사가 말했던 파주를 도모함이 어떻습니까? 웨어울프가 말한 북부와도 일치하고, 동선에 속하는 경기도 고양시의 생존자들을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난이도는?”

“무난합니다. 중소 길드가 주도하는 생존자 측 세력도 아직까진 잘 버티고 있는 데다, 까다로운 게이트는 일산 IC 부근에 형성된 게이트 정도입니다.”

“일산이면 오우거인가?”

“그렇습니다.”

봉춘향의 몇몇 분신들은 노아의 추가 방송을 통해 각 지역에 형성된 게이트와 주요 몬스터 정보를 실시간으로 갱신하고 있었다.

덕분에 주민성 역시 이런 정보들을 공유받으며 판을 수월하게 짜낼 수 있었다.

“일산엔 그 녀석들을 보내면 딱이겠군.”

“유호영 씨는 안 됩니다. 말도 안 되게 강한 사람은 맞으나 아직 일반인입니다.”

“아니……. 가르취랑 차크취 보낼 건데.”

“둘의 파견 역시 권장하지 않습니다……. 일산은 생존자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괜한 사고라도 일으키면 세력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라…….”

“괜찮은데…….”

“물론 성아영 씨를 동행시키면 작전 성공률이 크게 증가합니다만……. 그럴 경우, 인천의 유력자들이 제멋대로 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아영 안 보낼 건데…….”

“으에?”

주민성에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일산의 생존자들은 주민성의 세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오우거. 놈들이 더럽게 센 건 맞는데, 걔들 배부르면 사냥 안 하잖아.”

“그렇습니다…….”

“빠져나오려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어. 그런데 왜 탈출을 안 할까?”

“아…….”

봉춘향의 약점은 사람들을 많이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과, 협회를 제외한다면 항상 좋은 사람들만 주변에 있었다는 점이 있었다.

과보호로 길러진 것도 한몫했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일반인들을 희생시켜서 협회의 구조를 기다리는 능력자 세력이 있거나. 우리를 믿지 않는다는 거겠지. 둘 다일 수도 있고.”

일산에서 신방화역이나 인천은 멀지 않은 거리였다.

대격변 초기라곤 하나, 노아의 방송을 봤다면 진작 도착하고도 남을 시기이기도 했다.

“뭐 하러 좋게 흡수해? 우리 게이트에 분노 조절 치료제가 얼마나 많은데.”

“으에…….”

“일산 게이트엔 그냥 가르취랑 차크취 풀어놓고, 나머지는 그대로 파주까지 뚫고 갈 거야.”

갈취와 착취.

가르취와 차크취에겐 숨 쉬듯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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