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길 (1)
(15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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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길 (1)
2022.05.09.
“형! 위험해요! 도시 하나를 집어삼킨 식인꽃이잖아요! 최소한 가르취나 차크취라도 데려가는 게…….”
“아니. 걔들은 안 돼.”
지금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일수록 최선호의 판단은 한없이 정답에 가까웠다.
분명 가르취나 차크취의 투입은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터였다.
하지만 최선호는 그 배불뚝이 오크들이 만드는 변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후방에 있는 천마 누나라든지 즈쉬라도…….”
“이번만큼은 꽃블린이 정답이야.”
“꼬뿌!”
꽃블린의 서열은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었다.
성장마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였다.
“이 녀석. 이제 9위거든.”
“……그렇게 올라갔어요?”
“응. 한번 믿어 봐. 여차하면 뒤로 빠져도 돼. 비상탈출 능력도 있으니까.”
“건물 관조였나? 그 능력 말씀이시죠?”
“맞아.”
“휴. 알았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형 말도 맞겠죠. 그러면 저는 요새 가지러 갈게요.”
“그래.”
주민성은 컨테이너에서 빠져나와 꽃블린과 등촌동으로 향했다.
“꽃블린. 내가 널 데려가는 이유는 하나야.”
“키익?”
“식인꽃도 꽃이잖아. 길들여 봐.”
상대는 최소 S급 이상으로 성장해 버린 식인꽃이다.
힘으로 찍어 누르기엔 벅찬 상대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생명체를 집어삼킬수록 강해지는 놈들이라 소모전도 통하지 않는다.
“성공만 하면, 너의 서열은 더더욱 올라가겠지.”
“키히히히…….”
의사는 확실히 전달됐다.
만물 소통 중이었으니까.
단지 꽃에 취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할 뿐이다.
“크히힉.”
주민성이 이렇게까지 꽃블린을 신뢰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크히히히힉.”
이런 와중에도 새로운 꽃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진 꽃봉오리에 불과했지만.
“땡큐.”
주민성은 그대로 꽃블린이 건네주는 꽃을 수납했다.
“오케이. 확인해 볼게.”
[이베리카의 화관(개화)이 수납됩니다.]
꽃의 정체는 하피를 잡고 얻은 유물인 이베리카의 화관이었다.
“확실히 변화가 있군. 자. 다시 써.”
“키힉!”
꽃블린의 급속 성장 비결엔 하위 차원 오크들과의 재회가 큰 영향을 끼쳤다.
하위 차원에서 가져온 건 건축 자재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대 땅굴 벌도 함께였다.
덕분에 지금의 꽃집엔 땅굴 벌이 온갖 꽃들을 증식시키고 있었다.
전부 순조롭다.
“……드디어 도착이군.”
저 멀리 등촌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꽃블린을 멈춰 세우고 근처 건물들을 살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아지트의 확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환경 조건은 반드시 유리하게 확보해야 했다.
“슬슬 도핑해 볼까.”
“키힉!”
주민성은 용기꽃을 꺼내 향을 들이마셨다.
“후우.”
쫄면 지는 싸움이다.
선공권을 뺏긴다 하더라도, 적의 절대 움직임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키힉!”
저 멀리 식인꽃 하나가 포착됐다.
그와 동시에.
콰곽!
땅속에서 식물 줄기가 주민성의 심장을 향해 솟구쳤다.
“놀래라. 여기까지 감지한다고?”“키히히히!”
꽃블린 역시 만만찮음을 느꼈는지 온갖 꽃들을 동시에 꺼내 향을 들이마셨다.
이는 꽃향기에 상당한 저항력을 갖춘 꽃블린만이 할 수 있는 기행이었다.
쉬익!
연이은 공격이 주민성을 향해 쏘아졌다.
쾅!
회피하긴 했지만, 2차 충격은 막지 못했다.
맨땅에 부딪혀 튀어 오른 아스팔트가 주민성의 살갗을 가르며 쏘아졌다.
툭.
텐트는 말할 것도 없이 잘려 나갔고.
“참나. 접근도 못 하겠구만.”
이래서는 건물 폭발까진 써 줘야 식인꽃을 제압할 수 있어 보인다.
‘확실히 선호 말대로군. 최정예로 찍어 누르는 게 좋아 보이긴 해.’
쏘아지는 줄기는 단순한 줄기가 아니었다.
조금의 상처만 입어도 온몸이 굳어버리는 독성을 지녔다.
반면, 꽃블린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주민성이 방어에 치중한 사이 식물꽃이 뿌리를 내린 건물로 곧장 내달렸던 것.
“뭐야…….”
꽃블린은 식인꽃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같은 몬스터라서가 아니다.
이곳엔 웨어울프며 하피며 온갖 몬스터의 뼛조각이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그냥 꽃블린이라서 공격받지 않은 것이다.
“키히이!”
푹!
덕분에 선제공격은 꽃블린의 몫이었다.
마취꽃이 식인꽃의 줄기에 꽂혔다.
꾸구국!
마취꽃의 효능을 저하시키려는 셈일까.
식인꽃 줄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꾸드드득!
식인꽃의 등급이 시간이 지날수록 치솟는 이유가 눈앞에 펼쳐졌다.
쉬익!
쾅!
식인꽃은 자신의 의지로 꽃블린에게 공격을 허용한 줄기를 잘라냈다.
잘려진 식인꽃 줄기에선 새로운 꽃봉오리가 솟았다.
“아……. 증식하는구만. 너무 서둘렀나?”
문제는 이 증식이 단순한 증식이 아니라는 것.
놈들은 증식할수록 자신의 약점을 개선해 나간다.
예를 들면, 불타 죽은 식인꽃은 죽기 전에 어떻게든 꽃씨를 날려 보내 화마에 저항할 수 있는 식인꽃을 증식시켜내는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등촌동의 식인꽃은 이 지역에 있는 능력자들을 전부 집어삼켜 어지간한 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전부 갖춘 상태였다.
“키히히히! 이키히히히!”
하지만 왜인지 꽃블린은 더욱 즐거워하고 있었다.
장 박사가 하면 어울릴 법한 광기 가득한 웃음이었다.
뿌드득!
꽃블린은 증식된 식인꽃 줄기를 뜯어냈다.
뿌리를 내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킥!”
꽃블린이 주민성을 바라보며 줄기를 내밀었다.
“아오. 뭐.”
“키히히!”
“……아?”
그제야 주민성은 꽃블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식인꽃에 피어난 꽃봉오리의 색깔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저거 내 거였구나?”
“키히히히!”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턴 인벤토리가 절대적인 활약을 할 수 있게 되니까.
“키이이!”
꽃블린은 식인꽃 줄기를 주민성에게 던지고 식인꽃 본체를 향해 내달렸다.
여기서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활성화해 날아오는 식인꽃 줄기만 수납하면 되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인벤토리를 꺼낼 의지가 전혀 없었다.
“어림도 없지.”
쾅!
식인꽃 줄기가 그대로 내팽개쳐졌다.
“삼연벙을 당했는데. 또 당할 수야 있나.”
주민성에겐 인벤토리를 털려본 경험이 있었다.
콩이와 배불뚝이 오크형제에게.
식인꽃이라고 다를 건 없다.
뭐든 집어삼키려드는 저 녀석은 콩이와 동류였으니까.
“딱 대.”
주민성은 식인꽃을 그대로 움켜잡고 텐트 포장 작업을 시작했다.
미친 듯 펄떡이는 줄기는 주민성의 우악스런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용료 청구.”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50%]
단순히 자아를 상실시키려는 속셈이었는데, 식인꽃에겐 화폐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곧이어 식인꽃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는 수납 인벤토리를 향해 흘러들어간다.
[이용료는 혼합 혈액 3리터입니다.]
“참나.”
꽃블린이 키워낸 꽃의 영향이었을까.
식인꽃은 의외로 순둥이였다.
이용료까지 납부를 끝낸 식인꽃은 속 편하게 꽃봉오리를 계속해서 성장시켰다.
“성장 금지.”
꿈틀.
“숨만 쉬고 아무것도 하지 마.”
꿈틀!
“유해 성분 뱉어.”
꿈틀…….
푸콱!
푸시시식!
식인꽃이 뱉어낸 유독액체는 근처 건물이 녹아내릴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휴. 인벤토리 손실 날 뻔했네.”
꽃블린은 식인꽃의 천적이었다.
다른 식인꽃들도 눈앞의 식인꽃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 자명했다.
그럼에도 주민성이 이렇게 신경을 쏟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장 박사 먹이도 주긴 줘야 하는데.”
이젠 장 박사를 위한 연구 재료를 줄 시기였다.
강서구 정벌을 끝낸 이후부턴 장 박사의 추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기도 했고.
-라면 재료로 써 보려면 써 봐. 특이종이니까.
간단한 메모를 추가한 주민성은 그대로 식인꽃을 텐트째 수납했다.
[텐트 331이 수납됩니다.]
최소한 유독 성분은 전부 뱉어냈으니 식용은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꽃집에서 키워지는 꽃들 역시 식용이다.
그 증거로 꽃블린은 물통에 용기꽃과 마취꽃을 적절하게 배합한 차를 우려내는 것이 취미였다.
“나는 그냥 수납만 하면 되는 건가.”
주민성은 식인꽃의 공격 범위에서 아예 벗어난 멀찍한 장소에서 꽃블린의 활약을 지켜봤다.
“키키키키키킥!”
식인꽃과 꽃집표 저세상 꽃이 어우러졌다.
여기서 꽃블린의 존재가 참으로 기묘했던 건, 꽃을 심는 행위 자체를 식인꽃들이 적대 행위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관찰하자 주민성의 생각도 변했다.
식인꽃이 증식을 반복하는 이유는 심어지는 꽃에 대한 분석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저거 활용할 수 없으려나.”
몬스터가 몬스터를 길들이는 광경이었다.
이는 남들은 하지 못하는 주민성 세력만의 개성이기도 했다.
개성을 강점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게 곧 대격변에서 우위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사고에 도달하자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어떻게든 써먹자.”
당장 떠오르는 방안이 하나 있었다.
등촌동의 꽃밭화였다.
“사람만 안 죽으면 되는 거잖아?”
대격변과 함께 유해 능력자의 기준도 바뀌었다.
이런 세상에선 힘없고 발언권 없는 쪽이 유해 능력자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연구원이라면 인벤토리에 있고.”
게다가 도시 전체가 함정이 되는 것은 최선호에게도 큰 영감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이 선택엔 단점이 하나 존재했다.
“문제는 보스인데.”
식인꽃의 전투력을 유지하려면 보스를 살려야 했다.
이제 주민성의 수하가 된 웨어울프와 하피 2인자.
리카르와 시리에겐 이전의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서열 조회로도 30위권 이하로 표기됐고.
기존 집단을 유지하던 보스 몬스터의 존재는 몬스터 전투력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권리를 빼앗는다는 게 생각보다 크단 말이지…….”
그 순간.
꽃블린이 머리에 쓰고 있던 화관을 높이 치켜들었다.
“키에에에엑!”
“응?”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화관이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산 방향에서 새까만 폭풍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어?”
폭풍의 정체는 땅굴 벌 떼.
벌 떼는 그대로 화관 주위를 휘감았다.
“키에에에엑!”
“…….”
작은 고블린 한 마리가 일으킨 폭풍은 어느새 사방으로 흩어져 꽃가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웅장한 광경이었다.
“키에에에엑!”
쿠구구구……!
그리고 근처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이 일어났다.
“보스까지 부른다고?”
하지만 주민성은 꽃블린을 말리지 않았다.
꽃블린의 기세가 보스 몬스터에게도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 볼 만한데?”
주민성은 이 광경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눈에 담았다.
“키에에에엑!”
보스 몬스터가 꽃가루에 휘감기고, 화관은 어느새 보스 식인꽃에 뿌리를 내렸다.
경악스러울 정도의 화관 운용력에 주민성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콰지직! 콰직!
식인꽃의 꽃잎 색깔이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색깔은 활력꽃. 그리고 분노꽃인가?”
동시에, 2차 꽃가루 폭풍이 작렬했다.
“큭!”
주민성은 텐트를 최대한으로 펼쳤다.
얼굴을 덮음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풍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아!
“아오!”
[텐트 82가 손상됩니다.]
[텐트 34가 손상됩니다.]
폭풍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텐트 5개째를 날려먹을 즈음.
“…….”
폭풍이 멎었다.
위험은 끝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휘날리는 꽃가루가 감지되었으니까.
평범한 꽃가루라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나 조심해야할 수준.
하지만 지금의 꽃가루의 원천은 식인꽃.
방심은 금물이다.
“키에에에엑…….”
그럼에도 꽃블린의 지친 괴성이 들려온다.
어마어마한 꽃가루 저항력이었다.
“후.”
주민성은 모든 꽃가루가 가라앉고 나서야 텐트를 풀어헤칠 수 있었다.
“…….”
폭풍이 지나간 후의 도시는 꽃천지였다.
텐트 마스크는 여전히 필수.
주민성은 그대로 주저앉아 꽃 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이거 몬스터 맞나?”
꿈틀.
식인꽃이라기엔 미묘하게 귀여운 녀석들이 사방에 깔렸다.
“키힉.”
그리고 식인꽃 보스 위에 당당히 서있는 고블린 한 마리.
쓸데없이 웅장함을 자아낸 고블린은 당당하게 승리를 외쳤다.
“키에에에엑!”
S급 이상은 될 등촌동 게이트는 고블린 한 마리에 의해 억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