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할거 (1) (156/250)


군웅할거 (1)
2022.05.06.


노아의 방송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 날.

임시 거주지가 된 신방화역엔 아침부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텐트 아직 남았나요?”

“노아! 노아! 노아!”

“능력자입니다! 합류하고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몬스터는 이용료 청구 전까진 숨기고 봐야했기에 이용료를 이미 납부한 노아와 일부 생존자들은 최선아와 함께 사람들을 통제했다.

“차례로 입장할 겁니다! 신원부터 파악해야 해요!”

신원을 파악하는 데엔 주민성의 개별적인 요청이 있었다.

-능력자, 그리고 제가 지정하는 사람들은 따로 구분해주셔야 합니다.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능력자, 그리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주민성이 관리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 있어 능력을 숨기거나 낌새가 이상한 사람들이 숨어 있으면 주민성에게서 귀신같이 연락이 왔기에 업무는 너무나도 수월했다.

-둘째 줄. 갈색 저지 입은 사람은 따로 분리해 주세요. 위험한 사람입니다.

-방금 노아 씨와 대화한 일행 중 가죽 재킷 입은 남자. 능력자입니다. 분리해주세요.

이렇게 분리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격하게 저항했다.

“당신들!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알아?”

“무, 무슨 짓입니까! 나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젠장!”

자신의 부모를 홍보하는 이들부터, 다른 집단 소속으로 추정되는 사람들까지.

패턴은 굉장히 다양했다.

쿵!

하지만 전부 제압됐다.

주민성은 이럴 것도 예상해 한 남자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셔야죠.”

“나 한국인이야!”

“이곳은 엄연히 게이트입니다. 제대로 국가가 나서서 수복하지 않은, 별개의 게이트.”

“큭!”

남자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 저 사람 김정남 맞지?”

“실물은 처음 봐……. 떡대 미쳤다…….”

“야. 근데 S급이 현장 조율이야? 말단직이잖아.”

“그만큼 이 집단 수준이 높다는 거겠지.”

“와…….”

살상계 능력을 자체적으로 금지한 이런 자리에서 신체강화 능력자는 더욱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다소 눈감아줄 수 있는 사소한 주먹다짐조차 이들을 상대론 목숨을 걸어야 했으니까.

“통제 불응은 집단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합니다. 합류하기 위해 찾아온 것 아니신지?”

“…….”

아직은 주변 지역의 생존자들만이 합류하는 단계였다.

그중에 고등급 능력자가 섞여 있다 한들, 기껏해야 A급이 한계였다.

김정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S급 승급 능력자의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상대가 근처 길드의 첩자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도망가지만 않게 해주세요.

김정남은 그런 주민성의 요청에 충실히 응했다.

의문은 남아 있었다.

‘정말 이 정도로 괜찮을까?’

그동안 겪어왔던 파티, 협회, 길드에서의 경험들과 빗대어보자면 너무나 솜방망이 같은 조치였다.

게다가 첩자는 죽여서라도 응징하는 것이 김정남이 여태껏 봐왔던 세상이었다.

‘이 사람. 아린 길드 사람인데.’

근처의 거대 세력이라면 주민성의 세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양천구 목동엔 한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아린도 존재했다.

그런 아린 길드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쪽 역시 제법 여유가 있다는 증거였다.

즉, 굳이 길드를 배신하고 이쪽에 붙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한 분씩 이동하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죠.”

“…….”

신방화역 4번 출구.

주민성이 지정한 분리 장소였다.

김정남은 착잡한 표정으로 앞장선 남자에게 말했다.

“…박진우 씨. 저희 초면 아니지요.”

“…….”

남자의 정체는 박진우.

한때 용병으로 참가했던 보스 레이드 파티에서 손발을 맞춘 아린 길드의 오더 담당 오퍼레이터였다.

“……오랜만입니다. 김정남 씨. 더 좋은 자리에서 뵈었어야 했는데 하필 대격변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 김정남 씨가 여기 소속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길드장님께서 김정남 씨에게 연락도 드렸었는데 말이죠.”

“길드장님이라…….”

주변 이목이 사라지자, 박진우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런 수상한 집단 말고 저희와 함께 하시죠. 길드장님께서도 중용하실 겁니다.”

“……수상하지 않습니다. 제 의지로 소속되었고요.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 듣지 않은 거로 하겠습니다. 이번뿐입니다…….”

박진우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득하려는 자세였다.

“저 역시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후우……. 정보 하나만 알려드리지요. 들어보고 결정해도 됩니다.”

“…….”

정보.

지금처럼 언론이 잠잠한 상황에서 쓸 만한 정보를 접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한국 10대 길드인 아린이라면 정보의 질도 상당할 터.

김정남은 한 번만 더 인내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정보입니까.”

“협회 쪽이 심상치 않습니다. 강남구에 집결된 능력자들이 전부 실종됐어요.”

“……정말입니까?”

“아린이 보증합니다. 확실한 정보죠.”

“…….”

김정남의 충격받은 표정을 포착한 박진우는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영상에 나온 그 남자. 본 적도 없는 인물이었어요. 능력도 어마어마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왜 여태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진 적은 없습니까? 우리는 그가 능력자들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예상하고 있어요.”

“…….”

그럴싸함을 넘어서, 나름의 심증을 가지고 쫓아온 추리였다.

아린의 접근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아닙니다. 그분은 협회와 관련되어 있지 않아요.”

“증거 있습니까? 정남 씨. 벗어나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천운이라고 봐야 해요. 함께합시다. 우리는 대격변을 넘어 신세계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린의 본질인 엘리트주의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발언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이 김정남이 아닌 어중간한 능력자였다면 대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정도로 박진우의 능력자 차별은 중증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그리고, 박진우의 뒤에서 김정남이 아닌 누군가가 말했다.

“신세계 같은 소리하네.”

빠악!

“커헉!”

“대, 대장님!”

남자의 정체는 주민성이었다.

“낌새가 이상해서 와 봤더니, 가관이더군요.”

주민성은 아스팔트에 처박힌 박진우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내가 다 참겠는데요. 협회랑 날 엮는 건 진짜 못 참겠거든요.”

“크윽! 어, 언제 여기까지!”

“얘기는 잘 들었습니다. 아린이시라고?”

“…….”

“목동에나 가만히 계시지 엉뚱한 짓을 하러 오셨네.”

냉담한 말투와는 달리, 주민성의 손은 정신없이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꾸드득!

박진우는 눈 깜짝할 사이 텐트에 꽁꽁 묶였다.

“……이게 무슨! 협회 믿고 이러는 건가? 나는 아린이다!”

“네놈이 어린이건 아린이건 상관없어. 너는 그냥 우리 식구 빼돌리는 양아치에, 첩자일 뿐이니까.”

그리고 마무리.

“이용료 청구.”

“……!”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70%]

임진석 정도는 되어야만 파훼할 수 있는 능력.

주민성의 감각은 눈앞의 남자가 김정남보다 약한 인물임을 알리고 있었다.

“스카웃 대상보다 약하면서 그런 자세는 뭐냐? 김정남 씨가 만만해? S급이라고 다 똑같아 보이디?”

“큭!”

김정남의 경지는 단순 S급에서 머물지 않았다.

틈틈이 들르는 헬스장에서의 운동 성과는 한계를 진작에 초월했으니까.

지금의 김정남은 주변 공기조차 긴장시키던 황태범과 성아영을 넘어섰다.

천마 위희린마저도 순수하게 감탄할 정도의 경지였다.

주민성은 그런 위희린에게도 존중받을 정도의 강자가 되었고.

“10대 길드 맞아? 왜 이렇게 힘아리가 없어.”

꾸드드득!

박진우의 저항은 주민성의 완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괜히 힘 빼지 마. 돈 내면 풀어줄 거야. 돈도 넉넉히 챙겨 왔겠지. 그치?”

“…….”

“한글 읽을 줄 알지? 저기다가 입금하시면 되세요. 고객 씨.”

아린에겐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10대 길드쯤 되면 길드 건물 1층에 은행이 들어서고도 남을 테니까.

“……돈이라면 내겠다. 곱게 물러나지.”

“좋아.”

팔에 자유가 생긴 박진우는 이용료를 순조롭게 납부했다.

하지만 구속은 여전했다.

“일단 하루치 받았네. 이용료 청구.”

“……무슨 짓이지?”

“돈 아직 남았잖아.”

“…….”

“내고 가.”

박진우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지갑을 건넸다.

상당한 명품 지갑이다.

“800쯤은 될 거다. 모자라면 추가로 입금하지.”

“…….”

아린이 보유한 자금은 최소 은행 수준.

게다가 길드 자체의 여력도 있을 테니 그들의 자산 상태는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 조금만 더 번거롭자. 이거 나름 배려다? 방송 봤을 거 아냐. 당신 지금 버프 적용 대상이야.”

“……,”

아무리 아린 길드가 엘리트주의에 건방지다 해서 무작정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같은 인류고, 그들 또한 협회를 경계하는 상황.

손을 잡을 여지는 충분했다.

“협회 쪽 움직임은 나도 궁금하던 차였거든. 800 받고, 1600 더 얹어 주지. 납부 29번만 더 해라. 정보나 좀 더 줘.”

“……거래라면 길드장님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쪽은 내 허락받고 들어왔어? 뜬금없는 소리 하네.”

“…….”

거부권은 없었다.

갑은 주민성이다.

“내 능력. 악용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해. 좋게 협력하길 권장하지.”

“일방적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

“멀쩡히 돌려보내 줄게. 됐지? 텐트도 하나 줄까?”

“…….”

이 정도면 퍼주는 수준의 배려였다.

굳이 이용료 청구가 아니더라도 주민성이 소유권을 가진 건물은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텐트. 정말 가져가도 되나?”

“어. 가서 너네 길드장한테 나에 대해 다 일러바쳐도 돼.”

“…….”

상대 세력 수장과의 대화, 그리고 유물급 성능을 발휘하는 텐트는 아린 입장에서도 값진 수확이다.

이것들은 박진우에겐 상당한 보험이 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박진우는 끝내 주민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좋다.”

“굿.”

그렇게 박진우는 주민성의 후원으로 장기 이용자가 되었다.

“……의심 없이 선입금이라.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

“됐고. 정보나 말해 보실까?”

“좋다. 다만 우리 길드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다.”

“대략적이어도 괜찮아.”

“흠.”

박진우는 천천히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양천구에 형성된 게이트는 전부 제압했다.”

“보스 몬스터 포함?”

“그래. 민간인들도 대부분 살려서 거뒀고, 유물까지 전부 획득했지.”

“제법이네.”

“10대 길드를 무시하지 마라.”

여기서 주민성은 자연스레 질문 하나를 얹었다.

“비석은?”

“그건 말할 수 없다.”

“후후…….”

“윽…….”

왜인지 보스를 잡으면 흡수되는 지배의 비석.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비석은 나에게만 귀속되는 게 아니었군. 아린도 비석이 주는 메리트에 대해 알아냈어.’

얼굴을 잠시 찡그린 박진우는 좀 더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 때문에 강서구 진출은 보류 상태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동선 공유는 서로에게 이득일 거라 생각하는데.”

“……음. 나쁘지 않군.”

“우리는 여기까지 알려줄 수 있다. 10대 길드 본거지, 그리고 강남으론 진출하지 않는다.”

단순히 보면 배려 같은 이야기였지만, 이는 주민성이 협회와 10대 길드를 어떻게 대할 건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강서구 나머지 지역을 평정할 예정이야. 방해하면 상대가 누구든 적대할 생각이고.”

“……참고하지. 그 이후는?”

“아직 미정.”

“…….”

“나도 상황은 봐 가면서 움직여야지. 원래는 양천구도 동선에 포함되어 있었어. 보류했다길래 나도 일단 보류하는 것일 뿐.”

“좋다.”

다음은 강남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강남만이 게이트가 형성되지 않았다. 대신 접근할 수 없는 괴이한 자기장이 형성됐더군. 우리는 이를 몬스터가 아닌 협회장의 능력으로 추측하고 협회의 움직임을 쫓고 있다.”

“게이트가 생기지도 않았다고?”

“그래.”

주민성에겐 카로그가 흘린 정보가 있었다.

덕분에 중랑구와 강남구에 발생하는 몬스터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들은 상황.

“정보는 여기까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음……. 좋아.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해 보자고.”

주민성은 흔쾌히 박진우의 포박을 풀었다.

“……다음에는 공식적으로 알리고 방문하지.”

“응. 텐트 잘 챙겨가고.”

그렇게 장기 이용자 박진우는 신방화역을 떠났다.

이에 김정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저렇게 쉽게 보내줘도 될지 걱정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다른 분들 인계 좀 다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김정남이 다시 생존자들에게 합류하고, 주민성은 흐뭇한 표정으로 박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나에 대해 어디까지 말할 수 있으려나.”

건물 이용자는 건물주에게 해가 되는 발언 및 행동을 할 수 없다.

이 제약은 장기 이용자에겐 더욱 강력하게 적용됐다.

16548859861343.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