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통수 (2) (153/250)


외통수 (2)
2022.05.03.


“크르륵……!”

털썩!

마지막 웨어울프가 쓰러졌다.

그럼에도 카로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크르르……!”

물론 마지막 웨어울프가 죽기 직전까지도 카로그는 필사적이었다.

덕분에 제르취도 몇 번 저지했었고.

그 대가가 이것이었다.

“쯧.”

페널티가 중첩되어 팔다리는 불구가 되었고, 날카롭게 빛나던 이빨과 손톱은 모두 빠져 있었다.

이젠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겨워 보인다.

“사정이야 있겠지.”

웨어울프에겐 웨어울프만의, 주민성에겐 주민성만의 사정이 있었다.

그 과정이 임시 불가침이었기에 둘의 동행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았던 거고.

“누구나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전쟁도 없었어.”

이것은 인류의, 작게 말하면 주민성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패배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정보는 잘 들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제르취의 손도끼가 카로그의 정수리를 찍었다.

콰직!

[카로그의 영혼석이 흡수됩니다.]

이것이 카로그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모든 저항이 끝난 건 아니었다.

[달빛 암살자 리카르가 권리를 이어받습니다.]

시리의 경우와 달리 웨어울프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가침은 여전히 해제되지 않았다.

“흠…….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건가.”

털썩!

뒤이어 제르취가 쓰러졌다.

페널티는 그대로였다.

“수고했다. 제르취.”

“취익…….”

“근데 아직 끝은 아니야. 알지?”

“알고 있다.”

주민성은 제르취에게 잠시 동안의 휴식을 주며 카로그의 시체 위에 떠 있는 빛을 응시했다.

“유물은 놓칠 수 없지.”

카로그는 마리안보다 격 자체가 높은 몬스터였다.

등급도, 순수 전투력도 우위였다.

유물의 질 또한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툭.

이번 유물 역시 부피가 크진 않은 모양이다.

“로브……? 아니, 망토인가.”

주민성은 자세를 낮춰 땅에 떨어진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재질은 확실히 천인데.”

애매했다.

이전에 봤던 뇌전 지팡이처럼 위험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장트키 먼저 확인해 봐야겠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이베리카의 화관을 꺼냈다.

그리고 새로운 포스트잇과 함께 망토를 수납했다.

[이베리카의 순풍 망토가 수납됩니다.]

[포스트잇이 수납됩니다.]

“어?”

놀랍게도 망토에도 이베리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제작자인지, 이전 사용자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주민성은 화관과 함께 수납했던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다행히 장 박사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애매한 유물이군. 저주받은 유물을 의심했을 정도로 애매하다. 아니면 저주가 어설프게 해주되었거나. 해주 능력자에게 유물을 보이는 걸 권장하지. 이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경기도 파주 공장단지 지하에 협회 3연구소가 숨어 있다. 거기서 유물분석팀장 이장호를 찾아라. 적어도 국내에서 놈을 따라올 해주 능력자는 없을 테니.

이번엔 연구지원 요청과 관련된 내용이 없었다.

제대로 답을 내지 못해 내심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나름의 서비스인가.”

주민성은 이베리카의 화관을 집어 이리저리 살폈다.

“촉촉하네.”

이것이 당장 유물의 성능인걸까.

화관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뒤이어 이베리카의 순풍 망토도 다시 꺼냈다.

역시 포스트잇엔 내용이 적혀 있다.

-화관과 마찬가지다. 미약한 바람이 느껴지는군. 이런 유물은 대체 어디서 자꾸 구하는 거지? 적어도 돈 주고 사는 거라면 그만둬라. 차라리 나에게 투자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니까. 제대로 된 유물 경매장을 찾는다면 이곳을 추천하…….

이후 내용은 쓸모없는 얘기들뿐이었다.

인벤토리에만 계속 있으니 심심하기도 할 터였다.

“하아. 무슨 세트로 쓸모없는…….”

그 순간,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세트……? 세트 유물?”

세트 유물이라면 실제로 있는 유물이었다.

전부 모으면 없던 부가효과도 추가되고 유물 본연의 성능도 대폭 강화되는 녀석들이었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능력자들만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정혁수 또한 17종류의 세트 유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전부 합쳐야 제 성능이 나오는 걸까? 아니면 뭐지?”

주민성은 여태 얻은 유물들을 상기했다.

“뇌전 지팡이의 악령을 재배치해서 성능이 줄었나? 아니면 강서구 주변에서만 모을 수 있는 세트 유물?”

답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단서라면 쫓을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보스까지 죽여 봐야 하는 건가.”

방화동의 카로그.

그리고 공항동의 마리안.

전부 강서구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남은 지역은 등촌동, 가양동, 발산동, 화곡동 등등.

“너무 많은데?”

지역 전부를 수복하는 것엔 무리가 있었다.

당장 이런 작은 동네에도 웨어울프, 하피급의 몬스터가 들쑤시는 상황이었으니까.

“적어도 한 지역은 더 제압해 봐야겠군.”

하지만 그 전에, 마무리 지을 일이 있었다.

방화동이 완전히 제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빛 암살자 리카르가 권리를 이어받습니다.]

다음 차례는 웨어울프 서열 2위였다.

놈들이 모든 권리를 포기하기 전까진,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일어날 수 있겠어?”

“……당연하다.”

당장 쓸 일이 없는 화관과 망토는 다시 수납했다.

이후 주민성과 제르취는 잔당을 쫓기 위해 다시금 움직였다.

하지만 속도는 이전과 달리 상당히 더뎠다.

제르취가 여전히 절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건 어때?”

“취익. 필요 없다.”

몇 번이고 죽음을 권유했지만, 제르취는 적의 손에 죽겠다며 주민성의 제안을 거절했다.

게다가 몸 상태에 비해 제르취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점점 강렬해진다.

실제로 제르취는 고난과 함께 강해지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

이미 적의 수장을 꺾은 이상, 작전은 계속해서 수월해질 예정이었다.

주민성은 제르취를 뒤로 하고 틈틈이 물품들을 파밍해나갔다.

저녁 즈음엔 봉춘향을 통해 카르파크가 요인 구출에 성공했다는 연락도 들려왔다.

적어도 게이트 식구들은 전부 구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행이다.”

-이제 다음 지원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응. 문제 생기면 연락하고.”

-예.

다음은 최선아와 고블린 라이더가 합류할 차례.

그 시점부턴 웨어울프의 선택지는 도망만이 남게 된다.

놈들의 공격은 오크 라이더들이 대신 받아낼 예정이었으니까.

주민성은 봉춘향의 추가 보고를 떠올렸다.

-부착해 둔 카메라에 생존자가 포착되었습니다. 위치는 신방화역.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었던 걸로 보아, 능력자를 중심으로 한 생존자 집단으로 추정됩니다.

카메라 앵글로 봐선 카르파크도 눈치챈 모양이다.

추적자라는 이명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우선 임무는 요인 구출.

따라서 이 부분의 관여는 주민성이 하는 게 맞았다.

-웨어울프와 하피를 속일 정도의 은폐, 또는 은신계 고위 능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될 수 있으면 포섭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지하철은 1차 대격변 이후로 여태껏 복구하지 못하고 봉인해둔 시설 중 하나였다.

게이트에 속해 있지 않고 서울 지하를 배회하는 지하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놈들이 워낙 예민하고 신출귀몰한 탓에 협회의 대대적인 정벌도 매번 헛물을 들이키기 일쑤였다.

“저긴가?”

신방화역의 입구는 무너진 상태였다.

잠금장치가 녹아내린 것으로 보아 웨어울프의 소행도 아니었다.

“음?”

지하에서 들리는 충돌음.

텐트를 한 겹 더 두르자 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어, 어째서! 분명 능력은 제대로 발동됐는데!”

“크롸아아!”

“크악!”

웨어울프와 생존자들 사이에 싸움이 붙은 모양이다.

주민성은 곧장 역 안으로 달렸다.

“쯧.”

지하에선 매캐한 먼지와 함께 지독한 피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소음의 근원지로 다가갈수록 주변 흔적들 역시 처절하기 짝이 없다.

“주변 생존자들은 다 여기에 있었던 건가…….”

생존자들은 선로를 한참 지나고서야 발견됐다.

이쯤이면 강서구라는 지역 자체를 벗어난 수준.

주민성은 추가로 꽃 도핑까지 마치고 싸움에 개입했다.

쾅!

“크르?”

“큭!”

웨어울프와 생존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사, 사람? 혹시 협회입니까? 아니면 길드?”

웨어울프들 역시 알아차렸다.

불가침 상대에게선 특이한 기운이 같이 느껴지니까.

차원 불가침의 영향이었다.

“둘 다 아닌데요.”

“예……? 아니 그보다 조금만 도와주십시오! 이 녀석들 이상할 정도로 필사적입니다!”

“일단 제 뒤로 오십시오.”

“예!”

남은 사람들은 수백 남짓.

의외로 일반인 생존자들도 많이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이 정도의 인원이 남았다는 건, 이곳의 리더가 제법 얼굴이 알려졌을 거라는 추리도 가능하다.

‘적어도 티비에서 봤던 사람은 없는데.’

주민성을 비롯한 생존자 집단과 웨어울프 잔당의 대치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웨어울프들이 주민성을 보며 머뭇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생존자 측이 유리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공격계 능력자 아무도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전부 죽었습니다.”

“…….”

확실히 웨어울프는 직감이 엄청나게 뛰어났다.

누가 위협이 되는지도 진작에 알아채고 미리 처리하며 수비망을 뚫어온 모양이다.

“크르르르…….”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단서가 필요합니다.”

그제야 사람들도 드문드문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더니 죽었어요!”

“흑흑……. 숨을 쉬지 못해 죽었어요…….”

의견은 꽤 여럿이었다.

정리하자면 참살, 혹은 교살 같은 느낌의 죽음이었다.

“……동업자가 있었군.”

“호, 혹시 암살 전문 능력자십니까?”

“그건 아닌데, 자신 있는 분야죠.”

“오오오…….”

이곳의 공격계 능력자들은 몬스터에게 암살을 당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몬스터 하나가 있었다.

‘서열 2위가 여기 있나 보군.’

주민성은 텐트 한 겹을 다시 추가해 기감을 확장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강렬한 기운 두 개가 잡혔다.

하나는 휘말리면 전부 찢길 것같이 맹렬했고, 하나는 베일 것처럼 날카롭고 음습했다.

‘계단 쪽. 이건 제르취겠고…….’

나머지는 가까웠다.

웨어울프 무리 속에 숨어 있었다.

‘……저게 녀석이겠군.’

불가침 페널티는 주민성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주민성이 해야 할 건 시간 지연.

그리고 혹시 모를 암살 대비였다.

‘최소한 같이 죽을 각오는 하고 덤빈다는 거겠지.’

물론 놈들을 돌려보낼 방법은 존재한다.

건물 폭발을 활용해 지하터널 전체를 무너뜨리는 자폭이었기에 하지 않을 뿐.

‘어떻게 한다……. 그보다 저놈들은 왜 이쪽으로 온 거지?’

웨어울프들이 향하는 방향은 마곡나루역 방향.

환승하지 않고 그대로 이동하면 양천구를 지나 여의도로 향하고, 환승을 하더라도 은평구나 마포구 방면으로 빠지는 길이다.

카로그의 기존 목적지였던 북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애초에 북부로 갈 거였으면 육로가 더 빠르기도 했고.

‘설마 하피들처럼 서울 안에서 나중을 도모하겠다는 건가?’

다른 몬스터 집단에 합류, 혹은 지배권 쟁탈.

여러 가능성을 놓고 봐도 웨어울프의 탈주는 주민성에게 도움 되는 방향이 아니었다.

“크르르…….”

“히, 히익! 암살자님! 살려 주세요!”

웨어울프들이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놈들은 희생에 익숙한 놈들이라 위험했다.

괜히 반격하다 주민성까지 페널티를 입으면 약점을 노출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더더욱 위험했다.

“천천히 다섯 걸음만 뒤로 가겠습니다.”

“예!”

동시에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전방에 전개했다.

“크, 크륵!”

놈들이 갑자기 뿜어진 빛에 당황한 사이, 주민성은 카로그를 잡고 얻은 순풍 망토를 꺼냈다.

‘일단은 미약한 바람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유물이니까.’

동시에, 인벤토리 안에서 고운 미세먼지가 흘러나왔다.

“콜록!”

“크륵!”

“다들 호흡기 보호하세요.”

웨어울프는 후각이 예민하다.

미세먼지의 위험 정도는 당연히 알 터.

이럴 경우, 놈들의 선택지는 강행 돌파나 후퇴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주민성은 더욱 요란하게 인벤토리를 빙빙 돌려 놈들의 후퇴를 강요했다.

“좋은 말 할 때 가라.”

“크륵! 컥!”

그 틈을 타 순풍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후웅-.

망토를 걸침과 동시에 터널을 관통하는 미세한 바람이 느껴졌다.

심지어 직접 다룰 수도 있을 듯했다.

단지 바람 세기가 선풍기 미풍보다 약한 수준이라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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