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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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수 (1)
2022.05.02.
“장트키를 쓸 시간인가.”
유물이 애매할 때 필요한 건 백과사전도 안전장치도 아니었다.
장 박사가 최고였다.
-돌발 미션! 맞추면 보상 있음!
뇌전 지팡이와 비교한다면 위험도는 상당히 적어 보였지만, 꼼꼼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베리카의 화관이 수납됩니다.]
[포스트잇이 수납됩니다.]
유물 이름도 밝혀졌다.
다행히 악령 등의 꺼림칙한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이베리카의 화관이라네.”
“화관이면 머리에 쓰는 거죠?”
“응……. 근데 사이즈가 좀 이상한데?”
사람이 쓰기에도 초커 수준의 크기였다.
그렇기에 꽃장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당연히 하피가 착용하는 것도 무리수가 따른다.
“애매하군. 하여튼 유물은 나중에 확인해 보고…….”
주민성은 건물 아래를 주시했다.
그곳에선 웨어울프 무리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없겠지. 제딴엔 하피 견제용으로 맺은 불가침인데 하피 무리를 통째로 집어삼켰으니.”
“몬스터니까 이해해요. 그보다 형. 저 녀석들은 어떻게 하려고요?”
웨어울프.
위험도 A급에서도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녀석이었다.
어지간한 신체강화 능력자보다 더욱 빠르고 강력하다.
심지어 교활하고 끈질기기까지 하다.
오크 라이더의 상위호환격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놈들을 이끄는 보스 몬스터 카로그는 나름의 큰 그림까지 그릴 줄 아는 녀석이었다.
“내버려둘 수는 없지. 불가침이라 하더라도.”
웨어울프와 동맹관계라면 협력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계는 임시 불가침.
언제 깨져도 항변할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리고 주민성은 가만히 당해 주는 것이라면 진절머리가 나 버린 인간의 대표 격이었다.
“구출 끝나는 대로 뒤통수 칠 거야. 내버려두면 당하는 쪽은 내가 될 테니까.”
그간의 사정은 최선호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불가침 상태인 종족은 오크니까……. 핵심 카드는 고블린이 되겠네요.”
“정답이야.”
고블린 부대는 여럿으로 나눠 둔 상태였다.
대표적으론 인천의 언데드를 토벌중인 꽃블린 군단이 있었고, 안산 게이트를 지키는 크룩스 군단이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1군단을 후방으로 빼 뒀거든.”
“아, 어쩐지 누나가 보이질 않더라니….”
“맞아. 선아 씨는 1군단이야.”
앞의 부대가 소탕과 수비에 특화되어 있었다면, 최선아가 이끄는 고블린 군단은 오로지 특공이었다.
최선아의 가속 능력을 공유중인 고블린 5형제 역시 1군단에 속해 있었다.
“협회 간부조차도 쓸어 담는 부대야. 웨어울프라고 다르진 않겠지. 놈들은 1군단으로 제압할 거야.”
“어……. 그래도 협회 간부 사냥 당시 상황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작전은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요.”
최선호 역시 자신의 누나가 참여하는 작전이었기에 주민성의 구상을 꼼꼼히 검토했다.
“맞아. 그때도 간부들은 반격보단 도주를 택했었지. 이번에도 그런 상황을 재현할 거야. 그러면 너도 안심이지?”
“헐? 그, 그게 가능하다고요?”
“응.”
말을 마친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번에는 유물이 아닌 텐트였다.
그것도 오크가 들어 있는.
“……드디어 내가 나설 시간인가. 취익.”
“어……? 이 오크는…….”
오크의 정체는 제르취였다.
“출전하기 전에 약속했었거든. 성장할 수 있는 전장을 마련해 주기로.”
텐트를 거칠게 젖힌 제르취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녀석의 시선은 카로그에게 닿았다.
전투광 오크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저런 압도적인 투기를 내뿜는 상대는 흔치 않을 테니까.
“웨어울프인가……. 취익. 나쁘지 않은 상대다.”
목표를 포착한 제르취는 곧장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쿵!
“그래서 선아 씨의 합류는, 이 녀석들을 완벽히 헤집은 이후야. 아마 반나절쯤 괴롭히면 저 녀석들도 어쩔 수 없겠지.”
최선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같은 건물주로서 공유 받은 정보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저 오크……. 죽을 때마다 형도 같이 호출되잖아요…….”
제르취는 지금도 여전히 게이트 서열 2위였다.
즉, 제르취의 출전은 서열 1위인 주민성이 참여가 강제된다는 뜻이었다.
“맞아. 나도 남아서 계속해서 트러블을 일으킬 거야.”
“그럼 저도 남을게요!”
“안 돼. 너는 웨어울프에게 공격받을 수 있어. 지켜줄 자신도 없고.”
인간은 웨어울프와의 불가침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태껏 공격해 오지 않았던 건 카로그의 자발적인 통제에 불과했다.
제르취가 본격적인 사냥을 시작하면, 분노한 웨어울프의 복수 대상은 오크가 아닌 주민성 세력으로 한정된다.
“저 녀석들. 최소한 하피보단 똑똑해. 분명 다른 방법을 통해 컨테이너를 공략할거야. 예를 들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도구를 활용한다든지.”
“…….”
최선호 역시 동감하는 바였다.
그렇기에 더이상 항변하지 못했다.
자신의 역할 역시 깨달았으리라.
“……더 강해질게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형. 그 대신, 유물은 저랑 같이 확인해 줘요.”
“당연하지.”
애초에 주민성도 그럴 생각이었다.
지금은 즉흥적인 유물을 활용한 작전보단, 준비해 둔 작전으로 철저하게 뒤통수를 치는 쪽이 바람직했다.
“……먼저 돌아갈게요.”
“응.”
최선호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컨테이너에 돌아갔다.
왜인지 시동마저도 힘없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철컹.
“저녁엔 꼭 돌아오세요!”
“그래.”
그렇게 최선호가 떠나고.
방화 1동엔 웨어울프 무리와 항복한 하피 무리, 그리고 제르취만 남게 됐다.
“너. 이리 와 봐.”
“키아악?”
주민성이 가리킨 대상은 시리카.
한때 2인자 하피였던 시리카의 서열은 이제 꽃블린보다도 낮은 상태였다.
“들어가.”
“키, 키악…….”
주민성은 시리카를 그대로 텐트에 집어넣었다.
만물소통을 발동시키기 위함이었다.
“아직 나를 따르지 않는 하피가 있다던데.”
“그, 그렇습니다! 키악!”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할까?”
“아닙니다! 제가 움직입니다! 키아아!”
“오케이. 알아서 처리해. 가 봐.”
“키아악!”
그렇게 하피 무리도 방화1동을 떠났다.
이것으로 공항동에 남아 있는 하피 잔당도 소탕되리라.
그렇게 아파트 옥상에 홀로 남은 주민성은 난간에 몸을 걸치고 제르취를 지켜봤다.
“오. 폼 나는데?”
제르취는 어느새 카로그의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물론 카로그 쪽이 내려다보는 형편이었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는 모습이 제법이다.
“취이이!”
“크르르르!”
불가침인 상황이었기에 웨어울프 무리는 제르취를 위협할 뿐이었다.
하지만 반대 입장은 다르다.
“취익!”
제르취는 그대로 허리춤의 도끼를 휘둘러 카로그를 공격했다.
콰직!
“저 녀석도 정상적인 오크는 아니거든.”
[임시 불가침 상태입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차원 규칙을 위반했습니다.]
[불가침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제르취에게 페널티는 무의미했다.
죽음보다 더한 페널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워우우우우!”
당황한 카로그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소용없다.
제르취는 계속해서 도끼를 휘두를 뿐.
콰직!
그렇게 제르취의 두 번째 유효타가 작렬했다.
[불가침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퍼걱!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서열 2위의 사망입니다.]
[서열 1위는 2위의 사망 장소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순간이동을 알리는 전조가 발생했다.
주민성은 그대로 자신을 감싸는 기운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뜰 땐 웨어울프 무리 한 가운데였다.
“와. 웨어울프가 세긴 세구나.”
주민성은 그대로 머리가 박살 난 제르취와 카로그를 번갈아봤다.
“크르르르!”
“아이고. 페널티 걸리셨네.”
제르취의 머리를 박살냈던 카로그의 왼팔은 심각하게 뒤틀려 있었다.
제르취의 시체도 마찬가지.
온갖 페널티로 인해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취익. 이런 악조건이라. 나쁘지 않다…….”
되살아난 제르취에겐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콰지직!
주민성의 뒤편에 있던 웨어울프의 머리가 단숨에 날아갔다.
“전부 죽인다. 취익.”
콰직! 콰직! 콰지지!
[중상급 마석이 흡수됩니다.]
[중상급 마석이 흡수됩니다.]
[중상급 마석이 흡수됩니다.]
…
이번생의 제르취는 카로그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대신, 놈을 호위하는 웨어울프 다섯을 죽였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예상대로 불가침의 마지막 페널티는 죽음이었다.
“크워어어어!”
부하의 어이없는 죽음에 카로그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엔 미미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재미있는 전장이군. 이 시련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인가. 취익.”
제르취는 꺾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죽고 죽임을 반복할 뿐이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
이윽고 수십의 웨어울프가 제르취의 손도끼에 죽었다.
그 과정에서 반격에 성공한 일부 웨어울프는 페널티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판 못 뒤집어. 똑같이 죽지 않는 이상은.”
주민성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대격변 첫날인 오늘만큼 몬스터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시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테니까.
위이이이잉!
어느새 꺼낸 입자 절단기가 아스팔트를 갈랐다.
“어리버리탈 시간 없다. 얘들아.”
지금처럼 웨어울프를 몰아세우는 건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니었다.
이는 차원이 정의하지 않은, 주민성이 정한 페널티였다.
콰지직!
웨어울프는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당했다.
제르취의 협력도 매우 적절했다.
보스급인 카로그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전진했다.
“워우우우우우!”
결국, 참지 못한 카로그의 발길질이 주민성에게 작렬했다.
쾅!
“크윽!”
방어는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그럼에도 주민성에겐 큰 타격이었다.
단 한 대 맞았을 뿐인데도 왼팔이 부러질 정도였으니까.
“쳤네?”
하지만 주민성은 웃을 수 있었다.
카로그가 치를 대가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우드득!
“쿠워어어!”
심지어 녀석에겐 두 번째 페널티였다.
여기서 세 번의 페널티가 더 중첩되면, 카로그는 반드시 죽게된다.
“크흐흐……. 더 쳐 봐. 짜샤.”
부러진 팔은 심각하게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건물 부가효과를 통해 붙일 수 있었다.
주민성의 페널티는 복구가 가능한 페널티였기에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워우우우우!”
“……어쭈.”
카로그의 선택은 조금 반전이었다.
보스의 부상으로 더욱 격렬하게 대항할 거라 예상했던 다른 웨어울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법이네.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고.”
안타깝게도, 이런 전개는 처음부터 대비해 둔 상황이었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그리고 흩어진 네 부하들은 허무하게 사냥당하겠지.”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성은 주민성대로, 카로그는 카로그대로 자신의 할 일에 충실했다.
쿠르르르!
카로그가 근처의 건물들을 박살 내며 진로를 방해했다.
주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너지는 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이고!”
쾅!
부서진 건물 잔해가 주민성에게 충돌했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이번에도 웃을 수 있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
“페널티……. 세 번째다……. 쿨럭!”
“크르르…….”
주민성이 다친 만큼, 카로그 역시 피투성이가 됐다.
‘조금 자중해야겠군.’
카로그의 눈빛은 상처 입은 야수 그 자체.
끔찍한 살기가 계속해서 주민성을 압박했다.
“취익!”
“쿠워어어어!”
그런 틈을 노리려는 제르취의 걸음이 멈췄다.
카로그의 명령에 도망쳤던 웨어울프 일부가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마다 자신의 몸뚱이를 방패 삼아 제르취를 저지했다.
“……취익. 명예로운 전사들이군.”
콰직! 콰직!
제르취는 냉정했다.
막아서는 웨어울프들을 하나하나 죽였다.
[죽음에서 돌아온 오크 로드 제르취가 사망했습니다.]
놈의 표적이 되어 여태까지 살아남은 생명체는 전 차원을 통틀어 주민성이 유일했다.
그 외엔 전부 죽었다.
콰직!
“취익. 너희들의 삶. 내가 짊어지겠다.”
제르취가 게이트 서열 2위인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