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션피플 (2) (151/250)


패션피플 (2)
2022.05.01.


중간 중간 웨어울프와 하피들과 마주쳤지만, 놈들은 더 이상 주민성과 최선호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 쪽은 안중에도 없이 서로를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었다.

“하피랑도 불가침 같은데요?”

“아냐. 쟤들 혼자 불가침이야. 그것도 멋대로 1시간.”

“새대가리네요.”

“그치.”

컨테이너 복귀는 수월했다.

물론 컨테이너에 관심을 가지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주민성의 접근에 빠르게 도망쳤다.

“수복은 어때?”

“완벽해요. 충전만 조금 해 주세요.”

“오케이.”

파지직!

뇌전을 일으키자 다시금 주변 분위기가 술렁였다.

곧이어 카로그와 마리안의 존재감도 느껴졌다.

허튼짓은 하지 않는지 감시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물론 주민성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봉춘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장님.

“작전 조금만 바꿀게.”

-말씀하십시오.

“방화2동에 오크 팀 추가로 파견해 줄 수 있겠어?”

-네임드급 오크라면 성아영 씨와 함께 있는 거대 오크가 있습니다만…….

봉춘향이 말하는 오크는 가르취와 차크취였다.

“걔들은 안 돼. 똑똑한 애들이 필요한 임무야.”

가르취와 차크취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들은 콩이과였기 때문이다.

물론 쓸모없진 않다.

맘대로 미쳐 날뛰는 전장이라면 누구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오크들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뒤통수를 쳐야 하는 임무에선 변수 덩어리일 뿐.

-그렇다면 공항동의 오크 라이더들이 가장 뛰어납니다.

“그쪽 진전은 어떤데?”

-이제 한 명만 더 구출하면 임무 종료됩니다.

“그러면 좀 더 서둘러 줘. 대놓고 드러낸 채로 움직여도 되니까.”

-……위험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응. 앞으로 30분간, 하피들은 우릴 공격하지 않기로 했거든.”

-으엥?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짜야.”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은폐를 해제해 보겠습니다.

공항동 팀에는 봉춘향의 분신이 있었다.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

-으에엥? 진짜였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으으!

당황한 나머지 집중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주민성은 차분하게 봉춘향이 생각을 수습하길 기다렸다.

-……후우. 송구스럽습니다.

“아냐. 괜찮아. 내 말이 맞지?”

-예. 경계만 하고 공격해 오진 않습니다. 30분. 맞습니까?

“응.”

-그러면 서둘러 구출을 끝내고 방화동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응. 그리고 방화1동과 2동엔 오크만 와야 해. 입구까지만 동행해 줘. 그리고 파견 중인 나머지 인원은 오크만 제외하고 전부 철수하고. 그리고 카르파크는 1동으로 보내줘. 임무는 직접 전달할게.”

상당히 복잡한 주문이었지만 봉춘향은 흔쾌히 답했다.

계산도 순식간에 끝낸 모양.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장님. 복귀는 언제 하십니까? 명단에 없는 민간인이 왔습니다만…….

“내가 보냈어. 잘 챙겨 줘. 그리고 센터장은?”

-예. 센터장 이규석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럼 텐트 씌워서 깨우고 내가 보낸 민간인들하고 대화시켜줘. 뭔가 알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구속은 계속해 두겠습니다.

“오케이.”

통화가 마무리됐다.

그러는 동안 최선호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시원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충전 완료요.”

“오케이. 하피 쪽으로 접근할게. 창가에서 대기해 줘. 보스만 노릴 거니까 공격하진 말고.”

“네!”

철컹. 철컹.

컨테이너가 근처 아파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리안은 그 아파트 옥상에서 컨테이너를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신문지라도 꺼내서 펄럭여 줘.”

“네.”

신문지를 펄럭이는 것은 항복이라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게 하피들에게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새대가리는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놈이니 통할 터였다.

펄럭. 철컹. 펄럭. 철컹.

그렇게 컨테이너는 아파트를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파트와 가까워질수록, 웨어울프 무리는 주민성과 거리를 벌렸다.

‘의도를 알아차렸나?’

여기서 괜히 웨어울프까지 접근했다간 하피들이 도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나쁘지 않은 도움이다.

“저 큰놈 보이지? 쟤가 보스야.”

“와……. 위압감 장난 아니네요.”

“그치. 보스는 보스니까.”

“유물도 나오겠죠?”

“응.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뽕을 뽑아야지.”

“크으. 뇌전 지팡이 수준만 나와도 대박이긴 하네요.”

뇌전 지팡이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의 성능이다.

물론 리치가 만만한 몬스터는 아니다.

하피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약하다는 평가는 받지 않으니까.

‘타이밍이 좋긴 했지.’

리치는 대기만성형 보스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강해지는 타입이었으니까.

몬스터 풀도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스켈레톤과 좀비 같은 기본적인 언데드뿐이지만, 게이트 적응을 마친 리치는 듀라한이나 밴시, 스펙터같은 고위 언데드까지 소환할 수 있었다.

“키아아아아!”

하피 보스가 컨테이너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는 거예요?”

“나도 모르지.”

짐작은 갔다.

대충 무슨 짓이냐 멍청한 놈 같은 헛소리겠지만.

“잠깐 고개 좀 내밀게. 신문지 계속 흔들어.”

“네.”

주민성은 의도적으로 하피 무리 너머를 바라봤다.

대충 내 행선지는 니들 뒤편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뉘앙스였다.

“키아아?”

하피의 고개가 옆으로 젖혀졌다.

의미는 모른다.

그렇게 서로 알아듣지 못할 멋대로의 대화가 반복되고, 하피 무리가 양 옆으로 펼쳐졌다.

“지나가라는 것 같은데요?”

“좋네. 멀리 도망 안 가서.”

하피도 하피 나름의 자부심이 있을 터였다.

그렇게 깔보는 상대에게 뒤를 보일 수도 없는 입장이고.

철컹!

그렇게 꼬물꼬물 올라간 컨테이너는 기어코 옥상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키이이…….”

“시아앗……!”

하피들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위협하고 있었다.

“형. 조금 무서운데요. 쟤들 동공이 너무 커요.”

“조금 무서운 수준이면 괜찮아. 할 수 있어.”

부가효과가 적용되고도 조금 무서운 정도면, 지금 하피들이 내뿜고 있는 건 맨 정신으로 받기 힘든 수준의 살기일 터였다.

쿵.

이제 하피 보스와의 거리는 10미터가량.

뇌전 지팡이의 유효 사거리엔 진작 들었지만, 주민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조금 더 붙어야겠지?”

“네. 5미터를 넘어가면 관통력이 줄어요.”

“오케이.”

쿵.

컨테이너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하피 보스는 비스듬한 각도에서 그런 컨테이너를 관망하고 있다.

“다음 이동에서 공격한다.”

“네.”

쿵!

“지금.”

파밧!

최선호의 신문지가 쏘아지고, 주민성은 순식간에 뇌전 지팡이로 내달려 출력을 끌어올렸다.

‘하피 보스. 마리안.’

대상이 명확할수록 출력 효율이 좋아지기에 하피의 이름까지 외워 둔 상태.

푹!

최선호의 신문지는 하피 보스의 날갯죽지에 적중했다.

이것으로 놈의 회피는 봉쇄됐다.

“키아아악!”

“형! 적중이에요!”

주민성 역시 시동을 서둘렀다.

“큭!”

그리고 뇌전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파지지지직!

후속타 역시 적중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키아아아아아!”

하피 보스 마리안은 뇌전 지팡이의 전격마저 견뎌내고 거칠게 주민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오. 젠장! 선호야! 계속 공격해!”

“네!”

주민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컨테이너를 뛰쳐나갔다.

물론 맨몸은 아니었다.

옆구리엔 어느새 텐트포가 결속되어 있었고, 반대편 손엔 입자 절단기가 들려 있었다.

위이이잉!

먼저 가동된 건 입자 절단기였다.

주민성은 하피 보스가 아닌 근처의 하피를 향해 입자 절단기를 내질렀다.

콰지지지!

“끼아아아!”

그리고 텐트포를 개시했다.

“건물 폭발! 텐트 155!”

콰아아아앙!

폭발은 엉뚱한 하피 무리를 타격했다.

그리고 여기서 주민성의 노림수가 작용했다.

텐트포는 땅에 고정되지 않고 한쪽 옆구리에 결속된 상황.

폭발은 곧 추진력이자 회전력이었다.

“으아아!”

주민성이 하피 보스를 향해 쏘아졌다.

말 그대로 날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콰지지지지!

하피 보스와 주민성의 사이에 있던 모든 하피들이 갈려나갔다.

“끼아아아아!”

맨땅도 잘라내는 입자 절단기였다.

공격력 하나만큼은 유물급인 근접 무기라 할 수 있었다.

단지 맞추기가 힘들뿐.

주민성은 그런 입자 절단기의 약점을 건물 폭발의 추진력으로 극복했다.

콰지지지지지지지!

주민성은 어느새 하피 보스에게 도달해 입자 절단기를 쑤셔 넣고 있었다.

이를 저항할 수 있는 날갯죽지는 최선호의 신문지에 봉쇄된 상황.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멍청한 새대가리 놈.”

쿵!

하피보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절단됐다.

[마리안의 영혼석이 흡수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하피 보스의 죽음을 알리는 영혼석 흡수 메시지.

거기에 건물주 등급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했다.

리치를 정화수에 절여서 죽였을 때와 달리 직접적인 공격이 전부였던 게 판정에 반영된 모양이다.

“후우! 후우!”

주민성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경계했다.

“키, 키아악!”

하피 무리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이를 추스르는 하피가 눈에 띄었다.

“……뭐야. 2인자야?”

“키, 키이!”

더 볼 것도 없었다.

이제 투혼 갑옷마저 뚫어낼 만한 보스급 몬스터는 죽었으니까.

주민성은 입자 절단기를 높이 치켜든 채 2인자 하피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하피 몇 마리가 최선호가 있는 컨테이너를 기습했다.

무리 중에서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집단인 모양이다.

파지지직!

“끼아아아!”

하지만 새대가리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주민성이 아닌 최선호를 기습하는 작전까진 좋았으나, 녀석들에겐 컨테이너의 매커니즘이 학습되지 않았다.

“어쩔래? 니네 그대로 다 죽을래?”

말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은 통한다.

쾅!

“첫 번째는 경고다. 두 번째는 진짜로 죽어.”

다만, 이곳의 하피를 전멸시키는 건 하책이었다.

놈들은 공항동에도 잔뜩 있을 테니까.

위이이잉!

하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입자 절단기가 다시금 가동됐다.

“다진 치킨은 취향이 아닌데.”

털썩!

의미가 통했는지 하피 2인자가 주저앉았다.

곧이어 메시지도 떠올랐다.

[납치꾼 시리가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강서구(공항동)의 지배권이 양도되었습니다.]

[강서구(방화1동 일부)의 지배권이 양도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은 인천 게이트에 통합됩니다.]

[지배의 비석이 귀속됩니다.]

[보유 중인 지배의 비석: 2]

여기까진 리치를 협박해 받은 내용과 흡사했다.

메시지는 더 있었다.

[비명 절벽 하피가 굴복합니다.]

[비명 절벽 하피 종족 일부의 지휘권이 활성화됩니다.]

[지휘 가능한 하피: 납치꾼 시리 외 82]

[게이트 내 굴복하지 않은 개체가 존재합니다.]

털썩! 털썩!

신경 쓰이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적어도 주변의 모든 하피는 주민성에게 정수리를 보이고 있었다.

“살다 살다 하피까지 써먹게 생겼네.”

메시지가 언급한 시리라는 하피를 제외한다면 다른 하피들은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저평가해도 될 수준은 아니다.

공중에서 활약할 수하가 생겼다는 사실은 너무나 고무적이었고, 이들 하나하나의 공격력은 고블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아무튼 잘됐군.”

주민성은 여전히 죽은 마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피가 굴복한 걸 눈치챘는지 최선호도 부랴부랴 달려나왔다.

놈의 위엔 유물의 출현을 알리는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형! 저거 유물이죠?”

“응.”

“크으! 대박이다.”

곧이어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곳엔 작은 꽃장식이 놓여 있었다.

“……저게 유물?”

“…….”

애매했다.

목걸이처럼 쓰기엔 초커 수준의 사이즈였기 때문이다.

“……저거 선아 씨 줄까?”

“누나는 저런 디자인 싫어할걸요. 성능 좋으면 쓰기야 하겠지만…….”

“흠. 꽃집에 기증해야 하나.”

“그건 정말 나중 얘기예요. 형한테 도움 되는 유물이면 형이 쓰셔야죠. 아니면 컨테이너에 장식해도 되고요.”

기괴하게 생긴 컨테이너에 불길하게 박힌 뇌전 지팡이를 장식하는 화사한 꽃.

상상하기 힘든 비주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데?”

“그쵸? 진정한 강자라면 화사한 색깔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요.”

주민성과 최선호는 신문지를 뒤집어쓴 것도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었다.

165488595332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