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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1) (150/250)


패션피플 (1)
2022.04.30.


쿠르르르!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셨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중형 상가(완파)가 추가됩니다.]

주민성은 상가를 부수자마자 텐트를 마스크처럼 끌어올리고 유유히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들어와.”

-그쪽으로 오라는 건가? 호쾌한 놈이군!

-더럽구나……. 귀찮은 흥정이야.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의미만큼은 통한 모양이다.

몬스터들은 소수의 무리들만 데리고 주민성을 따라 건물에 들어왔다.

“반갑진 않으니까 인사는 필요 없겠지?”

“……음?”

“…….”

이번엔 제대로 말이 통할 터였다.

만물소통이 적용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둘 중 하나의 편이 되어 줬으면 한다?”

그리고 조금은 상반된 대답이 돌아왔다.

“필요 없다. 이곳에서 꺼져라.”

“크흐흐!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나와 협력하면 된다!”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하피는 확실한 조류였다.

‘저거 새대가리네.’

적어도 주민성이 하피 입장이었다면 웨어울프처럼 제대로 협상을 하든가, 웨어울프와 협력하기 전에 제압했을 터였다.

그러나 하피가 보이는 태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기 주장 뿐이었다.

물론 그 주장도 그럴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유지해 왔을 테지만.

“네가 고생이 많구나. 저런 놈을 상대로.”

“크흐흐……. 눈치는 좋군.”

물론 웨어울프도 똑똑이는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당장 하피의 목덜미를 찢어발길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단지 하피와 비교할 때 멀쩡해 보이는 상대 평가에 불과했다.

“그보다 너네. 아까 나한테 말 어떻게 걸었어?”

“……이봐. 혼종. 진심으로 묻는거냐?”

“멍청한 놈이군.”

이것으로 결정됐다.

하피는 반드시 죽이기로.

“너넨 태어날 때부터 다 할 줄 알았냐? 아니잖아.”

“할 줄 알았는데?”

“멍청한 놈이군.”

“…….”

보스급 몬스터는 태어날 때부터 보스급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인내심을 끌어올려 화제를 전환했다.

“너희들.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

이 또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태양의 순례지에서 얼핏 들었던 정보이기도 했다.

보스 몬스터들은 지역을 장악한 이후 다른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진군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크크……. 좋은 화제군.

-이런 대화라면 상대할 가치쯤은 있지.

이번 질문은 괜찮았나 보다.

놈들의 표정이 흥미롭게 바뀌었다.

-서울 전체를 목표로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저 새대가리를 제압하고 북부로 떠날 거다.

-다음은 양천구다. 끼어들 생각이라면 얌전히 포기하거라.

“음?”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웨어울프랑 하피는 왜 나하고만 얘기하는거지?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건가?’

아까의 기괴한 대화 방법은 단일 대상에게만 통하는 모양이다.

괜찮은 틈이었다.

-여기까지 물어봤다는 것은, 너 또한 왕좌를 노린다는 거겠지?

-왜 대답이 없느냐? 끼어들지 말라 했을 텐데?

게다가 하피 보스는 계속해서 주민성의 성질을 긁고 있었다.

‘건설적인 대화라면 웨어울프와 가능하다만, 하피놈은 멍청해서 정보를 계속해서 흘려준단 말이지.’

당장이라도 건물을 폭발시키든 근접 텐트포로 머리통을 날릴 수는 있었지만, 아직까진 더 뜯어먹을 구석이 있는 상대였다.

‘조금만 더 참자.’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서울 전체를 점령해서 얻는 이득이 있나?”

-너 설마……. 왕좌에 관심이 없는 거냐?

-네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넘보지 말아라.

“…….”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하피와의 대화는 여기까지 하기로.

그렇게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차원 중재 협상 중입니다.]

[협상중의 적대 행위는 페널티를 동반합니다.]

“…….”

차원 중재 협상이라는 엉뚱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의 대화는 결국 차원이라는 중재자에 의해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래서 덤비지 않았던 건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차원 협상 상태로 자연히 바뀌는 모양이다.

일단 짐작되는 조건은 한 게이트에 서로 다른 소속의 세 종족 이상 섞인 경우로 추정된다.

‘페널티가 뭔지는 몰라도 쓸데없이 감당할 필욘 없겠지.’

그렇다고 하피를 봐줄 생각은 없었다.

“너까지 웨어울프를 따라간다고? 곤란하네……. 나는 양보할 생각이었는데.”

그제야 고압적이던 하피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개자식이 서울을 넘본다고? 감히?

웨어울프 쪽 역시 싸늘해졌다.

-새대가리 주제에 거기까지 알아챘다고……?

이간질은 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이이제이의 탁월함은 여태까지 쌓아온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그렇군……. 좋다. 나는 여기서 물러날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 봐.”

-자, 잠깐! 기다려라! 혼종!

-알았으면 꺼져라. 당장이라도 전쟁을 시작할 예정이니.

이 타이밍에선 하피를 가볍게 무시했다.

“왜? 바로 전쟁한다고 떠나라는데.”

-제기랄……. 그래. 인정한다. 여기선 우리가 불리하다는걸. 정보 하나를 더 내놓도록 하지.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에 주민성의 입꼬리가 쉴 새 없이 씰룩였다.

“뭔데?”

-네놈에게도 도움 될 정보겠지. 종로구엔 악마가. 강남구엔 지옥 연금술사들이 강림할 예정이다. 그리고 놈들은 한패다.

“그게 뭐? 나랑 상관 있어?”

-……혼종이라서 모르는 건가? 네 몸에 흐르는 오크의 피는 악마를 거스를 수 없을 텐데?

“…….”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다.

특정 지역에 어떤 보스 몬스터가 나올지는 주민성도 아주 극히 알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협회장도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그보다 악마라면 몽룡이가 봤었지.’

악마에 관해선 주민성도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냥 사기도 아닌 개사기 능력자 송몽룡마저 절망으로 몰고 가는 수준이었으니까.

지금으로선 확신이 생길 때까지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손을 잡자. 아니, 저 새대가리 종족만 제압해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1년 후의 우리라면 서울까지 도모할 수 있어! 어때!

“흐음…….”

웨어울프에겐 나름의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당장 상극인 하피만 재낀다면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다는 건가?’

게다가 웨어울프건 하피건 주민성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몬스터에 취급이다.

‘게다가 인간형 몬스터도 존재하는 것 같고. 기분 나쁘군.’

웨어울프의 설득은 장황하기 짝이 없었다.

-그간의 역사를 생각해 봐라! 우리는 오크와 별다른 은원 관계가 없다! 그뿐인가? 망자들과 끔찍하게 사이가 나쁜 뱀파이어 놈들과도 지독하리만큼 긴 전쟁을 치러 온 게 바로 우리 웨어울프였다. 나쁜 얘긴 아닐 텐데?

여기까지만 본다면 꽤 좋은 대화였다.

웨어울프와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주민성이 몬스터라는 기준 하에서만.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빨리 꺼져 주면 좋겠는데.

“기다려 봐. 새대가리.”

-방금 뭐라고 했지?

“쟤가 그러던데?”

깨알같은 하피에 대한 도발은 덤이었다.

-건방진 놈…….

-크크…….

주민성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하피부터 처리하는 걸로.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겠지. 수락해라.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천년 전쟁의 무법자 카로그가 임시 차원 불가침을 제안합니다.]

[수락 시 종족 간 불가침이 형성됩니다.]

[불가침이 형성된 종족간 적대 행위를 통제합니다.]

[선택 가능한 종족: 인간, 고블린, 데빌도그, 오크, 다크울프, 언데드.]

눈앞의 웨어울프의 이름은 카로그.

범상치 않은 수식어가 붙어있는 걸로 보아 평범한 보스급 몬스터는 아닌 모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었다.

‘오호?’

여기서 핵심은 불가침이 임시인 것과, 종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임시라는 건 확실한 불가침이 아니란 소리겠지.’

웨어울프와의 관계는 영구적이지 않았다.

즉, 완벽한 동맹이 아니라는 소리.

‘나름대로 뒤통수칠 생각인가 보네.’

속이 뻔히 보이는 계략이었다.

게다가 웨어울프는 북부 진출까지 예고했다.

‘북부면 평양 방면 게이트로 진출한다는 거겠지?’

앞으로 먹을 파이가 줄어든다는 소리였지만, 그럼에도 주민성은 이를 수락할 생각이었다.

종족을 고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오크 취급을 하는 모양이니 오크로 하지 뭐.’

주민성은 잠시 눈을 감고 카르파크를 연상했다.

그러자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크를 선택했습니다.]

[임시 차원 불가침이 형성됩니다.]

[지금부터 오크와 웨어울프 간 적대 행위가 통제됩니다.]

-훌륭하다. 혼종.

“잘해 보자고.”

-크크…….

당장 최고의 전력인 오크를 웨어울프 공격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핸디캡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서구에서 벌어지는 작전은 구출.

웨어울프가 장악 중인 방화 1동과 방화 2동에선 오크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천년 전쟁의 무법자 카로그가 차원 협상을 종료합니다.]

이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카로그는 곧장 등을 돌렸다.

“써먹기 좋은 말이 들어왔군. 크크…….”

여기서 카로그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만물소통은 그냥 말해도 대화가 통하는 능력이었다.

‘저놈은 확실히 뒤통수를 치겠군.’

주민성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30분 주겠다. 그 전에 떠나라.

[창공의 분쇄자 마리안이 차원 협상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하피까지.

[차원 협상 참가자가 없습니다.]

[차원 협상이 종료됩니다.]

당장이라도 하피의 뒤통수를 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인내하는 것이 우선.

본격적인 작전은 최선호를 컨테이너까지 무사히 대피시킨 이후였다.

그렇게 상가에서 모든 몬스터들이 떠났다.

“차원 중재라니. 귀찮은 룰이네.”

주민성은 곧장 최선호가 숨어있는 편의점 창고로 돌아왔다.

“……선호야?”

“형! 괜찮아요?”

“아니…….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아……. 이거요?”

최선호는 팔을 내보이며 자랑했다.

전단지, 신문지 등을 이어 만든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어구였다.

“신문지랑 전단지를 덮었더니 갑자기 소유 메시지가 떠오르더라고요. 이것도 건물이래요.”

“……맙소사.”

“그래서 급한대로 용도를 바꿨어요. 여차하면 바로 난입하려고요. 근데 이상한 메시지가 뜨더라고요.”

“차원 중재?”

“네! 그거요! 페널티 때문에 고민하던 차였어요.”

놀랍게도 신문지와 전단지를 엮어 만든 허술한 이불조차도 건물로 판정된 모양이다.

그렇다는 말은 최선호의 용도 변경이 작용했다는 뜻.

“성능은 괜찮아요. 유연성하고 관통력에 몰빵했거든요.”

말을 마친 최선호가 팔을 뻗자, 신문지가 고무처럼 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총알 같은 속도로.

콰광!

“……대박.”

“그쵸?”

놀랍게도 최선호의 공격이 향한 편의점 카운터엔 커다란 구멍이 났다.

“이런 식의 발상도 가능하구나……. 역시 고인물…….”

“헤헤.”

물론 주민성에겐 투혼 갑옷이라는 유물급 방어구가 있었다.

방어력 면에선 단연 유물쪽이 뛰어나겠지만, 투혼 갑옷은 신문지만큼의 공격력을 갖추진 않은 상태였다.

“내 거도 만들어주라.”

“당연하죠! 형. 대신 부가효과 좀 주시면 안 돼요?”

“에이. 무조건 가능이지.”

“역시 형이에요.”

“크흐흐.”

“후후후.”

살풍경한 편의점에선 난데없는 종이접기 시간이 펼쳐졌다.

“안 그래도 우리 식구들 무기는 괜찮은데 방어구가 부실해서 걱정이었거든. 잘됐다.”

“전부 형 덕분이죠. 자. 입으세요.”

“응.”

[용도가 변경된 종이 박스2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소유권을 주민성님으로 변경합니다.]

“입던것도 줘. 부가효과 걸어줄게.”

“네. 형.”

[용도가 변경된 종이 박스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자. 여기.”

“형! 착용감 완전 좋아졌는데요?”

“건물 부가효과니까.”

그렇게 주민성과 최선호는 화기애애하게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크으. 이제 몬스터랑 직접 싸워도 괜찮겠죠?”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상대가 하피니까.”

“웨어울프는요?”

“걔들하곤 일단 불가침. 천천히 설명해 줄게.”

“불가침이요?”

빈곤해 보이는 패션과는 달리, 둘의 걸음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응. 일단 하피 뒤통수부터 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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