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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3)
2022.04.27.


“용도 변경으로 이걸?”

“네. 발전 용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호.”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초대형 발전소 등의 핵심 설비는 어차피 협회 측에서 진지하게 지켜내겠지만, 그렇게 지켜낸 전력이 공평하게 분배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회장이라면 그런 시설들마저도 정치적으로 써먹겠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누구보다도 인류 등급화에 앞장선 인물이었으니까.

“좋네. 하지만 문제는 이 지팡이의 위험성이야. 폭발사고라든지.”

“그 부분은 컨트롤할 수 있어요. 메시지, 꽤 상세하게 뜨거든요.”

“그래?”

“네.”

사실일 터였다.

메시지는 건물주를 위험에 빠트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절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임상 실험은 거치고 건네줄게.”

주민성은 자신감 있게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물론 바로 쥐지 않고 바닥에 떨어트렸지만.

툭.

예상대로 바닥엔 장 박사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이 잠깐 사이에 분석이 끝난 모양이다.

“장문이네.”

주민성은 메모를 차분히 읽었다.

-뇌전 지팡이군. 리치라도 잡았나? 남아공 게이트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적 있었다. 구현계 능력자가 쓰기 좋은 물건이야. 상성만 받쳐 준다면 두 단계 위의 파괴력도 가능하겠지. 단, 제대로 이 유물을 사용하려면 제물이 필요하다. 쓸모없는 인간 666명에게 이 지팡이를 쥐게 해라. 피를 머금으면 더욱 강해지는 녀석이니까. 해주법까지 알려줬다. 이제 본격적인 거래를…….

예상대로 이 지팡이엔 저주가 걸려 있었다.

‘사람 666명이 죽어야 지팡이를 제대로 쓴다는 소린가. 지독하네.’

이 정도면 투혼 갑옷에 걸려 있던 저주는 애교 수준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최선호와 김정남은 메모를 건네받고 경악하는 중이었지만.

“666명이 희생되어야 하는 유물이라고……?”

“……끔찍하군.”

‘어쩌면 지금 거래되는 유물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쳤을지도 모르지.’

전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적자생존의 논리로 본다면 이게 맞았다.

그랬기에 살아남았고, 그랬기에 약육강식 피라미드 최상단에 위치하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장 박사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내 능력이 좋긴 좋구나.’

주민성은 투혼 갑옷을 조작해 손 주위를 감쌌다.

접촉면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뇌전 지팡이를 쥐었다.

“윽…….”

불쾌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혀, 형?”

“민성 씨!”

주민성에겐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이 있었다.

아주 간단했다,

“영혼 재배치. 태양의 순례지.”

[재배치할 영혼을 지정해야 합니다.]

“악령.”

[고대의 영혼을 소유 중인 건물에 귀속시킵니다.]

[영혼이 재배치됩니다.]

능력이 사용됨과 동시에 불쾌한 감각이 사라졌다.

콰트리취의 안대까지 있었다면 악령과 대화를 나눠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과정은 필요 없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양이지만.

“민성이 형……?”

“잠깐. 위험합니다. 잠시 거리 유지하겠습니다.”

김정남과 최선호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끝났어요.”

“……뭐, 뭐가 말입니까?”

“지팡이에 걸린 저주요. 지팡이에 있던 악령을 다른 건물로 옮겼거든요.”

대놓고 악령이라는데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영혼과 관련된 트러블은 주민성에게 있어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김정남 역시 납득한 모양이다.

“아. 확실히……. 헬스장 때도 그랬었죠……. 그런 능력이 있으셨죠…….”

“역시 갓물주…….”

왜인지 서로 다른 방향의 감동이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것으로 악령은 사라졌다.

하지만 위험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주민성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한명 더 있었다.

“춘향이도 이제 총 내려주지 않으련?”

봉춘향은 꽃블린이 매고있던 총기를 건네받아 사각지대에서 주민성을 조준하던 상태였다.

“죄, 죄송합니다……. 여차하면 기동력만 봉쇄할 계획이었습니다.”

“괜찮아. 이해하니까.”

그렇게 당장의 모든 트러블이 마무리됐다.

이젠 뇌전 지팡이를 써 볼 차례.

그동안 써 온 유물이 그렇듯, 사용법은 원래 알았던 것처럼 자연히 스며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조준 풀지 말아 봐.”

“아, 넵.”

주민성은 그대로 센터장실로 이동했다.

지팡이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려면 당장 여기보다 괜찮은 장소는 없었다.

“키히히히히! 힘이 솟는다!”

게이트에서 밑도 끝도 없이 생성되는 언데드들.

그런 언데드를 꽃블린이 계속해서 잡아내고 있었다.

주민성은 그런 꽃블린에게 텐트를 씌워 진정시킨 후 말했다.

“잠깐 뒤로 나와 봐.”

“키힉!”

거리 유지는 간단했다.

이미 박살난 언데드들을 바리케이트처럼 세워두면 됐다.

“출력은 이 정도로 하고…….”

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게 지팡이에 뇌전이 맺혔다.

마법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준.”

새로 튀어나온 좀비가 어깨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발사.”

동시에 지팡이가 뇌전을 쏟아냈다.

콰지지지지!

“구어어어!”

좀비는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와…….”

일격사.

실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주민성은 잠시 좀비를 바라보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현기증이 생길 정도의 부담은 없었다.

출력 효율까지 괜찮은 유물인 모양이다.

“좋은 유물을 손에 넣었네.”

“축하드립니다. 조준은 이제 풀어도 되겠습니까?”

“응. 수고했어.”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바라보던 최선호 역시 빠르게 달려와 주민성을 축하했다.

“성능 대박이네요. 이 정도면 전력 생산이 아니라 사냥용으로 써도 될 정도예요.”

“그래?”

“네. 뇌전이 피아구분만 할 수 있다면요.”

“그렇다 이거지.”

주민성은 다시금 뇌전 지팡이를 운용했다.

‘스켈레톤은 제외하고, 전부 좀비만 잡아 보자.’

이번엔 출력이 상당했다.

“…….”

아니, 심각했다.

이대로 5초 정도만 더 지팡이를 운용한다면 의식을 잃겠다 싶을 정도로.

“큭!”

주민성을 필사적으로 의식을 집중해 지팡이로 쏟아지는 출력을 낮췄다.

그리고 기어코 마지막 발사까지 성공해냈다.

“다들 엎드려!”

“예!”

콰지지지지지직!

지팡이에서 쏟아진 뇌전은 눈앞의 좀비를 향해 쏘아지지 않았다.

대신, 천장으로 뻗어갔다.

콰르르!

단숨에 천장이 박살나고, 뇌전은 계속해서 하늘로 치솟았다.

“뭐, 뭐야 저게…….”

그렇게 황당하게 하늘을 올려다볼 즈음.

뇌전이 사방으로 뻗었다.

세상이 번개로 종말을 맞이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스케일로.

“……!”

그리고 눈앞이 번쩍였다.

쾅!

뇌전이 눈앞에 있던 좀비에게 직격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쿠르르르! 쿠르르르르!

계속해서 천둥 소리가 이어졌다.

사방으로 뻗어진 뇌전이 내는 소리였다.

“……설마.”

주민성은 곧장 뚫려버린 천장으로 점프했다.

이젠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은 갖춘 상태였기에 어렵진 않았다.

“이, 이게 대체…….”

건물 바깥엔 스켈레톤은 제외한 좀비만이 바닥에 쓰러져 움질대고 있었다.

뇌전은 눈앞의 좀비를 넘어서서, 반경 수백미터에 있는 모든 좀비들을 노렸던 것이다.

지팡이의 진가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 유물.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뒤따라 올라온 김정남의 말이었다.

“……그러게요.”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광역 공격 유물.

그 값어치는 이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저 유물이 리치의 손에 넘어갔다면 더욱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리라.

“와…….”

물론 이 유물을 아무나 악용할 수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쓰기엔 출력 요구량이 너무나도 크니까.

“적당히 조절해서 쓰는게 관건이겠네요.”

인벤토리에 보관하기에도 찝찝하다.

장 박사가 괜히 사고라도 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선호가 처음 말했던 대로 쓰는게 최선이려나.’

적재적소에 써도 너무나 뛰어나고, 악용하면 얼마든 악용할 수 있는 유물.

주민성은 인류가 처음 다이너마이트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내려가죠.”

“네.”

다시 센터장실로 내려온 주민성은 꽃블린에게 근처 언데드의 제압을 다시 명령했다.

그리고 지부장에게 향했다.

지팡이의 사용처 때문이었다.

‘이 유물은 건물다운 건물에서 관리해야해.’

이 유물을 본격적으로 관리하며 써먹기엔 텐트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선택지는 컨테이너였다.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그대로 지부장에게 물었다.

“지부장님. 근처에 컨테이너 차량 구할만한 곳 있을까요?”

“컨테이너요?”

“네.”

“머지않은 위치에 폐차장이 있긴 합니다. 그쪽에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위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폐차장 위치를 건네받은 주민성은 빠르게 인원을 편성했다.

“폐차장엔 저랑 선호만 갑니다. 춘향이랑 정남 씨는 여기 남아서 수습 지원 부탁드리고요.”

“어어? 저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금방 다녀올 거야. 아직까진 휴대폰 되니까 여차하면 전화해.”

“알겠습니다.”

봉춘향이 섭섭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뇌전 지팡이를 건물과 접목시켜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었으니까.

“여기네요.”

지부장이 알려준 폐차장은 이미 몬스터가 잠식한 상태.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네. 형.”

주민성은 몇몇 고블린 라이더와 함께 언데드를 처리했다.

구심점인 리치가 없었기에 과정은 상당히 수월했다.

“음?”

그러던 와중, 엉뚱한 곳을 노리는 좀비들이 포착됐다.

컨테이너를 포위하고 있는 좀비들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나?”

생각해 보니 인천 방면은 따로 대피소 안내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기요! 안에 누구 계십니까?”

“여기요! 도와주세요!”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주민성은 곧장 컨테이너로 쇄도해 좀비들을 일격에 처리했다.

“다 잡았습니다.”

그제야 창문 틈 사이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선아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 둘이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소식 늦게 들으셨나 봐요. 위험할 뻔했습니다.”

“네……. 뉴스 보기도 전에 고블린들이 주변을 돌아다녀서 협회에 신고하고 숨어 있었거든요.”“아…….”

그 말은 즉, 언데드가 나타나기 전에는 탈출할 수 있었으나 고블린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는 뜻.

결과적으론 김정남 일행이 언데드 억제를 잘 해냈고, 주민성이 제때 들어왔기에 어떻게 해도 이들은 고립되었을 것이 뻔했다.

물론 협회가 올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블린들은 진작에 이곳을 떠난 상태였다.

내린 명령은 언데드의 섬멸.

여기에 인간은 속하지 않았다.

“문 열어 드릴게요.”

“네.”

최선호도 뒤늦게 합류했다.

“그보다 좀 어려 보이시는데, 여기 사장님 어디 있어요?”

“아, 저희 아빠 찾으러 오셨나요? 협회 아니었어요?”

“네. 협회는 아니에요.”

“처음 보는 분인데…….”

“물론 여기 사장님 지인도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둘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아빠는……. 휴. 일단 들어오세요.”

“네.”

당연하겠지만, 컨테이너는 곧장 소유할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폐차장 주인이 휴식 용도로 써 왔는지 상당히 관리도 잘 된 컨테이너였고.

‘이러면 부수기도 애매한데.’

컨테이너 내부엔 비어 있는 라면 봉투가 가득했다.

“아직 학생이시죠?”

“네. 고등학교요.”

“여기 사장님은요?”

“그게……. 며칠 전부터 아빠랑 연락이 안 돼요.”

“……음?”

“요즘 정세가 이상하다고 능력 각성하러 갔었거든요. 그리고 연락이 안 돼요……. 흑.”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협회 인천지부에선 김정남 일행을 몇 달 만에 방문하는 일반인 손님이라고 했었으니까.

“형…….”

최선호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눈치를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인천지부 각성 센터장은 건물 이용자도 아니었다.

‘곤란하군.’

그렇다고 눈앞의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며칠째 대충 끼니를 때운 흔적들도 있었으니.

“사장님 소식은 천천히 알아보죠. 그보다 남는 컨테이너 좀 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근처에 남는 컨테이너는 몇 개 더 있긴 해요.”

“예. 그럼 조금만 쓰겠습니다. 일단 두 분은 협회로 합류하세요.”

“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을 향한 불행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었다.

대격변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근데 저희 둘만 가나요?”

“아……. 고블린 붙여 드릴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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