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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2) (146/250)


대격변 (2)
2022.04.26.


전부 예측했던 사태였다.

1차 대격변에 관한 기록도 찾아봤었고, 지금의 인류가 2차 대격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가능해.’

몬스터는 처음부터 절대적인 전투력을 행사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나름의 적응기가 필요했고, 시간이 흘러야 본연의 전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게이트 난이도에 관한 분석이었다.

“정말……. 정말로 우리 가족 무사한 것 맞습니까?”

“집이 1층에 있어요! 당장 몬스터가 들이닥친다면……!”

그래서 주민성은 오늘의 사태를 끊임없이 준비해 왔다.

늦어지면 늦어지는대로, 이르면 이른대로 상황에 맞는 사업을 진행시킬 예정이었다.

그렇게 인천 게이트는 외부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 부분도 고려했습니다. 몬스터의 우선 타겟이 될 만한 집부터 구출 작전이 시작될 겁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가족들 전부가 이미 인천 게이트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역시 동료의 불행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어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덕분에 인천 지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춘향아. 새로운 정보는 있어?”

모든 파견팀에는 봉춘향의 분신이 배속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전기가 끊어지는 사태에도 문제 없이 새로운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네. 강서구에 발생한 게이트 몬스터에 대해 파악됐습니다. 공항동 부근은 하피, 방화2동부터 방화3동까진 웨어울프가 발견됐습니다. 포섭엔 실패했습니다.”

“포섭이야 그렇다 치고. 게이트가 두 군데에 생긴건가? 종족이 너무 다른데.”

“예. 그와 관련된 특이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응?”

“방화1동은 두 종의 몬스터가 모두 출몰하며, 피아구분 없이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입니다.”

“……그래?”

특이한 케이스였다.

보통 게이트의 몬스터는 종족이 달라도 기본적으론 협력하는게 기본이었으니까.

“예. 세력다툼으로 추정됩니다.”

“흐음.”

태양의 순례지가 떠올랐다.

‘그쪽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중립관계였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나, 한쪽이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봤던 놈들이었다.

이는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였다.

“좋네. 그럼 강서구에선 최대한 몬스터들을 자극하지 않는 편이 낫겠네.”

“예. 서로 반목시켜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습니다.”

“응. 방침은 그대로 전달해 줘. 구출쪽은 어떻게 됐어?”

“강서구는 거의 마무리됐고, 양천구로 이동중입니다.”

봉춘향의 대답에 협회원들의 표정이 상반을 이뤘다.

구해진 쪽과, 구해지지 못한 쪽의 차이였다.

“아아…….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이동 시간도 시간이지만, 주민성이 양천구를 후순위로 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목동에 큰 길드 하나 있잖아요. 아린 길드.”

“아……. 설마.”

아린 길드는 한국 10대 길드 중 하나였다.

엘리트 주의라는 길드 분위기가 조금 염려됐지만, 실력 하나는 보장되어 있었다.

“그쪽 입장에서도 몬스터를 가만히 내버려둘 이유는 없어요. 애초에 재난 상황이고.”

몬스터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이면 무조건적으로 공격하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능력자가 속한 지역이라면, 그쪽을 집중적으로 노릴 정도의 지능도 갖췄을 터였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까지 확실하게 존재한다.

“모든 게이트에 보스 몬스터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놈들은 지능적으로 움직일 거고요. 최우선은 아린이에요.”

상대적으로 일반인이 더 안전한 지역.

그곳이 양천구였다.

그때, 유호영이 손을 들었다.

“저 아린 길마님이랑 알아요! 전화해 볼까요?”

“아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언데드는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

“고, 고블린?”

“괜찮아요. 아군이니까.”

고블린 라이더들이 합류한 덕분이었다.

인천 게이트를 떠나 다른 지역마저 게이트로 만든 이상, 주변 장악은 필수였다.

“키히히히!”

고블린 라이더를 이끄는 건 꽃블린의 몫이었다.

본격적인 출전은 처음이었기에 가까이 두자는 판단이었다.

판단은 아주 적절했다.

“스으으으.”

온갖 꽃을 품에 끼고다니며 향을 번갈아 맡은 꽃블린은 가공할 정도의 힘을 자랑하며 주변을 쓸어나갔다.

“키햐아!”

파그작!

고블린보다 상위격 몬스터인 스켈레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방에 박살낼 정도였다.

심지어 꽃으로도 팬다.

[권속 꽃블린의 지배력이 상승합니다.]

[지배력 순위가 변동됩니다.]

[12위. 탐욕스러운 성장마 꽃블린]

15위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위란다.

확실히 성장마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몬스터였다.

‘은근히 쓸만할지도…….’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지?”

“네.”

“오케이.”

이젠 슬슬 움직여야 할 때.

그 전에, 마무리 지을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저거 왜 안 죽지?”

정화수가 가득 담긴 욕조는 지금도 계속해서 꿈틀대고 있었다.

정확히는 욕조를 덮어씌운 텐트를 향해 리치가 쉴새없이 바둥거리고 있던 것이지만.

“언데드라고 해도 보스급이라 성수는 무력화가 한계일 겁니다.”

다행히 김정남에겐 정보가 있던 모양이다.

“놈의 핵을 찾아야 합니다. 라이프 베슬이라고도 하죠. 그걸 파괴해야만 소멸시킬 수 있는 몬스터예요.”

“그래요?”

주민성은 서슴없이 욕조로 다가가 텐트를 살짝 벗겼다.

“그그그극!”

여전히 정화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주민성은 그대로 손을 뻗어 리치의 목을 부러뜨렸다.

우득!

그리고 뽑아올렸다.

“카가각!”

“이게 되네.”

확실히 김정남의 말대로 리치는 죽지 않았다.

적반하장으로 주민성을 탓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네놈은 자긍심도 없는가!”

주민성의 의식은 이미 라이프 베슬에 꽂혀 있었다.

리치의 사망은 곧 보상이었으니까.

“음……. 여기도 안 보이고.”

흡수될 마석은 둘째치고, 보스급 몬스터를 죽여 얻게되는 유물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위, 위험한데 다시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치 토벌 기록부터 조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확실하겠죠?”

“예.”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일단 갈아보고, 그래도 안 죽으면 알아보죠.”

“그, 그건!”

주민성이 쥐고 있는 건 입자분쇄기였다.

“이마에 박힌 보석이 신경 쓰이더라구요.”

리치의 이마에 박힌 붉은 보석.

마석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보석이었다.

위이이이잉!

“그아아! 잠깐!”

“잠깐은 무슨.”

바위도 잘라내는데 오래된 해골이 버텨낼 리 만무했다.

입자 절단기는 이미 리치의 두개골을 가르고 보석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다.

서걱.

보석이 잘려나가자, 해골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황당하게도 보석은 진짜 리치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라이프 베슬이었다.

“쯧.”

리치와는 협상의 가능성도 있었다.

건물 이용자였던 협회원들을 죽이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의 결단은 죽은 협회원을 기리는 응징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리치가 저렇게 쉽게…….”

이렇게 대놓고 라이프 베슬을 보인다는 건, 누구에게도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었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리치가 살던 세상엔 건물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해골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크렌베인의 영혼석이 흡수됩니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바였다.

몬스터가 평범하게 죽지 않으면 이렇게 영혼석을 남기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이후였다.

지잉.

영상 매체를 통해서만 봐왔던 유물 획득 장면이 재현됐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리치가 죽고 떠오른 빛의 정체가 차원문이라는 사실을.

차원 경매장이든, 세입자든, 몬스터의 침공이든, 전부 이 차원문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리고 이번 차원문에서 나타난 것은 유물이었다.

평소라면 크게 흥분했겠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근처의 몬스터들이 사라지니 현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며 머리가 식어 갔으니까.

“유물. 제가 챙겨도 되겠습니까.”

협회원들의 의견은 지부장이 정리했다.

사실 물어볼 것도 없었지만, 앞으로의 신뢰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특히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선.

“당연합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저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유물부터 확인하십시오. 주변 정리는 저희가 직접 하겠습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지부이기도 하고…….”

김정남도 헬스장에서 그랬듯, 협회원들에게도 이곳은 특별한 장소였다.

“평화로운 시대는 끝났네. 협회원으로서의 권리도, 생업도, 전부 사라졌지.”

“흑! 지부장님!”

인천 지부장의 인망은 상당히 두터운 편이었다.

판자촌 중대장이 떠오를 정도였다.

“움직이세. 이제 우린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해.”

“……물론입니다!”

자신들조차 몰랐던 가족들의 안위를 미리 예상하고 구출 작전을 세운 주민성이 평범하게 보일리 없었다.

지금 주민성의 위상은 세기의 구원자 그 이상이었다.

“여기서 형이 유물을 갖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요.”

물론, 기존의 동료들인 최선호, 봉춘향, 김정남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고맙습니다. 다들.”

빛이 사그러들고, 유물이 형체를 드러냈다.

“음?”

유물은 거대했던 빛에 비해 상당히 작은 크기였다.

높이는 40cm 정도.

“이게 뭐지?”

“좀 으스스하게 생겼네요. 언데드 보스라서 그런가?”

“일단은 지팡이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전에 협회 간부에게 뜯어냈던 유물과 달리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은 유물이었다.

이 녀석은 투혼갑옷과 훨씬 가까운 분위기였다.

“어휴.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데.”

성능이야 당연히 좋을 터였다.

유물이니까.

게다가 설비형 유물이 아닌 장비형 유물이다.

만약 이 유물에 저주만 걸려 있지 않고 대격변 사태가 아니라는 전제조건만 갖춰진다면 수백억의 가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으리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음……. 일단 한 가지 방법이 있지.”

“오오.”

답은 메시지였다.

굳이 손에 쥘 필요도 없다.

수납만 해도 유물의 대략적인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

‘이 기회에 장 박사를 써먹어볼까?’

바깥 상황을 모르는 장 박사였지만, 그렇다고 기대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세밀한 분석력만큼은 주민성도 높게 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인벤토리 물건이 빠져나갔으면 모를 리가 없어.’

게다가, 장 박사가 정상적으로 연구를 진행했을 당시라면 비석에 관해서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주민성은 박살이 난 사무용 책상에서 포스트잇을 하나 주워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뭔지 알아내면 라면 개발 추가로 지원해줌.

이것으로 미끼까지 완성됐다.

이젠 유물이 뭔지 알아볼 차례였다.

[포스트잇이 수납됩니다.]

[악령의 뇌전 지팡이가 수납됩니다.]

“어? 유물이…….”

“괜찮아. 수납만 했어.”

“아아…….”

주민성은 당황한 최선호를 진정시키고 메시지에 주목했다.

유물의 이름은 상당히 직관적인 편이었다.

‘악령이라는 건 리스크. 뇌전이라는 건 유물 본연의 성능이겠군.’

전기와 관련된 유물이라면 주목할 만했다.

능력자들 중에서도 전기를 다루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 관련 능력은 출력과 상관없이 적재적소에서 대우받을 수 있는 계열에 속했다.

출력이 낮으면 산업체에서 환영받고, 높으면 몬스터를 상대로 매우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되게 쓸만하겠는데?’

그리고 전기는 건물주인 주민성에게도 굉장히 유용했다.

‘시간이 지나면 전기도 끊어질 가능성이 커.’

한정된 지역을 초토화시켰던 1차 대격변과는 달리, 2차 대격변은 세상의 모든 지역을 초토화시키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뇌전 지팡이 사용법을 확실히 알아낸다면 무한한 전력공급이 가능하게 될 터였다.

주민성은 얻은 정보를 곧장 공유했다.

“이 유물. 악령의 뇌전 지팡이래.”

“뇌전이요?”

“응. 이거 그래도, 전력 공급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어…….”

최선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뭔가 고심하는 모양.

“왜? 선호야?”

“형. 이거 용도 변경으로 써보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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